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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3차시 리뷰_삶에 스미는 글들

임선유

어쩐지 김승옥 소설 보는 것 같아요. 제목은 ‘2014년 서울혹은 가볍게 한 잔’ ^^ 극적 사건 없이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이 그려지는 게 좋아요. 멋부리지 않은 슴슴한 문장들, “우리는 급한 얼굴로 맥주잔을 기울였다.” “나 역시도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그 말은 부끄럽게 사라져 갔다.” 같은 표현이 상큼해요. 비슷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생각과 말투를 가진 직원들 캐릭터가 조금 더 살았으면 글이 더 짱짱했겠어요. 각 인물을 더 관찰하고 기록해보세요. ‘쉽게 말한다고 쉬운 것은 아니라는 말은 기억에 남습니다.

 

야외의 치킨에 맥주가 제 맛이라는 걸 누구나 아는지 불안한 날씨의 호프집에는 두 어 테이블 만이 차 있다. (이 문장이 좀 꼬이네요. 수식어가 딸린 주어를 쓰는 건 안 좋은 버릇입니다. 야외의 치킨에 맥주, 불안한 날씨의 호프집)

-> 치킨과 맥주는 야외에서 마셔야 제 맛이라고 사람들도 생각하는지, 비가 내릴 듯 불안한 하늘 아래는 테이블 두어 개만 차 있다.

 

 

나비

엄마가 딸을 옆에 앉혀놓고, “한 여자가 있었어하면서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었어요. 독자는 착한 딸처럼 한 여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고, 후반부로 갈수록 그 여자가 엄마임을 알아가지만, 기꺼이 뭉클해진다고 할까요. 독창적인 구성, 격정이 제거된 덤덤한 서사가 돋보인 글이었습니다. 이 글의 아쉬운 점은, ‘아내의 인물은 확 드러나는데 반해 화자인 남편의 캐릭터가 살아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장사하는 집에서 자란, 인내심 많고 소심한 남성 정도로 보입니다. 남편의 인물 형상화에도 공을 들였으면 자기변명의 혐의도 벗고 더 진짜남편의 목소리로 들렸겠죠.

 

 

천연나방

재밌고 유익한 글. 조금 다듬으면 멋진 칼럼이 되겠어요. 그런데 초반에 무리수를 두었어요. 결코 독해가 쉽지 않은 인용구절을 설명하기 위해 리비도, 타나토스, 원초아, 방어기제 같은 개념어를 잇달아 나열하다보니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들은 초반에 몰입이 어렵겠어요. 한꺼번에 전문용어를 방출하기보다 조금씩 내어주는 세심함이 필요합니다.

뒤늦게 맞은 사춘기, 인생의 고비는 적절한 사례제시로 이해가 잘 되었고요. 그 곡절 끝에 불혹의 나이에 얻는 한 구절. ‘자신의 신뢰도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진실을 담으면서도 자신의 선택 가능성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기만성을 담을 것.’ 삶의 기예로 채택한 이 말이 너무 크고 모호해서 또 부작위를 끌어다가 설명하려니 글의 흐름이 깨지는 느낌입니다. 타인과 나 사이에 여유와 역동의 공간을 만드는 것, 이런 일상용어로 그냥 풀어갔으면 좋았겠습니다. 심리상담가의 전문성을 살리는 글인데, 한번에 한 개념만 제대로 알려준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글을 써보세요.

 

 

 

강준혁

글을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이 콱콱 조여와요. 120쪽자리 보고서. 싱거운 발표. 치킨집 회식. 국장님의 합석. 그리고 어느 순간에도 과장님의 편이 되어야 한다는 당부. 평판과 인정의 노예로 길들이는 조직문화. 외부기관 파견공고의 유혹까지, 모두가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국장님 과장님 나빠요. 하지만 개별 인격보다 그런 인격을 지속적으로 양산해내는 구조가 문제겠지요.

