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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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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수업에 관한 단상 글쓰기의 최전선 2기 수업 막바지에 방황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9월이 되자 네댓 명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괄 결석했다. 추석을 지나면서 수업과 과제를 단체로 등한시했다. 묘한 현상인데 친해지면 느슨해진다. 취업준비 때문에, 논술 때문에, 학기가 시작돼서, 업무가 바빠져서 등등. 저마다는 이유가 절실했고 불가피성을 나도 알지만 빈자리가 커지면 당혹스럽고 자존심 상했다. 그들은 빠졌고 나는 삐졌다. 적어도 수업하는 기간만큼은 삶이 긴밀하게 엮여있다고 생각한 나는, 그들 삶에도 글쓰기수업이 일순위가 되기를 욕심냈던 나는, 10주간 어떤 예외상태도 없기를 바랐던 나는, 공부를 할수록 더 공부하고 싶게 만드는 게 꿈인 나는, 보기 좋게 차인 꼴이었다. 즉시 분석에 들어갔다. 하면 좋지만 안 해도 무방하다면 그건..
김수영은 김수영을 반성하지 않는다 강가도 좋고 산속도 좋고. 자연의 품에서 벗들과 둘러 앉아 시를 낭송하는 풍경을 꿈꿔왔다. 지난 6월 한강둔치에서 ‘강가에서’를 낭독했다. 강에도 나에게도 할 도리를 다한 기분이었다. 봄이면 봄시. 산에 가면 산시. 사랑하면 사랑시. 슬프면 술시. 정직한 산출이 즐겁다. 7차시 수업에 남산에서 시수업을 계획했다. 이 수업을 끝으로 미국으로 돌아가는 냥냥님이 야외용 미니 도시락 17인분을 낑낑 들고 나타났다. 일동 감탄하고 환호했다. 방산시장에서 도시락 용기를 사다가 엄마랑 준비했다는데 월간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나 보던 도시락 비주얼을 자랑했다. 수업시간마다 간식이 하도 색다르고 풍부하여 ‘식도락 동호회’로도 손색없다했거늘, 냥냥표 도식락은 미식가의 자부심의 궁극을 선사했다. 1교시 ‘묘사하기’는 교실..
자기를 배반하지 않고 살기 위해 는 무늬만 책이지 완성본이 아니다. 참고 자료와 초고를 모은 것으로 그의 생전에는 출판되지 못하다가 1932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산하의 맑스-레닌주의 연구소가 출판했다. 이 청년 맑스 풋풋하고도 심오한 저작을 읽고 노동/화폐에 관한 글을 써오라 했더니 민원이 빗발쳤다. ‘너무 어렵다’ ‘괜히 샀다’며 한숨짓는가 하면 ‘앞으로도 읽을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자괴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가장 대박은 대성씨 글. ‘국가정보원은 20일, 칼 마르크스란 아이디로 공산주의 서적을 출판하는 등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김모 씨(25세, 무직)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자신을 유럽에 사는 경제학자로 속여 자본론, 경제학-철학 수고, 공산당 선언 등의 책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경찰 등과 합동조사단을..
사랑의 속도 방금 전에 2기 17명 글의 코멘트를 마쳤다. 일주일이 걸렸다. 1기 때는 하룻밤을 새가면서 하던 일이다. 그에 비하면 비효율과 게으름의 극치다. 어쨌든 나에겐 새로운 실험이다. 글쓰기의 최전선 1기 수업을 마치고 2기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를 고민했다. 1기 수업할 때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하려고 작정했었고, 최선을 다했다. 스무명도 넘는 것을 과제 전문을 고쳐서 다시 올려주고 꼼꼼히 피드백에 임했다. 후회 없는 사랑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데 나의 ‘열심히’가 올바른 사랑이었을까를 생각하게 됐다. 자아비판을 하자면, 넘치는 사랑이긴 했으되 무모한 사랑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쉬운 여자가 쉬운 사랑을 하는 걸까. 암튼 난 서툴렀다. 뭐가 부족했냐하면 사랑의 속도. 아니 리듬 맞추기. 이게..
