아우성 가득한 세상에 ‘침묵의 초대장’이 날아오고 있다. <그림의 떡> <이방인>등 11편의 농영화다. 이는 채플린의 무성영화처럼 소리가 지워진 영화 아니 그런 세상을 보고 자란 청각장애인들이 만든 조용한 영화다. ‘소리언어’가 아닌 ‘시각언어’로 자신들의 삶과 꿈을 녹여낸 작품들이다. 더 넓은 세상과 소통을 꿈꾸는 아름다운 청춘들이 모인 곳 데프미디어의 박재현 감독을 만났다.
“소리 없는 영화가 곧 우리들 삶이죠.”
이 날은 화이트데이. 거리마다 크고 작은 사탕바구니와 꽃다발이 즐비하다. 달디 단 사랑의 밀어가 허공을 메우던 시간, 이곳에서는 현란한 손짓으로 대화 열기가 후끈하다. 종로의 수화사랑카페에는 데프미디어 스태프 10여 명이 모여 12번째 농영화 제작회의를 진행 중이다. 촬영장소 및 담당역할 등에 대해 논의가 활발하다.
“우리 농인들은 소리 없는 세계, 즉 무성영화와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리 없는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시각의 세계를 우리들 보편적인 삶의 영상에 담아 표현합니다. 이러한 농영화를 통해 편견과 차별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임을 알리고자 합니다.”
지난 2005년 4월에 창단한 데프미디어는 ‘농인을 위한 영상매체물을 만드는 독립제작집단’이다. 감독도 배우도 스태프도 모두 청각장애인으로 구성됐다.
청각장애인 삶 담은 농영화 11편 제작
감독 박재현 씨는 데프미디어의 설립취지를 설명했다. 그들이 2005년 첫 영화를 만들 때만 해도 실수 만발이었다. 삼각대, 컷, 크랭크인 등 영화 관련 용어는 아예 수화가 없었다. 수화를 일일이 직접 만들어가면서 제작했다. 카메라 아래로 손가락 세 개를 세우면 배우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큐’ 사인이다. 배우와 스태프도 제작 단계에서 그 때마다 모집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만든 영화는 총 11편. 2006년 4월 장애인 인권 영화제 수상작인 ‘어느 애비의 삶’ 을 비롯해 ‘길거리 천사’ ‘애인보다 더 좋은 내 인생의 친구’ ‘그림의 떡’ 등 상영시간이 20분가량의 단편영화를 꾸준히 내놓았다.
데프미디어를 이끄는 박재현 감독은 세 살 무렵 앓은 중이염의 후유증으로 청력을 잃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한국구화학교에 다녔지만 건청인들과의 통합교육이 좋다는 권유에 따라 고등학교는 일반학교로 진학했다. 하지만 수화통역이 지원되지 않았기에 수업 내용의 태반을 알아듣지 못했고 교우관계도 어려웠다. 한계상황에 맞닥뜨렸던 이러한 경험들은 건청인과 농인 사이에 서서 양쪽을 바라볼 수 있는 폭 넓은 시각을 갖게 해주었다. 수화도 언어라는 인식 또한 확고해졌다.
“취미삼아 교회친구들을 캠코더로 찍어서 보여줬는데,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영상이 소리 없이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걸 그 때 알았어요. 기독교농아인방송의 비디오 저널리스트(VJ)로 일한 경험도 도움이 됐고요. 우리가 만든 영화를 통해 수화도 언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자막 없는 드라마, 한국영화는 ‘그림의 떡’
첫 영화 <친구>가 만들어졌다. 요즘은 한국장애인재단의 도움을 받지만, 초창기에는 자비를 들여 제작했다. 그가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찰리 채플린의 영화처럼, 사운드나 자막 없이 몸과 이미지만으로 만들었다.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살아가는 단절되고 갑갑한 ‘침묵의 세상’을 스크린에 담아 발표했다. 건청인 중심의 문화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던 청각장애인들에게 ‘농영화’는 너무도 큰 선물이자 희망이었다.
박재현 감독은 청각장애인들도 엄연히 문화적 욕구와 권리가 있는 존재임을 얘기한다. 천만 명이 본 <괴물>도 <왕의 남자>도 시청률 50%대의 인기드라마도 ‘자막’이 없으니 청각장애인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이처럼 ‘즐길 거리’가 전무한 현실에서 그가 데프미디어 식구들과 만든 영화의 의미는 실로 컸던 것이다.
