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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나를 떠난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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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수업이 몽땅 다 끝났다. 연구실, 도봉여성센터, 그리고 이문동 반찬팀. 물론 반찬팀 친구들은 방금 전에도 메일이왔다. "선생님 이것 좀 봐주세요~" 무엇이든 요청가능한 이 관계가 오랠 것 같기도 하다. 밤이고 낮이고 평일이고 주말이고 나를 귀찮게 하는 친구들을 참 오랜만에 만났고, 그래서 예쁘다. 기력이 딸려 즉각 답은 못해줄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온존재로 안겨오니, 손을 꼭 잡은 것마냥 마음이 축축한 거다.  내가 한참 힘들 때 진행한 수업이라서 애착도 미련도 많다. 도봉여성센터 수업 마치고 나오는 날은 눈물이 핑 돌아서 꾸역꾸역 웃느라고 애먹었다. 샘 책 좋아하시잖아요, 라며 도서상품권도 주고 쿠크다스 과자도 챙겨주고 립스틱도 쥐어 주었다. 또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처음 수업 때는 무슨 지방 소도시 가는 기분에 낯설고 나에게 좀처럼 시선을 주지 않아 외로웠는데 마지막에 늦정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더 미안하다. 나는 연구실에서 하던 강의안과 교재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여러 분들이 과제를 힘들어하셨다. 새로운 동무를 만날 때는 그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배려해서 유연한 소통을 해야한다는 것을 배웠다. 무조건 좋으니까 해라! 하자!는 태도는 일방적이다. 자기편의적이다. 부모자 자식에게 말하는 것처럼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다'의 형용모순이 나에게도 있었을 지 모른다. 모든 강요와 권유는 자기를 위한 거다. 자기식대로 살라는 친밀한 압력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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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을 마치고는 관장님이 점심을 먹자고 하더니 밥을 먹으며 물으셨다. 한부모 가정 여성들과 글쓰기수업이 가능할까요. 라고. 아마 그렇게 된다면 '글쓰기'라는 이름을 버려야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글쓰기. 라는 것은 어느 계급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먼 별 같은 잡을 수 없는 것이다. 한번도 자기힘으로 어떤 결과물을 완성해보지 못한 사람, 그래서 자신감, 칭찬 받는 느낌, 성취감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만나지 못해서 그렇지 많다. 그러면 어느 날 갑자기 좋은 선생이 나타난다고 해서 자신감이 붙고 창작의욕이 샘솟고 엉덩이 힘이 길러지지는 않는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말을 만들어 가는 관계로서의 글쓰기. 어떤 방법이 있을지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회사 다니기 시작했으니 수업이 가능하겠는가, 많이들 묻는다. 나도 계속 드는 생각이다. 꼭 하고 싶은 수업이면 일주일에 한 번은 시간을 내고 싶었다. 관장님이 수업할 시간이 되겠느냐고 물어서 "그정도는 가능한 회사니까 들어갔다"고 말했다. 무슨 자신감인지. 주간님이 말하면 왠지 들어줄 것 같았고, 회사로 돌아가서 그날 오간 얘기를 하는데 "필요한 수업이면 시간 내서 하세요"라고 하셨다. 일은 힘들어도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또 힘을 내서 하루를 산다. 수업을 하든 안 하든,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그 속에서 답을 찾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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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은지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주 화요일 배달되어온 책. 처음에 열어보고 놀랐다. 마치 뱃속에서 태어난 쪼글쪼글 주름지고 전신이 시벌건 신생아를 본 것처럼 나는 반은 전율했고 반은 실망했다. 그 책을 반나절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한 쪽으로 제쳐두었다. 다리 여러개 달린 벌레처럼 나에게로 올것 같아 피했다. 책이 나왔다고 같이 일하는 디자이너랑 주간님이랑 근처에 있던 사진하는 선배랑 번개를 쳐서는 야근하는 나를 불러냈다. 나갔더니 케이크와 막걸리가 한 상이다. 일종의 깜짝 파티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이 불편하고 불안했다. 서둘러 자리를 파했다.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뒤척였다. 잠을 설쳤다. 그런 나의 상태에 대해 원인을 분석한 결과 책에 들어있는 5년치 기억이 활자로 머리 맡에 쏟아져서 그럴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느낌으로 존재하는 과거는 떠돌다가 흐려지고 휘발되지만 활자로 인쇄한 그것은 플라스틱처럼 물질성을 획득하고 절대 썪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나의 과거는 생물체처럼 꾸물꾸물 유통되어 어디론가 흘러가고 오염되어 변형될 것이다. 바다처럼 온갖 작용이 밀려오고 밀려갈 거다. 그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존재가 아파왔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끔찍한 괴물인가. 무서운 생명. 산후우울증처럼 짧게 앓고 이제는 점차 나아지고 있다.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서정주의 주술대로 슬픈 일에 제대로 휘말렸다. 나를 떠난 일주일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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