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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칼럼

눈물의 목격자, 스물두살 자동차를 보내며

'열일곱 살 자동차'라는 그림책이 있다. 같은 해에 태어난 아이와 자동차가 17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하는 이야기다. 따뜻한 그림과 내용에 공감하면서도 으쓱했다. 우리 집에는 그보다 더 오래된 자동차가 있다. 무려 스물두 살! 사람으로 치면 백 살쯤 될 거 같은데, 그림책이랑 상황이 비슷하다. 

첫아이가 태어난 해에 구입했다. 짙은 녹색의 성능 좋은 자동차는 아이를 돌잔치에도, 할머니댁에도, 입학식과 졸업식에도 데려다주었고 성인이 되어 군에 입대하는 날까지 동행했다. 아이를 신병 훈련소에 보내놓고 눈물 훌쩍이며 집으로 오는 길 새삼 쇳덩이인 자동차가 둘도 없는 살붙이처럼 느껴졌다.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자동차가 아이와 생애 주기를 같이한 동년배라면, 내게는 구질구질한 눈물콧물 다 받아준 속 깊고 품 넓은 비밀친구 같은 존재다.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작은아이는 유치원에 있고 큰아이는 태권도 학원에 갔을 때 막간을 이용해서 차 몰고 장을 보러 가곤 했다. 집에서 마트까지, 마트에서 집까지. 왕복 30~40분 정도의 시간이 유일하게 나 홀로 있는 시간, 고독을 누리는 호젓한 기회였다.

집에서도 혼자 있지만 집은 번잡스러운 노동의 공간이지 고요가 고이는 공간은 아니다. 게다가 집이 퍽 좁았다. 20평형 아파트에 네 식구 기본 살림뿐인데도 남은 공간이 손바닥만 했으니 발 뻗고 누우면 몸이 레고블록처럼 방에 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에서 뭐가 해일처럼 수시로 밀려왔고 그것을 애써 눌러두곤 했다. 애들 보는 데서 울면 안 되니까. 그렇게 저만치 밀쳐놨던 눈물이 꼭 차에서 터졌다. 일몰의 쓸쓸함과 음악의 척척함 효과도 컸으리라. 

어떤 날은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마저 울고 안 운 사람처럼 얼굴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집으로 갔다. 감쪽같이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걸, 내 눈물범벅 청승의 역사를 자동차는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며칠 전, 스물두 살 자동차를 보냈다. 작년부터 치매에 걸린 것처럼 수시로 말썽을 일으켰다. 오디오도 안 되고 계기판이 멈추고 창문이 안 올라가고, 최근에는 지방에 갔다가 차의 시동이 안 걸려 긴급 서비스를 불러서 겨우 왔다.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또 자동차도 자신을 다 소진해 봉사했으므로 보내주었다. 큰아이 제대할 때 그 차로 데려오고 싶었는데 제대를 한 달 앞두고 포기했다. 자동차를 폐차장에 보내는 날, 유독 정성스럽게 차를 가꾸고 타서 ‘세차맨’이란 별명으로 불린 남편도 끝내 눈물을 비쳤다. 나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이것이 눈물의 완창인가. 박연준 시인이 친구 앞에서 마음 푹 놓고 실컷 울어댄 일이 있는데 그걸 두고 친구들이 “완창”(판소리의 한마당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일)이라 부르며 놀렸다고 한다. 한 세월 떠나보내는 느낌, 사연 한 편 완성되는 느낌으로 더없는 표현이다.

요즘 나는 해일처럼 밀려오는 감정에 익사당하지도, 폭포 같은 눈물에 잠식되지도 않는다. 재무구조가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집은 넓어졌고 조용히 울 수 있는 방도 생겼는데 예전보다 덜 운다. 나이 들면 머리숱이 줄고 생리양이 줄듯이 눈물도 줄어드는 걸까. “가끔 그때가 그립다. 이제는 체력이 달려서 그리고 그만큼 슬프지가 않아서 완창을 할 수가 없다. 살면서 완창은 그리 자주 오는 것이 아닌가 보지?(50쪽)”

한 세월이 갔다. 눈물도 잦아들고 눈물의 목격자도 떠났다. 멀리서 지켜봤을 거 같다. 내가 모처럼 사연 있는 여자처럼 한바탕 운 사연을 나의 스물두 살 자동차는 알리라.

<소란>, 박연준


- 시사인 은유 읽다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