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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인터뷰

은유의 연결 - <그냥, 사람> 홍은전 작가

사범대 4학년생 은전은 딱 1년만 방황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거대한 선착순 달리기 시합 같은 임용고시가 두려웠다.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는지 알아볼 겸 노들장애인야학을 찾아갔다. 건물 입구에는 휠체어를 탄 남자 셋이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순간 은전은 뒷걸음질 쳤다. 난생처음 ‘실물’ 장애인을 본 몸의 자동 반응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되돌아갔다. 장애인보다 무서운 것은 내 안의 편견이란 생각이 스쳤다. 용기 내어 노들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가 2001년 8월24일 목요일 저녁 7시40분, “길 가다가 맨홀에 떨어지듯” 홀연 다른 세계로 빠져든 순간이다.

그는 노들야학 교사가 되었으나 가르치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했다. 20∼30년을 방안에만 갇혀 산 사람을 야학에 오게 하는 법, 휠체어 탄 중증장애인들과 바다로 모꼬지 가는 법을. 교육은 투쟁을 불렀다. 장애인 이동권 확보, 활동보조서비스제도 도입, 탈시설 운동, 장애등급제 폐지 등, 그의 동료 교사와 학생들은 남들 같은 일상을 살아보고자 싸웠고 그들의 투쟁은 한국 장애운동의 역사로 남았다.

“글쓰기는 사랑하는 것들을 불멸화하는 노력”이기에 2014년 노들을 떠나며 그는 노들에 미쳐서 산 청춘 13년을 <노란들판의 꿈>이란 책으로 묶어냈다. 그 과정에서 과거와 미래에 관한 고귀한 진실을 발견했다. 그가 만난 장애인은 차별받는 사람이 아니라 저항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은 저항하는 사람들, 운명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에 마음을 뺏겨버린다는 것. 그의 펜은 형제복지원 피해자, 세월호 유가족, 화상 경험자의 삶에 가닿았다. 현재 인권기록활동가이자 <한겨레> 칼럼 필진으로 활약 중이다. 우리 사회가 등 돌린 ‘사람’의 이름을 꽃처럼 불러주다가 스스로 눈물이 되어버리는 홍은전의 열렬한 글쓰기는 지난해부터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동물’로 그 세계가 확장되었다.

장애인야학 교사에서 인권기록활동가, 그리고 동물권활동가로. 그의 급격한 존재 변신을 견인한 일상의 혁명가들 면면을 담아 <그냥, 사람>을 최근 펴낸 홍은전(41) 작가를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만났다.

학교 오는 법부터 배우는 장애인야학

―처음에 왜 하필 노들야학을 갔어요?

“포털사이트에서 야학을 검색했는데 노들야학이 가장 먼저 나왔어요. 저는 학교에서 장애인을 본 적도 없고 장애 쪽에 관심이 전혀 없었어요.”

―낯설고 먼 환경으로 떠났어요. 글에서도 마치 해외 유학을 간 것처럼 ‘나는 노들에서 공부했다’고 썼고요. 노들에서 무엇을 공부했나요?

“제가 초·중·고등학교, 대학까지 다 합쳐서 12년간 배운 모든 것을 다 제로로 만드는 학교였어요. 여기에서는 누군가를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다 쓸모없어졌고, 국어, 영어, 수학, 사회 다 필요 없고, 교육은 너무나 할 게 많은 거예요. 이 학생이 야학에 오게 만드는 것. 그러려면 세상이 바뀌어야 되고요. 그래서 투쟁도 해야 하고. 학생의 자신감이 많이 위축되어 있는데, 그 자신감도 함께 끌어올려야 하고.”

―학생들 자신감은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어요?

“일단 여기에 오면 자기 탓이 아니라는 걸 되게 빠르게 공감해요. 왜냐하면 20년, 30년을 다 집 안에만 있었고 집에서도 자기 혼자니까 장애인은 장애인을 알 것 같지만 장애인도 장애인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티브이에 나오는 장애인은 다 불쌍하거나 아주 뛰어나거나 이것밖에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장애인은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는구나 생각하고 살던 사람들이 여러가지 우연이 겹쳐서 노들야학까지 오는 거예요.”

―학생들도 맨홀에 빠졌네요. 다른 세계로 이동했으니까.

