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올드걸의시집

먼지 혹은 폐허 / 심보선 '단 하나의 완벽한 사랑이었네'

   8
   내가 원한 것은 단 하나의 완벽한 사랑이었네.
   완벽한 인간과 완벽한 경구 따위는 식후의
   농담 한마디면 쉽사리 완성되었네. 나와 같은
   범부에게도 사랑의 계시가 어느날 임하여
   시를 살게 하고 폐허를 꿈꾸게 하네.
   (그대는 사랑을 수저처럼 입에 물고 살아가네.
   시장 하시거든, 어여, 나를 퍼먹으시게)
   한생의 사랑을 나와 머문 그대, 이제 가네.
   가는 그대, 다만 내 입술의 은밀한 달싹임을,
   그 입술 너머 엎드려 통곡하는 혀의 구구절절만을
   기억해주게.
   오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꽃은 성급히 피고 나무는 느리게 죽어가네.
   천변만화의 계절이 잘게 쪼개져,
   머무를 처소 하나 없이 우주 만역에 흩어지는 먼지의
   나날이 될때까지
   나는 그대를 기억하리

    - 먼지 혹은 폐허 / 심보선,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초>


완벽한 사랑이 있을까. 없으니까 '꿈'꾸겠지. 완벽한 사랑이 완성태로 존재해서 조건을 맞추고 갖춰 가는 게 아니라 사랑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흐름의 절단면으로 충만함의 상태를 지나는 거겠지. 그 사랑이 완벽했음을 언제 어떻게 누구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아마도 내 영혼만이 알겠지. 사랑은 자신의 결여를 채우기 위한  타자에 대한 희생과 헌신이라는 지젝의 말에 동의한다. 사람은 타자를 사랑하면서 자신의 결여를 메운다. 나도 그랬다. 사랑하면 사람은 변한다. 대대적인 삶의 리모델링이 이뤄진다. 고로 사랑은 기존의 질서와 배치를 바꾸는 전복적인 활동이다. 자기형성의 강렬한 욕망이다. 그러니 사랑은 어렵고도 아프다. 내 영혼의 개축공사가 이뤄지므로.

그런데 사랑이 공부한다고 되는 문제인가. 우리는 사랑을 선택할 수 없다. '지금부터 사랑하리라 혹은 사랑을 중단하리라' 해서 그대로 되던가. 사랑의 능력도 근육처럼 길러지나. '작업'의 기술은 향상될 수 있겠으나 '사랑'도 과연 그런가. 사람은 살면서 평생 사랑다운 사랑을 대체 몇 번이나 할 수 있길래, 사랑을 부지런히 예습해두어야 하나. 

고미숙 선생님은 <호모에로스>란 책을 통해 사랑과 연애의 기술을 설파했다. 기존의 연애 입문,총론서와 다른 점은 기념일 이벤트 같은 소비문화에 휘둘리지 말것이며, 가부장 이데올로기 장치로부터 벗어나 자본주의적 연애습속을 타파하라는 것이다.  삶과 몸을 바꾸는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사랑을 하라는 얘기인데, 이는 삶의 기술이지 사랑의 지침서라고 하기엔 너무 두루뭉수리하다. 결정적으로 사랑이 수반하는 가슴저림증과 아림과 설렘과 야시시함의 정서가 빠져서 맥없다.

김어준 딴지총수는 <한겨레> 연애상담코너에서 연애가 북돋는 몸과 정신의 활력을 칭송하며 "연애 못해본 자들,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자들로 친다"고 호기롭게 떠든다. 그리곤, "왕자가 우박이냐 하늘에서 떨어지게"라고 일갈하며 공부를 통해 연애능력을 향상시키라고, 부단한 노력으로 일단 모집단을 확대하라고 충고한다. 재밌고 솔깃하다. 그치만  난 '사랑을 공부한다'는 말이 애초에 성립불가능하다고 여긴다. 교통사고처럼 닥쳐서 피할 수도 택할 수도 맘을 더할 수도 발을 뺄수도 없는 사랑. 감기처럼 열이 오르고 앓을만큼 앓아야 끝나는 사랑. 복습은 부질없고 예습은 무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