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약속한 그대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날을 잊었거나 심한 눈비로 길이 막히어
영 어긋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봄날이 이렇습니다, 어지럽습니다
천지사방 마음 날리느라
봄날이 나비처럼 가볍습니다
그래도 먼저 손 내민 약속인지라
문단속에 잘 씻고 나가보지만
한 한시간 돌처럼 앉아 있다 돌아온다면
여한이 없겠다 싶은 날, 그런 날
제물처럼 놓였다가 재처럼 내려앉으리라
햇살에 목숨을 내놓습니다
부디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오지 말고 거기 계십시오
- 이병률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문학동네
비가 하도 예쁘게 내려서,
어울리는 시와 음악을 찾아본다.
막대사탕 빨아먹듯이 당도 높은 시가 가끔씩 끌린다.
이를 테면 이런 날.
한 한시간 돌처럼 앉아있다 오고 싶은 날.
내용과 상관없이 내 마음을 끄는 것들.
화분. 우체부. 자전거. 몇통 몇반 작은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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