“네. 여기 왔더니 우리는 권리가 있고 나가서 싸울 수 있다, 집에서도 주눅 들어 있던 사람들이 밖에 나가서, 광장에 나가서 자기 몸을 펼쳐 보이고 세상을 향해서 외칠 수 있는 순간, 자신감이 아주 빠르게 회복이 돼요.”

―와,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귀한 경험 같아요.

“그럼요. 그 해방적인 경험들은 저도 노들야학 가서 했어요. 저의 선배 교사들이 학생들한테 끊임없이 말해요. 화가 나면 화를 내세요. 이거 다 가르쳐요. 학생들이 화낼 줄 모르세요. 집에서 자기를 케어해주는 엄마의 기분, 아빠의 기분이 너무나 중요하죠. 그래서 여기에선 짜증을 내도 된다, 시설에 가기 싫으면 가기 싫다고 말해도 괜찮다, 계속 얘기해요. 그거 보면서 저도 배웠죠.”

―임용고시 안 보겠다고 말해도 된다?(웃음)

“아버지가 싫었다고 말해도 된다.(웃음) 계속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저도 아빠랑 싸우고 있더라고요.”

저항은 차별의 반대말

홍은전은 경남 사천에서 태어났다. 진주로 이사 가서 중·고등학교 다니다가 서울에 있는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임용고시가 있던 날 시험장이 아니라 야학으로 출근했다. 경쟁하는 세계에서 협력하는 세계로 넘어온 그는 “아무도 이기지 않은 채로” 교사가 되었지만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은전이가 사라졌다’ ‘절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세속에서 자취를 감춘 그는 13년을 노들이란 행성에 착지해 다른 시간을 산다.

―비장애인 교사가 장애인 학생들과 같이 일상을 보내는 게 얼핏 생각하면 힘들 것 같거든요. 장기근속의 비결이 뭐예요?

“제가 노들 좋다고 말해도 아무도 안 믿어요.(웃음) 좋아 보이지 않나 봐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고민을 했었는데, 친구를 사귈 때 존재 자체로 굉장히 소중하죠. 내가 힘들 때 쟤가 들어줬고, 쟤가 힘들 때 내가 뭔가를 해줬고, 이러면서 관계가 형성이 되는데, 왜 장애가 있는 친구는 짐이 된다고 생각을 할까요?”

―관계 경험이 없으니까 상상을 못하는 거죠.

“제가 친한 사람 중에 저보다 두살 많은 학생이 있어요. 휠체어를 타는 분이거든요. 제가 약간 공황 같은 게 왔을 때, 교무실에서 집에 가질 못했어요. 밤 10시쯤이었는데 언니가 마트 가서 고등어 사 와서 착착 구워서 술과 따뜻한 안주를 줬거든요. 생활하다 보면 노들야학의 모든 관계가 장애, 비장애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와요.” ―막차 올 때까지만으로 시작해서 첫차 올 때까지로 이어졌다는 술자리, 책에 나오는 그 장면이 이런 거군요.

“저는 그때 왜 그렇게 노들이 좋았을까. 대학교 때 되게 외로웠나 봐요.(웃음)”

―아무도 술 안 마셔줬나 봐요, 다 공부만 하고.(웃음)

“근데 노들에 왔더니 저를 가만두질 않는 거예요, 다. 은전아 술 먹자. 1차 가자, 2차 가자. 교장선생님도 술 좋아하고. 그거 되게 중요했어요.”

―술이 관계의 윤활유가 되죠. 술만큼 ‘저항’이란 단어도 많이 나와요. ‘노들은 차별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거듭 주장하고요.

“노들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 그 노들은 차별받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그렇기만 한 게 아니라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차별받는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은 너무 다른데, 사람들이 당연한 인과관계로 생각해요.”

―차별받으면 누구나 저항하는 것처럼요?

“네. 오히려 반대죠. 차별받으면 저항할 수 없게 돼요. 저는 노들을 그만두고 나서 알게 됐어요. 내가 노들에서 십몇년간 한 모든 것이 차별을 저항으로 만드는 일이었구나. 차별과 저항이 얼마나 멀고 이어지기 어려운지 알았죠. 그게 얼마나 어렵냐면 내 청춘이 거기 다 들어간 거예요, 우리의 청춘이.”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 같은 구호는 저항하는 인간들이 발명해낸 말이라고 하셨는데, 저항하는 인간들은 어떻게 탄생하는 걸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저항에는 언제나 비장애인의 몸이 있거든요. 선동하는 몸, 뛰어난 이상과 신념, 정신력, 불굴의 의지, 이런 것들을 가진 몸을 생각하니까 장애인들의 싸움이 하찮아 보이죠. 생존을 위한 본능, 발악, 비명으로 생각하는데 남들 앞에서 절규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저는 누가 광장에서 운다는 건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완벽한 준비와 조건을 갖춘 사람이 저항을 하는 건 아니다?

