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 눈보라

[올드걸의시집]

 

  

원효사 처마끝 양철 물고기를 건드는 눈송이 몇점,
돌아보니 동편 규봉암으로 자욱하게 몰려가는 눈보라

눈보라는 한 사람을 단 한 사람으로만 있게 하고
눈발을 인 히말라야 소나무숲을 상봉으로 내려가 버린다

눈보라여, 오류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

무등산 전경을 뿌옇게 좀먹는 저녁 눈보라여,
나는 벌받으러 이 산에 들어왔다

이 세상을 빠져나가는 눈보라 눈보라
더 추운 데 아주아주 추운데를 나에게 남기고

이제는 괴로워하는 것도 저속하여
내 몸통을 뚫고 가는 사람소리가 짐승같구나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왜 광기인가

뺨때리는 눈보라 속에서 흩어진 백만 대열을 그리는
나는 죄 짓지 않으면 알 수 없는가

가면 뒤에 있는 길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앞에 꼭 한 길이 있었고 벼랑으로 가는 길도 있음을

마침내 모든 길을 끊는 눈보라, 저녁 눈보라
다시 처음부터 걸어오라 말한다

 

- 황지우 시집  < 게눈 속의 연꽃 >, 문학과지성사

 

 

 

아침 출근 길, 눈이 내렸다. 펑펑 쏟아지는 눈보라를 뚫고 지나가면서 '눈보라'가 생각났다.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왜 광기인가...다시 처음부터 걸어오라 말한다...

황지우 오빠께서 낭독하는 시를 듣자니 - 교장선생님 말씀 같긴 하지만 -

시의 다른 구절이 들어온다.

 

'나는 벌 받으러 이 산에 들어왔다'

 

무등산으로 자기 유배를 간 시인이 바라보았을 눈송이들. 하염없는 슬픔과 회한 덩어리였을 그것들.

그러면서도 처음부터 다시 걸어오라는 말을 듣다니. 역시 시인은 이 세상이 절망이라고 말하지만

절망에 파묻히지는 않는다. 절망을 말한다는 것은 절망과의 최소한의 거리가 확보되었다는 뜻이니까.

절망의 끝까지 가서 모든 길이 끊긴데서 만나는 자유가 있을 것이다. 눈보라 같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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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벗고 들어가는 그곳 / 황지우

[올드걸의시집]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시멘트 바닥이든 시커면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위에 신발을 짝 맞게 정돈하고 방에 들어가,

임산부도 아이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뛰어내린 곳에 있는 신발은

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것은 어떤 방향을가리키고 있다

다만 그 방향 이쪽에 그녀가 기른 열대어들이

수족관에서 물거품을 뻐끔거리듯

한번의 삶이 있을 따름이다 

 

돌아보라, 얼마나 많은 잘못 든 길들이 있었는가

가서는 안 되었던 곳,

가고 싶었지만 끝내 들지 못했던 곳들;

말을 듣지 않는, 혼자 사는 애인 집 앞에서 서성이다

침침한 밤길을 돌아오던 날들처럼

헛된 것마을 밟은 신발을 벗고

돌아보면, 생을 '쇼부'칠 수 있는 기회는 꼭 이번만은 아니다

 

 

- 황지우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그날 기분은 아침부터 흐림이었다. 이유는 그냥이다. 존재를 둘러싼 제반 조건이 그러하도록 총체적으로 응결된 상태, 그냥. 식탁에 쭈그리고 앉아서 노트북을 멍하니 바라본다. 한줄 한줄 받아쓰기 하는 아이처럼 신경을 모은 채, 내가 부르고 내가 받아 적으며 원고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 지루함에서 나를 끄집어내듯 전화벨이 울렸다. 그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세미나에 나오지 못하겠다고, 그 사이 아르바이트도 그만 두고 온전히 단편 하나를 써보려 한다고 했다. 조지오웰이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자처했던 것처럼 온갖 육체노동을 섭렵하는 그다. 그에게 노동르포 글쓰기를 준비하면서 몇 가지 자문을 구했었다. 노동체험이 글로 번역되는 어려움이나 쾌감 같은 요소들. 그 물음이 자극이 되었고 덕분에 글을 써볼 마음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에게는 작업계획 공표였지만 나에게는 단기이별 통보였다. 예정에 없던 일이다. 사람이 들고 나는 일에는 아직도 감정관리가 서툴다. 알았다, 좋겠다, 잘해라 얼버무리고는 전화기를 얼른 닫았다. 입술을 앙 다물면서 존재의 중심을 잡았다. 그 흔들림은 단지 늘 친숙하던 친구가 자리를 비웠을 때 오는 공허감이 아니었다.

 

밑도 끝도 없이 어떤 절박함이 바위처럼 눈앞에 드러났다. 어떤 욕망이 내면을 휘저었다. 정확히 대칭으로 그와 존재를 바꿔치기하고 싶었다. 어떻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있는지 모를 만큼 부러움의 파도와 서러움의 파도가 번갈아 나를 덮쳐왔다. 그가 그렇게 했다. 혼자 한 달 간 모든 관계로부터 놓여나 오롯이 글만 쓸 수 있는 상황을, 그의 전화를 받기 전에는 나는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음을, 꿈조차 되지 못했음을 인지했고, 동시에 나의 존재조건을 자각했다. 왜 내 생은 그런 솔루션 자체가 불가능했을까. 30일의 자유와 고독이 봉쇄된 삶을 내가 살고 있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숨처럼 눈물이 삐죽 솟았다. 오밤중도 아니고 오전에 눈물이 나니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침대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주변을 밤으로 만들었다. 어둠으로 도피해야 했다. 욕망에 비틀거리는 내 꼴을 보기 싫었다. 병원침대에 누운 것처럼 온몸이 긴장되었다. 김승욱의 <야행>의 여자를, 한 장면을, 떠올렸다.

 

가령, 그 여자는 포로수용소를 탈출하고 싶어 하는 포로를 상상한다. 그는 철조망의 한 곳이 허술한 것을 우연히 발견한다. 그것을 발견하자 그는 자기가 이 수용소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탈출 욕망이 철조망의 빈틈을 보면서 발생한다는 것. 나의 경우라면 유유히 담을 넘어가는 그의 긴 다리를 보면서 나의 담장의 드높음을 인식하고는 이 수용소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다.  나는 울타리를 넘고 싶었다. 그런데 넘어보기도 전에 넘어지다 다친 것처럼 주저 앉아 울고 있다. 주체에 도사린 타자는 늘 이토록  낯설다.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나이기에. 다시 또 벨이 울렸다. 액정화면을 보니 그녀다. 망설이다가 받았다. 그한테 전화가 왔었다고 얄궂고 서럽고 삐지는 복합감정을 띄엄띄엄 조각내어 터놓았다. 거의 일러바치는 분위기였다. '나도 한달 동안 아무 것도 안 하고 글 쓰고 싶어...'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어찌하지 못하고 괜히 그를 탓했다. 내가 이러는 심정을 그는 모를 거라 했다. 남자는 여자를 모른다는 의미로 확장했다. 아는 게 더 이상하다. 나도 몰랐던 내 감정이거늘 그가 무슨 수로 알까. 자본에 의탁하지 않고 살고 싶은 대로 일상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능력자이다. 어떤 목표에 눈 돌리지 않으면서 존재에 칩거하는 그는, 죄인이 아니다.

 

한바탕 소낙비처럼 지나간 욕망의 난동, 우울의 파동. 슬픔의 상스러움을 초래한 나는, 칠판 지우듯 감정을 지우고 또 살았다. 살면 살아진다. 살려면,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 내면의 풍파가 가라앉고 그도 돌아왔다. 늘 그랬듯이 흐린 미소만 지었다. 소설 잘 썼는지 묻고, 잘 안 써졌다고 답하고. 형식적인 말만 오갔다. 며칠 후 전화로 얘기했다. 단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소설작업에 진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혼한 것도 아니고 취직한 것도 아니고. 현재도 없고 앞날도 없는 자기가 한없이 초라하고 비참하다는 투의 넋두리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백만장자로 보이는 그가 자기는 거지라고 말하는 형국이었다.

