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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남을 이해하고 내 자유를 복원하는 '생존형 독서'

 

가끔씩 아침 일찍 책을 싸들고 집을 나선다. 마을버스로 세 정거장 지나 내린다. 내가 즐겨 찾는 콩다방은 H사 건물 1층에 자리했다. 집 앞에 별다방 맥다방 다 두고 굳이 버스까지 타고 출장을 가는 이유는 한적함이 좋아서다. 로비 구석에 있어 잘 눈에 띄지 않고 규모도 아담하다.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고 쏟아져 들어오는 12시 반 전까지는 절간처럼 조용하다. 삼면이 커다란 통유리다. 살구빛 볕이 들어차고 포근한 음악이 융단처럼 깔리고 거의 사약 농도의 까만 커피의 짙은 향이 번지는 지복의 환경에서 나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등을 굽혀 책장을 넘기곤 한다. 

그날도 들기름 발라 김을 굽듯 한 장 한 장 햇살에 책장을 굽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영화 보러 갈래요?’ ‘, 무슨 장르인가요?’ ‘코미디요.’ ‘안 땡기네요. 멜로라면 모를까.’ 나는 <원스> <비포선셋> <만추> 같은 영화가 좋다했다. 말하고 나니 세 영화의 공통점이 읽혔다. 하나같이 섹스 없는 에로틱한 멜로물이었다. 이런 나의 취향이 혹시 도착증이 아닌가 싶다고 자기분석을 내리고는 문자를 넣었다. 답이 왔다. ‘도착증 맞습니다. 순정만화 증후군 같은 거죠.’ 피식 웃음이 났다. 이른 나이에 엄마가 된 나는 금기가 내면화된 탓에 몸을 섞지 않는 정신적 사랑즉 진한 교감에 열광하는 거 같다. 무의식중에. 아마도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인생이 호숫가의 돛단배처럼 잔잔하고 이놈저놈 달달한 연애에 바빴으면 내가 과연 책을 읽었을까. 사랑이 어려워 심리서적을 팠을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엄마인 나는 무성적 존재로 살아가야 했다. ‘성모지위에 보모역할을 부여받은 상태로 꽃시절을 보냈다. 삶은 일상 곳곳에서 번뇌를 양산했다. 먼지처럼 오늘 닦아내도 내일 또 생겨났다. 고단하고 쓸쓸했다. 식구들이 잠든 밤마다 책을 폈다. 책이랑 있으면 재밌었다. 짜릿하거나 난해하거나 암튼 시간이 잘 갔다. 술친구이자 애인이었다. 정희진의 말대로 인생에서 깨달음만한 오르가슴은 없었다 

책과의 교재가 길었다. 지뢰처럼 깔린 사건에 옴짝달싹 못할 때, 불우한 인연에 허우적거릴 때, 타인의 생각을 개조하거나 사건을 바꾸기보다 내가 달라지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고 책의 도움이 컸다. 일종의 생존형 독서다. 내게 책 읽기의 가치는 타인을 이해하고 나의 자유를 복원하는 데 있었다. 동병상련이라고, 그래서 직업적 연구자를 제외하고 어떤 이가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나는 애잔하다. 사는 게 힘들구나 혹은 참으로 외롭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린다. 만약 누군가 내 인생의 책을 얘기하면 나는 그의 생에 최대 사건을 짐작한다. 나 또한 생이 가장 위태로울 때 내 인생의 책이 무리지어 탄생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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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수업.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를 읽고 각자 나를 바꾼 책에 관한 글을 써오라고 했다. 키워드를 뽑고 쓰기다. ‘’ ‘사랑’ ‘’ ‘시간’ ‘성장’ ‘진리’ ‘대화’ ‘공감등 불멸의 화두들이 등장했다. 역시 시간--돈 관련 글이 가장 많았다. 삶을 매섭게 빨아들이는 그것으로부터 오도 가도 못 하는 갈등. 사십대 후반의 일하는 여성 초롱샘은 월급은 마약이다로 글을 열었다. 그냥 이대로 있으면 매월 일정한 날에 돈을 받을 수 있으니 회사를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직장인 명운 샘 역시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며 나에 대한 불만족을 물건을 통해 만족감을 얻었노라 고백한다 

두 사람에게 다가온 책은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코뮤니타스> 초롱샘은 소유로부터 벗어나건 소유의 현장으로 들어가건, 중요한 건 돈이 아니다. 자유다에 밑줄을 그었다. 요즘 연구실에 접속한 명운샘은 돈은 식비와 강좌비, 교통비에 지출되는데 돈과 함께 오는 수많은 인연들이 새로운 장을 만들고 새로운 관계 속에 살게 한다스스로 돈에게 떳떳하다고 마무리했다 

돈과 자유 사이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던 지오샘은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를 인용했다. ‘1982년 프로야구의 출범과 함께 우리 삶 곳곳에 '프로'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야구>를 하던 선수들이 어느 날 갑자기 <프로야구>를 하게 된 것처럼, <인생>을 살던 모든 국민들이 어느 날 갑자기 <프로 인생>을 살게 되었다.’ 야구선수도 아니면서 프로가 되기 위해 쫓기듯 살아왔음을 자각한 그는 돌이켜 보니 지난 5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앞으로는 내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일을 하겠다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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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왜 이리 머리가 아프지? 하며 하루하루 넘기다 어느 날 매일 머리가 아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제야 두통이 꽤 오래전부터 계속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내 몸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게 충격이었다.” 직장생활 10년 차에 백수가 된 지연샘의 글이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면 길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가 이대로 계속 가다면 삶의 피로와 제로베이스 통장만 남을 것이란 사실에 용기를 냈다고 했다. 삶에는 여러 개의 길이 있다고 말한 니체가 백수의 불안을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된다며 고병권의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소개했다.

