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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세상

쥐그림 공판있던 날


5월 13일(금) 오전 10시 정수샘 결심 공판있었다. 헐레벌떡 달려갔더니 10시 10분. 최근 방문이 잦아 친구네 사무실처럼 정이 들어버린 서관 525호실 앞에는 연구실 동료들이 앉아있었다. "왜 안 들어갔어?" "사람 많다고 방청객 통제하네요." 이런 경우는 없다는데 암튼 밖에서 기다렸다. 5분쯤 후 공판이 끝났다. 언론에 발표된 대로 결과는 벌금형. 박정수 200만원, 최지영은 100만원. 무죄가 나왔어야 마땅하지만 저들이 하도 초강수를 두는 바람에 과도한 판결을 염려하기도했다. 안도와 울분의 감정이 교차했다. 독일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지영은 집행유예가 나오면 곤란할 판국이었다. 서둘러 로비로 빠져나갔더니, 그야말로 '구름'같은 취재진이 기다린다. 예상치 못했다. TV에서만 보던 그 장면. 카메라 플래시가 연방 터지는 열띤 취재열기 중심에 정수샘이 서있었다.  

취재를 끝내고 우리 일행은 다시 법정으로 향했다. 하필 11시에 같은 장소에서 박경석샘 공판이 있었다. 박경석선생님는 장애인이동권을 이끌어낸 최고의 투사. 전국장애인철폐연대 대표이자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이다. 여러모로 우리하고는 각별하고 특별한 사이다. 박경석샘은 이틀걸러 거리에 나가신다. 그동안 집회 열면서 걸린 온갖 죄목들. 도로교통법 위반, 집시법 위반, 일반교통방해, 미신고집회주최 등등을 퉁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벌금10만원이 선고됐다.

법정에 들어가서 놀란 점. 검사자리에는 일전에 '청사초롱의 꿈을 강탈했다'고 엄중히 꾸짖던 그 음이탈과 핏대신 종결자 검사가 앉아있었다. 순간적으로 반가웠다. 근데 표정이 '180도' 달라서 내 눈을 의심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여유롭게 서류를 뒤적거린다. 그날은 심하게 연극한 걸까? 도대체 뭐가 저 사람 본 모습이냐고 연기력 쩌는 저 검사 어쩔 거냐고 필담을 나누는데 진미샘이 끄적끄적. "아무래도 우울증 약을 먹는 거 같음" 으하핫~

암튼 공판이 끝나고 나가려는데 판사님이 박경석샘에게 말씀하신다. "지금 걸려있는 재판도 빨리 기소해달라고 해서 한꺼번에 판결받으세요.  장애인의 인권을 위해 중요한 많은 일을 하셨고 앞으로도 해야할 분이고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입니다. 앞으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하세요. 그래야 계속 장애우를 위해 일할 것 아닙니까."

판사님이 박경석샘 변호자료 검토하다가 폭풍 감동한 모양이다. 자애로운 미소로 조곤조곤 해주는 말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당최 여기가 교회인지 법정인지, 저분이 판사인지 목사님인지 잠시 헷갈릴 정도. 얼결에 경석샘은 '판사'에게 "무료법률상담" 받았다. 하하. 그날 따라 포효하는 사자같은 경석샘 어디가고 어찌나 양순해보이시는지ㅋㅋ "법원에선 무조건 불쌍해보여야 유리하다"고 다들 그런다. 배웠다. 저 멀리 미국 이타카에서 두 동료의 공판결과로 가슴 조이는 고추장은 트위터로 실시간 소식을 주고 받으며 울분을 터뜨렸다. "한국사회를 고발하기전에는 박경석샘을 고발하지 못하죠." 

각각 공판을 마친 두 박모씨들은 1층으로 내려와서 '판결문'을 빠르게 우편으로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를 신청했다. 왼쪽 끄트머리 하얀 머리가 박경석샘. 건너편이 박정수샘. 두 사람이 머리 맞대고 서류를 작성하는 모습. 뭔가 뭉클했다. 삶을 창조하는 예술가들. 멋지다. 쥐그림 공판 후. 연구실로 돌아와 '벌금과 변호사 비용'을 위한 즐거운 놀이를 계획했다. 구체적인 일정은 다음주 정도에 나올 듯!

