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그리스를 좀 편애한다. 니체가 추구하는 강자, 고귀하고 역동적인 삶의 원형을 그리스인들에게서 찾고 적극적으로 예찬 옹호한다. <비극의 탄생>은 그리스 예술정신에 대한 예찬을 엮은 책인데, 결론은 삶의 문제로 돌아간다. 삶을 충실하게 실현한 고대 그리스 비극을 탐구하면서 니체가 살았던 당대 학문과 시대에 대한 비판을 곁들인다. 니체가 보기에 근대 예술과 문화는 순수성을 상실하고 상업적이고 천박해졌다. 산업으로서의 문화만이 살아남는 곳, 자유로운 개인의 감성과 개성이 설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서성이는 곳으로 삶을 왜곡하고 경직시킨다는 것이다. 이 때 니체가 비판한 근대문화는 단순히 19세기의 문화가 아니라 그리스 문화가 사라진 시점부터 현재까지로 확장된다. 가령 신화가 살아 있던 그리스 문화를 밀어내고 들어선 로마문화는 장식과 형식만을 추구하는 문화였다는 것. 이는 근대 문화의 전반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그리스 비극에 대한 문헌적 역사적 해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비극적 구조의 두 원리인 아폴론적인 꿈과 디오니소스적인 도취가 삶과 실존의 두 원리이기도 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한다.
니체에 따르면 그리스 문화를 꽃피우게 한 예술의 원리는 아폴론적 충동과 디오니소스적 충동이었다. 아폴론적인 요소는 꿈의 요소, 조형예술의 원리, 이성적 차원이고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도취의 요소, 음악의 원리, 감성적 차원으로 정리하였다. 그중에서도 디오니소스적 충동은 그리스비극의 중요한 요소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유대를 맺어줄 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을 화해시킨다. 니체에게 고대 그리스 비극은 삶과 예술, 삶과 사유가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고유한 방식이다.
이는 니체의 예술관과 인간관을 반영하는 것인데 니체는 인간이 소크라테스의 등장으로 예술적 도취와 멀어졌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실증적이고 지식으로 대하려는 인간의 태도는 인간을 지식과 요양을 위해 봉사하는 동물로 만들었고, 그 안에서 그리스의 비극적 요소, 예술적인 것들은 소멸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모든 개념을 언어적으로 정의하고 정복하려 했던 소크라테스의 후예들, 알렉산드리아적 명랑성의 끔찍함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명랑성이 근대유럽을 지배했던 계몽주의와 실증주의와 맞물려가고 있다.
여기서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변증법적 대립을 대신하는 디오니소스와 소크라테스의 대립이 발생한다. 비극에 대립하는 것은 아폴론이 아니라 소크라테스다. 충동이 창조적이고 긍정적인데 반해 소크라테스는 충동이 비판되고 의식이 창조적인 반열에 오르는 전복적 인간을 대표한다. 관념과 이성에 의해 삶을 판단하고 정당화하는 이론적 인간이다. “모든 것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이해될 수 있어야 하고 의식적이어야 한다.”는 미학적 소크라테스주의의 출현. 본능을 대신하여 지식과 통찰에 새로운 중요성이 부여되고 논리적 천성이 과도하게 발달한 것이다.
이는 디오니소스와 기독교의 대립으로 발전한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 시기에 아직 기독교에 대해 침묵했다. 참된 긍정의 극한인 디오니소스에 대립하는 기독교. 심오한 허무주의의 근원인 기독교. 디오니소스와 기독교는 삶 속에 존재하는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따라 나뉘는 인간의 두 방향이다. 디오니소스가 고통을 긍정하는 삶이라면 기독교는 고통을 통해 삶을 비난하고, 그 삶을 정당화되어야 하는 것으로 만든다. 디오니소스가 삶의 과잉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에 속한다면 기독교는 삶의 결핍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에 속한다.
디오니소스의 관점에서 현존은 더욱이 엄청난 고통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할 만큼 그 자체로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니체에게 구원은 이 삶으로부터 신성함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는 게 아니라, 이 삶 자체를 사랑하고 긍정하는 방법에 있다. 부정의 운동, 발전되고 지양되고 해소되어야하는 모순보다 더 고귀한 것은 가치전환이다. 디오니소스는 가장 모진 고통조차 긍정하고, 긍정된 모든 것 속에 나타난다. 다수의 긍정과 다원적 긍정이 비극의 본질이다. 기쁨은 화해나 승화의 결과가 아니라, 다원적 삶 그 자체를 긍정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예술이 삶의 최고 과제라고 했다. 그리스인들은 인간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을 이용했다. 주인공이 아무리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그 현상의 바탕에는 생의 의지가 영원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주인공의 파멸을 지켜보면서도 형이상학적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현존을 저주하지 않았다. 반면에 기독교는 원한(그것은 네 잘못이다) 속에서 가책(그것은 내 잘못이다)속에서 그리고 공통의 책임 속에서 현존을 저주한다. 이것이 '신'을 대하는 그리스인과 근대인의 차이다.
니체는 그리스 비극 예술을 얘기하지만 이는 곧 니체의 인간관이자 세계관이다. <비극의 탄생>에서 향후 전개되는 반기독교 반이성주의 철학의 밑그림이 그려졌다고 볼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디오니소스적 충동이 살아 있는 인물로 구체적으로 형상화 된다. <비극의 탄생>을 쓴 스물여덟 청년 니체는 도덕과 기독교에 대립하는 예술가-형이상학을 추구했다면, 후기 니체는 선과 악을 넘어선 비극적 반형이상학을 발전시켰다.
* <비극의 탄생>을 읽으실 분은 아카넷에서 나온 박찬국 씨 번역본을 권합니다.
각주도 풍성하고 훨씬 번역이 매끄러운 친절한 책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