수업시간, 마치 직장이 감옥처럼 얘기되는 분위기에서 조심스레 반론이 나왔다. 유정샘은 힘든 일을 겪었을 때 아침에 눈 떠서 출근할 곳이 있어 좋았다고 했다. 가연샘도 너무 지겨워서 회사를 그만두었으나 막상 자유로움은 오래 가지 않았으며 올해 다시 취직했다고 말했다. 역시 직장을 그만 둔 정민샘은 돈이 아쉬워 다시 일의 유혹을 받는다며 공감했다. 스스로에게 안식년을 준 옥기샘은 실은 나도 남편에게 돈 타 쓰려니 치사스러워 다시 일이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일 년은 쉬기로 했으니 쉬어볼 작정이라며 내가 일한다고 하면 좀 말려 달라고 말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

몰락을 촉구한 니체도 직업은 삶의 척추라고 했다. 일하는 것. 직업 자체가 왜 나쁘겠는가.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에 나오듯이 삶에 대한 욕망이 삶에 대한 복수로 돌변하는 것그리하여 돈이나 잘못된 신념에 쉽게 삶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돈을 가지려 하지만 실제로는 돈을 얻기 위해 삶을 내어주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고추장은 잘 사는 것에 대한 물음은, 잘 살게 해달라는 기도보다 몇 백 배 더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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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자유는 왜 언제부터 선택사항이 되었을까? 알고 보면 우리 삶에는 수많은 분할선이 존재한다. 종교와 정치도 그중 하나이다. 카톨릭 학생회 활동을 하다가 운동권이 된 민서샘은 종교인의 이름으로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난 진정한 신자인 걸까?” 고민하다가 <함석헌 평전: 신의 도시와 세속의 도시 사이에서>보았으며 그의 삶을 통해 종교와 정치가 분리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함석헌 신부는 '씨알이라 이름붙인 민중과 함께 살아온 길 위의 성직자다. 민중에게서 신을 보았던 그는 어느 책에선가 한 없이 아름다운 언어로 신앙심을 표현했다.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  

재향샘은 <석유의 종말>에서 망각과 착각이란 키워드를 뽑았다. “나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망각하며 살기 보다는 죽지 않을 것처럼 착각하고 산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의 탐욕 넘치는 삶을 바꿔야 한다고 꼬집었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를 택한 귀선샘은 모든 인간관계는 배움을 위해 그 관계를 선택한 것이라는 통찰을 얻어내고 대화가 중요한 삶의 기술임을 강조했다.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는 혜인샘도 일상의 소통문제로 고민하다가 <비폭력대화>를 읽은 후 귀한 결론에 이른다. “나는 많은 경우 공감보다는 판단을 한다. 학생들과 얘기할 때도 네 상황과 느낌은 알겠어라 말하지만 대화하는 내내 나의 판단이 빼곡히 들어선다. 대화에는 상대는 없고 나만 가득하다. 하지만 공감은 내가 비워져야 가능하다. 공감(共感)은 곧, 공감(空感)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에 끌리는젊은이 병채샘은 진리를 찾아 떠돌았다. 일본 유학도 그렇게 떠났으나 다시 평범한 유학생이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곤 무"에 복받친다. 그러던 중 선각스님의 <선의 나침반>을 만나 마음이 평안을 얻었다고 했다. 병채샘은 진리를 찾아 헤맬 때 행복하지 않았음을 고백하면서 이런 탄식을 내뱉는다. “나는 결국 이렇게 똑같아 지는 구나 이 글귀를 보고 난 이것이 그가 찾던 진리라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삶의 왕복운동을 인식하는 것 말이다 

그동안 내가 책에 의지하며 얻은 결론도 저것이다. 삶은 반복이다. 그러니 삶에 길들여지지 않되 저항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무효라는 것. 진리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것. 진리는 보물찾기하듯이 지구촌 어디에 따로 보관돼 있지 않다. 내 삶의 조건에서 매 순간 발명해야하는 실험이자 놀이다. 그리하여 고추장이 책에서 말했듯이, 자유는 선택이라기보다 능력이고, 행복해지려거든 자기 삶을 통찰해야 하는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초롱샘이 나에게 물었다. 행복하냐고. 나는 아침에 눈 뜨면 읽어야할 책이 있고 이렇게 둥글게 앉아 맛난 걸 먹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적어도 사는 게 지루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내 비록 통장의 잔고는 비었어도 삶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내가 행복하다면 아마도 그건 골치 아픈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일상의 잡다한 번뇌를 잠시나마 일소할 수 있는 책이 있고, 책을 레시피로 고통을 재탕할 수 있는 글이 있고, 그것을 같이 나누고 싶은 벗이 있어서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