타인의 인정과 평가에 대한 갈구는 내 삶에 있어 끈질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고백에서는 마지막 퍼즐 조각처럼 뭔가 맞아 떨어지네요. 그 퍼즐조각 다시 드러내는 설정. “그 자리를 스스로에 대한 존중과 자신의 욕망으로 채울 수 있을까하는 대목에선 응원하게 됩니다. 우선은 2차를 희망하는 듯한 과장님께 "오늘은 피곤하니 그냥 일찍 들어가겠다"란 말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봐야 겠다,는 마지막 문장 좋습니다. 1막에서 자기인식이 완결적으로 이뤄졌기에, 2막을 기대하게 됩니다.

중간에 아담스미스가 말한 푸줏간 아저씨의 이기심 대목은, 인용구가 나오면 부연설명 한줄 정도 곁들이는 게 좋습니다. 글은 약간 친절해야 끝까지 독자를 끝까지 데려갈 수 있어요.

 

 

초롱

드디어 초롱샘의 논리동화가 시작되는 건가요. 재밌네요. 중간에 대화 장면이 좀 복잡하긴 하지만요. 엉뚱한 의견, 감정과 의견을 창의성으로 둔갑시켜 칭찬하지 않겠다는 선생님의 다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런데 논리적인 아이가, 감정과 의견을 남발하는 아이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더 명확히 구별해주세요. 정답을 잘 맞추는 것과, 답은 틀렸지만 논리적인 아이도 있을 테고요. 유형별 특성, 수학적인 사고를 하는 아이의 유형의 예를 들어주어야, “논리적이지 말아다오라는 주제의식이 더 살아납니다.

초롱샘의 장점은 군더더기 없는 서두에요. 거두절미하고 일문일사의 원칙을 지키며 글을 전개하는 것. 칼럼 서두의 모범답안입니다.

 

 

 

효진

참음은 위대하다” “싸움은 공멸이다등 전하고자 하는 말이 분명한데, 메시지 수용에 혼란을 줍니다. 전쟁, 싸움, 분노, 싸우는 것, 화내는 것, 분노하는 것, 참는 것, 참음 등 비슷한 단어가 여러 버전으로 혼용되어 글을 모호하게 합니다. 문장의 구조의 문제점도 보이네요. “참는 능력은 화내야하는 순간에 화내는 것보다 진화한 능력이다.” 이런 문장들 요주의입니다. 참음은 화냄보다 진화한 능력이다. 이렇게 대칭을 이루게 써야하고, (참는 능력/화내야하는 순간에 화내는 것-> 이건 비대칭입니다.) “싸우는 능력보다 참는 능력이 위대하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이건 구절이 대칭을 이루긴 했지만 (싸우는 것/화내는 것) 앞의 단어와 다른 표현을 사용해서 헷갈려요. 중요한 개념의 단어는 꼭 통일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이 글을 고치려면, 단어를 한 세트를 정해서 밀고 나가세요. 참음/싸움 혹은 싸우는 능력/참는 능력. 영화의 스토리도 저 틀에 맞게 재구성하고 효진님의 깨달음-가치의 전환-을 공유할 수 있다면 좋은 칼럼 될 것입니다. 싸움이나, 참음이나 상황에 따라 선택해야하는 삶의 기예 문제일 텐데요. 그 부분을 언급하지 않으면 도덕교과서 되어버리니 주의하셔야합니다.

 

 

톰슨가젤

하이틴로맨스. 완전 재밌게 읽혀요. 처음엔 A가 여자인줄 알았어요. (경선처럼) 이루지 못한 사랑에 안타깝기도 합니다. 드라마나 소설에서처럼 너무좋아해서 외면하고 멀리할 수도 있군요. 그런 감정 실감하지 못했는데 이 글로 이해했습니다. “건드렸다는 표현이 폭력적이면서도 건조하면서도 또 몹시 에로틱한 표현으로 울림을 줍니다. 그런 장치도 좋아요.

이 경험이 톰슨가젤님을 연애소수자가 되게 하는데, 좋은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그 점이 궁금합니다. 그 부분이 드러난다면 이 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정리될 것 같아요. 이 글은 관음증은 충족시켜주는데, 그야말로 엿본 기분에서 끝나는 듯하여 조금 허탈합니다. 잘 쓰여진 글이라 아깝고요. 솔직하게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나의 삶에는 어느 것이 유리했다, 판단 내려주세요. 그 생각은 또 변하겠지만요.

