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놀러 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 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 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 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 나희덕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 창비
6월에서 7월로 건너온 일이 꿈만 같다. 글쓰기강좌 끝나고 보자며 미뤄놓았던 약속의 순례의 나날들. 남편이 월수금, 내가 화목토 주 3일씩 저녁시간을 나누어 쓴다. 연구실 가는 날 빼면 일주일에 한두 명 만나기도 버겁다. 남편한테 ‘하루만 꿔 달라’ 아쉬운 소리 해가며 일정을 조절했다. 친한 선배 이사한 집에 다녀왔고, 지인이 정원에서 와인을 마시자고 초대해서 경기도 광주까지 마실 갔다. 막역한 두 동지와의 약속은 미루려고 내빼다가 내가 40여일 전에 택일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가야했다. 상담요청 후배 만나서 만리장성 수다의 밤을 보내고, 서울과 일산에서 글쓰기동지들 벙개를 각각 치렀다.
그 와중에 돈이 없어 알바로 사보취재 한 건 하고, 아버지가 왜 너는 요즘 전화도 안하느냐고 서운해 해서 모셔다가 국수를 말아드렸다. 절대로 먼저 연락을 안 하시는 시어머니 전화가 왔을 때는 가슴이 덜컹했다. 덕윤이한테 용돈을 보내주신다고 계좌번호를 물어보시는데 목소리에서 서운함이 묻어났다. 한 달 넘게 전화를 안 드렸기 때문이다. 또 대치동으로 이사 간 아는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근 일 년 만이다. ‘섭섭하다. 왜 우리랑 안 만나냐’ 구박 받았다. 간신히 약속을 애들 기말고사 후로 미뤘다. 빠질 수 없는 자리가 있어 오늘 낮에 잠깐 선유도공원에 다녀왔고, 결정적으로 중간에 바이러스 급감염으로 병원까지 드나들었다.
다 써놓고 보니까 미련하다. 나는 학교앞 아스팔트에 떨어진 쮸쮸바처럼 녹았다. 흐물흐물하다. 하나하나는 불가피했다. 몇 명을 제외하고는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사람들이다. 나로서는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야했다. 모처럼 만나자는데 거절하기도 유난스럽지 않은가. 조용히 책이 읽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공부해야 돼서 못 나가요’ 이러기도 우습고, 그도 아니면 대충 둘러대고 ‘언제 한번 보자’며 끊어야하는데 우정을 기만할 순 없다. 무엇보다 나도 보고 싶다. 만나면 행복하다. 얘기 나누는 게 좋다. 기운과 영감을 얻는다. 요즘 들어 특별히 이러는 건 아니다. 그동안 이렇게 지냈다.
빈 중심. 꼭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어서다. 스무 살 이후 그랬다. 목적 없는 삶. 우연성에 나를 개방하고 살았다. 그냥 그 순간에 가장 끌리는 것을 택했다. 그게 사람 아니면 책이었다. 만족 높은 삶. 두 마음이 다툰다. 데이트생활자로 계속 살까. 묵언수행 한번 해볼까. 맑스는 아침 9시에 도서관 가서 밤 10시까지 책 보다 오는 생활을 20여년 했다. 인생후반전. 나도 그런 버전으로도 한번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 꿈은 꿈일 뿐이려나. 지금 삶을 바꾸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더 좋아서이다. 토요일 희망버스 타고 한진중공업에 가자는 문자가 꽃잎처럼 쌓였다. 흔들린다. 185일. 기적처럼 하얀목련 피워 올린 김진숙. 보고싶다. 나 왔어요. 하고 싶다. 가야할까 보다. 이번 생은 이렇게 살아야한다. 너무 늦게 놀러 가지 않기로 작정한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