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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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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 4장 - 잠언과 간주곡 4장은 짧은 잠언으로 이뤄졌다. 맥락에서 걸어 나온 한줄 문장을 해석하는 건 위험하고 부질없다. 그래도. 울림을 남기는 좋은 문장을 읽고 나누는 일은 아름답고 유용하다. 65. 인식에 이르는 길 위에서 그렇게 많은 부끄러움을 극복할 수 없다면 인식의 매력은 적을 것이다. = 안다는 것은 나의 무지와 편견과 빈구석을 아는 것. 그 손발 오글거리는 쪽팔림을 견디는 것. 자기를 알아가는 투쟁. 그것을 인식의 매력으로 표현하다니 니체는 대인배다. 72. 높은 감각의 강함이 아니라, 지속되는 것이 높은 인간을 만든다. =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구랑은 느낌이 왠지 다르다. 매일 한 쪽씩 글 쓰는 것으로 높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아닌 거 같다. 기계적 반복이 아닌 영혼의 단련 차원은..
선악의 저편 3장 종교적인 것 - 금욕의 두 가지 버전 어디선가 신보다 신앙이 먼저 생겼다는 말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같은 맥락에서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종교보다 종교적인 것이 문제라고. 신의 죽음으로 종교는 사라졌지만 종교적인 것은 여전히 위세를 떨친다는 것, 즉 우리시대에는 도덕, 과학 등이 ‘신 없는 신앙’으로 종교의 기능을 대신한다는 비판이다. 종교적인 것의 어떤 부분이 문제이냐 하면 희생, 금욕 같은 것들의 강조이다. 삶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종교를 위한 삶이 되는 가치전도. “그리스도교적 신앙은 처음부터 희생이다: 모든 자유와 긍지, 모든 정신의 자기 확실성을 바치는 희생이다. 동시에 이는 노예가 되는 것이며 자기 조소이자 자기 훼손이다.” 니체는 종교적인 것을 ‘종교적 신경증’이라고도 표현한다. “거기에는 늘 고독, 단식, 성적 금욕이라는 ..
선악의 저편 2장 - 독립, 가장 위험한 놀이 니체는 심리학자가 아닐까. 니체의 저서를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파헤치고 짚어내고 들춰내는 거침없음에 놀라고, 강자부터 약자까지 그가 제시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간상에 ‘맞아’ ‘아, 그랬지’ 맞장구를 치게 된다. 니체가 높이 평가하는 고귀한 인간에게는 ‘고독’과 ‘독립’이라는 필연적 수사가 붙는다. 고독을 모르는 인간, 독립이 안 된 인간을 ‘평균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선악의 저편 2장 ‘자유정신’은 새로운 철학자의 도래에 대한 니체의 간절한 염원이 읽힌다. 그가 제시하는 고귀한 인간상의 유형 몇 가지만 살펴보자. “정원 같은 사람 - 또는 하루가 이미 추억이 되어버린 저녁 무렵 물 위를 흐르는 음악 같은 사람이- 그대 주위에 있도록 하라: 멋진 고독을, 어떤 의미에서 ..
선악의 저편 1장 - 정지의 철학 vs 운동의 철학 니체를 오랜만에 읽었다. 첫 장을 읽자 다시금 당혹감이 덮쳤다. 어? 니체가 뭐래? 이야기의 초점이 맞춰질 때까지 두어 번을 읽어봐야 한다. 이 대목이 시방 비판인지 옹호인지 조차 분간이 쉽지 않다. 그것은 ‘습관화된 가치 감정’이 피부처럼 들러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니체는 ‘진리를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진리를 의심하라고 “삶의 조건으로 비진리를 용인하라”고 말한다. 또 고통을 피해야할 그 무엇으로 여기는 ‘평균인’의 태도를 비판하는데 니체가 볼 때 진리만큼이나 거짓, 행복이상으로 고통 등이 삶에서 가치와 쓰임을 갖기 때문이다. 니체는 진리처럼 주장되어 온 것들을 모두 파헤쳐 보면 단순한 맹목이나 독단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아주 근엄하고 단정적인 냄새를 풍긴다고 해도 그것은 단..
