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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칼럼

자신이 한 일을 모르는 사람들


‘신생아 쓰레기통’. 인터넷 포털 화면에 검색어를 넣었다. 며칠 전 지나가듯 본, 신생아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 사건의 기사를 찾기 위해서다. 스크롤을 내리니 수십 개의 단신이 뜬다. ‘강릉 음식물 쓰레기통서 신생아 발견…‘인면수심' 부모는 누구?’ 가장 자극적인 제목이다. 인면수심의 ‘부’는 정체불명. ‘모’에 관한 정보를 취합하니 이렇다. 

오후 6시40분쯤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집 화장실에서 애를 낳았다. 아기를 낳고 나니 키우기가 곤란하고 겁이 나 수건에 감싼 후 비닐봉지에 넣어 택시를 타고 10km 떨어진 곳의 음식점 쓰레기통에 넣었다.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임신 사실을 알았다. 이를 숨겨오다 혼자 출산한 뒤 미혼모로 살게 될 것을 우려해 범행했다.

내 식대로 정리하면, 그녀는 배 위로 트럭이 세 대쯤 지나가는 산통을 화장실에서 견뎠다. 탯줄을 직접 잘랐다. 아기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피, 양수, 똥 같은 오물을 처리했다. 과다출혈의 위험은 운 좋게 피했다. 출산 직후 뼈가 벌어져 걷기도 힘든 몸으로 기름때와 핏덩이가 묻은 아기를 수건에 싸서 택시를 탔다. 쿵쾅쿵쾅 심장이 뛴다. 미혼모로 살 수는 없다. 임신과 출산은 ‘없던 일’이다. 아기를 버린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전 남자친구, 부모, 그리고 외부 단체나 기관 등 누구에게도 임신 사실을 터놓거나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단독범이다. 전 남자친구는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성적 책임감이나 고통감수성이 희박할 개연성이 크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딸의 배가 불러오는 사실을 한 집에 사는 부모는 모를 수 있다. 한국에서 가족은 인격적 관계가 아니다. 엄마, 아빠, 딸, 아들의 역할로 각자 바삐 산다. 일주일에 밥 한끼 얼굴 보고 먹지 못하는 가족이 부지기수다. 여자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상대방의 감정과 기분을 맞춰주고 배려하도록 키워진다. 문제를 터뜨려서 해결하는 ‘분란’보다 나 하나만 참으면 유지되는 ‘평화’가 익숙하다. 그렇게 신생아 유기범이 된다. 

신생아는 예능프로에 나오는 연예인 자식들의 축소판이 아니다. 나는 갓 태어난 아기를 봤을 때 충격을 잊지 못한다. 털 뽑힌 닭처럼 벌겋고 머리와 몸통만 크고 팔다리가 올라붙은 모습이 기괴했다. 32주 만에 조산한 한 후배는 몸에서 꺼낸 아기가 고깃덩이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이상한 형체였으며 그 몸에 주렁주렁 주삿바늘이 달린 채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는 걸 보고 병원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고 한다. 출산은 성스럽지만은 않다. 아이는 모성의 힘으로 낳는 게 아니다. 제 스스로의 힘으로 뚫고나온다. 그리고 낯선 존재의 출현은 공포와 위험으로 다가온다. 첫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밤잠을 설치며 아기가 숨을 잘 쉬는지 코에 손가락을 대보곤 한다. 

갓난아기는 신성한 생명인데 어떻게 버릴 수 있느냐는 물음은 바뀌어야 한다. 신성함은 누구에 의해 어떤 상황에서 규정되는가. 왜 생물학적 아버지인 남자친구나 부모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서’ 한 생명체를 쏟아내듯 낳고 치우듯 버려야만 했을까. 왜 미혼모로 살아가는 일이 제 몸 아파 낳은 아기를 죽게 내버리는 일보다 더 공포스럽게 되었을까. 미혼모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학교에 유아원이 있는 나라(독일)도 있다는데 왜 우리 사회는 미혼모가 섞여 살아가지 못하고 양육의 짐을 몽땅 떠맡아야 할까. 

신생아 유기 사건은 참담하다. 당장 성인이 된 아들과 생리하는 딸을 키우는 나와 결코 멀지 않다. 성(적 책임감)에 무지한 기성세대가 낳은 자식들의 소행이다. 콘돔 사용법부터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 시 대처 법,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논의할 수 있는 상담기관의 연락처 공지 같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성교육이 절실하다. 하루 걸러 뉴스에 오르는 신생아 유기 사건을 보지 않으려면, 우리가 ‘자신이 한 일을 모르는 사람’으로 살지 않으려면 말이다.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구출된 아기는 병원 신생아실로 옮겨져 건강한 상태라는데, 미역국도 못 먹고 초유가 돌아 젖몸살을 앓고 있을 ‘영아 살해 미수’ 혐의자 산모는 철창에서 어떤 밤을 보내고 있을까.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