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알고 있었다. “엄마에게 나는 모든 것”이었다. 아빠는 언제나 집에 없었다. 아빠는 소년이 태어날 때부터 자주 집 밖을 겉돌았고, 5년 전부터는 아예 따로 살았다. 그럴수록 엄마는 소년에게 집착했다. 소년이 7살 때 엄마는 이미 소년을 ‘교육’하기 위해 매를 들었다. 오랜만에 집을 찾은 아빠가 여름에도 긴 바지를 입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의아해하면서 씻겨주려 옷을 벗기자, 소년의 종아리와 엉덩이에는 피멍이 맺혀 있었다. 소년은 “괜찮아, 아빠”라고, 담담하고도 짧게 말했다. 엄마는 “아이를 왜 때리느냐”고 묻는 아빠에게 “애는 매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가 사용한 폭력의 도구는 다양했다. 홍두깨로도 때리고, 야구 방망이로도 때리고, 골프채로도 때렸다. 그래도 소년은 자신이 엄마에게 “모든 것”임을 알았기에, 차분하게 엄마의 지시를 따랐다. 아니, 소년에게 엄마를 빼면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믿고 의지할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엄마의 방법이 틀렸다고 생각하게 해줄 다른 의지와 관계 대상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의 폭력은 19년 동안 소년에게 ‘애정’이고, ‘교육’이었다. 소년은 엄마의 기대를 충족하려 애썼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한자리에서 16시간 동안 공부를 하기도 했다. 밥도 책상에서 먹으며 한 공부였다. 경시대회에서 상을 탔고,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토익이 900점을 넘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소년은 줄곧 ‘우등생’이었다.
하지만 성적이 잘 나올수록 엄마의 강박은 더 커졌다. 반에서 2~3등을 해도 엄마는 만족하지 못했다. 엄마는 “전국 1등을 해야 한다. 서울대 법대를 가야 한다”고 말했다. “너는 의욕이 약하다”며 밥을 굶기고, 밤새 때리기도 했다. 엄마에게 소년은 결핍된 욕망을 대리해서 소구해줄 도구였다. 엄마의 어머니는 중학교 3학년 때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엄마의 아버지는 아들만 편애했다. 엄마의 아버지에게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였다. 엄마는 늘 삶의 객체로 존재했다. 하지만 삶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인정욕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사랑은 나의 욕망을 욕망이 아닌 것으로 인정해주는 유일한 행위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의 욕망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위무해줄, 그런 존재가 없었다. 엄마의 남편인 아빠마저 엄마를 인정욕구의 대상으로 도구화했다. 아빠는 ‘인 서울’ 대학 일어과를 나온 엄마와 결혼하며 ‘이 정도 여자면 어디 내어놔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신혼 초부터 그런 아빠의 반응에 극렬하게 대응했다. 면도칼을 들고 “당신이 나를 안 믿으니까 동맥을 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늘 ‘소중한 존재’라고 일컬었다. 가부장제에 의해, 단 한 번도 ‘소중한 존재’이지 못했던 엄마는, 스스로 그렇게 믿는 방법 외엔 자신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나는 소중한 존재이니까 찬물에 손을 담그면 안 된다. 당신이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해라”라고 말했다. 그리고 고급 차를 원했다. 고급 차가 가진 브랜드는, 자신의 가치를 표상해주는 도구였다. 보통 차를 사면 “남들이 무시한다”고 버텼다. 아빠는 그런 엄마가 부담스러워 자꾸 집 밖을 겉돌았다.
