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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비 오는 날, 혼밥 풍경

혼자 먹는 밥이 '혼밥'이란다. 얼마전에 알았다. 나도 가끔 혼밥을 먹는다. 강의 끝나고 말이 빠져나간 몸에 급히 허기가 몰려올 때다. 그날은 비가 내리고 배가 고팠다. 신촌역 부근이라 ‘신촌수제비’를 찾아갔다. 값이 4천원, 맛도 순하다. 건물 모퉁이에 붙어 있던 허름한 음식점은 바로 옆 건물 안 가게로 이전한 상태였다. 

여전히 만석. 잠시 후 2인용 자리가 비어 앉았다. 바로 옆 70대로 보이는 할머니도 혼자 앉아 계셨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말을 걸었다. “여기 앉아요. 그럼 거기에 두 사람이 앉을 수 있잖아.” 할머니는 자기 앞에 앉으라고 했다. 일행처럼 마주 보고 식사를 하자는 거였다. 느닷없는 요구에 당황한 나는 얼른 고개 숙여 시선을 피했다. 

자리를 옮겨야하나 말아야하나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뜨거운 수제비가 각자의 테이블에 놓였다. 15분여 흘렀을까. 합석도 아니고 별석도 아닌, 혼밥도 아니고 겸상도 아닌 어색한 분위기에서 젓가락으로 끼적이며 건더기만 골라서 집어먹었다.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또 주춤했다. 할머니는 잰 손놀림으로 당신이 드신 수제비 그릇과 깍두기 접시를 포개서 두손에 들더니 주방에 밀어넣고 밥값을 내고는 휙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판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오랜 노동에 길들여진 몸이 자동으로 하는 일이었다. 나는 4천원에 혼자 있을 권리와 밥 한끼 온전히 대접 받을 권리를 샀다. 할머니는 4천원에 딱 수제비 한 그릇만 챙겼다. 나머지는 원래부터 당신의 몫이 아니라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