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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사평역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 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곽재구 시집 <사평역에서> 창작과비평사

 

11월 하순 즈음, 피아노 선생님에게 아들의 겨울방학에 어떤 곡을 칠까 의논을 드리니 어쩌면 레슨이 어렵겠다고 한다. 가슴에 뭐가 만져져서 병원을 갔더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단다. 선생님은 대학생 아들을 두었는데 단아한 스타일 덕에 거의 내 또래로 보인다. 너무 놀랐지만 설마 암은 아니겠지 걱정일랑 묻어두었다. 일주일 후,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어떻게 됐어요?” “네. 내일 모레 수술 날짜가 잡혔어요.” “그럼......?” “뭐...암이죠.” 평소처럼 차분하고 덤덤한 말투다.  

피아노 선생님은 과식이라던가 과음이라던가 과로라든가 하는 ‘과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참하고 선했다. 아들이 초1때부터 중3까지, 딸도 8살부터 선생님께 피아노를 배웠다. 그러니까 지난 10여 년간 매주 2회~3회씩 우리 집을 드나드셨다. 마루에서 배밀이하던 꽃수레가 초등학생이 되고 덕윤이 키가 선생님을 추월했다. 선생님도 나도 눈가의 주름이 증가했다. 한결같고 별스럽지 않고 약속을 잘 지키고 낭만적인 선생님 덕분에 아름다운 거리를 오래토록 유지할 수 있었다. 아들은 선생님의 성향대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피아노를 여유롭게 즐겼다.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님 몸의 불협화음이 난데없이 느껴졌다.  

“선생님 처음 뵌 게 10년 전이네요. 그 때랑 체형도 그대로이고 안색도 밝고 건강해 보이셨는데 믿기지 않아요.” “저도에요. 목동에서 가르치는 애들 중에 덕윤이가 제일 오래 됐고 서형이까지 같이 해서 정이 많이 들었는데...” 선생님은 우리 집 역사의 산 증인이다. 218동에서 206동, 그리고 129동으로, 목동의 집마다 거쳐 갔으며 영락한 살림에 망연자실한 나에게 늘 오던 시간에 와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써 힘을 주었다. 아득한 순간들을 호명하노라니 가슴이 꽉 메어왔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처럼 10년 치 상념이 밀려와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선생님이 다시 레슨 할 때까지 아이들과 기다릴게요.’ 문자를 넣었다. 

나도 한 때는 겨울아이였다.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 소리 듣고 컸다. 생일에 첫눈에 성탄절에 설날에, 다 몰려 있는 은혜로운 계절로 알고 겨울을 살았다. 그런데 생의 어느 지점부터, 아마도 ‘겨울아이’의 옷이 작아진 즈음이겠지, 겨울이면 캐럴보다 부음이 먼저 들려오기 시작했다. 주위의 어르신들이 서둘러 생을 등졌다. 올 겨울은 부모님 세대 분들이 아니라 나랑 아는 이들의 병고가 들려온다. 어제는 지인의 남편이 간암 선고를 받고 한 달 만에 숨을 거두었다. 남편의 써클 동기가 1년 투병 끝에 난소암으로 숨졌다. 싸륵싸륵 눈꽃 쌓이는 축제의 계절에서 막차의 시간으로.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시간처럼 비틀비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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