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아버지 직업을 말한다는 것

지난주 실검 1위에 임희정 아나운서 이름이 올랐다. 설마?하고 봤더니 맞다. 우리 학인이었다. 일년반 전 글쓰기 수업에 찾아왔고 10주간 글을 썼다. 초반엔 글쓰기 처음 배우는 이들이 흔히 그렇듯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이 많았다. 피트백을 해주면 꼭 고쳤다. (글고치는 학인은 드물다) 경험상, 성실하게 글을 쓰는 학인은 꼭 풀어야할 풀고싶은 자기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임희정 학인은 그것이 아버지 얘기였다. 

글쓰기 수업 중반 즈음 아버지가 등장했다. 아버지가 초등학교도 못 나왔고 지금껏 막노동을 하고 계시다고. 그게 부끄러워서 방송국 다닐 때 아버지를 '건설회사 대표'라고 속였다는 고백도 했다. 왜 아버지를 부끄러워해야 했을까. 나는 질문을 던졌고 그는 질문을 받아 글을 썼다. 지금도 지하철 첫차를 타고 일하는 아버지는 누구보다 근면했다고, 부끄럽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 문제는 평생 일해도 가난한 사회구조이고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문화에 있는 것이다. 질문하고 대답하고 쓰고 고치면서 완성한 글을 그는 아버지의 70회 생신에 읽어드렸다고 했다. 

글을 쓰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필력보다는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있는 임희정 학인에게 용기내어 오마이뉴스에도 글을 올려볼 것을 권했고 그곳에 발을 디뎌 그는 시민기자로 활동했다. 지난번 만났을 때 출판의뢰가 여기저기서 온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 브런치에 아나운서라는 자신의 직업을 처음 말했고, 그랬더니 일파만파 파장이 일었다고 한다. 

아침에 문자가 왔다. 실검에 오르고 핵폭탄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사실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많아 기뻤지만 부모님 얘기라 걱정되는 것도 많고 또 제가 글 쓴 지 1년반이 됐는데 아나운서라는 걸 밝히니까 이렇게 파급력이 커진 걸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그러게 말이다. 한국사회에서 아나운서가 단지 직업이 아니라 얼마나 권력인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뭔가 풀어야할 과제가 있다는 것을 그도 안다.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 청년들이 저도 제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다며 너무 큰 힘이 됐다고 얘기해 주더라고요. 더 잘 써야할 이유가 선명해 졌어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번에 오마이뉴스에 실렸을 때도 자신의 글을 보고 '아버지 직업 커밍아웃'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길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정육점에서 일해서 아버지한테 늘 비릿한 피냄새가 나서 싫었어요. 같은 이야기들. 자신의 글이 그런 분들이 말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거면 됐다. 나는 그를 아나운서가 아닌 누구보다 성실한 학인,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한 사람, 자신의 억압을 벗어나고자 노력했던 한 사람, 그것으로 타인에게 용기를 준 사람, 임희정으로 기억한다.


(*기사 내용 중 '개천에서 난 용"이란 표현은 사라져야 할 말이다. 소위 말하는, 뜻으로 쓰인 것일 텐데 오해의 소지가 있다. 개천-용 프레임 자체가 계급적 직업적 위계에서 나온 비유다. 희정샘도 지금 배우는 중이라 아마 언어를 조심스럽고 정교하게 고르리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