 

 

 

다리

경찰공무원 수험생 친구->노량진 수험생의 (지질한) 일상-> 호주의 목수를 동경하는 서러운 청춘. 글의 소재가 좋습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노량진 고시생으로 대변되는 친구의 삶을 보여주고 지지하는 따스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글의 구성이 다소 산만하죠. 불필요한 정보가 직접 인용으로 잇달아 제공되어서 그렇습니다. 첫 문장에서 4월이라는 시간이 그리 중요하진 않으니 빼도 돼요. 5월에 친구가 찾아오는 신도 이 글만으로는 불필요해 보입니다.

떨어졌다. 다시 노량진으로 가야겠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는 것. 5년째 준비중이라는 것. 학창시절 무용-체육을 하는 자유롭고 역동적인 성향이었다는 것. 그런 아이마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 등등 필요한 정보를 속도감 있게 알려주시고요, 주제가 포함된 부분은 상세히 풀어주세요. 제목이 지질해도 괜찮아. 라면, 지질함에 대한 글쓴이의 해석이 들어가야겠죠. 수업시간에 얘기한 공무원 수험생을 속물로 보았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인식의 전환이 들어가면 글이 더 울림이 있을 거예요.

 

 

강여사

가치가 있는 삶과 월 백만원이 있는 삶의 공존이 이렇게 힘든 건가요. 참 속상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최저생계비도 보장받지 못하면서 추구해야하는 가치는 또 무언지. 울화통 터지는 상황을 큰돈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큰돈이 아니기에 나는 더, 작아졌다.” 이렇게 차분한 말투로 풀어내니 글이 더 설득력 있네요. 동의하게 합니다. 이 글을 교장선생님이나 편집장님에게 보여주면 뭐라고 할까요. 그분들이 자본가는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동료로서 같이 이야기해볼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뾰족한 해결책이 없으니까 말이라도 해야죠.

가치로 남는 인생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가야하는 삶인가했을 때, 포기해야하는 것은 연극배우기같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신념을 느긋하게 표현하는 삶인가요. 그 부분에 대해 더 밀고 나가보세요. 옆에 있는 오래 남아있는 동료는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대해서 사례도 참조해보세요.

가난에 대해 싸우나 나는 사실 가난해 본 적 없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3개월은 가난하게 살아보기로 했다. 뭐 이런 결론이 날 수도 있는 글입니다. 삶을 다른 과점에서 해석할 논리를 얻어 스스로 납득만 시킬 수 있다면요. 아무튼 이 글을 통해 에 대해서 자기처지를 객관적으로 풀어내는 것은 삶을 설계하는데 꼭 필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선미

열무김치 단상. 전원일기 열무김치 편으로 손색이 없는 글입니다. 군침 돌아요. 다라이에 담긴 항아리, 양푼에 맵게 빨간 밥, 동생 손잡고 앉아있는 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고요. 다만, 먹고는 했다. 먹이곤 했다. 기다리곤 했다. ‘-하곤 했다가 빈번하니 글이 걸립니다. 자주 먹었다. 먹였다. 늘 기다렸다. 등으로 표현을 달리해주시고요. 열무김치 먹던 어린 시절 나를 마주하고 어떤 얘기가 전개될지 기대됩니다.

 

 

 

김설리

발뒷꿈치 군살 같은 관계의 벽이라니. 절묘한 표현입니다. 근데 벽은 아니고 표피도 아닌 우툴두툴한 껄끄러움 정도 되겠네요. 거칠면서 유약한 성품이니까요. 서두 한강에서 신은 영화적이네요. 퀴어영화의 부치(레즈비언 커플의 남자 역할) 같다고나 할까. ^^ 설리는 글감이 많아요. 글에 깊이와 결이 생기고 있어서 표정도 더 다양해질 테고요. 김수영처럼 폭로적인 자기고백-성찰의 멋있는경지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