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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인터뷰

인터뷰 후기 - 홍은전 작가

“무슨 심리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큰 강당 같은 데에서 일단 아무렇게나 빨리 걸으라고 해요. 정해진 길은 없어요. 그냥 가다가 부딪혀도 되고 사람들 치면서도 돼고 무조건 가래요. 수십 명이 그 강당에서 막 움직이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일이 펼쳐질 것 같아요?” 

그가 물었다. 나는 그 장면을 상상만 해도 몸이 졸아들어서 “난 그냥 구석에 있을래요.” 했다. 

“거기에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어요. 치면서 다니는 사람이 있고, 아주 빠르게 피하면서 다니는 사람이 있고, 은유 작가님이나 저 같은 부류가 있고. 저는 주저앉았어요. 너무 괴롭더라고요. 그런 광경을 보는 것 자체가.” 

홍은전과 인터뷰 때 나눈 이야기다. 이런 성향이라서 우리가 한구석에서 글을 쓰는가보라며 같이 웃었다. 나는 경쟁이 무섭고 속도가 두렵다. 쫓기면 사고도 중지된다. 그래서 원고 빵꾸낼까봐 글도 최소 5일 전에 쓴다. 겁쟁이일수록 도태되는 냉혹한 자본의 질서에서 그나마 생존 가능한 직업이 작가일까? 잠시 생각했다. 홍은전은 사범대 재학 중 임용고시를 준비하다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가 된 일의 ‘행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세상에서 밀려난 존재들이지만, 밀려나 있었기 때문에 그 세상의 질서가 여기까지 닿지 않았어요. 아무도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저는 임용고시라는 거대한 선착순 달리기를 하면서 지쳐서 여기로 넘어왔던 거잖아요. 다른 세계에요. 경쟁하는 세상에서 협력하는 세상에 온 거죠. 선착순 달리기 할 때 모두가 최선을 다해서 달리잖아요. 근데 이 세계에 오면 그 최선을 다해서 달리는 에너지를 남을 업고 뛰는 일을 해요. 다른 근육을 써야 돼요. 여기서는 밀치고 오면 안 받아줘요.”

나는 직업으로서 작가로 35세에 입문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해서 초조하지 않았느냐고 많은 이들이 내게 물었다. 그렇지 않았다고 답했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이번에 홍은전의 말을 듣고 알았다. 자본이 구획한 트랙 밖에 있다는 것의 한갓짐. 누구와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평가받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았고, 그게 나의 성향에 맞았던 거다. 물론 흔들리고 조급해지기도 했다. 그럴 땐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은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는 니체의 말을 별자리 삼아 쉬지 않고는 갔다. 밀칠 사람도 이길 사람도 없이 한걸음씩. 

그런데 홍은전은 업고 걸었다! 업는 행위의 육체적 고됨만 집요하게 묻는 내게, 그는 업고 갈 때만 알게 되는 생활의 복됨을 이야기했다.

“세상에 누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정말 저는 몸으로 알거든요. 이건 노들야학 학생도 교사도 다 알아요.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 세상은 바꿀 수 있어. 그건 배운다고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신체적으로 뛰어난 능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절박한 사람들이 함께 뭔가를 도모하기 시작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홍은전은 인권기록활동가다. ‘글쓰는 활동가’로 살고 싶은 나와 직업관, 세계관, 애묘관 등 서로 통하는 요소가 많았다. 그날은 인터뷰보다 깊은 대화 같았다. 

즐거운만큼 좌절도 했다. 그의 글은 화려한 수사나 흔한 인용구 하나 없이 마치 해질녘 한강의 윤슬처럼 글 전체가 반짝이고 읽고 나면 아름다워서 울고 싶은 기분이 들곤 하는데, 그 ‘빛나는 부분’은 도저히 흉내 낼 수도 훔칠 수 없음을 느꼈다. 햇살이 바람을 업고 강물에 빛을 산란하듯, 그의 글도 업고 업히고 엉키듯 결속하는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요즘 홍은전의 칼럼은 동물권 이야기로 가득하다. 좋아하면 그것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 같은 그의 면모를 봤을 때 나는 그가 조만간 동물권활동가로 가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했다. 이에 대해 그는 “글쓰기는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어떤 공동체를 만들고 단체를 함께 하면서 그 하중을 견디며 세상과 싸우는 게 지금 더 급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글을 쓰는 일도 좋지만 그 현장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도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내 눈으로 보고 싶어요. 그 현장에 가고 싶어요.”

추신. 나는 동물권 행동가 홍은전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섭외를 염두에 둔 시점부터 채식생활로 전환하고 인터뷰에 임했으며 지금까지 소, 돼지, 닭 등 육고기를 먹지 않고 있다. 

#인터뷰후기 #은유의연결 #홍은전작가 #그냥사람 #사진장철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