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인이 졸고 있다 한 여인의 머리가 한 여인의 어깨에 한 여인의 어깨가 한 여인의 가슴에 한 여인의 피곤이 또 한 여인의 시름에 기대 도레미 나란히
세 남자가 오고 있다 순대 속 같은 지하철 데친 듯 풀죽은 눈알들 헤집고 삶은 듯 늘어진 살덩이 타넘고
먼저, 거지가 손을 내민다 다음, 장님이 노래 부른다 그 뒤를 예언지의 숱 많은 머리 휴거를 준비하라 사람들아! 외치며 깨우며 돌아다니지만 세 여인이 졸고 있다 세 남자가 오고 있다
오전 11시 지하철은 실업자로 만원이다
최영미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내 일상의 중요한 무대, 지하철. 900원에 상시적 이용 가능한 개인 독서실, 약속시간 지켜주는 충실한 애마 기능은 기본. 어쩌다 비라도 내리는 날 운좋으면 추억의 팝송까지 틀어주는 센스만점 음악감상실. 낮 시간대 한산한 지하철에는 CD파는 아저씨들이 '어디선가' 반드시 나타나지. 끈적끈적한 싸구려 음향은 피곤한 도시인의 육신에 엿가락처럼 늘어붙는다. 삶아진 살들을 타고 넘지. 아, 달콤한 나의 지하철. 헌데 며칠 전 지하철에서 청천벽력같은 방송이 나온다. 다섯번째 칸에 잡상인이 타서 "조치 후 곧 출발한다"고. 아, 대한민국 지하철에서 이명박이나 끌어내리지. 제기랄. 이제 서울메트로 비공식 DJ가 틀어주는 피로회복제 같은 음악 못 듣는 건가, 씁쓸한 마음에 홍대 앞에 내리니 전국노점상연합이 "탄압을 중단하라" 구호를 외친다. 잡상인과 노점상 없는 도시 만들기 프로젝트라도 시작된 건가 뭔가. 그 분들 이제 뭐 먹고 사나. 잡상인과 노점상이 '선량한 시민'에게 무슨 피해를 얼마나 준다고 그러나. 도대체 그 '선량한'시민들이 누구야. 실체도 없는 텅빈 기표로'쇼'한다.
도시 한 가운데서 '백주대낮'에 버젓이 행해지는 일일수록 더욱 속수무책. 얼마전 백화점에 갔다가 알바생에게 13시간 일하고 일당 5만원 받는다는 얘길 들었다. 헉. 놀래라. 같이 있던 선배가 백화점 같은 데서 법을 어기면 안 될테니 아마 최저임금은 넘을 것이라고 그런다. 대략 계산해보니 최저임금 '3770원'은 지켰다. 2009년부터 최저임금이 4천원으로 오른다는데, 어서 해가 바뀌어라. 그런데 또 누가 그러네.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에서 알바하는 중고생은 물론이오 성인도 최저임금 보장이 안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진짜? 근데 그럼 안 되는데. 편의점은 대로변에 전봇대만큼 많고, 24시간 불켜진 곳. 불법노동착취가 그렇게 대놓고 전국동시다발적으로 행해진단 말인가.
노동착취는 이제 더이상 구로공단 허름한 공장 안에서 남몰래 행해지지 않는구나. 충격이다. 환한 곳일수록 더 위험하다는 건 진리. '한겨레' 민생특집 기사에도 환자 대소변 치우며 밤샘 간병 시간당 2700원 기사가 보인다. 이런거 한겨레에 나와도 현실은 꿈쩍 안 하는 건가. 민변에서도 노동인권위에서도 못하고 진보신당에서도 처리 안 되는 문제인 거야. 하긴 이런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 원래부터 법은 밥을 먹여주지 않았으니. 누구도 세상의 ‘법’을 믿지 않는다. 지젝 말대로, 법 스스로가 법을 어기는 외설적 아버지의 시대. 아. 몰랐던 건 아니지만 알 때마다 왜 이렇게 처음인 듯 열받는가. 새삼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