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안톤체홉의 '귀여운 여인'속 올렌까였다. 나의 의견을 생각을, 내 언어를 갖지 못함으로써 나의 시간은 큰 무더기로 자각될 뿐이었다. 살아냈으나 기억할 수 없는 시간들. 첫 시간에 '나의 생각을 나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 필요함을 배웠다. 벅벅거리는 머릿속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어느 것도 말하지 못 하고 전혀 다른 말을 뱉어내곤 했던 지난 시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존재하고자 한다. 내 언어를 찾고자 한다. 떨리는 심정으로 생애 처음 인터넷이란 공간에 빠끔히 문을 열고 들어선다.’(wonstep)
낯선 눈빛으로 들어선 그녀들과 8주를 보냈다. 여성민우회생협 고양지부 글쓰기강좌 종료 후 보름이 넘게 지났다. 나란 인간, 원래는 하나의 사건을 겪으면 받아쓰기 하듯 뭔가를 써야했다. 이번엔 그게 안 됐다. 한 쪽짜리 글로 ‘단순화’할 수 없을 만큼 거대담론이 오갔던가. 아니다. 수업시간에 나온 얘기는 내겐 충분히 익숙한 자질구레한 일상사, 초조한 느낌들, 벌레만큼 작은 풍경들이다. 거리두기가 어려웠다. 내가 무시로 겪고 느끼는 것들. 새삼스러울 게 뭐 있어야지. 아마도 여성이 여성에 ‘대하여’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섬사람이 바다를 보는 심정 같은 거다. ‘바다의 놀라운 점은 놀라운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라는 말처럼, 대수로울 것이 하나도 없는 그녀들의 삶 앞에서 나는 그저 한 존재의 근원적이 외로움을 확인했다. 때로 가슴 트이는 때로 가슴 아리는 위로를 받았을 뿐이다.
몇 가지 생각나는 점들. 글쓰기반 여성들 가족관계의 특수성. 열 두세 명이 수업했다. 그 중에서 다섯 자매 출신이 네 명이다. 상당한 비율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억압과 차별을 겪고 자라서 인지 딸 부잣집 여성들은 깨어있다. 또 삶의 경험치가 풍부하다. 이야기 거리가 많다는 점에서 글쓰기 좋은 조건이다. 또 한 가지 공통점. 아들엄마들이 과반수가 넘었다. 아들 엄마들은 자식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외로움을 염려했다. 고령화 시대에 대비한 살길 모색.
우리 동네만 봐도 아들 엄마들은 글쓰기든 뭐든 열심히 배운다. 그들끼리 친교동맹을 맺기도 한다. 자식과의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가 필사적이다. 딸이든 아들이든, 어쨌든 누군가의 자식이며 또 살붙이 같은 자식을 떠나보내고 ‘독립’을 준비하는 엄마는 자기정리가 필요하다. 글쓰기를 하나의 방편으로 삼은 그녀들.
'어머니는 자신이 원하는 희망과 자신에게 부여된 희망을 구별하지 못한다. 딸은 어머니를 자신에게 투사하지 말고 스스로 욕망대로 살아야 한다. 여자 그리고 어머니 한 번은 꼭 얘기하고 싶었다...어떻게든 풀어내야 한다. 내 마음의 응어리를, 그래야 앞으로의 내 역할들을 편안하게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곧 다가올 두 엄마의 보호자로서의 역할도, 딸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밉지 않은 엄마의 역할도 , 그리고 또 한 여자 내 며느리와의 행복한 관계 맺음까지도 말이다. ' (수련화)
수업 첫 시간에 사실 놀랐다. 인터넷을 사용할 줄 모르거나 컴퓨터로 글쓰기가 능숙치 않은 경우가 꽤 다수였다. 공책에다가 손글씨로 일기를 쓴다 했다. 아날로그 감수성은 단점이자 장점으로 작용했다. 글쓰기수업 초반부, 이 상황이 낯설어서 어쩔 줄 모르는 글들과 경직된 표현들이 쓰기를 거듭할수록 자연스럽게 냇물처럼 졸졸 흘렀다. 그녀들은 자기를 들여다보는 재미에 점점 빠져들었다.
‘글쓰기를 배운 적은 없지만 강의 듣기를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듭니다. 왜냐구요? 그냥 저의 감정에 집중해서 쓰느라 내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하게 관찰하고 적는 것들을 애써 잊고 놓치고 있었거든요. 글처럼 참 메마르게 살았구나 싶습니다.’ ‘글을 쓰며 <나>와 관계된 대상을 되짚어 보며 <나>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힘겹지만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또 이렇게 깨어나 앉아 있네요. 글쓰기 수업하며 새벽에 잠들기도 하구 날도 새 보구. 이상한 게요 과제의 괴로움에 질질 끌려가다가도 수욜 만남은 기다려지더라구요. 짧은 기간 대비 제 머리 속을 마구 휘저어 놓은 야릇한 공간’ (페이퍼)
내면에 잠든 시인을 깨우는 그녀들. 수업 후반부로 갈수록 시적인 표현이 급증했다.