▲ 한겨레신문 11월25일자
채워지지 않은 욕망, 그로 인한 결핍이 짙어질수록 엄마는 자식 교육에 집착했다. 채워지지 않은 욕망은, 그 자체로 사라지지 않고 형질을 변환한다. 여기서 내 자식은 곧 나의 위상과 지위를 인정해주는 타인이자 곧 나이고, 내 욕망을 현시해줄 수 있는 도구적 존재가 된다. 가부장제 아래 욕망을 억압당해왔던 엄마는, 내 자식만큼은 억압당하는 개인이 되지 않길 욕망했다. 엄마에게 소년은 ‘패자부활전’을 위한 도구였다. 내 자식이 교육을 통해 신분상승을 하면, 제도에 의해 기만당하지 않는, 되레 다른 사람들을 기만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닌 억압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억압자는 타인에게 욕망을 인정해달라고 갈구할 필요가 없는 절대자였다. ‘법대’는 그런 권력을 지니기에 가장 적합한 도구다. 엄마가 자신은 욕망할 수 없었던 성공에의 욕망을 자식에게 모조리 투사한 까닭이다. 그리고 엄마는 ‘다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했다.
지난 3월18일과 19일, 소년은 이틀째 잠을 자지 못했다. 잠만 자지 못한 게 아니었다. 밤새 엄마에게 폭행을 당했다. 엄마는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는 소년을 야구 방망이와 골프채로 마구 때렸다. 전국 모의고사 성적표를 62등, 67등으로 위조해서 줘도 엄마는 만족하지 못하고 ‘전국 1등’과 ‘서울 법대’를 강조했다. “너는 의지가 약하다”고 말하며 또 밥을 굶겼다. 토요일인 20일 아침, 소년은 내내 공포에 떨어야 했다. 22일은 학부모들이 학교를 방문하는 날이다. ‘엄마만 없었으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전 11시께, 소년은 흉기를 들고 엄마가 자고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먼저 엄마의 목을 졸랐다. 잠에서 깬 엄마는 “XX야, 이러면 너 정상적으로 못 살아”라고 했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엄마는 이런 상황에서도 ‘정상적’인 삶을 얘기하고 있었다. “엄마는 몰라, 엄마는 내일이면 나를 죽일 거야.” 흉기로 엄마를 두 번 찔렀다. 엄마는 곧 숨이 끊어졌다. 소년은 결국 ‘엄마가 나를 죽일 것 같은’ 상황에 이르러서야, 엄마를 버렸다. 삐뚤어진 집착이라도, 엄마는 소년을 유일하게 인정해주는 타인이었기에 지시에 따라야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엄마의 과도한 폭력은, 소년을 유일하게 인정해줄 대상 따위가 아니라, 삶의 근간인 목숨 자체를 위협하는 대상으로 엄마의 존재감을 변질시켰다. 그래서 관계를 끊어냈다.
어릴 때부터 이어진 엄마의 폭력은, 소년에게 폭력을 일상화했다. 소년은 칼을 수십 자루 가졌고, 서바이벌 총으로 비비탄을 쏘길 좋아했다. 소년의 방문은 칼자국과 비비탄 총 자국으로 너덜너덜해져 있다. 칼과 총은, 관계 맺기에 미숙한 소년에게 타인을 제압할 수 있다는 상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다. 관계 맺기에 미숙한 개인일수록, 관계는 맺기의 대상이 아니라 지배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지배를 위해선, 타인을 한순간에 제압할 수 있는 폭력의 도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소년은 폭력의 도구를 실제로 사용한 적이 없다. 첫 대상이 엄마였다. 그래서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랐다. 엄마의 시신을 버리지 못했다. 시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도 몰랐고, 버릴 수도 없었다. 소년의 삶에서 관계를 맺었던 유일한 타인이었던 엄마는 관계를 끊었을지언정 끝내 버리지는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다정하게 찍은 사진도 집안에 그대로 뒀다. 시신이 부패해 안방에서 냄새가 흘러나오자, 공업용 본드로 안방을 봉쇄해뒀을 뿐이었다. 그리고 8개월 동안 매일 꿈에선 3월20일 오전의 그 순간이 반복 재생됐다. 유일한 관계를 잃은 소년은 또 다른 대상을 찾아야 했다. 그즈음 여자친구가 생겼고, 소년은 여자친구에게 엄마와 같은 방식으로 과도하게 집착했다. 여자친구에게 ‘네가 나를 안 만나면, 난 너 앞에서 죽어버릴 것’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엄마와 이혼소송을 진행하고 있던, 이제까지 소년에게 부재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아빠가 찾아왔다. 소년은 아빠에게 그동안 “엄마가 국외여행을 떠났다”고 거짓말을 해왔다. 하지만 아빠는 11월 초 출입국관리소에서 엄마의 출입국 기록을 조회했다. 엄마의 마지막 출국은 2004년이었다. 집에 찾아온 아빠는 “엄마가 (안방) 안에 있니?”라고 물었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이 왔고, 그들이 안방 문을 여는 순간 소년은 아빠를 껴안으며 말했다. “아빠, 무슨 일이 있어도 나 안 버릴 거지?” 아빠는 다시 찾아온, 소년이 의지할 유일한 대상이었다.
