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음과 눈물

[은유칼럼]

한 중학교에 오전 강연을 갔다가 급식을 먹었다. 점심시간이 12시 반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배고플까 싶었다. 돌아서면 허기가 올라와 2, 3교시 마치고 도시락을 까먹고도 점심시간엔 매점을 배회하던 그 시절의 내가 생각났다. 아이들에게 배고픔을 참고 강연을 듣느라 힘들었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정말 잘 듣고 싶었는데 잠깐 졸았다고, 죄송하다며 말을 잇는다.

“근데 원래 1, 2교시엔 아침잠이 덜 깨서 졸려요. 3, 4교시엔 배고파서 힘들고요. 5, 6교시엔 점심 먹고 난 뒤라 비몽사몽이고 7교시엔 좀만 있으면 학교 끝난다는 생각에 들떠서 또 집중이 안 돼요.”

너무도 솔직한 고백에 나는 웃음이 빵 터졌다가 이내 짠해졌다. 약간의 과장이 더해졌겠지만 결국 학교에서 ‘살아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뿐인가! 거기다가 생리까지 하면 배도 아프고 책상에 앉아 있는 게 더 힘들다고 옆 아이가 거들었다. 여학생들은 한달에 일주일은 생리 중이다. 생기 잃은 몸으로 장시간 학습 노동에 속박된 학교생활. 그런데도 아이들은 “해주는 밥 먹고 공부만 하는 그때가 제일 속 편한 때인 줄 알라”는 충고를 듣는다.

내 학창 시절엔 아이들이 이렇게 단체로 맹렬히 졸진 않았다. 사교육이 덜해서일 거다. 요즘처럼 집-학교-학원이 정규 코스가 아니었으니까. 그날 대화를 나눈 아이들도 밤 9시까지 학원에 있는다고 했다. 아직 중학생인데 직장인으로 치면 매일 야근인 셈이다. 실제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이러니 책상이 침대로 변할 수밖에. 한창 배움과 활동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에 반수면 상태로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사실은 가까이서 봐도 비극, 멀리서 봐도 비극이다.

교사의 자리에 서 본다. 나는 강연에서 어쩌다가 조는 사람들만 봐도 의기소침해진다. 내 얘기가 재미없나, 지루한가, 잘못됐나 하는 자책감이 든다. 그 쓸쓸한 기분이 감당이 안 돼서 비자발적인 청중이 모인 자리는 가급적 피한다. 그렇기에 더 의아하고 염려스러웠다. 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들은 아이들이 벼 이삭처럼 일제히 고개 숙이는 그 처연한 졸음의 풍경을 어떻게 날마다 견디는 걸까.

한 고등학교 교사들 책모임에 초대된 적이 있다. 자퇴하는 아이들이 그런단다. 학교에 와봤자 잠만 자고 하는 일도 없어서 그만둔다고. 그런데 그 하는 일 없는 학교의 복판에 자기가 있다고 한 선생님이 웃음 띤 슬픈 눈으로 말했다. 다른 교사는 글을 써왔다. “떠나가거나 무너져버린 친구들. 그 와중에 나는 직업인으로서 교사가 되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되지 못함을 한탄하는 교사인데, 때로는 온종일 엎드려 있는 학생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정지하고 싶다며 속으로 울기도 하는 것이다.”

한페이지 분량의 글을 그가 울먹울먹 읽어내려가는 사이 다른 교사들의 눈자위도 붉어졌다. 교실에서 눈물 흘리는 (학생이 아니라) 교사의 모습은 낯설었는데 묘하게 아름다웠다. 아이들은 알까. 선생님도 이토록 마음이 아프다는 걸, 너희와 잘 해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른다는 걸, 매 순간 무력감에 주저앉는 자신을 일으켜 교탁에 선다는 걸 말이다. 선생님의 눈물이 아이들의 지친 마음에 가닿는 장면을 상상하자 나는 잠깐 마음이 환해졌다.

서로 밀고 밀치며 욕망의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일부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언론을 장식하고 도드라져 보이는 세상, 그러나 우리 사회 곳곳에는 졸음을 물리치고 눈물을 훔쳐가며 때로 한권의 책에 의지해 말문을 틔우고 고민을 나누며, 그러니까 제 가진 생명력을 총동원하여 매일의 생존을 도모하는 것으로, 답 없는 공교육의 뿌리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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