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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허수경 / 늙은 가수

허수경 시집 네 권을 열흘 째 가방에 넣어 다니고 있어. 앞의 7일은 세미나 준비하느라 읽었고 나머지 3일은 후기 쓰기 위해 훑어보려고 담아 다녔지. 어깨 아프네. 오늘은 후기를 꼭 써서 이제 그만 허수경과, 헤어지고 싶다.

 

반짝이는 거

반짝이면서 슬픈 거

현 없이도 우는 거

인생을 너무 일찍 누설하여 시시쿠나

그게 창녀 아닌가, 제 갈길 너무 빤해 우는 거

- <늙은 가수>

 

 

제 갈 길이 너무 빤해서 우는 자. 그래서 눈물이 났나봐. 시시쿠나. 라는 표현에서 옳타구나. 했어. 시시해. 하면 푸석한데 시시쿠나. 하니까 촉촉해.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아직 그리 멀리 가버린 건 아닌데 여기까지 와 버린 길을 돌아 나가기엔 다리에 힘이 없다. 지금 이 포맷으로 이 구성으로 이 강도로 지하철2호선 순환선처럼 뱅글뱅글 돌면서 하루 가고 한달 가고 한 해 가고 하겠구나. 연명활동이 남았는데, 이게 뭔가. 인생이 왜 이렇게 시시한가. 내 영혼에 구멍이 뚫렸나봐. 강물에 노을번지는 것처럼 붉은 생각이 저절로 스며. 어쩌니. 삶에게 미안하지.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 부적처럼 가슴에 지니고 살지만 그래도 이런 불우의 습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시인 말대로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일들은 나를 울게하네.

 

시인은 그래서 떠났을까. 사는 일이 어느 날 보니까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오는 슬픔의 순환 고리에 갇혀버린 거야.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이 반복이 갑갑해 과거의 시간 속으로 떠난 게 아닐까. 다른 삶의 지층을 열어보고자. 다른 측면에서 문을 열어보고자. 혼자 먼 집으로 간 거야. 오래된 영혼을 끌고서. 고고학자가 된 시인. 이런 시를 쓰네.

 

 

대구를 덤벙덤벙 썰어 국을 끓이는 저녁이면 움파 조곤조곤 무 숭덩숭덩

붉은 고춧가루 마늘이 국에서 노닥거리는 저녁이면

어디 먼 데 가고 싶었다

먼 데가 어딘지 몰랐다

저녁 새 벚나무 가지에 쪼그리고 앉아

국 냄새 감나무 가지에 오그리고 앉아

그 먼 데, 대구국 끓는 저녁,

마흔 살 넘은 계집아이 하나

저녁 무렵 도닥도닥 밥한다

...

- <대구 저녁국> 부분

 

 

떠나고 싶다. 막 살고 싶다. 술 마시면서 얘기했잖아. 막 살아보고 싶다. 자주 꿈꿔. 어느 시인이 노래한 대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로울까 궁금해 하면서. 근데 나는 몰라. “먼 데가 어딘지 몰랐다.” 나보고 막 살면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물어봤을 때 고작 강릉? 동해바다에 가는 것. 밖에 말하지 못했어. 어차피 상상인데 지중해쯤은 나가줘도 좋잖아. 그게 억울했는데 또 금방 머쓱하더라. 막 사는 상상을 한다는 건, 지금은 잘 산다는 전제가 된 거잖아. 나 지금 잘 사나. 그냥 살던대로 익숙한 대로 살뿐이야. 이 세상에 막 사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 노숙자가, 거리의 아이들이 막 살고, 명문대생은 잘 사나. 아니겠지. 저마다 그리 살 수밖에 없는 필연. 존재의 최선이지. "마흔 살 넘은 계집아이 하나, 먼 데가 어딘지 몰라" 여기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는 것처럼.

 

잘 사는 사람은 몰라도 잘 떠나는 사람은 있더라. 떠나는 일은 붉은 일인가봐. 허수경의 붉은에 대한 편애처럼, 화가 조지아오키프도 사막의 붉은 관능을 사랑해서 떠나. 현대미술의 중심지 뉴욕을 벗어나서 뉴멕시코주 산타페에 아주 눌러 앉지. 반평생을 보내. 제법 긴 셀프 유배야. 매일 근처 사막으로 산책을 나가고 풍경의 기억을 안고 와 그림을 그렸다고 하던데, 그래서 오키프의 그림에는 꽃, 짐승, 뼈가 많고. 허수경도 새벽발굴의 고고학적 상상력을 가져와서 시를 썼겠지. 몸에 돋아나는 달 이야기가 아름다워.

 

 

 

 

...

오 오, 달은 내 속에 든 통증을 다 삼키고

저 혼자 붉어져 있는데, 통증도 없이 살수는 없잖아.

다시 그 달을 꿀꺽 삼키면

암소는 달과 함께 내 속으로 들어간다

온 세상을 다 먹일 젖을 생산할 것처럼

통증이 오고 통증은 빛 같다 그 빛은 아스피린 가루 같다

이렇게 기쁜 적이 없었다

- <달이 걸어오는 밤> 부분

 

 

이 시랑 비슷한 내용의 글이 있어. 여성학자 정희진이 쓴 건데, 읽어줄게. ‘유사 이래 모든 문학, 예술 작품의 지은이들은 실연당한사람들이다. “나는 그를 버렸도다!” 이런 작품은 없다. 대부분의 예술은 그가 나를 떠났구나에서 시작된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에 대해 연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그러나 상처받은 사람은 그것의 구조와 원인, 역사를 규명하려 한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쪽은 언제나 약자이거나 더 사랑하는 사람이다....우리는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때, 더 행복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랑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크기와 깊이를 깨닫는다... 사랑은 대상으로부터 유래-발생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내부의 힘이다...사랑하는 것은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상처에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언어가 자란다...’

 

 

그러니까, 기형도 버전으로 줄이면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겠지. 언어를 배양하기에는 슬픔만한 거름이 없다는 것. “통증도 없이 살 순 없잖아라는 시인의 말인 즉슨, 사랑도 없이 살 순 없다는 말같지. 동감해. 그러고 보니 잃고 썼지, 얻고 쓴 적은 없네. 쓰고 기쁘지 않은 적도 없고. 사랑과 밥. 인생이 결국 저 두 가지로 몸살을 앓다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밥을 갈구하고 사랑을 간구하고. 어른들을 위한 놀이. 허수경처럼 쓰라리도록 잘 놀면 삶의 찌꺼기로 아름다운 시가 남겠지. , 나도 놀고 싶다. 최승자가 신과 마주하는 단독자라면 허수경은 한 사내와 마주하는 작부같아. 한잔 술에서  오백년 세월-정한을 퍼내는 느낌이야. 재밌어 보여. 오늘 밤, 나는 시인이 꿈꾸고 간 베개에 기대 꿈을 꾼다.

 

 

언어

자연

과거

 

여기에서 놀았다

 

놀았다

 

더러는 햇빛처럼

더러는 빗물처럼

 

그 사이 사이

그대도 있다가 없다가

그랬다

 

옷을 다 벗고 욕탕에 들어가기 직전

몸 계곡 들판 등성이 수풀

한 때 그대도 여기에 있었으나

 

그러나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

이 자연은 과거가 되었고

 

지금 그대 없는 자연은

언어가 되었다

 

놀았다

 

더운 물속에 쓰라린 상처처럼

바람 앞에 얼굴을 가리는 새처럼

 

결국은 아팠다

놀았으므로 지극히 쓰라렸다

 

- <여기에서>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