같은 표현을 두 번 쓰지 마라 접속어 12매 분량을 써야하는 원고가 13매 써졌다. 원고 1매를 줄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두 세 문장을 덜어내는 것도 있지만 글의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접속사’와 ‘반복어휘’ 걷어내기다. 그냥 보면 안 보이는데 고르자고 작정하면 여기저기 박혀있는 접속어가 눈에 띈다 . 접속어가 많으면 글이 딱딱해지고 논리적, 설명적이 된다. 철학책을 생각해보라. 접속어에 자꾸 걸려서 글이 매끄럽지가 않다. 논조를 따라가기 어렵다. 나는 철학책에 한 줄 걸러 등장하는 접속어가 거슬려서 - 안 그래도 내용도 어려운데- 몰입에 곤란을 겪곤 했다. - 이상은 현실을 견디는 진통제다. (그러므로) 이상이 크고 높을수록 어지간한 통증은 다 녹아들어 간다. - 니체는 철학이 비탄의 음울한 구름을 걷어 내..
도덕의 계보 - 망각력 기억증에 대하여 는 그의 사상이 집약된 매우 중요한 저작이다. 그중에서도 제2논문, 기억과 망각에 관한 해석은 내게도 무척 감동적이고 유용했다. 그전만 해도 기억은 우월한 능력(기억력), 망각은 골치 아픈 병(건망증)이었다. 공부할 때나 일할 때나 일상에서 망각신이 강림해서 일을 그르친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 또 정작 악몽 같은 일은 생생히 떠올라 괴로웠다. 그런데 니체는 망각이 단순한 타성력이 아닌 “적극적인 저지 능력”(망각력)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적, 자신의 고난, 자신의 비행을 오랫동안 생각하는 것, 즉 약자의 원한을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강자는 그런 기억에 대단한 망각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예가 미라보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한 모욕과 비열한 행위를 기억하지 못했고, 이미 잊어버렸..
공부하는 삶, 학자적 삶에 대하여 니체 공부하면 행복해져요? 누가 물었다. 순간, 당황했다. 흑마늘의 효능을 묻는 것이나, 요가하면 살 빠지느냐는 질문처럼 들렸다. 단답형의 명쾌한 답변을 해줘야할 것 같은데 확신이 없었다. 니체가 행복의 특효약이라면 이론상으로는 우리나라에 내로라하는 니체전문가들. 번역자들이 가장 행복해야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머뭇거렸다. 난 니체를 읽으면서 행복과 고통을 동시에 느꼈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은 엄청 괴롭고 자학했다. 문장이 난해하고 맥락이 안 잡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가 좋으니까 봤겠지. 어려워서 낑낑대고 열 불나는 ‘스팀현상’이 은근히 중독성 있다. 끝 맛이 달달하다. 어떤 사람이 자기 시대와 전면적으로 대결하면서 세계와 인간을 치열하게 분석하고 자신만의 사상적 결과물을 정리했다는 게 보통 생의 의..
교육자에 대하여 # 교육자는 해방자다 니체에게는 그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 두 명의 스승이 있었다. 쇼펜하우어와 바그너. 니체는 초기저서 세 번째 논문 ‘교육자로서 쇼펜하우어’에서 쇼펜하우어에 대한 애정을 스스럼없이 고백한다. 이는 곧 니체의 스승관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니체는 말한다. 좋은 스승이란 ‘해방자’이어야 한다고. 무엇을 해방시키나? 바로 한 사람을 관념의 감옥에서 풀어주는 것으로, 자신을 직시하도록 돕고 그릇을 키워주는 역할을 해야 참스승이라는 뜻이다. 니체가 여러 대륙을 여행한 사람에게 인간의 공통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게으름과 겁이 많다는 점'이라고 했단다. 이 게으름과 소심함이 문제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자신이 단 한번, 유일무이한 존재로 세상에 존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