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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고등학생 아들에게 읽어주는 글


아들 입학식 날. 애들 학교 보내고 오전 내내 잤다. 긴긴 겨울방학, 늦잠형 인간으로 길들여진 몸이 자동적으로다가 나를 침대로 이끌었다. “엄마는 입학식에 오는 거 아니다”라는 아들 말을 덜컥 수용하고 집에서 게으름을 피운 것이다. 정말이지 나는 쉬고 싶다. 아들의 고등학교 진급에 심한 피로감을 느낀다. 며칠 전에는 교복을 사러 갔더니 다 팔리고 없어서 다섯 군데나 되는 교복매장을 순회했다. 마지막 매장에서 엄청 큰 재킷 하나 겨우 확보해 동네 수선집에서 사이즈를 대폭 줄였다. 하마터면 교복도 못 입혀 학교에 보낼 뻔 했다. 설마 교복이 품절됐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졸지에 ‘게으른 엄마’ 됐고 매장마다 "왜 이제야 사러 나왔냐"고 잔소리를 들어야했다. 교복 사는 것까지 속도경쟁을 해야 하나.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이 속도감을 따라가기가 벅차다.  

(졸업식날 교실에서)   입학 전 배치고사도 은근히 신경 쓰였다. 고등학교에서 우리 아이의 위치가 어느 정도가 될지 염려스러웠다. 고등학교는 수능체제이고 수능은 곧 인생등급표다. 막연하던 현실이 구체적으로 다가오자 무력감을 느꼈다. 도망갈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바보같은 처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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