 

다 가진 삶의 기준이 결혼, 직장, 아이인가. 그 나름도 실속 있는 삶이지만 단 하나 삶의 모델을 좇아 60억 인구가 한 방향으로 뛰어야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또 직장 다니면서 가정 꾸리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갑갑한 삶을 사는지, 그나마 손에 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두리번거리지도 못하고 삶의 에너지를 다 써야한다는 팍팍한 현실을 상기시켰다. 일찍부터 타협하고 사는 노회한 젊음은 매력없으니, 진짜 소설을 쓰려거든 지금처럼 불안하게 살라고 말했다. 그도 알고 있을 원론적인 얘기를 건네고, 나도 알고 있는 원론적인 말들을 들었다. 수다는 공회전이 본질이다. 전화를 스르르 닫고는 남사스러워서 하지 못한 말은 문자로 띄웠다. 실은 그날 전화한 날, 나 눈물바람 했다고. 자기가 초라하다고 생각하는 삶이 누구에겐 부러워죽겠는 삶이기도 하다고. 쓸쓸한 고백, 아니 수줍은 자백. 황지우 말대로 삶을 한번 쯤 되물릴 수 있는 그곳에 간다면 난 얼마나 다르게 살 것인가. 아파하고 아파하는 이를 알아보면서 이 아픔의 전승구조에 몸을 싣고 아마 지금처럼 살고 있을 것같다. 그것밖에 힘이 없다. 누구나 지금이 존재의 최선이다.

 

 

 

 

 

TAG. 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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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1.20 0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12.11.21 1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유님의 절절한 감정선에 함께 마음 아프고, 그렇게 아픈 중에도 끝없이 일어나는 삶에 대한 통찰에 눈부십니다. 마치 삶의 완성체라는 듯한 결혼, 직장, 아이의 프로세스. 그중 하나를 자발적으로 비선택하고 있어요. 그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주위에서 가만두지 않는) 스트레스에 인간도 삶도 싫어지는 때가 간혹 있답니다. 왜 아니겠어요. 그럴 때마다 은유님의 통찰에 마음 기대고 한번더 한번더 일어나게 될것 같네요- 감사해요^^♡

    • 은-유 [2012.11.21 2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로 표현되면 사람이 좀 반듯해보이는 측면이 있어요.
      저 맨날 쩔쩔매고 엉망이에요. -.-;
      힘이 되신다니 마음이 좋습니다. ㅋ 고마워요~

같은 위도 위에서 / 황지우

[올드걸의시집]

지금 신문사에 있거나

지금도 대학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잘 들어라,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지금의

잘 먹음과 잘 삶이 다 혐의점이다

그렇다고 자학적으로 죄송해할 필요는 없겠지만

(제발 좀 그래라)

그 속죄를 위해

<악으로>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이름을 위해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말도

나는, 간신히, 한다

간신히하는 이 말도

지금 대학에 있거나

지금도 신문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못 한다 안 한다

그래도 폴란드 사태는 신문에 난다.

바르샤바, 그다니스크, 크라코프, 포즈난

난 그 위도를 모른다 우리가

그래도 한 줄에 같이 있다는 생각,

그 한줄의 연대감을 표시하기 위해

마루벽의 수은주가 자꾸

추운 지방으로 더 내려간다.

자꾸 그곳으로 가라고 나에게 지시하는 것 같다

산다는 것은 뭔가 바스락거리는 것인데

나도 바스락거리고 싶은데

내 손이 내 가슴을

치는 시늉을 한다, 시늉만

(내 탓이로다

내 탓이로다

내 탓이로다

하느님, 정말 불쌍합니다)

 

- 황지우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

 

 

정시에 출근하는 직장생활이 이렇게 에너지가 쓰이는 일인지 몰랐던 게 부끄럽다. 미안하기도 하다. 대상은 없지만 그냥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아침6시에 일어나서 밥차리고 애들 등교시키면서 나도 출근 준비해서 나간다. 같이 있을 시간이 줄어든 꽃수레를 학교까지 바래다주고 조금 돌아서 버스정류장에 간다. 마침 쌀쌀한 바람이 부는 지라 둘이 손을 꼭 잡고 걷는데 10분이 채 안 되는 그 시간이 주머니난로처럼 따뜻함으로 꽉 찬다. 버스가 5분 안에 오면 돈이라도 주운 기분이 되고 13분만에 온 날은 하루치 기운이 다 빠진다. 출근시간 잘 지키려고 종종걸음으로 사무실 도착. 무선주전자에 물부터 끓인다. 커피를 하도 진하게 내려 마시니 주간님이 말한다. '오늘도 변함없이 사약 한 사발을 내려주시네요.'

 

그동안 1박2일 전남순천부터 구례, 남원을 돌며 판소리 여행취재를 다녀왔고, 지난 목금에는 안동고택에 다녀왔다. 틈틈이 인터뷰를 3건 했다. 일주일 안에 경상도로 전라도로 차에 타서 부릉부릉 댕겨왔더니 꼭 통돌이세탁기 안에서 돌아가는 느낌이다. 정신 어지럽다. 나는 생전가야 차에서 잠드는 법이 없는데 꾸벅꾸벅 졸다가 깨면 휴게소이곤 했다. 취재는 그렇게 했는데 원고는 한 편도 못 써서 지금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다음주부터 써야한다. 나야 워낙 싸돌아다니기를 좋아해서 일이 크게 힘들지는 않는데 취재주기를 직접 조절할 수 없어서 당황스럽다. 내 방 책상이 아닌 사무실에서 원고를 쓴다는 것은 또 어떤 기분일지 모르겠다.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지난주에는 병원을 두 군데나 갔다. 애 낳을 때 빼고 병원에 거의 안가는 걸 고려하면 나한테는 상당히 위협적인 상황이다. 아프지 않기 위해서 집에 오면 무조건 잔다. 아이처럼 10시도 안 돼서 눕는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다가 당기고 있노라면 꼭 기계같다. 다음날 쓰기 위해 핸드폰을 충전하는 것처럼 나도 빨간불이 들어온 몸에 힘을 모은다. 초록불이 되기 위해 잔다. 지금 바람이나 목적은 하나다. 성공적인 존재변이. 일이 밀려오는 속도에 휘청거리기도 하지만, 글쓰기수업을 병행하느라 힘든 것일 뿐 일 자체가 부담스러운 양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우려도 든다. 주간님은 이상적인 에디터의 상을 갖고 있고 내가 원더우먼처럼 그것들을 척척 해주길 바라는 거 같다. 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는 않겠지만 나에게 맞는 에디터의 상을 만들어나갈 수밖에 없다. 그 서로 다른 감각의 결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관건이다.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글을 쓰지 않고 싶었는데, 꼭 그러고 싶었는데 나는 지금 기업의 VIP매거진을 만들고 있다. 기업임원들과 전문직 남성들이 보는 책이다. 대체로 권위적이고 마초적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기에 내가 싫어하는 집단인데 딱 걸렸다. 예전같았으면 실망하고 따졌을 크고작은 가부장적 혐의점에 눈 감는다. 바스락바스락 거리지도 않고 납작 엎드려 일하는 내 꼴이 불쌍하기도 하다. 군소리 말고 편집일을 배워서 다른 좋은 책 만들어야지, 지금은 그렇게 궁색한 논리로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다. 현실의 부조리한 체계를 인식하면서도 결국 그것에 안착하는 자가 되어버릴까봐 겁난다. 어제 잠시 연구실에 들렀는데 그가 그랬다. 어떻게든 살아남으세요. 살아남는다는 말이 그렇게 적절할 수가 없다. 예전에 택시타면 있었던  '오늘도 무사히'라는 글귀가, 새삼 삶의 슬로건으로 와닿는 요즘이다. 오늘도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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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구마구 [2012.11.05 0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요. 오늘도 무사히 보내야죠. 다들 모종의 합의가 있는거 같아요. 적당히 눈감고 적당히 타협하며 일하는거죠. 그거 안하면, 성격이 안좋다는 낙인과 함께 그 업계를 떠나야되는거죠. 지금, 대학이나 신문사에 남아있는 사람들 모두들 알지만 입밖으로 내지 않는 사실이요. 일해서 보수를 받고 그걸로 내 생계를 꾸린다는 간단한 삶의 방식도 적당히 눈감는 타협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세상이네요.ㅜㅜ.