▲ 11월26일자 한겨레신문
인간이 극단적인 행위를 선택하는 데 이르기까지는 수없이 많은 관계와 구조가 그 행위의 기제로 작동한다. 그 개별적인 행위를,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선택했을 것’이라는 식의 다수의 합리성으로 재단하기는 쉽지 않다. 개인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존재이거나 악한 존재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회적 관계나 사회적 과정, 그리고 그 관계를 둘러싼 제도와 구조의 결과물로 만들어진다. 소년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기까지에 이르는 과정은, 가부장제라는 문화적 제도로 인해 생긴 엄마의 결핍, 그리고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억압자로서의 권력을 가지기 위한 도구로 한국 교육의 1등 지상주의와 성적 중심주의를 동원한 엄마의 강박이 관계와 구조의 하나로 기능했다. 1등은 남을 억압하기 위해 존재하고, 성적은 남을 배제하기 위해 존재한다. 소년이 다닌 학교의 한 교사의 말처럼, “공부를 못하는 애는 못하는 대로, 잘하면 잘하는 대로 남들보다 더 나은 성적을 받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하는 게 한국 사회의 교육이다. 이런 현실을 만드는 데 그 누가 자유로웠던가.
결국 소년의 행위는,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합리적’이고 ‘일상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여 온 제도의 모순이 한 가정을 통해 폭발적으로 드러난 비극의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자신은 여전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개인들의 선택 지점은 하나로 귀결된다. 소년의 행위를 ‘패륜’으로 규정하면서 여전히 가부장제 혹은 가족 제도의 합리성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소년을 ‘비인간’으로 타자화하면서 한국 사회의 교육 제도 안에 순응하는 나와 내 자녀의 교육적 선택을 구조 안에 속해 있는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합리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합리성이 유지되는 한, 소년의 행위와 같은 극단은 계속 반복된다. 2000년 5월 부모의 스파르타식 교육과 폭력이 낳은 ‘명문대생 부모 토막 살인사건’이 그랬고, 2009년 10월 한 대학생이 집으로 배달된 학교 성적표를 보고 꾸짖는 아버지를 흉기로 살해하고 4개월 동안 집에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 그랬으며, 2010년 10월 13살 중학교 2학년생이 “판검사가 돼라”는 아버지의 잔소리와 꾸중,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집에 불을 질러 일가족 4명을 모두 숨지게 한 사건이 그랬다. 이 극단은 그런 합리성 위에서 계속 비명을 질러왔고, 앞으로도 지를 것이다. 나와 당신은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 글은, 한겨레 24시팀 취재팀이 ‘고3학생 모친 살해사건’이 공개된 11월 24일과 25일 이틀 동안 힘겹게 취재한 방대한 양의 취재 메모를 토대로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 한겨레 이제훈 기자가 <미디어스>에 투고한 글입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거의 모든 기사를 찾아보고 읽고 또 읽고 있는데, 가장 잘 정리된 글이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글입니다. 이 글에는 한 사람의 삶을 해명하고 아픔을 이해하고 또 다른 아픔을 막아보려는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기자가 써야할 글이란 이런 것이겠지요. 글쓰는 사람은 알아야합니다. 자기가 쓰는 글이 어떤 가치를 낳는지,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지.
