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체류 외국인 백만 명 시대다. 우리는 외국인노동자를 ‘그들’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이미 ‘우리’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안산시는 58개국 3만 명의 외국인노동자가 먹고 자고 일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안산시 원곡동에 ‘외국인주민센터’가 지난 3월 전국 최초로 문을 열었다. 은행, 보건소, 동시통역센터 등 행정시설과 문화공간이 갖춰진 최첨단 ‘외국인 동사무소’다. 울타리도 문턱도 없다. 두 팔 벌린 그곳으로 성큼 들어가 보자.
다문화중심지 "부라보! 안산!" 5월의 미풍 따라 네팔, 중국, 스리랑카 등 형형색색 국기가 펄럭인다. 대리석 분수대 뒤편 아담한 무대 벽면에는 각국 언어로 된 인사말이 새겨져 있다. 넓은 앞마당을 낀 벽돌색 3층 건물은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늠름한 자태를 뽐낸다. 주변조경이 작은 공원이나 다름없으니, 가까이만 가도 마음이 트이고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안산시의 26번 째 동사무소,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다.
“반월·시화공단 등지에서 일하는 많은 외국인노동자들이 안산에 모여 살고 있습니다. 58개국 3만여 명, 미등록외국인까지 포함하면 5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합니다. 여기 원곡동만 해도 거리에 두 명 중 한 명은 외국인입니다. 이들에 의한 새로운 행정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전담조직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거주외국인도 주민으로서 시민과 동일한 행정서비스를 제공받아야하니까요.”
김창모 소장의 말이다. 그는 이어 외국인주민센터는 안산시의 26번째 동사무소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타 공공기관과는 달리 이곳은 365일 연중무휴로 운영한다. 평소 잔업이 많은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배려’ 차원이다. 실제로 주말과 공휴일에 이용객이 가장 많다고 한다. 외국인주민센터는 인권증진기반사업, 교육프로그램 운영, 생활정보 제공, 다문화공동체 사업 등 크게 네 가지 분야에 걸쳐 활발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외국인근로자 위한 휴일·야간 무료진료
외국인주민센터는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이다. 1층은 보건지소가 자리했다. 내과·치과·한방 등의 진료가 이뤄지고, 외국인 건강검진·결혼이민자 임산부 등록 관리서비스·금연클리닉 등이 운영된다. 일평균 이용자수는 30명 정도. 4월에는 총 512명이 다녀갔다.
“주로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입니다. 근로자들의 경우 아무래도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고요. 중국분들은 침 맞는 걸 좋아합니다. 진료 후 약까지 다 드리니까 호응이 좋습니다. 외국인들 사이에 무료진료소라는 소식이 전해져 다른 지역에서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다 해드리지요. 미등록노동자도 그렇고요. 아파서 온 분들을 그냥 가라고 할 순 없잖아요.”
잔잔한 미소를 짓는 박선홍 원곡보건지소장. 그는 보건지소 역시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휴일, 야간진료가 가장 활발하다고 전했다. 주말 및 공휴일 진료시에는 안산시 의사회, 약사회, 치과의사회, 한의사회 등 의료인 단체와 사랑담는의료봉사단, 구세군교회, 한도병원, 중앙병원 등이 자원봉사자로 나선다. 내 몸 아플 때 하소연할 데 없는 것처럼 서러운 일이 없는데, 질병치료는 물론 따뜻한 이웃사랑까지 느낄 수 있으니 보건지소는 외국인의 타향살이에 든든한 위안이 되는 셈이다.
2층은 사무실과 동시통역센터, 컴퓨터 교육실 등으로 실질적인 제반업무와 활동이 이뤄진다. 시선을 끄는 것은 <강의실><동시통역센터>등 각 방마다 내걸린 ‘다국어 간판’이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 6개국 언어로 쓰여 있다. 김창모 소장은 “만약 우리가 다른 나라에 갔을 때 행정시설에서 한국어를 본다면 무척 감동적일 것”이라며 “다국어 간판이 별 것 아닌 듯해도 각 나라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8개국 언어 지원.., 체불임금· 결혼이민자 고부갈등 상담
외국인주민센터 실무부서는 다자외무담당, 지구촌문화담당, 국제교육담당, 외국인인권담당 등 4개 부서로 나뉘어 총 17명이 일한다. 거주외국인이 주민으로서 기본적인 생활영위와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언어, 법률, 생활정보, 의료, 문화체육활동 등 종합적인 행정지원이 이뤄진다.
홍보 및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하는 최미라 씨는 “외국인주민센터의 주목할 만한 시설”이라며 ‘이주민통역지원센터’를 소개했다. 1644-7111을 누르면 한국, 중국, 베트남, 태국, 몽골, 파키스탄,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8개국 언어의 통역지원을 받을 수 있다. 대부분 임금체불, 사업장 변경, 진료, 출입국 관련 상담이 주를 이룬다.
