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한 시간 씩 청소한다면서요? 저번에 누가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그 놀라는 모습에 나는 더 놀랐다. 청소 해야죠.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애들 둘 학교 보내고 나면 집안이 난리에요. 설거지 하고 옷 벗어놓은 거 치우고 이불 정리하고 바닥에 머리카락이며 먼지 쓸고 나 양치하고 씻으면서 화장실 청소 하고 그러면 두 시간이 후딱 가요. 9시가 다 돼가는 걸요. 주부의 일상. 읊기만 해도 한숨이 삐져나온다. 이건 기계적으로 하는 일이고 아침에 꽃수레가 왜 나는 오빠가 먹다 남은 반찬만 주냐고 불만을 터뜨리거나 남편이 양말 빨아놓은 게 없냐고 물어보면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세 사람이 도둑처럼 온 집안을 뒤집어 놓고 빠져나가면, 그 조용한 공간에서 나는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내리면서 마음에 평화를 찾는다.
사는 게 전쟁이다. 국지전 때론 전면전. 5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아득하다. 결국 검찰이 항소를 해서 2심까지 가야할 상황이 됐지만 우리 내부적으로는 논쟁이 치열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동료들과 대립했다. 앞에 있는 박모강사에게는 당신 판단을 이해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고 말하고 타국에 있는 추장에게는 이번만큼은 당신 판단을 신뢰할 수 없다고 메일을 보냈다. 둘에게 한 바탕씩 퍼부었다. 그랬더니 양쪽 다 점잖게 반응이 왔다. 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나의 비판을 수용한 자기반성이 섞인 내용, 그리고‘우린 이런 고민 속에서 지혜로워지는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너무 지랄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더 자세한 얘기는 쥐파티 끝나고 하기로 했다. 나를 돌아봤다. 후면에 누워 조용히 눈물 거두었다. 삶을 감각하고 타자를 사유하는 세포가 점차 멸하여가는 건 아닐까 고민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점이 있다. 그러나 나의 인식으로는 나의 인식을 넘어설 수 없다. 선배에게 전화해서 고민을 터놓았다. 그랬더니, 누구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나마 부당함을 느낄 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직이 많진 않다고, 다양한 의견이 대립할 수 있음 자체가 건강한 거라고 너는 좋은 사람들과 사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긍 가능했다. 내 안의 분열과 갈등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이렇게 사는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그 어디에도 자유로움으로 세팅된 공간은 없다는 것을 배운다. 우리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만난 사람들이며 자유로워지기 위해 투쟁하는 그곳이 유토피아다.
어제는 동욱이랑 희선이랑 정수샘이랑 해피랑 장을 보러 갔다. 쥐파티 하기 위해 대략 300인 분의 먹을거리를 준비했다. 양평동 코스트코. 리어카 수준의 초대형 카트 두 대를 밀고 ‘이건 넣자 말자 그 안주 맛없다 저걸로 하자 남겠다 부족하다 비싸다 남대문 갈걸 그랬다 품질이 좋다 거기에 있을까’ 등등 시끄럽게 물건을 퍼 담았다. 세 시간 정도 둘러보고 피자를 시켰다. 크기에 경악됐다. 코스트코의 모든 규모에 압도당했다며 희선은 문화적 충격을 호소했다. 지금 캘리포니아 외곽 마트에 와 있는 것 같다는 둥, 이 피자는 고아원에 가져가야만 다 먹겠다는 둥, 규모의 극한과 욕망의 한계를 시험하는 곳이라는 둥, 미국문화는 역시 천박하다는 둥 떠들었다. 목동엄마들이랑 자주 오던 이곳이 연구실 동료들과 오니까 사회학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그 와중에 자취생 동욱이는 수저를 3개 챙겨서 가방에 자기 것처럼 넣었다. “사십만 원 넘게 팔아줬는데요 뭘” 너는 정녕 젊구나. 이십대에 술집에서나 하던 짓을 하다니.
차 한 대는 미리 짐을 갖다놓기 위해 두리반으로 가고 또 한 대는 연구실로 갔다. 정수샘은 7시까지 매이를 데리러 가야해서 가속페달을 밟고 부릉부릉 떠났다. 난 집으로 왔다. 금요일에 하루 종일 쥐파티장에 있으니 토요일 강의안을 준비해야 해서 왔으나, 마음에 걸렸다. 연구실 부엌에는 또 일군의 재료손질팀이 대기하고 있다. 밤 10시 넘어 죠스에게 전화해 보았다. 아직도 일해? 세미나팀에서 누가 왔고 N에서 사비도 왔고 일손이 많아서 안 힘들어요, 거의 다 해가요 한다. 대견하고 미안하고. 뭔지 모르게 짠하다. 심히 애절타. 집에서나 밖에서나. 누군가는 먹을거리를 실어 나르고, 누군가는 아이를 챙기고, 누군가는 다리 붓게 싱크대 앞에 서 있고 손에 물을 묻혀야 일상이 돌아간다. 미워하고 원망하고 돕고 보태고 돌보고 연민하고 사랑하고 동정하고, 지지고 볶고 산다. 어떤 날은 비참하고 어떤 날은 살만하다. 삶은 일희일비의 쌍곡선 타기이다. 본디 행복은 위태로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