마지막 수업 마지막 수업은 엠티를 갔다. 연천 김융희선생님 댁으로. 서울역에서 전철타고 동두천에서 내려서 기차나 버스로 갈아타는 ‘난’코스. 대략 2시간 넘게 걸린다. 황금 같은 봄철 주말. 요즘은 회사에서도 회식이나 야유회를 가지 않는 추세라고 들었다. 젊은 직원들은 예사롭게 빠지고 대놓고 싫어한다니, 글쓰기반 엠티를 계획하면서도 내심 걱정했다. 안 가는 사람이 절반을 넘으면 어떡하나, 갈수도 아니 갈수도 없고. 왜 나는 아직도 ‘엠티 상상력’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잠시 자책했다. 그냥 근처 밥집에서 거나하게 뒷풀이를 할까 망설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므로 엠티를 강행하기로 했다. 왜?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가장 슬픈 가난은 추억이 없는 것이다. 글 쓰는 사람은 기억을 파먹고 산다. 또한 ‘질투..
글쓰기의 최전선 2기 글쓰기는 삶을 살아가는 한 방편입니다. 글쓰기를 누구나 배워야 한다면, 근사한 작품을 남기기 위해서라기보다 우선은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내 생각을 표현해보아야 남의 말을 알아듣고, 불필요한 오해와 말의 공해가 줄어듭니다. 제대로 말하고 쓰기. 글쓰기의 필요성은 마치 등산처럼 삶의 어느 지점에서 간절해집니다. 자신이 경험한 인생을 신뢰하고 느낌에 집중하면서 그때부터 한걸음씩 내딛으면 됩니다. 글쓰기는 지성의 영역인 만큼 기술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근육처럼 쓸수록 나아집니다. 그리고 써야 씁니다.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 쓰는 행위를 통해 생각은 명료해집니다. 또한 글쓰기에는 이야기를 나눌 동료가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글쓰기가 가능하려면 잘 쓰겠다는 의지보다 꼭..
주관적인 글과 객관적인 글 11차시 수업 전날 ‘파티하쥐’를 치렀다. 일주일 후 글쓰기반 엠티, 이틀 지나 R엠티까지 다녀왔다. 세 건의 행사가 잇달아 열렸다. 생체리듬의 교란. 하루를 동틀 녘에 잠들면 여파가 이삼일 간다. 일상의 보폭을 다시 맞추기가 쉽지 않다. 꼬박꼬박 쓰던 후기까지 밀렸다. 후기는 나 스스로에게 부여한 약속어음이다. 만기기일이 지나면 내가 나를 조여 온다. 사람 사이는 왜 친밀도가 높아지면 긴장이 사라질까나. 사유와 행동을 촉발하지 못하면 아름다운 인연이 아니다. 글을 쓰도록 영감을 주는 지속가능한 관계. 글쓰기반 동료들과 이루고 싶었던 꿈 아닌가. 11차시에 수잔손탁 책을 읽었다. 랑 일부분이다. 각각 본다는 것, 쓴다는 것에 관한 텍스트다. 는 “현실은 늘 이미지에 기록된 대로 해석되어 왔다”로 시작한다..
시, 삶의 입구 “시 낭독회 풍경을 기사로 써보세요.” 지난시간 돌발과제를 내주었다. 그랬더니 수업시간에 엄청 조용했다. 한 사람이 시를 낭독하고 소감을 발표할 때면 사각사각 볼펜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다. 침묵을 깨는 말말말. 그렇게 생각한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 당신에게 여행은 무엇이냐. 중저음으로 깔리는 물음들. 잔뜩 긴장한 표정들. 지금 청문회 아니니까 편하게 대화하라고 말하는데 웃음이 났다. 처음엔 다들 토시 하나 안 놓치고 열심히 적더니 나중엔 손놀림이 점점 느려졌다.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무척이나 기운 빠지는 일. 듣기도 어렵고 쓰기도 고되다. 나는 조심스레 예측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기억의 편집은 저마다 다를 것이라고. 반만 맞았다. 의외로 대동소이한 글들. 예비작가들은 자기 육성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