“영화를 선보였을 때 소리가 전혀 없으니까 처음에는 건청인들이 놀랐어요. 하지만 의외로 집중을 잘 했습니다. 그리고 매번 소리 없는 영화를 봐야하는 농인의 처지를 이해한다고 말했습니다. 한 번은 한국영화에서 소리를 빼고 DVD로 상영한 적이 있는데 그 때도 반응이 좋았어요. 소리 없는 농영화를 만들었을 때 건청인들도 과연 이해를 할까하는 문제가 고민이 참 많았는데 시각적으로 집중 할 수 있도록 잘 만들면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튀고 싶어서 들어왔지요.” 역할도 꿈도 제각각
데프미디어의 스태프는 총 3명, 서포터즈를 포함해서 20여 명이 움직인다. 연출부 강묘애 씨는 팀의 유일한 홍일점이다. 인권영화에 관심이 있어서 합류했다.
“농영화를 관객들이 보고 호응하고 관심 가져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힘든 점은 제작비와 기술적인 어려움, 의견차이 등 제작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힐 때죠.”
여러 편의 작품에 주연배우로 활동한 이장우 씨. 그는 데프미디어의 발전을 돕고,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영화제작에 참가했다고 한다. 처음엔 영화제작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느끼고 모든 상황이 어색했지만 열정과 노력으로 극복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간 만든 11편의 영화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그림의 떡’. 농인들이 영화를 보면서 소통 단절의 서러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연출부 서대승 씨는 ‘튀고 싶어서’ 들어왔다며 발랄한 포부를 밝힌다. 얼굴에 사춘기 호르몬이 분비되는 듯 ‘막강 동안’의 외모지만 현재 회사원이다. “영화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지만 회사사정상 스케줄을 짜기 힘들어 지원해주면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배우가 되고픈 홍길표 씨는 지인의 소개로 박재현 감독과 만나 데프미디어에 합류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영화제작이 쉽고 달콤하기만 한 일은 아니더라며 “그래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서포터 허명훈 씨는 오래전부터 영화에 관심 많아 참여했다. 여러 부분의 활동 통해서 경험을 쌓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제각각의 소중한 꿈과 열정으로 모인지라, 데프미디어 기획회의는 때로 새벽까지도 이어진다. 박재현 감독은 “찜질방 불가마에서 거의 회의도 많이 했다”면서 다들 집에도 안가고 밤샘작업을 하니까 부모님들로부터 도대체 어디서 자취하느냐는 말도 나왔었다며 머쓱하게 웃는다.
‘수화통역사’ 보급 확대 절실... 영화로 알릴 것
즐겁기도 힘겹기도 한 영화제작. 처음부터 끝까지 여럿이 머리를 맞대야하는 지라 감독으로서 그가 느끼는 어려움은 의견조율이다. 예를 들어, 그가 ‘다른 세계’를 표현하고자 영화 10편 모두 흑백을 고집하자 몇몇은 “답답하다”는 반대의견을 내기도 했다. 또 일부 제작진은 비장애인들도 이해하도록 소리를 넣자는 주장도 있었다. 박재현 감독은 “우리 손과 시각으로 만드는 영화인데 왜 못 듣는 소리를 굳이 넣어야 하느냐”고 설득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갈등이 참 많았어요. 제 인생에 있어서 참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한국영화 초장기에도 사람과 사람사이에 갈등으로 분열도 많았다고 들었어요. 그게 어느 정도 공감이 가더라고요. 그렇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밀어주고 옆에서 도와주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힘들지만, 역시 사람이 참 중요하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데프미디어의 나아갈 길은 분명하다. ‘수화가 언어로 인정받는 그날까지’ 청각장애인의 현실을 영상에 담는 것이다. 또한 농영화의 장르를 풍부하게 넓히려는 포부도 있다. 박재현 감독은 “일본에는 농영화 공포물도 있다.”며 나중에 ‘소리 없는 호러물’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박재현 감독과는 노트북을 통해 인터뷰가 진행됐다. 필자가 미리 마련해간 질문 목록에 답하고, 또 그가 의견을 쓰는 것을 보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메모지에 적어 보여주는 필담도 곁들였다. 그와의 대화는 느리고 찬찬히 그리고 사려깊게 이뤄졌다.
대화를 미칠 즈음 그는 ‘수화통역사’ 문제를 꺼내놓았다. 수화통역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내가, 혹은 자식이 농인으로 태어나서 살아갈 때 겪는 소통의 불편을 알면 얼마나 섭섭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섭섭함’이란 그의 표현이 뭉클하다. 지극히 일상적인 소박한 하지만 맴도는 분노가 전해져온다. 그는 말했다. 마치 공공시설에 휠체어 통로 만드는 것처럼 수화통역사는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라고.
“농아인들은 겉으로 불편할 게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예산 지원이 거의 되지 않고 있어요. 외형상 정상인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현실은 정보접근이 약해서 사회로부터 격리된 느낌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 모든 문제를 영화를 통해서 알리고 싶어요. 영화만이 길을 열어줄 빠른 수단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