  2. 게꿀 [2012.11.05 2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은 힘들겠지만 점차 적응이 되겠지요. 밥벌이를 위해 삼십년을 그렇게 산 사람도 있는데..ㅎ
    인간을 고통에서 일어서게 하는 것은 타인의 위로가 아니라 유기체로서 스스로의 생명력이라고 한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이 떠오릅니다. 힘내시길...

  3. 침묵 [2012.11.08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죠?

    쓰신 글에 공감합니다. '오늘도 무사히'와 직장생활, 이라는 대목이요.
    회사는 주말이다, 야간이다, 이런거 없어요. 그냥 생계를 위해 부단히 참는 일 뿐.

  4. 지오 [2012.11.08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 직장생활할 때 떠오르네요. 저도 출장이 잦아서 맨날 사장님 옆에서 졸곤 했지요. ㅠㅠ
    월요일에 얘기를 많이 못나눠서 아쉬웠어요. 사실 그 날 오전에 나눔의 집에 다녀왔는데 요즘은 거길 갔다오고 나면 마음에 더해 몸까지 아파요. 계속 생각이 나서 좀 힘든 상태였어요~ 저는 할머니들과 연이 많은 가봐요 -.-암튼... 샘!!! 오늘도 무사히^^

  5. 연초록 [2012.11.09 0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금요일 아침 집을 나서기 전에 이 곳에 왔더니 변한 은유씨 일상이 마음 아프도록 선명히 적혀있군요.

    살아간다는 일의 무게가 실감나는 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속에서 배워서 새로운 길을 개척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일까요? 출구가 없는 사람들에 비하면 다이죠부 (갑자기 일본어로 -괜찮다) 혼자서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보람이가 생각납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려니 이제는 휴대폰도 꼴 보기 싫을 때가

    있더라고요. 그 말이 가슴 아프기도 하고, 이렇게 보람이도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일까 중간은 없나

    마음이 쓰이던 ...

    • 은-유 [2012.11.09 2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컴퓨터가 기를 다 뺏아가죠. 저도 책종이보다 모니터를 많이 보는 날은 영혼이 시달리는 느낌 들어서 불행해요. 보람씨 말이 짠하네요.;
      연초록샘 일본어가 신선한 위안이 됩니다^^ 다이죠부?!

  6. hyde [2012.11.13 2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니 화이팅!!!!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다 지금 택시타고 퇴근중입니다 정말 휴대폰도 빨간불 깜빡 나도 깜빡깜빡...

김기덕<아멘> 신적인, 시적인, 선적인

[극장옆소극장]

영화가 끝났을 때 가슴이 아렸다. , 신음 같은 감탄사가 터졌다. 심오한 내용을 잘은 이해하지 못해도 아름다운 건 알겠는 기이한 체험. 신이 보이고 삶이 보이고 김기덕이 보인다. 제목이 <아멘>이다. 여주인공이랑 둘이 프랑스에서 만든 로드무비인데 대사가 거의 없다. 글씨 없는 그림책 같은 영화다. 한 시간 반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만큼 스크린이 회화적이다. 크레딧도 달랑 세 줄. ‘감독 김기덕’ ‘배우 김예나’ ‘촬영 김기덕 김예나그리고 END. 이건 거의 묵언수행이다. 김기덕이 열반에 들었구나, 그렇게 결론내렸다. 아무려나, ()적인 것이 신()적이고 시()적이기까지 하다.


사실 김기덕의 영화를 끝까지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수년 전부터 그의 작품을 보려고 시도하다가 끔찍한 장면에서 그냥 꺼버리곤 했다. 미장센은 지독히도 아름다운데 상상초월 날 것의 장면에 눈 맞추기 힘들었다. 영화가 고행이자 고문이므로, 나는 눈 돌렸다. 그런 내가 변한 건가. 제아무리 영화가 끔찍해도 삶의 냉혹함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삶의 엄정함을 극단까지 밀고 나가는 김기덕이 새삼 위대해 보인다. 어느 평론가의 지적대로, 창녀가 여대생이 되는 허구적 설정으로 스토리를 치장하지 않는 점이 훨씬 윤리적인 것 같다.

이것은 시를 읽으면서 느낀 변화이기도 하다. 김수영은 삶의 절망을 또렷이 직시한다. 관념적인 언어로 덧칠하며 쉽게 화해하지 않는다. 삶에 가득한 모순과 역설을 끝까지 끙끙 앓으면서 가져가는 것. 그 노력. 그 사랑. 그 눈물겨움. 그것에 뜨겁게 위안 받는다. 언제부턴가 그런다.

다시 김기덕. <아멘>을 보고 나니 존경스럽다. 인생수업을 마치고 다른 층위로 등업한 자의 내공이 느껴진다. 어떻게 저렇게 깊게 군더더기를 제거해버리고 삶의 정수를 담아낼 수 있을까. (나의 짐작이지만 칸느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을 것만 같다.) 나이 들면서 깊이를 더해가는 예술가를 경험하면서, 무엇이 한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가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배신이 아닐까. '배신을 통한 성장' 아직 못 봤는데 <아리랑>에는 김기덕의 품을 떠나서 자본의 품으로 가버린 장훈감독에 대한 실명비판이 나온단다. 살기등등하다는 후문.

몇 년 전, 김기덕이 유명해졌을 때 본 인터뷰가 기억난다. 초년고생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이다. 그림을 잘 그렸고 파리로 떠났다. 거리의 화가로 돈 벌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우리나라 미술계가 학력카르텔이 공고해서 실력을 인정받을 수 없겠다싶어서 방향전환했단다. 시나리오를 썼다. 어떤 공모에서 입상해서 가능성을 확인하고 쓴 다음 작품이 <악어>다. 그 시나리오는 누구를 도저히 주기가 아까워 본인 스스로 감독까지 하게 됐다는 얘기였다. 비주류로 살아가면서 자기만의 작품을 구축했고 세계 3대영화제 상을 받은 유일한 감독인데, 배신사건 이후 폐인 됐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실제로 현재 김기덕의 모습은 봉두난발 흰머리 흩날리는 야인 혹은 도인의 아우라가 물씬했다.

어디 제자의 배신뿐이겠는가. 영화필모그라피와 함께 상처도 첩첩 쌓였을 것이다. 고통을 통한 앎의 증대가 일어났으리라 짐작해본다. 사람에 대한 환멸을 느끼면 기존의 가치관이 다 무너진다. 그 사건을 중심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려면 다른 가치와 다른 언어를 발명해서 나의 세계관을 재구성해야 한다. 그 전전긍긍과 암중모색은 사유의 지평을 넓히고 인간적 성숙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황지우도 그랬다. 87년 승리 이후 양김 분열로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고 이에 좌절한 그는 무등산으로 숨어버린다.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 이 늙은 낱말들 앞에 기다리기만 하는' 초조한 삶을 견디며 시를 쓴다. 그렇게 나온 <게눈 속의 연꽃>을 지난 주 시세미나에서 읽었는데, 김기덕의 <아멘>에서 황지우의 선적인 것이 겹친다.

시집의 첫 시가 <>이다. ‘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가다보면 길이 거품이 되는 여기/ 내가 내린 닻, 내 덫이었구나로 끝난다. 닻이 덫이 되는 삶의 잔인함이 섬뜩하다. <눈보라>에서 이제는 괴로워하는 것도 저속하여 / 내 몸통을 뚫고 가는 바람 소리가 짐승 같구나이런 구절도 있다. 영화 <아멘>에서도 짐승 같은 바람소리가 줄곧 난다. 무엇보다 황지우의 시적 절정은 <산경>의 마지막 구절이다.

