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앞에 겸허’라는 소신으로 일하는 언론인 박상권 앵커는 <MBC뉴스투데이> 진행자다. 그가 최근 ‘마이크 옆에 노트북’을 놓았다. 트위터를 통해 전국 시청자 의견을 반영하는 쌍방향 뉴스를 시도하는 것. 덕분에 <MBC뉴스투데이>를 즐겨보는 박준범 과장은 그와 ‘트친’(트위터친구)이 되었다. 그들에게 트위터가 바꿔놓은 뉴스와 일상이야기를 들었다.
"신선한 클로징멘트, 트위터 덕분이죠”
느닷없는 한파가 들이닥친 어느 가을날, 박상권 앵커는 트위터에 멘션을 남겼다. ‘오늘 많이 추우시죠? 계신 지역은 어떤가요?’ 출근 준비를 서두르던 박준범 과장은 응답했다. ‘서산도 바람이 많이 붑니다.’ 트위터에 속속 올라오는 생생한 의견을 추려서 박상권 앵커는 클로징 멘트로 전달한다. 마치 목장에서 갓 배달된 우유처럼 매일 아침마다 ‘신선한 뉴스’를 맛보는 박 과장은 하루가 즐겁고 든든하다. “눈 뜨면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이 박상권 앵커에요. 시청자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모습에서 호감을 갖게 됐습니다."
앵커는 신뢰를 파는 사람
만인의 아침을 열어주는 박상권 앵커. 차분한 진행과 소탈한 인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그는 기자출신 앵커다. 언론인의 꿈을 키운 건 어릴 때다. 우연히 TV에서 실크로드 다큐멘터리를 본 후 “저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되리라” 결심했다. 성장하면서 역동적인 시사문제로 관심이 번져갔고 신문학과에 진학했다. 1997년에 언론지망생 선호도 1위 직장 MBC의 관문을 통과해 10년간 기자로 일하다가 앵커로 발탁되어 <MBC뉴스투데이>를 3년째 진행 중이다. 방송시작은 오전 6시. “스님들 기상 시간”인 새벽 3시에 일어나 방송국으로 향한다. 밤새 들어온 기사를 챙기고 말 그대로 따끈따끈한 조간신문을 훑어보는 등 방송을 준비한다. 힘들기는커녕 그 시간이 활력이 넘친다며 싱긋 웃는 천생 언론인이다.
“기자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제조파트라면 앵커는 마케팅파트라고 할 수 있죠. 시청자와 접점에서 ‘어떻게 하면 기사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사실 저도 그랬지만 기자는 자기가 취재한 사건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느껴지거든요. 기사들의 비중을 고려해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시청자 눈높이 맞춰 전달하는 사람이 앵커에요.”
그는 앵커를 일컬어 ‘신뢰를 파는 인물’이라고 정의했다. 신뢰에는 인상, 품성, 뉴스 이해도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포함된다. 박상권 앵커는 사려 깊은 말투와 균형 잡힌 진행으로 이미 합격점을 받은 상태다. 사람들 앞에 서면 떨리지만 외려 카메라 앞에 서면 맘이 편해진다는 그는 “멋있고 강한 멘트를 날려야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정확한 전달’에 힘쓴다”고 비결을 밝혔다.
곤파스에서 매체혁명 예감하다
그가 앵커로서 욕심내는 것은 단 하나, 바로 대중과의 소통이다. <MBC뉴스투데이> 데스크에는 노트북이 놓여있다. 외국 뉴스의 사례를 눈여겨 본 그의 제안으로 시도됐다. 아직 타 방송사에선 전례가 없는 작은 모험이다. 지난여름 태풍 곤파스가 몰아친 날. 그는 새벽 5시부터 10시까지 특보를 진행하다가 노트북을 통해 놀라운 현장을 목격했다.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지하철 1호선 운행이 중단’이 오른 것이다. 이는 트위터에서 나온 핫뉴스였다.
“원래 특보하면 방송이 제일 빨랐잖아요. 트위터의 위력을 실감했죠. 그리고 추석 전날 폭우가 내릴 때 제가 차에 있었거든요. 직감적으로 알았어요. 이건 특보 들어갈 비다. 근데 DMB와 라디오를 켜도 비소식이 안 나와요. 이때 트위터가 떠올랐죠. 좋은 기회일 수 있겠다. 동시에 신중하게 써야겠다는 교훈도 주면서 차츰 소통의 가능성을 보게 됐어요.”
