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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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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 덮어쓰고 / 이오덕 자다가 깨어나 생각하니 내가 하얀 눈을 덮어쓴 지붕 밑에서 자고 있었구나. 아침마다 창문을 열면 하얀 세상 건너편 산도 마을의 집들도 길고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정작 내가 그 눈 밑에서 자고 있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으니! 지붕뿐 아니지, 내가 덮고 있는 이불도 하얀 양털에 하얀 목화로 짠 베다. 이불뿐 아니구나 내가 입은 잠옷도 하얗고 내복도 하얗고 낮이면 추워서 방 안에서도 입고 있는 오리털 겉옷도 새하얀 빛 하얀 것만 입고 덮고 하얀 쌀밥까지 먹고 의사가 권해서 포도당 하얀 가루까지 날마다 먹고 하얀 종이에 글을 쓰고 그러고 보니 이거야말로 전신만신 하얀 것뿐 하얀 것뿐일세. 그렇다면 내 마음은 어떤가? 마땅히 하얗게 눈같이 깨끗하게 되어 있어야 할 내 마음은? 자다가 깨어나..
내 몸 같은 바지 / 이오덕 '두껍고 푹신한 마음을' 10년쯤 전에 광화문 땅밑 교보문고로 들어가는 길에서 사 입은 누런 골덴바지, 그게 몇 해 전부터 무릎 쪽이 헤지고 엉덩이가 빵꾸날 지경이라 더 입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어 그대로 두었는데 서리가 하얗게 내린 어느 날 좋은 생각이 떠올라 마침 그날 찾아온 서울 ** 동 어느 골목에서 삯바느질하는 고호자 씨한테 부탁을 했다. 이 바지 좀 꿰매 주실 수 있을까요? 이 뒤쪽과 두 무릎 안쪽에 좀 큼직하고 두꺼운 천을 대어서 누벼 주시면 좋겠는데요, 더구나 무릎은 몇 해 전부너 늘 찬바람이 일어날 지경이니 푹신한 걸로 대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고씨가 보더니 그렇게 하겠다면서 가져가더니 일 주일 뒤 꿰맨 바지를 가져왔다. 날씨가 추운데 빨리 입으셔야지 싶어서요 하면서. 그걸 입어 보니 와아, 무플이 후끈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