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휠체어 여행생활자’를 만났다. 서른 즈음에 급작스런 유전질환의 발병으로 근육에 힘이 없어져 걷지 못하게 된 중도 장애여성이었다. 수동휠체어를 돌릴 힘이 없어 전동휠체어를 탄다. 그런데 그 휠체어를 몰고 정선5일장부터 제주도, 인도, 미국, 일본, 호주까지 가고 싶은 곳을 다 가면서 사는 여행생활자였다.
이야기를 하면서 재밌는 사실을 알았다. 원래 여행을 좋아해서 대학 때도 배낭여행을 많이 다니다가 회사에 들어가니 여행을 할 수 없더란다. 직장인들의 그 고정 레퍼토리 ‘회사 때려치우고 여행이나 하면서 살아갈까’를 그 역시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불편해져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면서 비로소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휠체어가 날개다.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는 여행을 하지 못하다가, 막상 휠체어를 타면서 여행의 자유가 생겼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했다. 원래 삶은 아이러니지만 새삼 신비로웠다.
지난 일요일 고양시민 노무현 추모공연 ‘천개의 바람이 되어’에 나온 희아를 보면서도 그런 ‘삶의 신비’를 느꼈다. 열손가락을 다 동원해도 어려운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네 개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유려한 연주를 들려주는 ‘기적’ 을 목도했다. 새삼 어머니가 존경스러웠다. ‘손가락이 네 개 인데 왜 하필, 어떻게 감히 피아노를 택하셨을까. 바이올린이면 좀 더 쉬웠을 텐데. 고생이 덜했을 텐데.’
희아어머니는 그러셨다. 태어났을 때부터 한 손에 두 개씩 달린 손가락이 튜울립처럼 예뻤다고. 그리고 손가락에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 피아노를 시켰다고. 피아노가 모든 음악의 기본이라고. 나중에 엄마가 없어도 희아의 삶을 지켜줄 무언가가 필요했다고. 여섯 살 때 피아노 선생님을 구하는 데만 6개월이 걸리고 희아의 엉덩이가 빨갛게 짓무르도록 모녀가 싸워가면서 연습했고, 한 곡당 최소 1년, 즉흥환상곡을 마스터하는 데는 4년이 걸렸다고 했다.
삶은 그렇게 매정하다. 삶은 추락체험이다. 삶은 재활훈련이다. 휠체어에 앉아서야 비로소 자유를 주고, 손가락이 네 개이기 때문에 피아노를 쳐야하는 게 우리의 삶이다. 결핍이 삶을 지탱한다는 것. 돌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것. 두려움의 근원을 통과해야 길이 열린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내 삶의 아이러니 나의 책상이야기 일곱살 때부터 책상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빠가 길에서 사온 찻상 크기의 독서대가 펴지는 좌식책상이 있었고 4학년 때 삼익가구에서 원목으로 된 고급책상이 생겼다. 그 책상에서 학창시절 쓴 일기며 편지며 수첩을 담아서 신혼집까지 갖고 왔다. 35평으로 집을 넓혀가면서 나만의 방이 생기고 책꽂이가 달린 예쁜 새 책상을 구입했었다. 그리고 3년 후 20평으로 이사하면서 책상을 포기해야 했다.
그 후 얼마 전 까지. 책상이 없었던 내 지난 4년간 내 평생 가장 많은 글을 썼다는 걸 알았다. 거실이 내 방이고 식탁이 책상이었다. 식탁 한쪽에 노트북을 놓고 글을 썼다. 글 한바닥 쓰다가 5시 반이 되면 자동으로 일어나 쌀을 씻고, 찌개가 넘치면 불을 끄고 와서 또 한 줄 쓰고, 부침개가 타면 반대쪽으로 뒤집고 와서 제목을 정하곤 했다. 식탁에서 책을 읽다가 아이가 우유를 쏟으면 걸레로 닦고 와서 또 책을 보면 앞의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식탁 위에 책과 필통 수첩을 늘어놓고 식사 시간이 되면 한쪽으로 밀어놓은 다음 밥을 먹고 김칫국물을 닦아낸 다음 다시 노트북을 켰다. 정리정돈을 지상과제로 삼는 남편이 식탁 위에 책 좀 늘어놓지 말라고 잔소리할 때는 기가 막혀 쓴 한숨을 삼켜야 했다.
