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쓰기의 최전선

(156)
쉬운 글이 멋진 글이다 학교나 직장을 다니지 않더라도 살다보면 글 쓸 일이 종종 생긴다. 새 학기에 어떤 담임선생님은 자녀에 대해 참고할 사항을 써달라며 백지를 보낸다. 하얀 종이를 앞에 두면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나도 순간 난감하다. 다른 엄마들은 어떨지 괜히 염려스럽다. 글쓰기가 확실히 만만한 일은 아니다. 여러 생각이 붓을 가로막는다. ‘잘 써야한다’는 부담감, ‘뭘 쓸까’하는 막막함이 가장 크다. 왜 글을 잘 쓰고 싶을까. 아니, 글을 잘 써야한다는 건 누구의 생각일까. 내 생각에 영어광풍, 외모지상주의와 비슷한 과열현상이다. 우리나라는 의무교육에서 글쓰기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글에 부과된 권위는 지나치게 크다. 글이 곧 인격이라는 통념이 지배적이고 자기표현이 서툴면 지적인 능력을 의심받는 분위기다. 그러니 ..
인터뷰 강의를 마치고 ‘인터뷰가 사랑의 메신저’ 새해 벽두 일간지를 장식한 제목이다. 어느 남자 배우와 여자 아나운서의 결혼소식인데, 아마도 아나운서가 배우를 인터뷰하다가 정이 싹튼 모양이다. 회심의 미소가 절로 고였다. 평소에 ‘인터뷰는 짧은 연애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눈빛을 읽어내려 애쓰는 등 타인의 우주로 진입하려는 소통 의지는, 연애의 기운을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전문 인터뷰어는 죄다 바람둥이겠네? 라고 물어서는 아니 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운명의 행로를 바꾸는 사랑은, 그렇게 자주 오지 않으므로. 꽃다운 청춘들과 인터뷰 수업을 하게 됐을 때, 사실 난감했다. 연애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을까? 어느 시인은 ‘효모에게 술이 되는 법을 가르칠 수 없듯이 시 쓰기를 가르칠 수 ..
행복한 인터뷰에 대하여 -2 진행방법: 1)이 인터뷰가 어떤 목적인지, 어떻게 쓰일 것이며 어떤 의미를 갖는 자리인지 맥락을 짚어주어야 한다. 2)약간의 침묵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대화가 단절될 경우를 대비해 예상 질문카드를 꺼내야 한다. 3)녹음기나 기록은 필수다. 날짜나 고유명사 전문 용어 같은 것은 한 번 더 확인해두는 꼼꼼함이 필요하다. 4) 자리를 떠날 때까지 수첩을 놓지 말자. 인터뷰가 끝났다고 생각됐을 때 인터뷰이가 긴장을 풀고 자기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투와 표정들, 행동들, 주변의 작은 것들에서 진실로 들어가는 힌트가 될 만한 단서가 나온다. 100%그렇다. 인터뷰어는 들어가서 나올때까지 스위치 온할 것. 5) 인터뷰이 주변인에게 물어보라. 인터뷰이가 차마 자기 입으로 말하지 못했던 주옥같은 ..