어제는 연구실갔더니 정수샘이 없다. 광화문에 가있었다. 이제 정수샘 소식을 언론에서 더 자주 보게 됐다.;; 14일 서울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낮 12시부터 1시까지 전국등록금네트워크, 한국대학생연합, 참여연대와 함께 반값 등록금 촉구 릴레이 1인 시위가 있었다. 김여진씨도 참여했다고. (사진은 미디어몽구)

 

 

  • 마구마구 2011.05.17 07:39

    그 (실정)법의 테두리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을 수록, 그 사회에서 '투사'와 '양심수'가 많아지죠.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듯이 법전에 쓰여있는 법이 다는 아닙니다.

    • 은-유 2011.05.17 11:53 신고

      공공기물에 낙서한 잡범;을 국가원수모독죄로 잡아가두어서는 '투사'를 만들었죠. 저들이 법으로ㅋㅋ

  • 연초록 2011.05.17 15:22

    오늘 아침 한겨레 신문에 버지니아 울프와 쥐그림에 관한 칼럼이 실렸더군요. 처음에는 이 상황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왜 등장하는 거지?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요, 읽어보니 1901년에 울프를 비롯한 그녀의

    형제들이 국왕의 인장을 위조해서 해군의 배에 올라타 벌인퍼포먼스더라고요. 실정법 위반이 아니라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그들이 아비니시아 왕자역할을 하고 나서 했다는 인사말 붕가 붕가가 영국의

    세레모니에서 인사말로 쓰였다는 말을 읽으면서 정수샘이 받은 판결과 대조되어 쓴 웃음이 나왔습니다.

    정수샘이 요즘 문학에서 감수성이 폭발하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수유 위클리에 들어가니

    사람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중에서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역시 행동하는 인간의 행위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 은-유 2011.05.17 22:44 신고

      정수샘은 요즘 문학감수성 폭발에다가 해방촌 아이들의 아버지 노릇까지 하고 있어서 -.-; 내가 '인간시대' 찍냐고 맨날 구박해요ㅎㅎ 버지나아울프 얘긴 흥미롭네요. 기사 찾아볼게요.

  • 삐삐 2011.05.18 06:30

    별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금태섭 변호사가 정황을 잘못 이해하고 쓴 에피소드라고 보여요. 허미온 리의 버지니아 울프 평전을 보면 이 에피소드가 나와요. 인종주의를 내면화한 영국의 특권층 자녀들의 놀이인 경우였어요. 반군사주의적 의식이 있거나 권위에 저항하려는 그런 것과는 좀 거리가 있는 건데요. 그들을 처벌하지 않은 것은 특권층 자녀들의 놀이였기 떄문이지요. 철저히 계급적인 대우였는데 금태섭 변호사가 앞뒤 구별을 못하고 쥐그림 사건에 떼어 부친 거죠.ㅎ 금태섭 변호사를 좋아하는 편인데 오타쿠식 글은 드러나게 마련이죠.

    오타구이건 아니건 열심히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충분히 격려해야 할 일이기도 하겠지만요. 많이 읽는 것보다
    적게 읽어도 깊이 이해햐면서 토론을 많이 하는 독서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저도 읽는 시간이 모자라 볼 책이 쌓여있어요. 시간과 독서는 영원히 충돌하는 것 같습니다.ㅎ

    • 은-유 2011.05.18 21:25 신고

      삐삐님은 평전전문가세용? 와. 놀랍습니다. 읽은 것도 놀랍지만 일일이 다 기억하시네요? 특권층의 특혜를..ㅋㅋ 금태섭씨가 엉뚱하게 해석하셨군요. 오타쿠식 글. 주의해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 시간과 독서가 충돌하는 괴로움을 헤매고 있는 요즘입니다. 연구실도 쥐그림 사건 때문에 면학분위기가 아니고..에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