“그런 게 없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없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인데 그럼에도 하는 것이 저항인 거죠. 저항은 차별의 반대말 같아요.”

야학 교사에서 인권기록활동가로

홍은전이 살면서 잘한 일 세가지는 이것이다. 노들야학을 시작한 것, 노들야학을 그만둔 것, 그리고 그것을 글로 쓴 것. <노란들판의 꿈>을 펴낸 이후 그는 <숫자가 된 사람들> <금요일엔 돌아오렴>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등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기록 작업을 위해 1년에 5명쯤 심층 인터뷰를 하고, <한겨레> 칼럼 12편 쓰고 나면 1년이 간다”고 했다.

―글쓰기를 어떻게 연마했어요?

“노들 활동을 책으로 정리하겠다고 마음먹고 글쓰기를 배우러 ‘한겨레문화센터’ 에세이반에 갔어요. 처음에 엄청 헤맸죠. 얼마 후에 <한겨레21>에 노들야학 이야기를 연재하게 됐는데 그때 대중에게 읽히는 글쓰기의 감을 잡은 것 같아요.”

―읽히는 글은 어떻게 써야 해요?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사람들은 메시지가 없는 글은 읽지 않는다.”

―그렇죠. 독자들과 나눌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글감을 어떻게 고르세요?

“슬펐거나 부끄러웠거나, 몸에 감정이 한번 왔다 간 것. 그 감정을 붙들고 써요.”

―그래서군요. 작가님 글에는 ‘심장이 폭 꺼지는 것처럼 슬펐다’ ‘목이 메었다’ ‘심장이 조금 아픈 느낌이다’ ‘가슴이 시렸다’ ‘수건을 푹 적시도록 울었다’같이 생동하는 슬픔의 표현이 매번 나와요. 눈물이 많은 편인가요?

“저 잘 안 울어요. 글에 나오는 그 순간만 우는 거예요.(웃음)”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작업이 힘이 들지만 힘이 되기도 한다고 했어요.

“화상 경험자 정인숙님이 화상 입고 다시 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하거든요. 그분의 인생을 들어보면 정말로 그래요. 처음 걸음마를 하고 처음 꽃을 만져보고 처음 친구를 만들고 이런 과정을 다시 밟는 것 같은, 눈부신 게 있거든요. 저는 불안, 공포가 큰 편인데, 제가 인터뷰하는 사람들이 어쨌든 한번 인생의 큰 경험들을 하신 거잖아요. 시련들을 먼저 겪었고. 회복하는 데 5년이 들고 20년이 들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살 수 있어, 그게 되게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그렇게 생각하면 저도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홍은전은 망원경으로 차별 시스템 같은 사회 구조를 보다가 현미경으로 인간 내면의 고통을 관찰하고 있다. 그런데 인권기록활동가 6년차인 어느 날부터 그의 글에 ‘야옹’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그가 지금껏 살아온 인권의 세계가 무(無)가 되어버리는 사랑과 혁명의 시간이 또 한번 도래했음을 예고하는 신호음이었다. 글 쓰는 일을 시작하며 그 좋아하는 술을 끊었던 그는 지난해 여름에 고양이를 들이며 그 좋아하는 고기를 버렸다. 홍은전은 채식주의자로, 동물권활동가로 빠르게 변신했다.

―저도 고양이를 키우고 주변에 애묘인들이 많지만, 모두가 은전 작가님처럼 바로 탈육식하진 않았거든요.(웃음)

“칼럼(2019년 9월2일 ‘동물적인 너무나 동물적인’)에서 우리 고양이 얘기를 하다가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끝나거든요. 고양이로 글을 써본 적도 없지만 끝을 내본 적이 없는 거예요. 온통 고양이 생각밖에 없었을 때라 일단 쓰기 시작했지만 이 글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저도 모르겠더라고요. 한 5일을 썼어요. 마감은 임박했고 에라 모르겠다, 거부할 도리가 없다, 고기 끊겠다고 마무리한 거죠.(웃음)”

―반전이네요. 최근 칼럼엔 인간적인 것에 지쳤다, 나는 동물이다, 라고 썼어요?