...
그러므로
, 길 가는 이들이여
그대 비록 악惡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약藥과 마음을 얻었으면,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 

황지우가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니까 김기덕이 아멘'이라고 화답하는 것만 같은 시구다. 삶이 배신당하는 장소에서 자기성찰이 싹트고 수작이 태어난다. 황지우가 그렇고 김기덕이 그렇다. '크나큰 사랑으로 사랑하고, 크나큰 경멸로 사랑하라(니체) 했거늘, 예술가의 고통이 대중에게는 기쁨이 되니,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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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푸리 [2011.12.03 0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김기덕의 영화와 황지우의 시를 닮기에 아주 꼭 맞는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저도 글쓰기의 최전선에도 맨몸으로 나서서 버텨 보고 민망함을 무릎 쓰고 시 세미나에도 두꺼운 얼굴을 들이밀었을텐데...... 정말 얼마나 아쉬운지요..ㅠㅠㅠ

    조금씩이나마 은유님의 글을 읽으며 혼자서라도 글 공부를 해보려고 해요.. 은유님이 글을 정말 잘 쓰시긴 하지만 다른 유명한 작가분들도 많으신데 이상하게도 저는 은유님을 통해서 글쓰기를 느껴보고 살아보고 공부해보고 싶었어요. 글쓰기 강의를 시작하시기 전에도 말이죠.. ^^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 은-유 [2011.12.03 2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뭔가 기분이 좋아집니다. ㅎㅎ 지푸리님과 함께하지 못해 저도 아쉽네요. 후기라도 꾸준히 올려서 느낌공유하도록 할게요. 지푸리님도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로 마음을 풀어내보세요.^^

  2. 마구마구 [2011.12.04 1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기덕 감독... 사실 꿈에 나타날까 무서운 사람인데.^^;; 은유님 글을 읽으니 이번에는 보통사람이 끝까지 볼 수는 있는 영상인가보네요. 신적이고, 시적이고, 선적이기까지... 영화 내용은 어려운듯하군요^^;;

  3. 연초록 [2011.12.06 0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도 제겐 김기덕은 열지 않고 있는 문이랍니다.

    왜냐고 물어도 뭐라고 딱히 답하기 힘든

    그런데 글읽으러 들어와서 황지우 시에 마음이 움직여서 오랫만에 그의 시를 읽습니다.

    묘한 기운이란 이런 때 쓰는 말인가 보네요.

    오늘 기분좋은 일 한가지, 처음에 바이올린 시작하기 전 덜컥 악기부터 사기 곤란해서

    아는 분에게 빌려서 썼습니다 .그 뒤에 계속 하겠다는 작정을 하고 연습용 악기를 구했지요.

    그런데 마침 피아노치면서 바이올린을 배워야 작곡을 하는 기본을 제대로 배울 것같다는 제자가 있어서

    바이올린을 소개해서 살 수 있게 하려고 그 분에게 연락하니, 자신은 이미 조금 좋은 악기로 바꾸었으니

    그런 뜻으로 악기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선물하겠노라고, 그리고 그 아이가 다시 조금은 좋은 소리로

    바꾸는 경우 또 새롭게 시작하는 아이에게 선물하면 좋겠다고요. 갑자기 기분이 따뜻해지면서


    아, 나도 언젠가 지금보다 좋은 소리의 악기로 바꾸게 되는 날이 오면 그런 선물을 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연습하는 시간이 더 좋아지더라고요.

    • 은-유 [2011.12.06 2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기덕은 자기가 자기자신에게 하나의 과제인 인물 같아요. 영상으로 풀어내는 열정이 있고요. (바이올린 선물은 니체가 말하는 강자의 도덕에 충족하네요. 자기의 넘침이 곧 베품이 되는 ^^)

  4. 삐삐 [2011.12.06 0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기덕 감독의 초기 영화들이 좀 험했지 2000년대 후에 만들어진 영화들은 선적인, 혹은 초현실적주의적인, 혹은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패치워크를 쓰는 여러가지 형태의 영화들이 만들어졌었어요. 한국의 관객들과 비평계가 모두 그를 막아놓고 있던 상황이 전혀 이해가 안되더군요. 무엇이 그렇게 한국의 여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지요?ㅎ 김진숙씨의 책도 두려워죽겠다고 하니까 트윗터에 심지어 김진숙씨가 제 책 보지 마세요 라고 까지 여러번 호소하시는 것을 읽고는 할말을 잊기도 했습니다만 김기덕씨의 영화를 두려워하는 이유와 관련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정규 교육과정을 밟지 않은 사람들이 책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강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그들과 문을 단단히 닫아걸어야 하는데 열려져 있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파시즘 증후군이 중산층의 기저 심리까지 무의식층에 침투되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저는 김기덕씨의 영화들을 한 70퍼센트 정도 보았지만 한국의 박찬욱감독의 폭력적인 영화, 살인의 추억이나 어머니를 만든 감독, 갑자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만 그런 유명한 감독들의 영화보다 더 보기가 쉬운 편이었습니다. 폭력을 다루는 방식, 농촌을 범죄가 엉겨있는 소름끼치는 공간으로 대상화시키는 영화들이 매우 무책임하고 위험하다는 생각때문이었어요. 그들에 비해서 김기덕 감독이 유별나게 두렵게 느껴지고 소외당하는 감독이 된다는 사실이 분명 한국적인 사회현상이 되니까 영화를 통해 사회를 분석해 보는 분들에게 분명히 논문 주제가 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론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두려워하지도 않고ㅋㅋ 그리 좋아하지도 않지만 나쁜남자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나요. 주인공 남자의 입장에서 그려불 수 있는 환타지의, 인터렉트의 극치이죠. 악을 이용해서 악을 수단으로 고통스러움을 너머 초월적이고 해방적인 사랑을 이루어나간다는 철학적인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나쁜 조건의 남성의 입장에서 상상에 오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수 있었던 나쁜 남자가 되는 길이요. 당시 여성주의자들이 기절을 했지만 방어가 되는 것 같았어요. 창녀가 되는 여대생이 창녀가 되어 그 남자와 길의 삶을 살지 않았더라면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그 나쁜 남자가 해방시킨 여성의 해방성도 생각해볼 만한 거였고요. 물론 도발적이고 비도덕적이지만 그 도덕성 이면에 나쁜 조건의 남성에게 최선은 나쁜 남자를 면할 수는 없다는 극치의 현실성을 놓칠 수 없었고요. 위의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선적으로 시적으로 나가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보다는 과거의 영화들이 주는 의미들이 더 와닿는 면이 있어요. 마찬가지로 홍상수감독의 영화도 점점 우디알렌 식이 되어가는 하하하 전후의 영화들보다는 좀 더 거칠지만 풋풋했던 영화들이 더 살아있는 맛이 나고요.ㅎ 아마 옛것을 찾고 있는 나이든 사람의 이야기로 들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먹으면서 성장하는 감독의 영화로는 에릭 로머의 경우를 저도 젊어서 느낀 적이 있어요. 초기 그의 영화들이 물론 인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젠더관계에 문제가 많은데 나이들수록 훌륭하게 극복하고 성숙해 가더군요, 생각과 경험, 성찰이 더해지면 당연해지는 거겠지요. 그외에 좋은 비평가들의 환경도 무시할 수 없겠고요. 위의 영화는 열리면 보겠습니다. 대략 김기덕감독 영화는 다 보는 편이니까요.

    그리고 참고로 다음의 미지나라는 블로그와 네이버의 늙은 소투라는 블로그를 소개해 드릴께요. 방사능문제에
    관한 중요한 기사들과 내용등을 올리고 있는 고마운 분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녹색당 창당 움직임도 있는 것 같더군요. 방사능 문제에 대한 국가에 대한 국민소송을 준비중인 것 같아요. 제가 그쪽 소식을 잘 모르지만
    전 세계적으로 방사능 문제는 큰 위험으로 다가와 있기 때문에 각 지역에서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프랑스에도 그린피스 운동원들이 여러 지역의 원전에 침투해서 몇 분에서 몇 시간까지 잡히지 않고 내부의 원전에 진입하는 성공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정부가 테러에 대한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해온 거짓말을 완전히 벗겨낸 기습행동이었지요.