인도네시아어 담당 김미연 씨는 상담업무에 한참이다. 루시안토씨의 ‘외국인근로자전용보험 계약사항 변경신청서’의 문건작성을 돕고 있다. 옆자리의 태국어 담당 롱팁 씨는 결혼이민자 출신이다. 십년 전 결혼하면서 한국에 온지라 한국어와 태국어에 능통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통역에 임하니 소통도 원활하다.
“의사소통이 안 돼서 발생하는 문제가 많습니다. 큰 문제도 아닌데 서로가 오해를 하지요. 잔업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하는 분을 잘 해결해준 경우도 있고요, 정 안되면 노동부 고용지원센터를 소개시켜주기도 합니다.”
베트남어를 담당하는 탄 씨는 베트남에서 한국어과를 전공했다. 한국남자와 결혼하여 안산에 살고 있다. 베트남어의 경우 상담자의 대부분이 결혼이민자 가정의 여성들이라고 한다. “요새는 베트남 여성들도 당당히 할 말은 하는 분위기인데 무조건적인 희생만 바라는 시부모님과 갈등이 많다”고 귀띔했다.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에는 ‘Ansan Harmony'라는 격월간 생활정보소식지도 발간된다. 국제업무부 강희경 씨는 갓 나온 소식지 제 7호를 정기구독자에게 발송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거주 외국인들이 함께 알면 유용한 정보들을 넣습니다. 보건소 소식, 세계인의 날 기념행사, 모니터요원 모집 안내, 보험금 수령방법, 각국 공동체 소식 등등...소식지 받아보신 분들이 유용했다. 재밌더라고 말하면 가장 보람되죠. 나중에는 각국 사람들로 구성된 편집위원회도 구성해서 그들 삶 속에서 나오는 생생한 이야기를 담을 계획입니다.”
소식지 발행, 태권도 컴퓨터 교육 등 “무엇이든 나눠요”
이밖에도 외국인주민센터에서는 컴퓨터, 한국어, 태권도 등 다양한 교육이 이뤄진다. 컴퓨터교육실에는 KT IT 서포터즈의 후원으로 20여 명이 ‘파워포인트반’ 수업을 받고 있다. 이미 기초반 2개월 과정을 마친 이들로, 낮 시간인 만큼 결혼이민자 가정의 주부들이 대부분이다. 초기에는 수강생 자녀가 울면 직원들이 아이를 달래는 등 애로점이 많았으나 지하 공동체 사무실에 놀이방이 생겨 아이들을 맡기고 수업을 받는다.
공동체 놀이방은 안산자원봉사센터의 주부들과 유아교육과 학생들의 도움의 손길로 운영된다. 주부 현종원 씨는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거리감이 있었는데 아이들을 돌보다보니 편견이 없어진다.”고 소감을 밝혔다.
태권도 강습은 50여 명이 참여,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됐다. 사범을 맡은 김교환 안산시의원은 “한국 문화 전통예절 언어 정신 등을 배우는 데 태권도가 가장 좋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오는 6월 8일 ‘세계인의 날’ 기념행사에 시범을 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한편, 해질 무렵 미국 시카고 대학 교수 20여 명이 센터를 방문했다. 김창모 소장은 한국 지방정부의 다문화 문제 대응 모범사례로 안산시를 소개했다.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에서는 하루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동생을 데리러 온 여학생, 금연계획서를 제출하는 청년, 아이와 같이 컴퓨터를 배우는 여인, 다문화 행정우수사례를 견학 온 미국인 등등... 그 걸음걸음이 꾸준히 이어진다면 다문화중심지 ‘부라보! 안산’의 함성은 지구촌 곳곳으로 울려 퍼질 듯하다.
***김창모 소장 인터뷰
"다문화중심도시 ‘Brovo 안산!’ 기대하세요"
센터가 오픈하고 두 달이 지났다. 소감은.
- 직원들이 애 많이 썼다. 내외빈의 방문이 이어지는 등 여전히 바쁘다. 올 일 년은 외국인주민센터가 체계적으로 자리 잡는 해가 될 것이다. 자원봉사자와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프로그램의 질을 정교화 할 것이다. 거주외국인 지원기반 구축은 물론 내외국인이 소통하는 다문화 풍토조성에 역점을 둘 예정이다.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의 비전은 무엇인가.
- 다문화시대이다. 문화적 다양성이 그 도시의 경쟁력이다. 이질적인 문화를 얼마나 흡수하고 새롭게 재창조해나가느냐가 관건이 된다. 이번 센터설립을 계기로 안산은 이미 다문화시대의 선두그룹에 서있다고 자부한다. 앞으로는 파키스탄, 태국, 등 오리지널 향신료를 쓴 이국음식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축제의 도시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세계적인 다문화 중심도시로 커나갈 안산을 기대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