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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세상

행복전도사 그 쓸쓸함에 대하여


‘애시당초 빈 그릇인데 꽉 찬 것처럼 사는 게 내 모습이야.’ 심야에 문자가 왔다. 가족과 다투었다고, 그냥 사는 게 지겹다고, 집에선 형편없으면서 밖에선 뭐든지 다 해줄 것처럼 사는 자기가 싫다고, 가식과 허위로 포장하는 거 같아 괴롭다고 하소연했다. 익숙한 번민. 자세한 사연은 듣지 못했지만 짐작 가능했다. 원래 가족이란 ‘자기 바닥’을 확인하게 해주는 존재다. 그 회피하고 싶은 자기모습에 놀라고 한탄스럽고 절망하는 건 자연스럽다. 당신 나쁜 사람 아니라고 위로했다.  

괜찮은 나와 엉망인 나 사이에 간극이 클 때 우리는 혼란을 느낀다. ‘어떤 게 진짜 내 모습이지?’ 자문자답을 해봐도 답은 없다. 인간이란 원래 하나의 동일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다. 정해진 본질이 없는 존재다. 나는 대체로 유쾌하고 선량한 로맨티스트이지만 때로 파시스트이면서 몽상가이고 속물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이면서 마초의 카리스마에 넋을 잃기도 한다. 그런 힘들이 만나는 장으로서의 내가 있고 나의 속성은 어떤 배치에 놓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가령, 여자들이 시댁을 싫어하는 이유는 자기존재의 축소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시댁에서는 사회의 지배적 규범과 관습을 따라야하므로 다른 충동을 억눌러야 한다. 내 생각으로 살지 못하고 수동적이 되어서 역할놀이를 수행해야 한다. 나의 본성과 합치하고 능력의 증가를 가져오는 배치가 아닌 곳에서 놓이니까 따분하고 괴로운 거다. 그러니 잘 살기 위해서는 좋은 충동을 촉발하는 좋은 동료를 주위에 많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역할놀이의 고단함. 피폐함. 그래서 최윤희씨의 죽음이 애달프다. 그녀와 짧은 인연이 있다. 그간 사보 인터뷰로 세 번이나 만났다. 각각 다른 기업이다. 그녀는 자본이 사랑한 캐릭터다. 아줌마가 카피라이터가 된 인생역전의 주인공, 괴로워도 슬퍼도 그저 웃으며 살라는 자기긍정의 화신아닌가. 외부강사를 쓰지 않는 청와대에서 부르고 방송3사가 대기하고 삼성에선 국빈급으로 대우한다. 방송국, 대기업, 공공기관은 지배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아이러니지만, 자기 목소리를 ‘전혀’ 낼 수 없다. 자기 생각을 말하는 순간 잘린다. 그녀 정도의 특급강사는 일회 강연에 500만원을 받는다. 자본의 논리를 앵무새처럼 야무지게 떠들어야 한다.  

그 일을 수년간 반복했다. 50여 권의 행복서를 쓰고 하루에 두서너 군데씩 방송국과 기업체, 관공서에 다니면서 행복론을 설파했다. 오직 경쟁바이러스로 뒤덮힌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기가 탁하고 삭막한 곳에서 집중적으로 일했다. 분명 자기 삶에서 나온 철학이지만 어느 새 자기가 소외된 낯선 말들을 얘기해야 했다. 이것이 맑스가 말한 자기 생산물로부터의 소외다. 유서에도 ‘능력에 비해서 너무 많은 일을 하다 보니 밧데리가 방전되고 몸 여기저기서 경계경보가 울린 것’이라고 썼다. 좀 쉬엄쉬엄 하지 그랬느냐고 말 못한다.

자본의 질서는 강고하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안에서 뛰어내릴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 "거기서는 달리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거기서 멈추는 것은 여러 대의 객차를 연결한 열차를 세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다가오는 봉기)  멈출수도 달릴수도 없는 부자유함. 내 정신으로 살 수 없는 고통. 그것을 벗어나는 다른 삶의 배치를 설계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녀의 주변에서 '나의 목소리'로 말해도 되는 유일한 동료는 남편이 아니었을까 싶다. 
 

삶이란 그다지 논리적이지도 일관되지도 않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모범답안이나 처방은 없다. 그래서 ‘자기’는 없고 ‘계발’만 있는 자기계발서 백번 읽어봐야 소용없다. 행복은, 자기구원은 자기배려를 통해 스스로 발명해야 한다. 누가 누구에게 양도할 수도 전도할 수도 없다. 사는 동안 행복의 판타지는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불행을 피할 수는 없다. 고통을 없앤다는 것은 존재를 없앤다는 것이므로 그렇다. 고통을 산다는 것, 고통 너머로 나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고통전도사'가 필요한 시대에, 행복전도사는 700가지 통증 속에 신음하다가 용도 폐기됐다. 쓸쓸한 죽음. 가슴이 아프다.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