    알본의 기사들은 읽게되면 너무 힘들어져요. 오염된 흙과 쓰레기를 한국에서 환경부가 주도해서 수입해서 한국에서 쓴다는 기사, 후쿠시마 쌀로 만든 라이스 버거를 베트남에 수출한다는 기사, 한국에 물론 일본 음식과 제품은 다 들여오고 있는 상황, 기타등등.. 이요. 원전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 후쿠시만 이백만 시민들이 겪는 이야기는 이루 말할 수 없고요. 동경의 오염도는 이미 나올 거 다 나온 정도이고 이미 후쿠시마의 녹은 핵원료는
    자체 보호 시멘트와 강찰막을 뚫고 땅으로 가라앉은 상태인 것 같다는 말도 나왔고요. 차이나 신드롬이라는 거지요. 이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세계 미디아는 많은 것을 없는 듯이 하고 있고요. 프랑스도 절대로 예외가 아니고요. 그래도 대선에서 원전 이슈가 매우 큰 이슈가 되어있기 때문에 매매일 많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가지 희망은 일본의 원전이 매우 빨리 완전히 멈출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에요. 현재 11기만 가동하고 대부분 멈춰있는데 내년 봄에 나머지도 다 멈추리라는 말도 나옵니다. 이게 아주 신통한 이야기에요. 독일에서 멈추기로 결정하는데 30년 논쟁과 결정하고 이십녀 이후 와전 멈추는 시나리오가 나와있고 프랑스는 그나마 줄이는 이야기로 싸움이 시끄러운데 현재보다 25퍼센트 겨우 줄이는데 35년 잡겠다느니 이런 시간관을 갖고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별로 크게 논쟁이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서 일년도 안돼서 재빨리 원전을 거의 닫아걸고 그런대로
    살아나가고 있는 일본이 정말 기적같은 곳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사회가 살아가는 방법은 비밀에 가려진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곳 같기만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식간에 원전을 다 멈춰버릴 수만 있다면ㅎㅎ 세상이 너무 복잡해지고 위험해져요. 여기에 애낳고 사는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 없는 거겠고요.

    • 은-유 [2011.12.06 23: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같은 경우는 초-중기 영화에서 나가 떨어진 경우;;ㅎㅎ 나중에 다시 한번 보고 싶어졌어요. 김기덕 영화와 김진숙 책이 주는 어떤 불편함..잔혹극같이 끔찍한 면이 있죠. 사회학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ㅋ (원전문제 의견 감사해요. 안그래도 저희도 심각성을 공유하고 있고 계속 얘기중이에요. 다음주 위클리에서 다루기로 했어요.)

  5. 나무다 [2019.01.15 2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끝까지 밀어붙이면 ......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
    감독의 방독면이 모두의 방독면.

그날그날의 현장 검증 / 황지우

[올드걸의시집]


어제 나는 내 귀에 말뚝을 박고 돌아왔다

오늘 나는 내 눈에 철조망을 치고 붕대로 감아 버렸다

내일 나는 내 입에 흙을

한 삽 쳐넣고 솜으로 막는다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나는 나의 일부를 파묻는다

나의 증거 인멸을 위해

나의 살아 남음을 위해

 

- 황지우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눈에 밟힌다. 그 아이. 내가 살면서 본 뉴스 중에 가장 끔찍하고 가장 가슴 아픈 일이 되었다. 우연히도 요 며칠 나의 화두는 엄마였다. 아는 선배가 엄마를 주제로 전시를 하고 싶다고 해서, 화가 났던 참이다. 사진을 보고 말했다. “저 중에는 비혼이거나 자식 없는 중년 여성도 있을 거 같은데...” 사람들은 나이든 여자를 다 엄마로 보고 싶어 한다. 나는 어른 남자들이 그저 떠올리기만 해도 애잔하고 죄송스러운 엄마를 호명하는 게 싫다. 남자 작가의 책머리에 어머니에게 바친다를 볼 때도 기분이 별로다. 측은지심으로서의 엄마. 그 연민의 대상으로서의 엄마에게 늘 그 자리에 있어달라는 무의식적인 욕망이 느껴진다. 또한 엄마가 그렇게 헌신적이기만 한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엄마의 자식사랑이 지독한 광기로 변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식을 나 몰라라 방치하고 학대하는 엄마도 있다. 별별 엄마의 행태를 은폐하는 헌신하는 모성으로의 일반화. 그런 신파는 위험하다. 엄마 자체는 아름답지 않다. 그러므로 엄마를 찬미하기 전에 어떤 엄마이어야 하는가를 질문해야한다고 생각을 정리해나갔다 

그러다가 그 아이 기사를 접했다. 엄마를 살해하고 8개월간 방치한 고3 아이로 나온다. 억장이 무너졌다. 아이가 느꼈을 공포감, 외로움이 산사태처럼 덮쳐왔다. 8개월이면 아이 혼자 지내기는 길다. 밥은 어떻게 먹었을까, 옷은 혼자 빨아 입었을까, 밤이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다 통째로 8개월이 떠밀려왔다. 엄마를 살해하기 전날 12시간 동안 골프채로 맞았다고 하니 내 뼈가 다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7세부터 폭력을 일삼던 엄마란다. 홍두깨로 때리고 물건을 던져 머리에 피가 철철 나기도 했다고 아빠가 증언한다. 엄마에게 잘 보이려고 초316시간을 책상에 앉아서 공부했다는 대목에서 경악했다. 3이면 우리 딸아이 나이다. 이제 열 살. 너무 작다. 그 엄마한테 맞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치던 아이가 자라 고3이 되었고 봉합해두었던 상처가 터져버렸다. 아이는 자기가 죽지 않기 위해 칼날을 돌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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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초록 [2011.11.26 0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아이의 기사를 읽은 날부터 머리속에 엉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아이뿐일까요?

    요즘 새로 만나고 있는 6학년 남자 아이가 심란한 얼굴로 말합니다. 선생님 다음 주에는 수업 못 와요

    왜? 기말고사인데 평균 95점이 못 나오면 엄마가 집에 들어오지 말래요

    엄마가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니? 진짜에요

    그 아이의 책가방안에는 그 아이가 풀기에는 상당히 어려워 보이는 문제집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아주 오랜 세월 영어를 배웠다는 것 치고는 너무 실력이 모자라는 아이로 미루어짐작하건데

    그 아이에게 95점은 꿈의 점수가 될 확률이 너무 크더군요.

    악소리가 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사는 일이 점점 무거워지는 느낌입니다.

    나 혼자 매일 매일이 새롭다고 즐거워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 은-유 [2011.11.27 14: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엄마한테 말해야하는 게 아닐까싶네요. 참 아이를 가장 모르는 사람이 엄마같아요. 슬픈 일이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매일매일 고민이에요.ㅜㅜ

  2. 삐삐 [2011.11.26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엄청난 일이 있었군요. 아동학대에 관계하는 모든 분들이 그 누구든 이 청년을 도와주어야 할 것 같아요. 고등학교 삼학년이 될 때까지 그렇게 학대를 받으면서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니 절망스럽습니다. 학교의 선생님들도 이웃도 친척들도,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요. 교육청 학생 인권조례가 나왔다고 하는데 가정인권조례도 포함되어 있는지요? 집에서 인권을 침해받는 아이들은 경찰서에 학교에 그런 가정폭력을 알리도록 꼭 교육시키도록 교과정에 포함해야 하고요. 집밖이건 안이건 체벌과 폭력은 근절되어야만 하겠고요. 그런 아동보호법이 제대로 작용될 수 있다면

    자식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보다 유치장 신세를 좀 지는 편이 그 어머니의 삶이 이어지고 행동에 반성의 기회를 주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고요. 그냥 세월이 좀 흐른 후 보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었을겁니다.