야구중계를 보는 남편, 피아노 치는 아들, 소꿉놀이 하는 딸아이에 둘러 싸여 글을 쓰노라면 시장 바닥에 앉아 목탁 두드리며 수행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 소음이 내 정신을 깨어있게 했고, 내 글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어차피 알았어도 투정할 대상이 없었지만, 나는 책상의 부재를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 끼니의 영원회귀 속에서 원고마감 일정 속에서 숨 가쁜 날들을 보내느라 그랬다. 사실 딱히 큰 불만도 없었다. 한글 파일의 하얀 ‘빈문서’ 안에서, 깨알 같은 책에 고개 파묻으면서 충분히 자유했고, 그것은 어떤 고급의자와 사장님 책상에도 없는 충만한 행복이었다.
지난 6월27일 책상이 생겼다. 집은 그대로인데 남편이 배치를 바꾸어 공간을 마련해 놓고 책상을 사자고 했다. ‘당신이 하도 책을 늘어놓아서 보다 못해’ 라고 구박을 했는데 알고 보니 결혼기념 선물이었다.
책상 사는 날, 남편과 나와 딸과 친구와 친구의 딸, 다섯 명이 고르러 갔다. 가구 파는 분이 말끝마다 “학생이 쓰기 좋다.”고 권유하자 친구가 나를 가리키며 학생이 아니라 이 어른이 쓸 거라고 말했다. “어머, 글 쓰시는구나..작가에요?” 가구 파는 분의 말에 나는 멋쩍어서 안절부절 하는데 남편이 그런다. “네. 작가에요. 무명작가.”
피식 웃음이 났다. 무명작가라는 말이 맘에 들었다. 무명옷처럼 정갈하고 통풍 잘되고 청빈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이름 없는 작가. 눈과 귀에 때가 묻지 않은 작가. 그래 나는 그렇게 살고자 했었다. ‘천개의 눈 천개의 길’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글을 쓰던 초심을 떠올렸다. 언제나 나를 흔들어 놓는 좋은 스승 고병권의 글.
‘길들여진 눈이나 길들여진 귀는 너무도 많은 것들을 놓친다. 눈이 시대의 ‘광학 훈련’에 익숙해져 상식에 벗어난 어떤 것도 보지 못하고, 귀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만을 들으려 한다”면 신체는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니다. 길들여진 눈, 길들여진 귀, 무엇보다 길들여진 두뇌를 지배하는 것은 관습과 법이다. 그것들이 감각하고 그것들이 명령한다.’
새 책상에서 내 신체의 리셋버튼을 지그시 누른다. 길들여진 시선과 갑갑한 이름의 틀을 버리고 다시 은-유하기로 결심한다. 나에게 삶은 은유다. 하얀 목련이고, 시궁창에 버림 받은 하늘이고, 바퀴벌레이다가 가나초콜릿이 되고, 바늘 같은 장대비이고, 새파란 불꽃이고, 55이다가 66이고, 죽었는가 싶으면 아직도 쌩쌩하게 살아 있는 아이비가 삶이다. 그런 삶을 긍정한다는 것. 몰락하고 다시 창조하는 변신이 없으면 삶은 살아지지 않는다. 휠체어에 숨어 있는 자유를 발견하고, 네 손가락이 피아노 위를 달리듯이, 금단의 땅에서 삶의 양식을 구해야 하리.
은-유님의 삶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의 물결에서 깨달음을 재촉하는 큰파도 되어 제 마음을 일깨우고 있네요. 저는 셋이라 요즘 기준으로는 많기는 하지만, 아이들 보고 살림하게 된 뒤로 자기 일을 못한다고 합리화시키고 있었는데 은-유님의 글을 읽으며 준엄한 자기반성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선거철, 탄핵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마다 개인이자 공인인 연예인들의 정치적 발언을 두고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 논란이 인다. 연예인은 얼굴이 알려져 일거수일투족 대중의 관심을 받고 사회적 파급력이 크므로 자중해야한다는 반대의견과, 그만큼 우리사회에 건강한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이므로 오히려 공인으로서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야한다는 찬성의견이 맞서 왔다. 논란의 와중에도 연예인, 문화예술인 등 공인의 정치적 발언은 꾸준히 행해졌다.