두 번의 천재지변을 겪으면서 그는 매체의 지각변동을 예감했다. 뉴스진행자로서 언행이 조심스러워 지난 1년간 휴면상태로 두었던 트위터를 시작했다. 어느 일요일 오후, 스타벅스에서 책을 읽다가 멘션을 띄웠다. ‘스타벅스에서 책을 보면 왜 잘 읽힐까요’ 넌지시 건넨 말에 반응이 뜨거웠다. 정성을 다한 재치만발의 의견이 답지했다. “애초에 나의 생각보다 지혜의 크기가 점점 커졌다.” 게다가 ‘극적인 우연’까지 발생했다. 답변을 준 트위터 중에 스타벅스 마케팅 이사가 있었던 것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정보와 지혜와 소통의 파노라마에 감동한 그는 바로 다음 날 <MBC뉴스투데이>에 트위터를 적극 활용했다.
“사실은 큰 기대를 안했어요. 시사 문제는 골치 아파하고 회피하겠거니 했거든요. 그런데 스타벅스 때처럼 양질의 답변이 오더라고요. 이런 좋은 표현, 좋은 관점들을 우리만 알긴 아깝다 싶어 클로징 멘트에서 차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트위터 ‘영감의 원천’
짧은 단편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뉴스2.0시대의 탄생스토리를 숨죽여 듣던 박준범 과장. 그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평소에는 친구나 동료하고도 정치나 경제 얘기를 잘 안 하게 되는데 아침마다 박상권 앵커가 트위터로 물어보니까 생각해서 글로 남기고, 재밌고 편해요. 니 생각 틀렸다고 뭐라는 사람도 없고요.(웃음)” 이에 박상권 앵커는 “질문과 답변 등 피드백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뉴스를 진행하는 100분 동안 탄탄한 긴장이 유지되어 너무 즐겁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박상권 앵커의 트위터를 보았더니, 그가 이런 멘션을 남겼다. ‘소니 워크맨 퇴장을 보면서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구글이나 애플도 언젠간 최고자리를 내주겠죠. 최근 그들을 숭배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담담하게 바라보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잠시 후 이런 응답이 온다. ‘초등학교 때 워크맨하고 마이마이 갖는 게 꿈이었는데 시장에서 퇴장한다니깐 그때 좋아했던 아이돌 가수가 은퇴하는 기분입니다.’ 잔잔한 웃음이 일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비유다. 적절하고 유쾌하다. “대중에 대한 감각과 촉수가 예민해지고 뉴스진행에 영감을 받는 등 트위터 사용 한 달은 나의 발전의 시기”라는 그의 고백이 괜한 말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쉽고 맛있는 박상권의 뉴스
박상권 앵커는 기존의 엄숙한 앵커의 이미지를 비켜간다. 말투는 진중하고 눈빛은 선량하고 생각은 날렵하다. MBC의 구수한 로고송대로 ‘만나면 좋은 친구’이다. <MBC뉴스투데이>가 끝나면 오상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91.9Mhz<굿모닝FM오상진입니다>에 8시 25분부터 5분 출연해 ‘방금 구워낸 따끈한 뉴스’를 전달한다. 쉽고 재밌고 친절한 뉴스진행 덕분에 청취자로부터 “딱딱한 역사공부 하다가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보는 기분”이라는 평을 듣는다는 후문이다. 박준범 과장 또한 “실제로 만나보니 TV나 트위터보다 이미지가 더 친근하고 좋다”고 귀띔했다.
차세대 언론인 박상권 앵커. 그가 제도언론에 길들여지지 않고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은 오픈마인드다. 언론의 성역 ‘뉴스’를 권위로 지키기보다 소통으로 열어두었다. 노트북, 트위터 등 다양한 실험과 변화와 재미를 추구하며 뉴스의 지평을 넓혔다. “한발씩만 앞서 가야하는데 가끔 두발씩 앞서 나가다 보니 외로운 시간을 견뎌야 한다”며 너스레지만 그간 묵묵히 많은 변화를 일궈냈다. 그것은 “사람의 머리 하나보다는 열이 낫다”며 사람에게 배우는 경청의 자세를 잃지 않은 덕분이다. 겸손하고 쿨한 트위터리안 앵커 박상권. 그와 함께 만들어갈 쌍방향 소통의 꽃, 뉴스2.0시대를 기대해본다.
twitter.com/com1789 : 박상권 앵커 트위터다. 처음에 주소를 보고 반가웠다. com은 코뮨이고 1789는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해가 아닐까. 혹시나 해서 물었더니 맞단다.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으로 '트위터'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아직 실행은 안했지만) 역시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두루 좋은 인터뷰였다. 허세 없고 소신 있는 그가 MBC를 잘 지켜줄 것이란 믿음이 생겼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