    지난 여름에 70년대 초 티비용으로 만든 영화여서 비개봉이었던 화스빈더의 영화를 극장에서 첫 개봉해서 본 적이 있어요. 주인공 젊은 남자가 감옥에서 정신과 의사와 대화하면서 범죄까지의 과정을 훒는 것이 영화의 구성이었습니다, 디프레스된 엄마에게 항상 꽃을 주고 미장이인 자신의 기술로 부모님에게 집을 지어주고 더없이 착한 외동아들입니다. 결혼하고 아내에게도 자상하기 그지없고 건설노동자로 일도 열심히 하는데 삶이 꼬입니다. 이유는 그의 착하기만 한 천성과 대척점 아버지의 극도의 이기성, 삶의 조건인 자본의 배경이 맛물리는 데서 순간적으로 주인공이 살인를 저지르게 되요. 아이러니를 통해 진실을 날카롭게 부각하는 영화였어요. 화스빈더의 지성과 감각이 아니고서는 파헤치기 힘든 인간 내부의 고통적 비극, 가까운 관계가 조건지어나가는, 그렇게 엔지니어되는 폭력을 그의 스타일로 해부하고 있었습니다. 위의 소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나은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그래도 너무나 고통스러운 건데요.

    꼭 이런 일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주변에서 힘들지만 이런 비슷한 상황을 보게 되면 간섭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물학대도 마찬가지 차원이고요. 저는 꼭 간섭하는 편이라 간섭을 생리적으로 싫어하는 프랑스 사람들에게도 꼭 경고를 주고, 때론 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공원에서 큰 장면까지 만들며 대단히 극적인 상황까지 연출하적도 있어요. 주로 동물학대 비슷한 경우에 돌아버리게 만드는데 아동학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리라 생각합니다. 모두가 간섭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개인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제대로 입법하고 관찰 주시 하는 것이 사회공동체가 제대로 돌아가게 되는 조건이겠고요. 모든 것을 가정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섞은 것인지 이젠 눈을 뜰 시점이 되었다고도 봅니다.

    무상교육 외쳐야지요! 아무리 사교육에 돈을 퍼 넣는다해도 공교육만큼은 무상이 되어야겠지요! 일반 고등학교에서 그렇게 큰 돈을 받는다는 것은 미국도 하지 않는 일로 알고 있습니다. 단지 미국은 지역의 개인 수입의 비례에 따라 교육세를 걷기 때문에 무상 교육인 공교육 일반 고등학교라도 재정이 든든한 부자 지역 고등학교는 시설이 좋고 빈민지역에서 낮은 수입에 비례해서 적은 재정에 운영되는 공교육학교는 매우 시설이 부실한 것이 문제지요. 하지만 부자지역이든 빈민지역이든 공교육 고등학교까지 등록금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적인 가치를 그토록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면서도 적어도 미국에서 하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실천하려고 하지 않는 이중잣대는 뭔지요. 숙련공, 기술자 수입이 대학 선생들의 수입과 비교해 개인들 간의 차이있지만 직종간 차이가 없는 점이요. 정신노동자와 육체노동자간 임금에 큰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적어도 99퍼센트들 사이에서는요,ㅎ 또 유럽에선 꿈도 꿔볼 수 없는 훌륭한 공짜 지역 도서관 훌륭히 운영되기에 적어도 개인이 돈받으면서 운영하는 사도서관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 다는 아니지만 많은 사립대학이 도서관을 일반에게 개방하는 것등, 미국에서 운영되는 좋은 것들에는 보수신문들이고 보수들 모두 왜 일체 침묵하는지 지적해야 하겠지요. 세금을 제대로 낸다면 사실 기부란 것의 의미가 별로 중요하지 않겠죠. 이것은 매우 미국적인 사고입니다. 기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요. 세금에 의해서 거의 운영되는 유럽의 거의 공짜 대학에서는 기업 기부가 근년 교육 개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금지 되었습니다. 연구에 사적 기업의 이해관계를 배제한다는 이유지요. 공과 사의 이해를 이처럼 갈라오긴 했지만 조금씩 밀려가고 있긴 하지요. 전세계적 흐름을 타고 가는 방향이지만 이젠 거센 저항을 만나게 될겁니다. 구석구석 불균형적 삶이 주는 피폐가 넘쳐나잖아요. 입법이 필요한 것은 입법이 되도록 노력 하고 주시 관찰하고 간섭이 필요할 순간에 접할때 물러서거나 눈갑지 않는 직면의 태도가 진짜 자신이 살아남는 길일 겁니다. 아마 그런 이유로 황지우시인의 시를 좋아해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김수영씨의 시들을 좋아할 수 없었던 것 같고요. 푸쉬킨의 시, 예언자와 같은 기상을 기대하지도 않고 대단히 성숙을 일깨우는 지성이 넘치는 시를 기대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자기 연민의 시는 써주지 않았으면 해요. 그 남성시인들보다 거반 까무러치는 상황의 개인들 수없이 많지만 자신들 연민에 빠져있지 않는데 아무런 외부에 대한 공감의 시선을 드리우지도 않으면서 쉽게 비추는 자기 연민이 괴로와요.
    위의 소년이 필요했던 것은 먼 시간 전에 어머니를 향해 맞은 순간 뺨을 한대 세게 날려야 했던 건지도 모릎니다. 하지만 소년은 시인이 아니었겠지요. 시인이라면 그런 직면의 용기, 어둠과 범죄에 그대로 직면하는 불붙는 언어, 그런 기라도 세워야 하는 겁니다! 아니라면 그 범죄를 다 뒤짚어까는 아이러니를 드러내거나, 혹은 비트는 유머라도 써줘야죠, 아닌가요?

    • 은-유 [2011.11.27 14: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소년이 어릴 때부터 매에 길들여져서 반항도 못한 거 같아요. 아빠도 가출하고 엄마랑 둘이 사는데 공부 못하면 안 먹고 안 재우니까..살기위해 엄마를 속이고 복종했겠죠. 학교에서 성교육하듯이 부모학대도 신고하도록 교육시켜야죠. 우리나라는 아이고 어른이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충족 기반이 너무 취약해요..

  3. 마구마구 [2011.11.26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엄마도 아픈사람이었겠죠. 겉모습은 나이 든 어른이고 가학적인 엄마였겠죠. 하지만 그녀도 보살핌과 치유가 필요한 미숙한 자아를 가졌을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들에게 물려준 그녀의 폭력성은 어디서 왔을까요? 남편과 다른 가족은 왜 그녀를 방치했는지. (사실, 범죄사에서 존속살해. 비속살해(영아살해)는 소위 '전통적인 범죄'라고 할 정도예요. 특이한 현상은 아니라는 거죠. 농경사회는 존속살해를 엄격히 처벌하고, 유목사회는 비속살해를 중하게 처벌하는 경향이 있었대요.)

    • 은-유 [2011.11.27 15: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픈 사람이죠. 병든 엄마가 아들을 병들게 했고요. 외가친가 모두 저 엄마랑 연락을 끊고 살았다니 더 아이에게 집착했던 거 같아요. 존속살해가 전통범죄군요. 이 무슨 악연인지..영원히 살 것도 아니면서 인간이 왜 이러고 살아야하는지 모르겠어요. 인간이, 생이 끔찍해요..

  4. 민아 [2011.11.28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그 사건이 자면서도 생각나더라. 면회까지는 아니더라도 편지라도 한통 써주면 그 아이가 여생을 사는데 힘이 되겠지. 요샌 우연히 티비를 틀면 다 그런 내용이네. 사랑인줄 알고 체벌을 계속하다가 법원에서 접근금지당한 아빠얘기가 나오더라구. 그렇게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갖게되겠지만 그 아빠는 아직도 자신의잘못을 모르더구나.부모는아이를 잘 모르지만 아이들은 부모를 어렸을때부터 태양처럼 바라보기때문에 더 잘 아는것 같애. 엄마는 몰라 엄마는 나를 죽일거야. 거의 정당방위에 가까운 판단인거지.. 다들 남의 얘기가 아니듯이 아파하는 것 같애. 그게 희망이라면 희망이겠지.