유준상, 추신수 “정치인, 경찰 부끄럽다”
지난 8일에도 반가운 기사가 연달아 나왔다. 배우 유준상 씨가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너무너무 화가납니다. 검찰청선생님들 보고 계신가요’ 라는 글을 직접 썼다는 내용이다. 노무현대통령 대한문 앞 분향소 강제철거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올린 것. ‘저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시민입니다.’라고 운을 뗀 그는 ‘정치하시는 분들 참 부끄럽다’라고 강도 높게 검찰을 비판하고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며 마무리했다. 또 하나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추신수(27·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에 큰 충격을 받고 국민장 기간 중 마음속으로 검은 리본을 달고 경기를 했다는 기사다. 또한 그는 ‘경찰차가 시청 앞 광장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에선 지금이 2009년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곳의 한 방송사에서 진기하게 둘러싸고 있는 시청 앞 경찰차들을 보여주는데 어찌나 낯 뜨겁고 부끄러웠는지 모른다’며 경찰의 대응을 비판했다.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타인의 아픔에 눈물짓고 불의에 대해 분노하고 당당히 행동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반갑고 따뜻하다. 노무현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그간 ‘공인’이라는 이유로 억제되었던 연예인, 문화예술인의 의견개진이 조금씩 활발해지는 것 같다. 이는 ‘공인’은 정치적 중립이어야 한다는 낡은 패러다임을 벗어나는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윤도현, 봉준호, 박찬욱, 문소리, 이승환...'공인도 말한다' 일찍이 앞장 선 이들이 있다. 가수 신해철은 노무현대통령 후보 지지연설까지 나섰고, 가수 윤도현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직후 국회에서 수상한 트로피를 반납했다.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은 선거 때마다 공개적으로 진보정당의 지지를 선언했다. 영화배우 문소리는 지난 대선에서 부친상을 당한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를 대신해서 지역구에 매일 출근하다시피하며 선거운동에 나섰고, 2008년 촛불집회에서는 광화문 연단에 오르기도 했다. 노무현대통령 서거에 대해서도 문근영 등 많은 연예인들이 미니홈피에 근조리본을 달았고 유희열, 박용하, 박찬욱 감독 등은 직접 조문을 다녀갔다.
최근 이승환은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에 참가했다. 공연 소식을 듣고 본인이 먼저 연락해 참여 의사를 밝혔다. 데뷔 이후 정치·사회 문제에 크게 참여해온 뮤지션이 아니었던 그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난 정치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인형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며 “난세가 사람을 철들게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승환의 말을 더 들어보자.
“일단 너무 슬펐다는 거예요. 계속 되새기면서 남들보다 잊지 않았다고 할까. 인터넷에서 소식을 듣고 먼저 연락을 취해서 하게 됐는데 주위 분들이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구요. 근데 전 걱정한다는 자체가 너무 웃긴 거예요. 우리는 분명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고 배우면서 커왔는데 ‘그 공연이 이웃을 돕는 것 말고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니까 그 현실이 참 웃기더라구요.”
그의 말이 옳다. 그들은 공인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슬픔과 분노를 표시를 할 권리를 갖는다. 고로, 공인의 (정치적)의견 개진은 ‘자유’로워져야 한다기보다 ‘자연’스러워져야 하는 게 맞다. 봉준호 감독은 예전의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 중립논쟁은 공인에 대한 잘못된 사회인식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과거부터 대중적으로 알려진 공인은 대중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으니 그러한 신분을 망각하지 말고 근신해야 한다는 식의 시각이 있었다. 하지만 독립운동 하는 일도 아닌데 공인에게 그러한 기계적 중립을 요구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또 일반 대중이 공인의 말 한마디에 휘둘린다고 생각하는 것도 단순한 발상이다.”
특히나 연예계 종사자나 예술인은 그 누구보다 감성이 풍부하고 민감하다. 인간의 보편정서에 대한 공감능력과 세상은 이래야한다는 자기만의 가늠이 있어야 훌륭한 연예인이고 예술가다. 자신의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느끼는 대로, 본대로, 분노하는 대로, 울분을 토해내고 생각을 말하는 것이 훨씬 그들다운 일이다.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는 말도 있듯이 가슴 뜨거운 자는 결코 중립일 수 없다.
‘중립’은 이데올로기다 그렇다면 중립을 지키라는 해괴한 논리가 어디서부터 나왔을까. 이는 마치 '종교와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처럼 정치담론 자체를 막아버리려는 군사 독재 정권의 속보이는 의도에 기원한다. 인간은 생각을 말하는 순간 자신을 알게 된다. 질문하면 생각하고 생각하면 깨어나고,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이 선다. 그러면서 토론문화가 정착되고 ‘상식’이 형성되면 시민사회가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각성한 시민이 많아지는 것’은 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점이다. 촛불 이후 소통의 공간 ‘광장’을 두려워해 차벽을 쌓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민들 사이 정치적 언로를 막는 ‘관념의 차벽’을 쌓은 것이 바로 ‘정치적 중립’이다.
