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만날 때 녹음기를 쓰지 않는다. 기계사용이 서툴다. 노트북 펴놓는 적도 드물다. 사람 사이에 기계를 두면 장벽같다. 핵심과 흐름을 추려 수첩이나 노트에 적는다. 속기사이자 통역관이 되어 그의 말을 나의 언어로 기록한다. 이야기에 자연스레 집중된다. 내 몸이 거대한 귀로 작동하는 그 순간이 즐겁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녹음기가 있었으면’ 하고 바랬다. 6년 동안 구로동 공부방에서 한부모 아이 등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이다. 자기의 중딩 두 아들을 섞어놓고 같이 키우고 있었다. 사는 얘기가 풍부했다. 손이 말을 따라가지 못했다. 밑줄 긋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살아 있는 책. 대출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일정을 맞추다 보니 밤 8시에 갔는데 끝나니 11시. 세 시간 정도 얘기했다. 대화 중간에 공부방 다니는 아이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통화내용이 들려왔다.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고 대책을 논의하는 모양이었다. 선생님의 대사는 아이의 체면을 세워주면서도 단호하고 지혜롭게 품어주는 이론서 양육법 그대로였다. 할머니에게 간곡히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럴 때 다 같이 힘을 모아 일을 해결하는 과정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돈으로 한번에 해결하시면 안 돼요." 아이와 통화하면서는 ‘나 같으면 그런 일 있으면 못나왔을 텐데 용기 내 공부방에 다시 나와 주어 고맙다’고 다독였다. 잠시 후 자리로 돌아와 말을 잇는다. 아이들은 나를 울게 하지 않는데 딱 두 사람 때문에 울고 싶단다. 집주인과 이명박.
공부방 불을 끄고 셔터를 내리고 같이 지하철역까지 걸어 나왔다. 선생님에게 물었다. "이렇게 늦게 가면 집에 애들끼리 있어요?" "애들이요? 걔네는 엄마가 늦게 올수록 좋아하고 안 들어오면 더 좋아하고 제일 좋아하는 건 12시에 와서 쓰러져 자는 거에요. 엄마 센스장이라고." 웃음소리가 골목길에 울렸다. 엄마로서 최대한 아이와 나를 분리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아이의 실패가 나의 실패는 아니잖아요." 아이들도 안단다. 셋 중에 엄마가 제일 공부도 잘하고, 착하고 괜찮은 사람인 것을. 애잔한 얘길 굉장히 재밌게 풀어냈다. 확실히 유쾌함이 가장 높은 경지 같다. 다 버리고 가벼워져야 나도 웃고 상대방도 웃긴다. 남은 울려도 자기는 웃는다.
“나는 가난과 싸우지 않아요. 더 가난해지고 싶어요. 용기가 없긴 하지만.” 빈곤아동 청소년 문제에 헌신하는 선생님의 깊은 말들이 빗소리처럼 들린다. 눈보다 비에 가까웠다. 순결하고 탐스러운 함박눈처럼 곱게 상처를 다 덮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봄비처럼 조용히 아이들 마음의 먼지를 닦아내고 아이들을 촉촉이 적셔주는 분. 언 땅을 뚫고 나올 큰 힘을 길러주는 구로동 아이들의 엄마. 때론 소나기처럼 일깨워주는 스승이자 친구였다. 자신은 무척 내성적인 사람인데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산 것 같다며 지금 죽어도 미련이 없다고 했다. 쓸쓸한 고백에서 자연의 순리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