  5. [2011.11.28 2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2014.11.27 2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지엄마를 찌르는 건 정상적인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닙니다 감성팔이가 좀 심하네요 고통 당하면 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엄마에게서 물리적으로 떨어질 방법을 강구해야지..사람을 죽입니까? 부모를?

논 / 황지우 '살고싶다 별안간'

[올드걸의시집]

 


큰비 물러간 다음, 논으로 나가 본다

창평 담양 일대의 범람이여

논은 목숨이다

농부님은 이 숨 넘친 水平에서

자신의 노동을 뺀

생산비 이하의 풀포기들을 일으켜,

그래도 어쩌야 쓰것냐

살어라 살어라

하신다

멀리 제비들이 그에게 경례

한다

아픈 내 몸이 안 아프다

왜 그러지

물 위로 간신히 밀고 나온 연둣빛을 보니

살고 싶다

별안간

  

- 황지우 시선,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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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민석 [2010.05.12 0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고싶다 별안간
    감사합니다.

  2. 조민석 [2010.05.13 2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등학교 문예부 시절 황지우님의 바로 이 시집을 스승삼아 시를 배웠지요.^^
    잠시 예전 그 시절로 잠겼나봅니다.

  3. 연초록 [2010.06.26 1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유 위클리에 올라온 시를 보고 여기에다 리플 달려고 오니 아직 올라와 있지 않네요.

    덕분에 황지우 시를 찾아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곳은 더 공적인 공간같고 여기는 더 사적으로 느끼는 것일까요?

    그런데 바로 그 시, 그 시로 인한 느낌이 아니니

    쓰려던 말이 증발하는 경험이라니, 역시 바로 그 자리에서의 그 강렬함이나 공감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토요일 아침에 두 편의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2008년 스위스에서 열린 음악제 실황 공연이고

    다른 하나는 비틀즈의 공연 동영상인데 비내리는 화면이라 그런지 몰입이 어려웠습니다.

    언제부터 나는 이렇게 기술적인 것에 마음이 좌우되는 사람이 된 것일까?

    갑자기 무서움을 느낀 아침이기도 합니다.

    최소한 토요일 오전이라도 마음을 풀어헤치고 느긋하게 약간 빈둥거리는 모드로 살고 싶은데

    아직은 빈둥거리는 모드가 어색하다고 할까요? 그나마 음악속에서 마음을 풀어헤치는 시간이 주는

    그런 느긋함이 좋군요. 월요일에는 잊지 않으면 오랫만에 은유님의 귀를 씻어줄 좋은 음반 골라서 가도록

    할께요.

    • 은-유 [2010.06.26 21: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토요일 아침과 빈둥거림과 음악이 조화롭네요..저도 하루종일 빈둥거렸어요. '에티카 읽어야하는데' 걱정만하면서 말이죠 ^^; 위클리에서 어떤 시를 읽으셨는지요..대부분 겹치고 한두편은 다를 거에요. 월요일 기다릴게요. 안그래도 음악이 간절하네요. 비가 내리니..

길 / 황지우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

[올드걸의시집]

 

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

 

돌아다녀보면

조선팔도,

모든 명당은 초소다

 

한려수도, 내항선이 배때기로 긴 자국

지나가고 나니 길이었구나

거품 같은 길이여

 

세상에, 할 고민 없어 괴로워하는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

가다보면 길이 거품이 되는 여기

내가 내린 닻, 내 덫이었구나 



 - 황지우 시집 < 게 눈 속의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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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정아 [2009.12.18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밤길 무서웠겠다^ 그래, 얼마만에 어떻게 집에 도착했나여? 다음날 앓아눕지는 않았나여? 옆에 앉아 다닌 길은 기억하기 쉽지 않죠. 우리 모두 자유와 독립을 외치지만 그것이 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이 좌절을 느끼게 하지요.굴욕을 지불하고 지나온 길이니 다음번에는 의기양양 지나오겠지요

  2. 보동 [2009.12.18 2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이리 글을 남기신 것 보면 무사히 잘 오신것 같아 다행입니다. 운전실력과 상관없이 낯설게 길이 느껴지면 누구나 다 당황스럽죠. 그럴때 제일 좋은 방법은 마음 느긋하게 가지는 것. 시간에 급히 쫓기는 일정이 아니라면 그냥 가다보면 길은 다 연결되어 있거든요. 가끔 지도놀이 하듯이 댁을 기점으로 주요 지명의 동서남북방향을 확인하시고 큰 간선도로의 연결을 머릿속으로 연상훈련하시면 도움이 될거에요. 밤이라 더 당혹스러워 하셨을텐데....잘 들어가신 것을 보면 운전도 서툴지 않게 하시는 것 같아요. 지나쳐도 되돌아가면 된다 생각하고 당황해하지 마시구요... 물론 은유님이 말씀하신 길은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로 되돌아 갈 수 없는 불가역의 시간에 잡아먹힌 길이라 어찌해볼 수 없다는게 문제겠지만요.

  3. 은-유 [2009.12.19 14: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흙. 밤에 안 막히면 1시간에 오는데 40분 정도 헤맸나봐요..담날 아침에 세미나 가서 꾸벅꾸벅 졸았다지요.ㅎㅎ 이제부텀 보동님 충고대로 의식적으로 지도그리기를 해봐야겠어요.; 덜 헤매고 살고싶어요. ㅠㅠ

11월의 나무 / 황지우 -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올드걸의시집]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 황지우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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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소식 / 황지우 '저지르든가 당하든가'

[올드걸의시집]

 

 삶이란, 끊임없이 부스럭거리는 
 事故 
 그러니, 저지르지 않으면
 당하게 되어 있지
 그러니, 저지르든가
 당하든가
 서울에 도착하여 고속터미널을 빠져나올 때
 택시 주차장으로 가면 
 국민학교 교사처럼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중년 신사가 핸드 마이크로,
 종말이 가까웠으니 우리 주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라고
 외쳐대지 않던가
 사람들은 거지를 피해가듯
 구원을 피해가고
 그는 아마도 안수받고 암을 나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혼자서 절박해져가지고
 저렇게 왈왈대면
 저렇게,
 거지가 되지 


 - 황지우 시집 < 게 눈 속의 연꽃>



글을 쓰기 싫을 때는 더 책에 매달린다. 글 쓰기를 회피하는 가장 손 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읽기의 쾌락'에 빠져들기다. 얼마나 좋은가. 책을 읽고 있으면 머릿속 여기저기 전구가 들어오고 이걸 예전부터 알았더라면 더 잘 살았을 것 같고 지금이라도 알아서 참 다행이며 앞으로 글 쓸 때는 조금 더 유려한 언어로 수월하게 써지지 않겠나 묘한 흥분마저 감돌다가 정점을 찍으면 그냥 이대로 아름다운 언어에 익사당하고 싶어진다. 영락없다. '쓰기'를 저지르지 않는 동안 '읽기'에 당한다. 읽기의 나른한 향락의 꾀임은 정말이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안수받고 암을 나은 사람처럼 나도 광화문 네거리 나가서 떠들고 싶다. '책 읽고 삶이 나았어요. 책을 믿고 구원받으세요." 

책만 읽는 바보 이덕무는 책을 읽으며 배고픔을 잊고, 추위를 잊고 병을 잊었다고 하던데. 난 배고픔은 안 잊어진다. 책 읽다보면 커피가 그립고 커피 마시면 빵이 그립고 빵을 먹으면서 다시 책을 찾는다. 그렇게만 살면 좋겠다. 알람처럼 하루 세번 어김없이 '배고프다'며 밥 달라는 아이들로부터 해방된 일상. 책과 커피머신과 오디오만 있는 고요한 나만의 공간에 삼일만 갇혀있고 싶다. 아침이 밝으면 머리 맑을 때 니체의 책을 읽고, 오후에는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을 예쁜 공책에 다 베끼고, 깜깜한 저녁이 되면 아름다운 시를 골라 그에게 전화를 걸어 낭랑하게 읽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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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정아 [2009.04.27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읽고 삶이 나았어요 책을 믿고 구원받으세요" 나도 책읽기교의 맹신자이이요. 온전히 혼자만의 세계에 들어앉아있을 수 있어 더욱 고마운 시간들이지요. 오늘 "엄마가 뿔났다" 재방을 보며 나도 알람처럼 배고프다고 울리는 식구들 목소리를 피해 진짜 게으르게 살고 싶어요. 주말이 지내고난 월욜일에 더욱 늘어지게 되여.
    현실이 되기는 어렵지만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책과 커피와 함께하는 시간들....

