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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일기

2020.8.27

-예정대로라면 내일 북토크 하러 제주에 가야했다. 너무 예쁜 서점 책자국. 망설이다가 아침에 연기했다. 제주 김포 왕복 티켓 취소하고, 이런저런 도서관이나 학교에서 하기로 한 9월 강연 일정 변경-연기-취소 메일 답하고. 다이어리에 흑연 자국이 많이 남았다. 쓰고 지우고.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마음이 얼룩진다.

 

-집에 있으니 도통 일의 능률이 안 올라서 스타벅스에 혹시나 하고 갔다. 넓은 매장에 대여섯명이 마스크로 입틀막 하고 공부하고 있다. 환기가 잘 되는 창가 자리에 앉아서 사유의 밀도가 빽빽한 책 보고 왔다. 스벅에선 왜 집중이 잘 될까. 대중목욕탕에서 각자의 때를 미는 사람들처럼 열중한다. 다들.

 

-이년전 열림터에서 수업했던 친구가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다른 피해자들이랑 글써서 책 내는 텀블벅에 참여한다고. 그와 별개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얼마나 썼냐고 물었더니 에이포로 구십장 쯤 된단다. 놀라서 왜 이렇게 많이 썼어? 했더니 "쌤이 열심히 써보라고 했잖아요. 얼마나 쓸 수 있는지." 한다.

나도 못하는 걸 남한테는 잘도 말하는 나 때문에 또 놀랐다.

 

-지난 화요일에 끝난 수업에서는 한 아이가 이렇게 작별인사를 했다. "쌤 나중에 작가로 만나요." 고등학교 때 문창과 다녔는데 어찌어찌 손놓고 살다가, 이번에 수업하면서 다시 글이 쓰고싶어졌다고 했다. 몇번쯤 내가 소설이랑 문예지 갖다줘도 시큰둥하더니 막판에 의욕을 부렸다. 한 사람을 고정된 존재로 보지 않는 훈련을 했다.

 

문집도 만들었다. 제목을 공모했는데 이것이 선정됐다.

'거친 파도도 잔잔한 바다다'  

"파도가 거친데 어떻게 잔잔해?" 

“파도를 가까이 보면 너무 크지만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보면 잔잔한 바다잖아요."

 

선하의 작품. 바닷가에서 자란 아이의 멋진 상상력이다. 파도는 고통에 대한 은유로 느껴졌다. 이런 시인 친구들과 15주간 수업을 진행했고 ‘무사히’ 마쳤다.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많아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앞으로 심심할 때 글을 쓰면 기분이 편안해질 것 같아요."

"왜?"

"생각을 글로 풀어내니까 마음이 정리돼요.”

 

선하의 생글생글한 목소리가 자꾸 떠올라서 나도 글을 써봤다.

심심하진 않았지만 마음은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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