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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칼럼

딸이니까 ,



지난 설에 친정에 들러서 저녁 준비를 했다. 나는 싱크대에 붙어서 쌀을 씻고 전을 부쳤고 아버지는 거실에 놓인 상을 정리했다. 평소 네모난 교자상에 신문이며 우편물, 성경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는 아버지는 우리 식구가 오면 거기서 밥을 먹기 위해서는 상을 치운다. 그날도 주섬주섬 물건을 내려놓더니 당신 손녀를 불렀다. "행주 갖다가 닦아라." 그리고 그 상에 둘러앉아 다같이 밥을 먹었다. 식사 후 그릇들과 물컵, 남은 반찬을 남편이 나르고 상을 치우는데 아버지는 또 손녀에게 물 가져와라, 컵 가져오라며 이것저것 시켰다. 부엌에서 일하는 나는 그 말이 점점 귀에 걸렸다. 


'왜 딸아이를 시키지..' 혼잣말로 궁시렁거리며 참고 있는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야, 행주로 상 닦아라." 

"아니, 왜 자꾸 어린 ○○를 시키세요? 큰 애도 있는데..." 


기어이 말을 뱉었다. 아니,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아버지는 놀랐는지 "뭐?" 하시더니 더듬더듬 말했다. "○○은 여자니까" 말문이 막혔다. 다시 숨을 가다듬고 말문을 열었다. "여자면 해야 돼요? 나이도 어린 애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아들내미가 나와서 그릇을 치우고 거드는 시늉을 했다. 아버지는 "그래. 너네는 남녀가 평등하구나." 했고 상황은 멋쩍게 종료됐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명절이면 자동으로 우울하다. 엄마의 빈자리도 크고, 엄마의 빈자리를 딸인 나 혼자 몸으로 메워야하는 현실도 서글프다. 시댁에서 앞치마 풀자마자 친정에 가서 식구들 밥을 먹여야하는 게 고되다. 자주 찾아뵙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와 고작 밥 한끼 먹는 일인데도 마음이 부담스럽다. 나 어리광 부리고 싶은가. 엄마가 전업주부였기 때문에 난 결혼 전엔 집안일을 하지 않았다. 또 일찍 결혼한 편이라 친정에 가면 엄마가 딸인 내 손에 물 한방울 못 묻히게 했다. 그 엄마가 안 계시고 나니 다 내 차지다. 친정에서의 가사노동은 아직도 어색하다. 


그런데 나도 부족해서 딸의 딸에게, 중학생인 아이에게까지 부엌일의 부담이 지워지는 게 화가 났다. 큰 아이는 스무살. 그 애가 만약 아들이 아니고 딸이었으면 명절의 가사노동은 큰 아이 몫이었을 것이다. 아버지 말대로 "여자니까." 


아버지에게 이렇게 내 의견을 직접적으로 말한 건 처음이다. 한동안 마음이 복잡하고 불편했다. '옳은 말'을 다다다 해대고 나니 늙은 아버지가 불쌍하다. TV를 보는 어깨도 더 굽어보인다. 어른에게(라도) 할말은 하고 상황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나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나 하나 참고 조용해지자는 평화주의자였는데 딸아이에게까지 성역할이 부과되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 그건 어쩌면 딸아이가 아닌 '어린 여자' '어린 나'에 대한 연민이자 옹호였을지 모르겠다. 딸이니까 참았는데 딸이니까 말해야겠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이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할아버지한테 너무 한 건가? 여자니까 가사일 해야한다는 말, 어떻게 생각해?"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말이 없고 딸은 가만히 있는 사이 아들이 먼저 "그러면 안 되죠" 라고 한다. 엄마는 남녀가 평등한 걸 바라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 소외된 노동을 하는 것에 대해 무심한 가족 문화가 아니었음 좋겠다고 부연했다. 아빠는 운전 오래 해서 피곤하고 엄마 혼자 부엌에서 일하니까 다음부턴 니가 솔선해서 도우라고 아들에게 말했더니 그러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