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길가에 금은보화처럼 수북이 쌓여있는 낙엽을 가르며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놀이기구를 탄 것 같아서 마냥 가고 싶었지만 늦으면 안 되니까 자중했다. 지하철을 갈아탔다. 늦가을 풍경에 취해 멍하니 앉아 있다가 고마운 사람에게 안부문자를 넣었다. 아이들 보내놓고 뭐하느냐 묻길래 인터뷰 간다고 했더니 좋은 사람 만나는 일이 부럽다고 답이 왔다. 학생들과 에너지를 나누는 일도 얼마나 좋으냐고 다시 보냈다. 그렇지 않다고, 요즘 대학생들은 출석과 학점에 벌벌 떨어 너무 안쓰럽다고 했다. 큰 배움터에서 소인배로 길러지다니. 성신여대 앞에 내렸다. 어디로 가야 학교 정문인지 몰라서 지나가는 학생에게 물어물어 찾아갔다. 십 여분 걸었다. 온통 옷가게와 밥집과 커피집인 대학 앞을 지나가는데 마음이 쓸쓸했다. 로비에서 만난 사진기자가 요즘 대학들은 건물이 너무 좋아 적응이 안 된다고 감탄했다. 화장실도 좋고 로비에 커피전문점도 있으니 진짜 회사같았다. 기업에 포섭당한 대학. 학생은 학점기계가 되고 학교는 취업양성소가 되었다더니 기업에서 대학을 계열사처럼 관리를 하나보다. 돈 받으면 지는 건데.
낮. ‘이 책에서 나의 연구대상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 및 그것에 대응하는 생산관계와 교환관계다... 우리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에 의해서뿐 아니라 그 발전의 불완전성에 의해서도 고통을 받고 있다.’ 자본론을 읽는데 슬프다. 인간노동은 특수한 방향으로 발달하지 않은 '보통의 인간'이 자기 육체 속에 '평균적'으로 가지고 있는 '단순한' 노동력을 지출하는 것이란다. 내 몸에 단순한 평균적 노동있다. 누가 해도 똑같은 노동. 영혼이 불필요한 노동. 질적인 차이는 무시되고 양적인 것으로 끝없는 환산이 이뤄지는 노동. 이런 노동자가 되기 위해, 왜 우리는 몸부림치는 걸까. 아이 때부터 마음껏 놀아보지도 못하고 어른이 된다고 해서 별반 희망도 없는 인간의 삶이 측은했다. 출생선택권도 없는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더 암담하지 않은가. 어떤 사람이 왕인 것은 오직 다른 사람들이 그를 받들어 신하로서 복종하기 때문이라는 맑스의 말에 밑줄을 긋는다. 언제부터 우리는 영어에 복종하고 돈에 복종해서 그들을 왕으로 만든 걸까. 언제부터 신하가 됐을까. 자본론은 이래저래 슬픈 책이다. 개념이 난해해서 머리가 아프고 겨우 이해되면 마음이 아프다.
밤. 애잔한 날이었다. 애틋하고 애처로운 마음이 가슴 밑바닥에서 불이라도 때는 것처럼 스물스물 올라오니 시시때때로 눈도 아프고 목도 메었다. 사는 게 뭘까 물으며 사는 게 뭘까 묻는 건 사치라는 생각을 돌림노래처럼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백번 생각해도 맞다. 인간이 태어나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건 확실히 별 거다. 어려서부터 안간힘 쓰고 교육을 받아도 마음자리가 비좁아 남을 위해 의자 몇개 내놓기 어렵다. 그러니 살면서 주기적으로 뚝딱뚝딱 삶의 자리를 넓히는 영혼의 확장공사를 해줘야 한다. 머리에서 뭔가 쉼 없이 부서지고 세워지는 세미나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 기운이 없어서 택시를 탔다. 신용카드 단말기에 ‘고장’이라고 붙어있다. 현금이 없어 택시에서 내렸다. 자본에 의탁하지 말고 돈 없이도 잘 사는 신체로 단련시키자. 군말 않고 남산 위로 올라가 버스를 기다렸다. 길가에 차도 없고 정류장에도 나뿐이다. 발 아래로 서울야경이 반짝반짝 별빛처럼 펼쳐지고 가로수 마지막 잎새들이 내게로 멋지게 낙하한다. 캄캄한 밤에 그러고 서있자니 지구라는 초코케이크에 초 한 개가 되어 꽂혀있는 기분이었다.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달콤한 나의 도시에 다른 초들도 같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울하니까 세상이 다 초콜릿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