‘싫어도 싫다고 말 못하고 이제는 습관처럼 앞으로만 고개 끄덕이는 여자’(수련화) ‘아마추어 인터뷰어이자, 사랑에 뻣뻣한 여인은 삶에, 사랑에 원숙한 여인의 속살을 잘 들추지 못했답니다. 저는 님의 저고리 끈만 풀어보고 말았네요.’(봄날의곰) ‘60년 노동으로 다져진 손. 나무 등걸 같은 그 손의 최후를 지키려는 듯 더께져 앉아있는 손톱. 아빠는 특히 새끼손가락 손톱에 정성을 들였다. 시멘트 공장 용접공으로 반평생을 살아오신 아버지.’(마나)
마지막 수업은 인터뷰. 글쓰기반 동료들끼리 짝을 지어 인터뷰를 해왔다. 다들 작가본능의 끼가 넘쳤다. 김어준처럼 쓰기 위해 6편의 인터뷰기사를 읽고 썼다는 산책님의 엽기발랄한 글. 글쓰기의 정석을 구현하는 생기님의 착실한 글. 솔직 당당 쿨하기 이를 데 없는 아나하타님 글, 내공과 유머가 만난 고급한 필력을 자랑하는 시애틀님 글. 조용한 일탈을 꿈꾸는 우샤님 글. 미학적 글쓰기의 꿈을 찾아가는 봄날의곰님 글, 고품격 로맨스 글쓰기의 결정판을 보여준 원스텝님 글. 급진적 성장을 꿈꾸는 지혜나무님 글...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폭풍처럼 밀려오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도 과제를 제출하지 못했거나 대충 지면을 메워온 사례가 두 명 있었다. 원인은 ‘나를(상대방을) 어디까지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검열 때문이었다. 아픈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얘기에서 그 부분이 쏙 빠졌다. 또 한 커플은 상담 치료 수준의 인터뷰를 하고도 아무 것도 기록하지 못했다. 행여나 이 얘기들을 다 쓸 경우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까 망설인다고 말했다. 나는 몹시도 당황했다. 우리가 남이가가 아니라, 가리고 숨기는 태도가 그 선의의 의도와는 다르게 어떤 사건을 ‘치부화’ 혹은 ‘음성화’ 해버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또래의 여성들끼리 모이면 더 기탄 없는 대화가 오갈 것 같고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삶의 핵심부위를 터놓지 못하다니. 연구실 글쓰기 수업할 때는 없었던 일이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아직 여물지 않은 상처라면 때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누구도 커밍아웃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막상 여성의 뿌리 깊은 ‘자기억압’을 목도하고 나니 안타까웠다. 소크라테스도 말했다. 흉금을 털어놓고 솔직하게 말하는 면이 부족한 사람은 필요이상으로 소심하고 모든 문제를 어렵게 생각하는 법이라고. 나는 “삐졌다" 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가 공부하고 얘기한 건 뭐냐며 섭섭한 마음을 한바탕 털어놓았다.
가령, 장애가 있다, 이혼을 했다, 지방대 출신이다, 돈이 없다, 애가 공부를 못 한다; 등등이 오롯이 개인의 문제일까. 부끄럽고 부족하고 찌질한 삶일까. 그렇지 않은 소위 정상인이 얼마나 될까. 장애인을 차별하는 자와 동정하는 자는 그 이유를 공유한다. 그 존재를 ‘결핍’으로 느낀다는 면에서 그렇다. 살면서 누구나 겪는 지진 같은 일들. 그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또 다른 생성을 위한 하나의 국면으로 여길 수는 없었을까.
이 사회가 만든 지식권력 안에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한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순치된 자를 양성하는 정상성의 척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나만의 욕망의 설계도를 짜고 나만의 도덕법칙을 세워나가는 작업으로서의 글쓰기. 여성이 자기 언어로 자기 삶을 노래하는 그 순간을 나는 섣부르게 꿈꾸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삶은 얼마나 깊고도 깊은가. 삶의 물길을 돌리기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8회 차 수업을 통해 나는 ‘내가 아는 게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를 알았다. 6월의 마지막 수요일, 폭탄 같은 빗발을 뚫고 자유로를 달리던 나는 어쩌면 살길을 찾아가고 있었던 거다. 쓰기 위해서는 만나야 하고 만난 자는 써야 한다. 나를 바꾸고 이전과 같이 생각하지 않기 위해(푸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