중립의 이데올로기에 갇혀 수많은 이들이 수수방관하는 동안 독재정권은 거리낌 없이 권력의 쇠방망이를 흔들면서 부를 축적하고 인권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연예인은 오직 자신의 꼭두각시로만 삼고자했다. 결국 대중의 각성과 저항을 두려워했던 저들과, 악을 악이라고 말함으로써 입게 될 손실을 피하고자 겹겹이 보호막을 친 보신주의자들이 '정치적 중립' 논리의 확장에 기여했다. 이후 (정치적) ‘중립’이란 말 스스로가 권위를 획득하고 진리인양 행세했다.
진실한 사람이 많아지면 좋은 세상 온다
공인부터 평범한 시민까지, 이제 낡은 ‘중립의 외투’를 벗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이희아씨 얘기를 나누고 싶다. 얼마 전 봉하마을 노무현대통령 영전에서 네손가락피아니스트 이희아씨가 통곡하는 장면이 언론에 소개됐다. 이희아씨는 북한 장애인을 위해 휠체어보내기도 하는 등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정치적 입장표명에 적극적인 건강한 젊은이로 성장했다. 작년 촛불집회 때도 이명박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국민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희아씨를 취재하던 필자는, 그즈음 촛불탄압국면이라 염려스러운 마음에 ‘혹시나 불이익을 받을 지도 모르는데 기사에 그대로 써도 좋은가?’ 물었다. ‘당연히 괜찮다’고 말했다. 이희아씨를 키운 위대한 ‘마더’인 어머님 우갑선씨(사진에 희아씨 왼쪽 파란상의)가 옆에서 말씀하셨다. “괜찮다. 희아야. 자기 일 열심히 하고 진실되게 살면 된다.” 그 얘길 듣는 순간 전율이 일었다. 답은 쉽다. 희아씨처럼 소신껏 진실 되게 사는 사람이 많아질 때 진실한 세상,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온다.
시민이면 누구나 정치적 호불호가 있는 법인데, 그것을 당당히 드러내놓고 소신을 이야기 하는 분위기가 더 형성되길 바래봅니다. 그러기에 앞서, 자신과의 정치색이 같지 않다고 비난하는 그런 분위기도 사라지길 바랍니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수 있고, 그리고 재는 나랑 생각이 다르구나 하고 쿨하게 넘어가기도 하고, 아니면 진지하게 토론하는 그런 분위기속에 합을 찾을수 있는 그런 성숙한 문화가 이루어지길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대통령님! 저는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입니다. 이제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저를 포함해서 대통령님께 실망과 울분을 터뜨리고 있는지 아시는지요. 대통령님께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지금 그 기대는 억울함으로 다가오네요."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23)씨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띄웠다.
희아씨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와 관련하여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여 달라"며 "국민들의 의식이 놀랍게 성숙한 만큼 예전처럼 밀어붙이기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천주교 신자인 이희아씨는 또한 "예수님께서 진노하실까 두렵다"며 "국민의 마음을, 국민의 생각을, 국민의 말을 대변하시는 지혜로운 대통령이 되어 달라"는 부탁으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지난 1일 연주회를 앞둔 이희아씨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났다. 이희아씨는 전날 개최된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이명박 정부, 국민 말 듣지 않고 계속 오만한 태도로 나와 화가 났다"
- 정의구현사제단 시국 미사를 본 소감은?
"5·18 광주민중항쟁 때도 신부님들이 나섰다. 추기경님이 나를 밟고 가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다고 해서 경찰이 진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 5·18다큐멘터리에서 봤다. 삼성특검 때도 신부님들이 계셨다. 중요한 시기마다 신부님들이 나서주셔서 든든하다."
- 이명박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게 된 계기는?
"지난달에 일본·멕시코 등 해외공연을 다녀왔더니 광우병 쇠고기 협상 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했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오만한 태도로 나오니 화가 났다. 이렇게 국민들이 원하면 좀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무어라고 생각하나.
"오만함과 불손함이다. 임기도 끝나지 않은 기관장들을 자르는 등 마음대로다. 말이 안 된다. '사랑의 열매' 신필균 이사장님도 잘렸다고 들었다. 자기 사람으로 다 바꿔놓는 등 안하무인이다. 유인촌 장관에게도 정말 실망이다. 권력의 하수인이 됐다. 99년도에 당시 탤런트 유인촌씨랑 무슨 상을 같이 받고 사진찍은 게 있는데 엄마한테 찢어버리자고 했다."
- 연예인이나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은 정치적 입장 표명을 꺼리기도 하는데?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을 뽑듯이 자연스럽게 의견을 표현하는 거다. 난 공인으로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발언한다. 불이익을 걱정한다는 건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다. 불이익이 받을 것도 없다."
