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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27] 한겨레 - 여름 제사 (4)

한겨레 - 여름 제사

[은유칼럼]


시적인 게 뭐예요? 시 수업에서 질문이 나왔다. 난 오래된 시집에서 본 설명에 기댔다. “그 시적인 것은 뭐라고 딱히 말할 수는 없고, 딱히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어쩌면 선적인 것과 닿아 있는지 모르겠다.”(황지우,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64쪽) 그리고 예를 들었다. ‘여름 제사’ 같은 게 아닐까요?


저 오늘 여름 제사 지내러 가요. 얼마 전 지인이 지나가듯 하는 말에 몸이 움찔했다. 여름 피서가 아니라 여름 제사. 이 빗나가고 거스르는 말들의 배열이 내겐 너무 시적으로 다가왔다. 삼복더위에 호화로운 휴가 한번 즐기지 못한 엄마는, 자식들 콩국수 만들어 먹이고 아버지 술안주로 부침개 부치느라 가스불 앞을 떠나지 못하고 낑낑대던 엄마는 한여름에 돌아가셨다. 써보지 못한 여권사진이 영정사진이 됐다. 10년 전이다. 나는 10년째 여름 제사를 지낸다.


서울 36도. 올해 엄마 기일도 무더웠다. 가스불 앞에서 쇠고기 무국을 끓이고 전을 뒤집고 산적 고기를 익히는 나는 엄마가 되어 엄마를 본다. 가슴골로 맹렬하게 흘러내리는 땀줄기가 건드리는 그 무엇. “너 키울 때 자는 동안에도 계속 부채질해줘서 땀띠 한번 없이 여름을 났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단지 ‘고생한 엄마’라고 말하면 많은 것이 빠져나가 버리기에 말할 수 없는 여성 억압의 중추를, 엄마의 어떤 생을 몸으로 반복한다. 늘 있지만 잘 눈여겨보지 않는 삶의 자리, 여름 제사.


강남역 8번 출구에서도 여름 제사를 지낸다. 사계절 영정사진이 놓인 곳. 천막을 치고 삼성에서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의 넋을 기린다. 고 황유미 아버지 황상기씨는 속초에서 서울로 달려와 입사원서 사진이 영정사진이 된 딸의 제사를 지낸다. 9년째다. 빌딩 숲속 실외기의 후덥지근한 열기와 9차선 도로의 시커먼 매연 속에서 죽은 자의 못다 한 이야기를 알리고 산 자의 살 권리를 이야기한다. 기록적인 폭염의 절정에서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날씨 덕분에 반올림 오성급 호텔 사우나를 습식 사우나로 업그레이드하였습니다. (…) 보습기능이 증진되었고, 노폐물을 쫙쫙 빼주니 체중도 줄었어요. 강남역 8번 출구 앞 1분 거리 삼성 딜라이트 홍보관 앞에 있습니다.”


여름 농성장은 습식 사우나. 말하기에 실패하면서 계속 말하기를 전달하는 이 상황은 또 얼마나 시적인가. 삼성 백혈병 문제 보상을 위한 싸움이라고만 하면 너무 많은 것이 생략돼 버리기에 딱히 말할 수 없지만 말하기를 포기할 수도 없다. 이 삶적이고 선적인 무엇. 삼성이 성매매 여성에게 지불한 500만원과 죽어가는 황유미에게 “이걸로 끝내자”며 건넨 500만원의 치욕을 기억하는 것이 ‘사람의 일’임을 증언하는 그곳, 도시의 중심에서 가장 주변이 된 삶의 자리, 강남역 농성장.


시적인 것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힘, 동력, 에너지다. 혹서기에 김포공항 출입문을 통과하는 알록달록한 인파는 시적이지 않다. 잘 보이니까. 김포공항 구석구석에서 꿈틀거리는 땀 위에 스멀거리는 모욕의 말들을 뒤집어쓰고 주물거리는 관리자의 성추행을 감내하며 하루 3만보를 이동하는 청소노동자들, 인간 대접 받고 싶다며 삭발에 나선 그들의 몸에서 떨어지는 머리카락과 눈물과 땀은 시적이다. 잘 보아야 보이니까.


불볕더위에 불덩이를 떠안고 ‘인간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을 불러내는 말들, 움직임들, 응답들로 인해 없는 존재가 있는 존재가 될 때 비루함이 고귀함이 된다. 그래서 시적인 것은 있지 않고 발견된다. 여름 제사처럼.



* 한겨레 '삶의창' 2016. 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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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삐삐 [2016.08.29 2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문의 칼럼난에서 보던 글중 캐어야 할 가치를 캐게되는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짧은 지면에 어려운 대답을 풀어주시면서, 알려야 하는 것들, 함께 잊지 말아야 할 것들, 개인이 치루어나가는 관계 의식의 단상과 함께 모두가 교차점을 통과해나가도록 그 안에 절기 기후와 자연스럽게 흐르는 땀에 묻어나는 분노와 그 극복을 마다않는 웃음풍자, 고마움과 미안함, 개인과 공동체등의 모든 얽힘들이 응축되어 있는 삶의 중추결을 잘 보여주셨습니다. 시적인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저와 같이 늦게야 눈이 뜨이는 사람들에겐 나이를 많이 먹어갈 수록 아주 조금씩 감성의 열림이 일어나면서 깨닫게되는 것 같고요, 아무리 늦어도 아주 열리지 않는 것보다는 물론 다행이겠지만요.ㅎ 모두가 닫고만 덮고만 사는 시대에 이렇게 열어제켜주시는 글이 고마운거지요.

    • 은-유 [2016.08.30 08: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생님의 고품격 리뷰가 제글보다 훨씬 좋으네요. 이리도 결을 살리고 곱씹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이번 글은 써놓고 개인적으로 흡족했습니다. 민망하지만 ㅎㅎ 그냥 제가 잘 쓸 수 있는, 쓰고싶은 형식의 글이었거든요. ^^;;

  2. [2016.09.01 1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은-유 [2016.09.03 10: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래전 벗이 찾아오니 좋지 아니한가. 반갑습니다. 이 블로그가 있어서 제가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