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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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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 내가 돌아설 때 지난 주 글쓰기 수업을 마치고 여의도에 갔다. 약속한 사람이 MBC 조합원이다. 엠비시 노조는 지금 사방이 화택이다. 파업 80일을 넘기면서 본사 마당에 텐트 치고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동참하는 그와 잠시 나와서 저녁을 들었다. 파업이 너무 길어지고 회사는 요지부동이고 시민은 무관심하고. 내부에서도 업무에 복귀하는 조합원이 생기고 (파업에 합류하는 조합원도 있지만) 회사는 경력직을 채용하여 대체인력을 확보하니까 분위기가 무겁다고 했다. 그 역시 파업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 모르고 약속해 놓은 작품이 있었는데 고심 끝에 파업에 계속 동참하기로 결정했단다. 윗사람과의 갈등이 컸던 모양이다. 불판에 삼겹살처럼 수시로 뒤집히는 마음. 남을까 떠날까를 고민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그동안 같..
문태준 - <가재미> 뒷표지글 비오니까 여러모로 살겠다. 덥지 않아 살겠고, 책 읽기 좋아 살겠다. 철지난 유행가 싱크로율도 100%다. 올만에 이오공감의 김수철 전인권의 를 들었다. 김수철은 훌륭한 가수다. 가사랑 음악과 목소리가 조화롭다. 밤 깊자 빗소리 커튼 삼아 골방모드 됐다. 비교적 행복하다. 긴 원고 한 편 쓰고나니 육신이 고되다. 쓸고 닦고 청소하고 몸도 씼고. 시집이 꽂힌 책꽂이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거기가 내 우물가다. 한 권 뽑아서 아무데나 펴서 읽어본다. 이 어둠, 이 기온, 이 바람, 이 허함에 응하는 시를 제발 제발 만나길 염원했다. 문태준의 가 눈에 들었다. 이리저리 매만지다가 뒷표지글을 봤다. 아, 그랬었다. 그 때 서점에서 이걸 읽고 놀래서 가슴에 포갰었다. 난 아름다운 책을 보면 일단 안아본다. 갖고 ..
작심 / 문태준 '보름은 나를 당신을 부드럽게 설명하는 시간' 모든 약속은 보름 동안만 지키기로 했네 보름이 지나면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다른 데를 보듯 나는 나의 약속을 외면할 거야 나의 삶을 대질심문하는 일도 보름이면 족해 보름이 지나면 이스트로 부풀린 빵 같은 나의 질문들을 거두어 갈 거야 그러면 당신은 사라지는 약속의 뒷등을 보겠지 하지만, 보름은 아주 아주 충분한 시간 보름은 나를 당신을 부드럽게 설명하는 시간 그리곤 서서히 말들이 우리들을 이별할 거야 달이 한 번 사라지는 속도로 그렇게 오래 - 문태준 시집 , 문학과지성사 배우 김영호씨를 만났다. 김영호. 한번쯤은 같은 반이었을 것 같은 아니면 소설에서 주인공 친구로 나왔을 법한 순하디 순한 이름의 주인공다웠다. 훤칠한 키보다 먼저 들어오는 순박한 웃음과 허공을 응시하는 멍한 눈빛에 순간 마음을 빼앗겼다..
어느 날 내가 이곳에서 가을강처럼 / 문태준 엄마가 돌아가시고 첫 생일날에는 아침부터 이를 닦다가 울컥했다. 엄마가 나를 낳고 하루라도 입원비를 줄이려고 바로 그날밤 퇴원했다고 하셨다. 나는 애를 낳고서야 엄마의 궁상 혹은 결단이 실감나서 숙연해지고 말았는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자 나의 출산스토리가 더욱 사무쳤다. 핏덩이를 품에 꼭 싸 안고 어그적 어그적 걸어가는 엄마의 불편한 뒷모습이 떠올랐다. 존재에 대한 연민에 복받쳤다. 저녁에 술을 '진탕' 마시고는 생애 첫 음주-구토를 일으켰다. 그것도 일급호텔 스카이라운지의 하얀 눈밭같은 테이블보에다가. 서울 한강의 야경을 배경삼아. 다음날은 생애 처음으로 원고기한을 어겼으며, 일박이일 간 머리를 바닥에서 떼어낼 수 없었다. 그 후로도 슬픔이 가슴보다 커질 때는 술을 붓는다. 그 술은 마중물이다. 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