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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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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삶의창] 내 인생이 그렇게 슬프진 않거든요 아이들이 이백 명 넘게 있더라, 생각해보니 나 학교 다닐 때 우리 반에도 보육원에 사는 애가 없진 않았을 거 같아. 업무차 보육원에 다녀온 친구가 말했다. 그 아이는 반 친구를 집에 데려오지 못하고 남들처럼 부모형제와 사는 듯 지냈을 텐데 싶어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나와 같은 시간대를 통과했을 한 아이를 나도 가만히 떠올려보았다. 있는 그대로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의 가슴은 때때로 얼마나 졸아드는가. 예전에 보육원에서 만난 취재원이 떠올랐다. 원생이 성인이 되면 약간의 생활자금을 갖고 시설을 나간다고 말했다. 난 좀 놀랐다. 방 한칸 구하기 어려운 소액으로 가족도 없는데 어떻게 자립을 하느냐며 살짝 분개했던 거 같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자기가 그 경우랬다. 시설에서 살다가 스무 살에 ..
한겨레 - 여름 제사 시적인 게 뭐예요? 시 수업에서 질문이 나왔다. 난 오래된 시집에서 본 설명에 기댔다. “그 시적인 것은 뭐라고 딱히 말할 수는 없고, 딱히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어쩌면 선적인 것과 닿아 있는지 모르겠다.”(황지우, , 64쪽) 그리고 예를 들었다. ‘여름 제사’ 같은 게 아닐까요? 저 오늘 여름 제사 지내러 가요. 얼마 전 지인이 지나가듯 하는 말에 몸이 움찔했다. 여름 피서가 아니라 여름 제사. 이 빗나가고 거스르는 말들의 배열이 내겐 너무 시적으로 다가왔다. 삼복더위에 호화로운 휴가 한번 즐기지 못한 엄마는, 자식들 콩국수 만들어 먹이고 아버지 술안주로 부침개 부치느라 가스불 앞을 떠나지 못하고 낑낑대던 엄마는 한여름에 돌아가셨다. 써보지 못한 여권사진이 영정사진이 됐다. 10년 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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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책 <쓰기의 말들> "모두가 글을 쓰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글을 쓰지는 못한다. 인간을 부품화한 사회 현실에서 납작하게 눌린 개인은 글쓰기를 통한 존재의 펼침을 욕망한다. 그러나 쓰는 일은 간단치 않다. 글을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안 쓰고 안 쓰고 안 쓰다 '글을 안 쓰는 사람'이 되어 수업에 왔다는 어느 학인의 자기소개가 귓전을 울린다. 이 책이 그들의 존재 변신을 도울 수 있을까. 글을 안 쓰는 사람이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 자기 고통에 품위를 부여하는 글쓰기 독학자의 탄생을 기다린다." - 은유, 프롤로그 중
감응의 글쓰기 6기 시작합니다
올드걸의 시집, 절판기념회 풍경 3월 17일 목요일 오후 7시반부터 9시 반까지,이 책을 좋아하는 분들과 오붓하게 한 자리에 모여서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정면에 두 분이 북앤카페 쿠아레 샘들. 오른쪽 샘이 나왔을 때 출판기념강연회 기획한 마포서강도서관 사서였는데 그사이 북카페를 만드시고 절판기념낭독회까지 열어주셨어요. 책의 시작과 끝을 한 사람과 함께 한 드물고 귀한 인연. 책방에 남은 책 예닐곱권이 그 자리에서 팔림. "친구들한테 선물할래요!" 북앤카페 쿠아레에서 올드걸의 시집 주문한 학인의 인증샷.이렇게 예쁘게 온다네요. 노트까지 한권 끼워서 준대요. 멋을 아는 분들. 제주에서 천혜향 농사짓는 학인이 절판기념회에서 먹으라고 천혜향 한박스 보내주셔서 다같이 먹고 예쁜 비닐에 하나씩 담아가고 그랬네요. 향기로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한겨레 기고 - 반도체 소녀의 귀향 공유프린트크게 작게영화 을 보는 동안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일본군의 (성)폭력으로 인한 비명과 무자비한 총성이 길고 셌다. 무구한 소녀와 잔인한 일본군의 선악 대비, 그 단순한 서사의 프레임은 생각을 몰수하고 통증을 일으켰다. 이런 궁금증이 남았다. 왜 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범하고 죽이게 되었는가. 존재를 침범당한 인간은 또 어떻게 존엄을 추스르고 일상을 살아갔는가.극장을 나와 핸드폰을 켜니 문자가 와 있었다. 내일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세상에 알린 고 황유미씨의 9주기 추모제가 열린다는 내용이다. 아, 은 끝나지 않았구나. 여기에 또 하나의 악이 있고, 또 하나의 기막힌 죽음이 있고, 귀향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소녀상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묵직했다. 이튿날, 서울 강남역..
감응의 글쓰기 5기 수업 합니다 지식협동조합 가장자리에서 하는 수업, 벌써 5기네요. 이번에는 토요일 수업만 있습니다. 3월 5일 개강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