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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아들에게 효행 강요하는 엄마

"엄마 생일에 미역국 끓여줘"

며칠 전부터 아들에게 졸랐습니다. 스무살 넘었으니까 왠지 네가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지요. 아들은 (미리미리 준비 해놓을 것이지) 아침 9시 반에 눈꼽 떼고 나가서 소고기 한근 사와 싱크대에 아이패드 올려놓고 요리법 봐가며 따라하더니 한 시간 만에 한냄비 끓였습니다. 미역국 완성과 함께 분첩 선물까지.

고소하고 짭조름한 까만 냄새가 훅 끼쳐오는 미역국, 첫술을 뜨는데 뭔가 엄마가 아들 낳고 산후조리 할 때 끓여주던 미역국이 겹쳤습니다. 엄마가 낳은 내가 커서 아들을 낳고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 먹고 키운 아이가 자라서 손수 끓여준 미역국을 먹으면서 엄마를 떠올린 겁니다. 눈물의 미역국의 순환.

효행 강요하는 엄마의 변. 아들이 자기가 평소 누리는 것들, 끼니 때면 나오는 밥, 서랍 열면 들어있는 양말이 누군가의 노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면 좋겠어서, 기회 될 때마다 살림 조련 시키려고요. 일등 생활인 만드는 게 페미니스트 되는 첫걸음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