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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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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위도 위에서 / 황지우 지금 신문사에 있거나 지금도 대학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잘 들어라,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지금의 잘 먹음과 잘 삶이 다 혐의점이다 그렇다고 자학적으로 죄송해할 필요는 없겠지만 (제발 좀 그래라) 그 속죄를 위해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이름을 위해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말도 나는, 간신히, 한다 간신히하는 이 말도 지금 대학에 있거나 지금도 신문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못 한다 안 한다 그래도 폴란드 사태는 신문에 난다. 바르샤바, 그다니스크, 크라코프, 포즈난 난 그 위도를 모른다 우리가 그래도 한 줄에 같이 있다는 생각, 그 한줄의 연대감을 표시하기 위해 마루벽의 수은주가 자꾸 추운 지방으로 더 내려간다. 자꾸 그곳으로 가라고 나에게 지시하는 것 같다 산다..
그날그날의 현장 검증 / 황지우 어제 나는 내 귀에 말뚝을 박고 돌아왔다 오늘 나는 내 눈에 철조망을 치고 붕대로 감아 버렸다 내일 나는 내 입에 흙을 한 삽 쳐넣고 솜으로 막는다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나는 나의 일부를 파묻는다 나의 증거 인멸을 위해 나의 살아 남음을 위해 - 황지우 시집 , 문학과지성사 눈에 밟힌다. 그 아이. 내가 살면서 본 뉴스 중에 가장 끔찍하고 가장 가슴 아픈 일이 되었다. 우연히도 요 며칠 나의 화두는 ‘엄마’였다. 아는 선배가 엄마를 주제로 전시를 하고 싶다고 해서, 화가 났던 참이다. 사진을 보고 말했다. “저 중에는 비혼이거나 자식 없는 중년 여성도 있을 거 같은데...” 사람들은 나이든 여자를 다 엄마로 보고 싶어 한다. 나는 어른 남자들이 그저 떠올리기만 해도 애잔하고 죄송스러운 엄마를 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