“어느 날 고양이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존재가 나타났는데 인터뷰를 못 하네. 알 수 없는 세계가 나타났음을 너무 구체적으로 느꼈죠. 언어를 다루는 일을 하니까 왠지 모든 게 언어로 가능하고 이해시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그것이 나를 좀 억압했나 봐요. 그걸 완전히 무용하게 만드는, 내 긴장과 피로를 제로로 만드는 존재를 만났다는 게 해방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비건이 되어야겠다, 생각하면서 돈가스를 끊고 우유를 끊고 하나씩 끊어가면서 지구와 빠르게 연결된다는 느낌이었어요.”

홍은전 작가가 16일 오후 노들장애인야학 근처를 산책하며 야학 교사에서 인권기록활동가와 동물권운동가로 활동 영역을 넓혀온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질서에 도전하는 장애인권과 동물권

―채식주의에서 동물권활동으로 어떻게 나아간 거예요?

“우연히 디엑스이(DXE·인간이 비인간 동물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치는 동물권단체) 활동들을 봤어요. 이마트 동물복지 정육코너 방해시위, 롯데리아 방해시위를 하고, 도살장을 점거하고, 돼지 번식장에서 아기 돼지 ‘새벽이’ 공개 구조하고. 그건 우리가 장애인운동 할 때 도로를 점거하고 버스를 막는 거랑 같았어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는 모든 것이 누군가를 차별하고 착취한 결과다! 활동가들 눈빛도 비슷한 거죠. 보통의 동물운동이 선의를 요구하는데 이들은 정의를 요구하고, 시민들의 마음을 얻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불편하게 하는구나. 저 사람들이 싸우려고 하는구나.”

―장애인운동을 한 경험이 있어서 동물권운동에 바로 연결된 거네요. ‘비질’에도 참여하셨죠?

“네. 도살장에 가서 돼지에게 물을 주는 건데, 거기서 활동가들이 고기를 먹는 것은 동물을 착취하는 거야, 우리는 이것과 싸워야 해, 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로 놀라웠어요. 장애인운동이 비장애인 중심적인 질서와 싸우는 것이라면 동물권운동은 인간 중심적 질서에 맞서요. 강력한 질서에 도전한다는 의미에서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아요.”

―그 둘을 연결하는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제가 칼럼에 동물 이야기를 쓰니까 동물권단체들이 세미나 하는데 와서 얘기를 해달라고 했어요. 그 자리에 와 있던 디엑스이 사람이랑 알게 됐죠. 노들에서 한번 보자, 해서 지난 6월에 만났어요. 노들야학 박경석 교장샘이랑 김유미 샘이랑 디엑스이 활동가들이랑 모여서 노들이 투쟁한 ‘버스를 타자’ 영상을 보고 디엑스이 동물구조와 방해시위 영상을 봤는데 서로가 너무나 알아보는 거죠. 교장샘이 디엑스이 청년들에게 밧줄을 선물했어요. ‘우리가 시위 때 쓰려고 애껴놓은 건데 선물한다, 다음 시위에 쓰라’고요.”

―와! 두 싸움이 밧줄로 통하네요. 왠지 앞으로는 작가님을 동물권활동가로 더 자주 뵙게 될 것 같아요.

“디엑스이가 공간이 없어요. 그 만남 이후 모임을 노들에서 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저도 디엑스이 모임에 나가게 됐어요.”

―지금껏 홍은전의 세계가 급격히 두번 바뀐 거죠? 노들야학에서 한번, 고양이로 한번. 다시 태어나고 싶은 사람에게 뭘 권하고 싶으세요. 고양이를 키워라? 노들야학에 와라? 둘 다 해라?(웃음)

“둘 다요, 다.(웃음)”

홍은전은 말한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세상은 ‘싸우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라고. 그래서 그는 “약함 그대로 인정받는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곁에서 ‘사회 전체를 이동시키는’ 맹렬한 투쟁을 타전 중이다. <그냥, 사람>은 출간 2주 만에 1쇄가 소진됐다. “모든 인세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외치는 노들야학과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고 외치는 동물권단체 디엑스이 코리아에 평등하게 나누겠다”고 그는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밝혔다. 그냥 사람의 이야기는 그냥 사랑의 이야기로 물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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