옆에 있던 어머니 우갑선씨는 "진실하게 살면 된다"며 "후한이 두려울 줄 알라고 겁주는 사람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들먹이며 현실의 문제를 피해가는 비겁한 사람들"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희아씨는 지난 주말 포항MBC에서 주최하는 초청연주회를 울진문화예술회관에서 가졌다. 공연 중에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역사가 짧습니다, 어린 민주주의를 지킵시다"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고 전했다.
어릴 때 꿈이 '애국자'였다는 이희아씨는 지난 2006년부터 북한장애인을 위해 휠체어 1004대를 보내는 등 지속적인 통일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원래 6월에 북한공연이 예정되었으나 일정상의 문제로 매니저가 대신 북한을 방문해 감사패를 받아왔다.
최근 남북기류와 관련해 그는 "북미관계도 좋아지는데 남북관계만 꽁꽁 얼어붙어 속상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촛불집회에 나가고 싶지만 공연스케줄이 계속 잡혀 있어 마음으로 함께 한다는 이희아씨는 매일 밤 뉴스와 토론 프로그램 등을 꼭 챙겨본다고 말했다. 또 "정말 열 받았을 때는 아고라에 찬성 댓글을 달기도 했다"며 활짝 웃었다.
'뜨거운 가슴 행동하는 청춘' 이희아씨는 오는 7월 12일 중국에서 사천지진 자선모금공연을 갖는다.
"대통령님, 이제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해주셨으면 좋겠다"
(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이희아씨의 공개서한 전문)
이명박 대통령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입니다.
대통령님! 이제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저를 포함해서 대통령님께 실망과 울분을 터뜨리고 있는지 아시는지요. 대통령님께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지금 그 기대는 억울함으로 다가오네요.
대통령님께서 머슴이 되겠다고 하셨잖아요. 머슴은커녕 오히려 국민을 머슴 삼으실 것 같아서 많이 걱정입니다. 이제 국민들, 주변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셨으면 좋겠네요. 저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예수님 믿는 사람으로서 예수님과 국민여러분을 욕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산쇠고기 협상도 그렇습니다. 국민의 뜻을 거스른 채 졸속적으로 협상을 감행하신 것도 정말 잘못된 것이지요. 미국 광우병 소가 들어오면 저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먹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예전처럼 밀어붙이기 정치를 하셔서는 안 됩니다. 국민들이 의식도 놀랍게 성숙되어 있고, 자기 나라를 지킬 주권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마음을, 국민의 생각을, 국민의 말을 대변하시는 지혜로운 대통령님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진노하실까 두렵습니다.
좀 더 서민들을 생각해주시고 대한민국을 행복하고 갈등이 없는 나라를 지금이라도 다시 정신 차리시고 만들어 주시길 소망합니다.
2008. 7.1 이희아 드림.
* 오마이뉴스 7.3
***지난 주 희아를 만났을 때 희아와 시국관련 토론을 하느라 인터뷰를 진행하지 못할 정도였다. 우린 인터뷰 예정시간을 훌쩍 넘어 토킹어바웃의 물결을 이어갔다. 희아는 원래부터 정치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건전한 가치관을 가진 젊은이었기에 죽이 잘 맞았다. 어찌나 아는 것도 많은지 내가 물어봐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머니도 옆에서 "그런 건 다 언제 알았느냐"며 대견해하셨다.
희아가 꼭 시민발언에 한 번 나가고 싶어했는데 방송차 탈취, 폭력진압 등 난리가 나고 말았다. 그리고 어제 다시 김동원 감독님이 선물한 <송환> 디비디를 전달하기 위해 희아를 만났다. 희아가 종이에 편지를 써놓았다. 매니저가 대필한 종이였다. "희아야, 평소 네 발언수위에 비하면 너무 온건한걸?" ㅋㅋ예의를 아는 희아가 예뻤다. 퍼주기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꼬깔콘을 좋아하는 희아. 사랑을 아는 희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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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님의 삶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의 물결에서 깨달음을 재촉하는 큰파도 되어 제 마음을 일깨우고 있네요. 저는 셋이라 요즘 기준으로는 많기는 하지만, 아이들 보고 살림하게 된 뒤로 자기 일을 못한다고 합리화시키고 있었는데 은-유님의 글을 읽으며 준엄한 자기반성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저도 많이 허덕이고 합리화하면서 살아요..;; 내 몸에 맞는 방향과 속도를 찾아야하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좋은 울림으로 받아들여주셔서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