아래는 조선일보 사설입니다. 사회문제에 대한 성찰은 거의 없고 학생 인신공격에 가깝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거머리의 두뇌만 연구하는 과학자가 나오는데 니체가 왜 비웃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보편의 삶은 없습니다. 고로, 과학적인 통계자료는 누구의 삶도, 아픔도 담아내지 못합니다.
[사설] '가족 해체' 속에 빚어진 고3의 어머니 살해
고3 아들이 공부만 닦달한다고 어머니를 살해하고 시신을 8개월간 방에 둔 채 학교를 다녔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범인 지모군은 방 문틈을 본드로 막아 사체의 썩는 냄새가 새나오지 않게 해놓고 친구들을 집에 불러 놀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는 경찰에서 "어머니가 '전국 1등을 해야 하는데 의지가 약하다'며 밥을 안 주거나 잠을 못 자게 했고, 사건 당일엔 밤부터 아침까지 엎드려뻗친 채 야구방망이와 골프채로 수백대 맞았다"고 진술했다. 지군은 자기 등수가 전국 4000~5000등이라고 했지만 학교에선 그렇게 공부를 잘했던 아이는 아니라고 부인했다. 지군은 어머니가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면 모의고사 성적표를 전국 62~67등으로 위조했던 일이 들통날까 봐 불안해하다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3 아들이 어머니가 엎드려뻗쳐 하라 해서 그대로 따랐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는 구석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많은 부모들이 성적 말고 아이와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눈 적이 언제쯤이었는지, 아이 혼자 무슨 고민을 안고 끙끙 앓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아이 얼굴을 쳐다봤을 것이다. 부모들은 요즘 세상이 학교 등수대로 행복이 나뉘는 건 아니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부모들 중에 학교 때 공부만 팠던 사람들이 인생에서 낙오자가 되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적이 있는지 자신있게 대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군 아버지는 5년 전 집을 나가 매달 120만원의 생활비를 보내온 게 전부였다. 지군의 행위가 8개월이나 발각나지 않은 것은 친척도, 동네 이웃도 어머니 행방을 찾아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군은 여름방학 때도, 추석 때도 친척끼리 어울리는 모임 한 번 가져보지 않았을 것이다. 지군은 가족이 해체되고 다세대주택 문을 닫아걸면 친척·이웃과의 관계망(網)도 차단되는 '사회적 고립' 속에 살아온 것이다.
우리 가구 형태 가운데 '2인 가구' 비중이 24.3%로 가장 많고, 그다음 1인 가구(23.9%)→4인 가구(22.5%)→3인 가구(21.3%) 순이다. 옛날 같은 대가족 울타리 안에선 부모한테 혼쭐이 나도 할아버지·할머니가 편들어주고, 삼촌·이모가 다독이고, 형제·사촌과 고민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감정이 해소됐다. 그러나 누구하고도 소통할 데가 없는 지군 가족의 인간 관계망은 모자(母子) 사이의 어그러진 관계를 바로잡기는커녕 비극적 상황으로 굴러떨어지게 만들었다.
2006년 건강보험으로 정신질환을 진료받은 사람이 180만명이나 되고, 2009년 자살 사망률은 10만명당 28.4명으로 OECD 평균(11.4명)의 2.5배였다. 특히 심각한 것이 청소년이다. OECD 30개국 가운데 한국 청소년의 자살률이 1위, 행복지수는 25위였다. 우리는 가족이 점점 해체되고 친척·이웃과의 관계망도 더 고립화되는 상황 속에서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이 어떤 상태로 치닫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