  2. 오소독선 [2009.04.27 2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 눈 속의 연꽃> 과제 때문에 분명 본 시집인데 이 시는 참 낯설군요. 과제하느랴 본 시는 머리에서 금방 사라지는 듯;; 어쨌든 시 너무 좋네요~~

    • 은-유 [2009.04.28 0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게눈 속의 연꽃을 수십번;;은 봤는데 이번에야 발견했어요. 시집은 보물찾기에요. 읽을 때마다 눈에 드는 시가 다르니까요..좋은시 좋으시다니 좋네요^^

  3. 마음 [2010.05.02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유님
    저지르든가 당하든가
    의 의미가 그렇게
    저지르는 은유님 때문에
    그렇게 당할 수 있군요.
    행복한 흑백논리였군요.

거룩한 식사 / 황지우

[올드걸의시집]

매주 월요일 점심때면 아버지가 오신다. 빈 반찬통이 들은 가방과 아이들 과자를 한보따리 들고 오신다. 그러면 나는 일주일치 밑반찬을 만들어서 빈통에 담아 드린다. 반찬이랄 것이 뭐 별거 있을까. 멸치나 북어를 볶은 마른반찬 한 가지, 삼색나물 중 두어가지, 오뎅이나 두부조림, 불고기나 오징어볶음 같은 단백질류 등등이다. 일요일에 준비하거나 월요일 아침에 허겁지겁 준비하는데, 그 시간이 한없이 우울하다. 왜 우울한가. 아버지가 반찬가게에서 사 드시면 더 다양하고 맛있는 걸 드실 수 있을 텐데. 아니면 일하는 아주머니를 일주일에 두번만 불러도 더 따뜻한 반찬을 드실 수 있을 텐데. 그리고 나도 부담을 덜 수 있을 텐데. 하는 얄팍한 생각들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와서다. 매번 돌아오는 끼니의 영원회귀. 차이없는 반복의 압박감이 싫다. 아버지는 입맛도 엄청 까다로워서 엄마가 살아계실 때 매일 힘들어 했고 나에게 푸념을 평생 늘어놓았는데 반찬을 준비하다보면 엄마의 한숨이 자꾸 들리는 것 같다. 그러면 아빠가 밉다. 아빠의 이기적 유전자가 싫다.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아빠도 힘드시겠지만 아이들 둘 키우고 살림하고 밥벌이하는 아빠딸도 좀 힘들지 않겠어요. 이렇게 말하고 싶기도 하다. 이번주는 아파서 못해드리겠어요. 이렇게 전화  한통 넣어버리고도 싶다. 내 튼튼한 위장과 팔다리를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머릿속의 반란일뿐. 엄마 돌아가시고 2년 반동안 단 한주도 거르지 않았다. 나도 징그럽고 아빠도 징그럽다. 하지만 아빠에게 필요한 건 '반찬'이 아니라 딸과의 '왕래'일 것이다. 나도 그래야 도리라고 생각한다. 초기에는 아빠에게 갖다드렸지만, 아빠가 가지러 오시는게 달라졌고.. 요즘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부러 점심 때 오시라고해서 점심밥을 차려드린다. 한끼라도 따뜻한 진지 드시게 하리라는 애초의 기획의도는 간데없고 의지와 행동이 따로 논다. 어제도 아빠가 11시 30분에 오셨다. 지난주에 아빠는 친구들과 2박3일로 단풍놀이를 다녀오셨다. 재밌으셨는지 묻고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점심만 차려드리고 나는 부엌에서 반찬을 마저 만들었다. 아버지가 진지를 드실 때 앞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라도 나눠드리면 좋으련만 그렇게 되질 않는다. 보면 밉고 안 보면 측은하다. 마늘을 다지면서 곁눈질로 흘금흘금 혼자서 점심을 드시는 아버지를 보았다.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황지우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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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appy [2008.11.11 1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골에서 허리랑 관절 통증에 아파죽겠다면서도 아빠 밥해드리느라 종종대는 엄마생각 나서 눈물 고이고, 엄마가 너무 아프니까 그제서야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젊을때 한번도 안해본 청소며 빨래 널기같은 집안일을 시작하느라 힘드신 아빠도 짠하고.... 그렇다고 내몸 추스리기도 힘든 내가 두분 모시고 척척 챙겨드리면서 살아가기도 힘들고.... 가슴속에 아린 구석이 있다는거.... 아마 그게 남의 글 읽으면서 눈물 쏟을 수 있는 통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은유쌤아~! 지금도 잘 하고 있구만... 힘내요~! ^^*

  2. 쿨한 인생 [2008.11.11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이 곁에 있을때 소중함을 깨닫지 못할까? 혼자 남겨진 남자들은 혼자 남겨진 여자들보다 더 애잔해하고 쓸쓸해하면서 지금 함께 하고있는 여자를 외롭고 힘들게 할까요? 헤어져야 깨닫게 되는 것은 누구의 의지일까여? 神일까? 우리자신일까?
    은유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졌으면 좋겠네.....

    • 은-유 [2008.11.12 07: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같이 살면서 봉양하는 것도 아니고..고작 일주일에 서너시간 들여 반찬해드리는 것도 저리 호들갑인가 싶으면 가야할 길이 너무 멀어요..그냥 전체적으로 삶이 무겁다 생각될 때 한번씩 푸념 늘어놓아요..

  3. 쿨한 인생 [2008.11.12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유와 냄편 친구 부인으로 만난지 어느새 15년...이제는 그들이 부인의 친구남편처럼 되어버렸으니....
    함께한 시간들이 많아서 이겠지요. 그 세월속에서 은유는 그 누구보다 내적으로 강하며 아직도 많은 열정을 가슴에 안고 사는 사람이라 생각되요. 특히, 지난몇년이 은유에게는 더 힘들었을텐데 잘 이겨내고 있는 듯하여 옆에서 지켜보는 맘이 안쓰럽지만 자랑스럽기도 해요. 지난 시간들 잘 해왔으니 앞으로는 삶의 무게가 조금씩 덜어지겠지요. 희망을 잃지말고 조금더 기다려보자구요.
    간간이 약한 푸념으로 김을 조금씩 빼줘야 갑자기 솥뚜껑이 날아가는 일이 없겠지요

  4. 마음 [2010.05.02 2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유님
    이렇게 늦은 댓글도 읽게 되시나 모르겠네요.
    오늘 우연한 방문에서 시의 즐거운 성찬을 먹는 중이니
    한 말씀 안 남길 수 없네요.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사업은
    남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 해 주는 일이라고 믿어요.
    그 옛날 어머니의 힘이었고
    오늘날 식당 아줌마, 파출부 아줌마의 힘이죠.
    그 힘 빼면, 그나마, 어머니의 힘은 없죠.

    추신
    결혼이 사랑의 무덤이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식사.
    세련된 부부는, 그리하여, 외식을 통해 간신히 사랑을 구하죠.
    그러나 사랑이 가장 좋은 시간은 부부가 함께 요리하여 함께 먹는 일.
    그러므로 사랑이 가장 좋은 시간은 부모와 함께 요리하여 먹는 일.
    그것이 불가능한 까닭은 가부장제가 너무도 오래
    어머니만, 딸들만, 며느리만 부려먹었기 때문.

    • 은-유 [2010.05.04 0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을 여러곳에 남겨주셨네요^^ 모두 잘 읽었습니다. 제가 감동받은 시를 같이 공감해주셔서 기쁩니다. 앞으로도 좋은시 많이 차려놓을 테니 부담없이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