행복한 인터뷰에 대하여 -1 * 지난주 토요일에 '마포는대학'에서 인터뷰 하는 법을 강의했다. 그냥 떠들 수가 없어서 몇 가지 적어간 내용이다.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것이다’ # 작가는 삶에 대한 옹호자다 ‘자기만의 길을 가는 이는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고 니체는 말했다. 사람들은 다 비슷하지만 모두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삶의 환경과 유전자가 다르고 똑같은 사건을 겪었어도 수용하는 자세와 기억하는 부분에 따라 조금씩 삶의 모양과 의미는 변한다. 저마다 표정과 향기가 생기는 것이다. 장미와 민들레, 동백은 빛과 바람에 따라 고유의 향기와 빛깔이 만들어진다. 피고 지는 시기도 다르다. 어느 것이 더 예쁘고 더 귀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네가 쓴 번역투를 알고 있다 수유너머에서 공부하는 연구원들은 생계수단이 크게 두 가지다. 대학이나 학원에서 강의하기 그리고 책 쓰거나 번역하기. 나의 스승이자 동료인 박정수도 대학에 출강을 나가고 지젝이랑 라캉 책을 몇 권 번역했다. 처음에 그에게 배울 때 강의안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철학적 배경지식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문체의 꼬임이 거슬렸다. 한국어이지만 번역이 필요했다. 집에 와서 강의안을 ‘나의 언어’로 바꿔가며 정리하고 이해했다. 그는 국문학으로 박사를 받았다. 명색이 국문학도가 왜 이러나 싶었는데 얼마 전 우연히 문체얘기가 나왔다. “내가 예전엔 김훈 글을 읽을 때는 김훈 문체처럼 됐는데 책 몇 권 번역하고 났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번역투로 문체가 변하더라고. 큰일이야~^^;” 다행히도 박정수는 '아빠가 쓰는 육..
수미일관, 작은 주제로 밀고가라 몇 년 전 11월, 이 달이 가기 전에 꼭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난 종교가 없다. 낭만진리교리에 따른 것이다. 우천시 음주처럼 11월에 장기기증. 왠지 조화로워서 그랬는데 나의 사치가 무근거한 의식은 아니었나 보다. 천주교에서 11월이 위령성월이라고 한다. 죽은 이의 넋을 기리는 달. 서울 합정동 절두산 성지로 취재를 가면서 알았다. 그곳은 순교성인 이외에 일반인의 납골당도 있다. (우리엄마도 여기에 계시다) 죽음을 생각하는 삶의 장소로 절두산 성지를 택한 것이다. 글을 써야한다. 소재가 많다. 11월, 죽음, 절두산 성지, 일반신도 납골당 부활의 집 소개, 사람들이야기. 이것들을 버무려 원고를 써야 한다. 난관이 예상된다. 일단 죽음이란 주제가 너무 크다. 어둡고 심오하고 방대하고 한편 ..
단어를 채집하자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 버렸다. - 아름다운 문장 한 줄 읽는 것으로 시작하자. 빼어난 문장이다. 독창적인 글쓰기의 묘미가 한껏 드러난다. 사랑한다고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는 것이야 문학작품에서 늘 나오는 얘기다. 그런데 새롭다. 덤덤하면서도 절절하다. 나는 읽으면서 내가 그가 된 것처럼 어색해서 고개 숙이고 입술을 비틀었다 폈다 했다. 저 문장의 핵심단어는 ‘국어’같다. 흔해 빠진 말인데 사랑, 어색과 배치되니까 신선하다. 색다른 울림을 자아낸다. 더군다나 하나도 꾸미지 아니한 담백하고 솔직한 아이 같은 표현의 어른스러움이라니. 좋은 문장은 어려운 단어나 고급한 개념어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평범한..
주어와 서술어는 연인이다 一文一思 (one sentense one idea) 글쓰기 말고 글 고치는 일을 했었다. 원고 리라이팅. 교정과는 조금 다르다. 읽히지 않는 글을 읽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오탈자 수정은 물론 단어 교체, 문장 삽입, 문단 위치 변경 등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가 이뤄진다. 사보 기획자의 부탁으로 시작했다. 사보에 넣을 임직원 원고를 고치는 일이었다. 대부분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글인데 상태가 심각했다. 딱딱한 전문용어가 난무하고 문장이 엉켜서 주어가 실종되기 일쑤였다. 앞에 한 말 뒤에 또 하고 중구난방에다가 결론도 모호했다. 견적이 안 나와서 울고 싶은 적도 많았다. 차라리 내가 새로 쓰고 말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할지 막막했다. 계속 하다 보니 나중에는 요령이 생겼다. 이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