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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허연,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친구랑 점심을 먹었다. 친구가 후배직원과 같이 나왔다. 뿔테 안경에 더벅머리를 인 선머슴 비주얼에다가 어딘가 겅중거리는 뒤태가 단독의 망상체계를 구축한 소년 캐릭터를 연상시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월의 다정한 햇살로 데워진 합정동 주택가 골목길을 터벅터벅 내려가는데 그 소년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말을 건다. “, 등단 하셨다고요?” 첨엔 놀랐고 바로 웃겼다. 너무 뜬금없는 대사가 무슨 접선하는 거 같았다. 시 읽는 여자로 나를 치장한 적은 있을지언정, 시 쓰는 인격으로 행세한 적은 없다. 그 푸른색 거짓말을 나는 모른다. 알고 보니 친구가 나에 대해 시를 좋아한다며 시집 운운한 모양이다. 그 소년이 시집이라는 말에 혹해서 등단까지 진도를 빼서 정보를 왜곡 수용한 거다. 뭐 그럴 수 있다. 사람은 들리는 말을 듣지 않고 자기의 욕망을 투사하여 듣고 싶은 대로 들으니까. 나는 시를 좋아만 하지 한 번도 써본 적 없으며 좋은 독자가 되는 게 꿈이라면 꿈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간첩같은 소년이 묻는다. 시인 중에 누구를 좋아하세요. 이럴 때마다 갈등한다. 황지우에게 미안해하면서 이성복이라고 대답했다. 반색한다. 저도요. 이성복. 저는 필사도 했어요. 나도 필사했는데. 무슨 시집? , 뒹구는 돌. , 남해금산. 파편처럼 무섭게 반짝였다. 동질감 싹트고 소수성 돋았다. 어느 쯤에서 사라지려던 무엇이 이 세상에 용납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끝말잇기처럼 대화가 척척 풀렸다. 그럴수록 처연했다. ‘시의 일은 부상당한 이를 돌보는 것이라는 말대로 나는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 백팔 배를 하는 심정으로 시를 필사한다. 의식의 흐름은 차단되고 근육의 움직임만 있는 그 상태. 관절이 뻐근해지면서 몸에서 목탁소리 들릴 때까지, 쓴다. 소년은 어쩌자고, , 그리도 썼는가. 시인이 되고 싶었고 등단을 준비했는데 재능이 없는 거 같아서 포기하고 밥벌이에 나섰다고 한다. 뒹구는 돌...처럼은 못 쓰겠더라고요. 목표가 좀 과했네요. 소년은 낄낄거렸다.

 

 

염소 새끼처럼 같은 노래를 오래 부르지 않기 위해 나는

시를 떠났고, 그 노래가 이제 그리워 다시 시를 쓴다. 이제

시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무나 다행스럽다

- 휴면기부분

 

 

오래 알고 지내던 건축가 부부가 있다. 둘 다 음악, , 만화 등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즐긴다. 십년 전인가 집이야기를 묶어 첫 책을 냈다. 두 권 세 권 지속적으로 책을 냈고 건축가 부부로서 입지를 다졌다. 일간지에 매주 연재도 하고 학교, 외부 강연을 다닌다. 한번은 언니에게 물었다. 일과 육아만도 바쁠 텐데 어떻게 그렇게 계속 책을 내느냐고. 그랬더니 형부가 술, 골프 등 주류적 남성문화에 취미가 없으니 책 쓰는 게 영업이며 먹고 살기 위해 쓴다고 했다. 책 보고 찾아오는 이들이 고객이 된다는 거다. 이것은 바로 글과 밥의 조화로운 삶이 아닌가. 글에서 밥이 나오고 밥이 글이 되는 순환이 이뤄지고 있었다. 또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아이들에게 시를 암송시켰더니 자신감이 상승하더라고 형부가 말했다. 선배부부와의 대화를 통해 배웠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게 글쓰기는 좋은 자기표현이 되는구나. 남녀노소 누구라도 시 읽기는 멋진 자기유지에 기여하는구나. 잘 쓰는 것보다 늘 쓰는 게 중요하고, 사는 일이 불리해질수록 시를 곁에 두어야하는구나.

 

내 친구가 일하는 출판사는 경제경영서를 주로 낸다. 그리움의 언어로 집을 짓는 문학과는 좀 먼 일,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도끼로 깨는 일(카프카)과도 좀 동떨어진 책을, 소년은 만들고 있다. 어쩌자고 초면에 고독의 패를 보아버린 지라 심란했다. 누군가 재능이 없다면 재능이 발휘될 때까지 써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써보기 전에는 재능은 드러나지도 않고 드러날 수도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 푸른색 거짓말을 나는 곧잘 한다. 그날은 그냥 담백하게 시 놓지 말아요했다. 때 아닌 시담에 배고픔을 잊었는지 소년은 비빔밥을 남겼다. 근처 카페로 갔다. 빨대로 얼음을 휘저으며 아이스커피를 마시는데 소년이 낮은 포복으로 상체를 숙이고 2차 암호를 건넨다. “저기, 이장욱밖을 보는 척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한 얼굴에 초점이 잡힌다. 다음 주 시 세미나에 읽기로 한 시인이다. 어제 사진을 본 시인과 오늘 같은 카페에서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원두를 마시게 될 줄이야. ‘채워야할 밥통을 가진 밥통적 존재’(최승자)인 한 사람. 김수영이 죽은 바로 다음 날 태어난 한 시인이 와 있다. 무슨 법처럼, 한 시인이 서 있다.

 

 

 

세월이 흐르는 걸 잊을 때가 있다. 사는 게 별반 값어치

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편 같은 삶의 유리 조각들이

처연하게 늘 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반짝이며

 

나도 믿기지 않지만 한두 편의 시를 적으며 배고픔을 잊

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나보다 계급이 높은 여자

를 훔치듯 시는 부서져 반짝였고, 무슨 넥타이 부대나 도

둑들보다는 처지가 낫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외로웠다.

 

푸른색.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 소년이게 했고 시인이게 했고, 뒷골목을 헤매게 했던

그 색은 이젠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나는 나를 만들었다. 나를 만드는 건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웠다. 그러나 나는 푸른색의 기억으로 살 것이다.

늙어서도 젊을 수 있는 것. 푸른 유리 조각으로 사는 것.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 나쁜 소년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