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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인터뷰

인터뷰 후기 - 원도 작가

얼마 전 정신질환을 앓던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웃들이 악취가 풍긴다고 집주인에게 전했고, 집주인이 경찰에 신고해 모녀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전엔 이런 뉴스를 보면 ‘모녀’에 온통 신경이 쏠렸다. 이제는 다른 사람도 보인다. 저 ‘악취 풍기는 시신’을 처리하는 존재 ‘경찰’을 생각한다. 이는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하는 마법을 글에 부려놓은 사람, <경찰관속으로>를 쓴 원도 작가 덕분이다.

그가 큰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매일 목도하는 사건의 비참에 눈감지 않을 수 있는 힘. 한바탕 통곡하고 싶은 밤마다 꾸역꾸역 글을 쓸 수 있었던 힘의 소유자다. 용기와 끈기의 원천이 궁금해서 인터뷰를 시도했다. 원도는 지역민, 여성, 장애인 가족으로 살아면서 불편을 숱하게 겪었고 ‘힘’을 갖고싶어서 경찰관이 됐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경찰이 되고는 자신보다 더 힘 없는 이들의 삶과 죽음을 외면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는 “장애인 가족이 아니었다면 남의 아픔에 나의 일처럼 공감 못했을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고등학교 때 오빠 있다고 하면 부러워하잖아요. 오빠 군대 갔다왔니? 항상 물어봐요. 안 갔다, 그러면 왜? 오빠 장애인이야, 말하면 분위기 안 좋아지고. 그게 익숙해지니까. 나중에는 그냥 갔다왔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남한테 질문을 잘 안해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부모님이 두 분 다 계시는 게 당연하지 않거든요. 한부모, 조손 가정도 많고요. 누가 결혼을 한다고 해도 남편 뭐해, 몇 살이야. 안 묻고 축하만 해줘요. 남편이 직장이 없을 수도 있고. 남편이 남자가 아닐 수도 있고요. 그런 걸 제가 안 겪어봤으면 몰랐겠죠. 애써 안 물어봐요. 나 혼자 궁금하고 말지.”

장애인 동생이라는 이유로 급우들에게 “병신 동생이 병신 같은 짓만 하네.”라는 말을 들었다. 부모는 오빠 때문에 너를 낳았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말했다. 자기 삶의 조건과 세상에 대한 원한감정을 가질 수도 있는데 그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수용력이 높은 사람이 됐다. 어려서부터 꾸준히 일기를 쓰고 사건일지를 넘어서는 글쓰기가 길러준 삶의 저력이 아닐까 싶다.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무력감으로 글을 쓰면서 그는 자신이 바뀐 것이다.

또 좋았던 지점. 원도 작가는 ‘언니뽕’에 취해 <아무튼, 언니>를 썼다.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언니들 덕분에 “신파 없이 서로의 고통을 담담하게 대화로 풀어내는 법을 배웠다.” 그 비법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 힘들어, 라고 말하면 언니가 구체적으로 뭐가 힘든지 말해보라고 하고, 이야기 하다보면 정리가 돼요. 무조건 냉정하게 하면 상처받으니까 달래주고 스스로 말하게 하면서 생각해보게 해주는 거죠. 또 직업적 특성이기도 한데, 저희는 큰 사건을 자주 보니까 호들갑이 잘 없어요. 언니, 어디 다쳤어요, 하면 어디 찢어진 거 아니잖아? 팔 못쓰니? 반응이 달라요. 경찰관 아닌 부류랑 놀면 벌레 하나만 봐도 깜짝 놀라는데 저흰 옆에 누가 죽는다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니까 좀 담대해지는 거죠. 자가진단을 하고 해결해야죠. 마냥 울 수는 없잖아요.”

원도는 강고한 남성중심의 조직에서 여성 경찰이 되기를 택한 것, 혼자서 글을 쓰고 언니들과 떠들며 일하는 것 자체로 의미 있는 변화의 물길을 내고 있다. 이 당차고 묵묵한 개혁주의자는 말한다. “도통 풀릴 것 같지 않은 문제의 해답은 시간일 때가 많다.”라고.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51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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