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 민중총궐기 수업 풍경

[사람사는세상]

집회 참석으로 마음이 바빠서 합정동 말과활아카데미에서 광화문 근처로 수업 장소를 옮겼다. 

경복궁역 근처 '푸른역사아카데미' 강의실에서 이동 수업. 


마침 최승자의 시집 <기억의 집>을 읽는 시간. 




거리엔 전경차가 빼곡하고 낙엽이 흩어지는 가을 풍경을 등지고 

우리는 최승자의 시를 낭랑하게 읽었다. 



광화문에서 급한대로 한컷



사람 좀 빠져나가서 '대학광고' 같은 연출샷. 저기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자!



해방구가 된 도심을 걷고 걷고. 휘엉청 달밝은 서울의 밤을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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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

[올드걸의시집]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 <이 시대의 사랑> 최승자 시집, 문학과지성사

 

 

가을맞이 영어세미나를 시작했다. 푸코의 마지막 저서가 된 <진실의 용기>다. 강연록이라 구문이 어렵진 않다. 단어가 생소하지. 그 말에 속아서 용기를 내보았다. 세 번 세미나를 참여한 소감은 괴롭다는 것. 부끄럽다는 것. 어렵다는 것. 단어 찾느라 몇 시간이 후딱 가버리고 한줄한줄 내 분량을 발표하면서 버벅거릴 때는 시간이 더디 흐르고 고개가 자꾸 수그러진다. 누구와도 눈 마주치고 싶지 않다. 오죽하면 정수샘이 그런다. 평소 나답지 않게 왜 이렇게 바짝 얼었느냐고. 안 얼게 생겼느냐고 했다. 영어를 자그만치 23년 만에 들춰보는 마당인데. 몹시 기분이 얄궂다. 생각해보니 내가 뭘 못하는 사람으로 어떤 자리에 놓인 게 참 오랜만이었다. 

 

니체 공부할 때도 막막하긴 했지만 모국어라서 두렵진 않았다. 제도교육도 그럭저럭 통과했고 회사생활도 하나하나 배워갔고 가사노동도 얼렁뚱땅 처리했다. 탁월한 요소도 없었지만 취약한 부분도 없이 살았다. 어른이 되면, 자신에게 불리한 입지는 선택적으로 피할 수 있다. 근데 난 지금 무리수를 두었다. 자발적으로 영어천민의 자리를 점했고, 견딘다. "인식에 이르는 길에 그 많은 부끄러움을 극복할 수 없다면 인식의 매력은 적을 것이다"라는 니체의 말을 스스로 주입하면서 마음 다잡는다. 인식의 매력. 푸코가 던지는 사유의 말들이 아련하지만 복음처럼 다가온다. 첫 시간엔 그런 상상을 했다. 현재 상태 매우 엉망이나 한 십년 원서 붙들고 헤매고 배우면 나중에는 번역도 해보고 싶다고. 어떤 구체성도 없는 무근거한 바람이다.

 

나는 행하는 자로 산다. 금단의 땅에서 열매 구하겠다고 내동 서성인다. 이건 자기계발 담론이 부추기는 열정은 아니고 억척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불가피하다고 여길 뿐. 일부러 거러는 건 아니고 그렇게 살게 된다. 왜 그럴까. 나도 내가 궁금하여 생각해 보았다. 재작년인가. 사주명리학을 공부한 친구가 점을 봐줬다. 내가 자수성가형 인물이라고. (만세력으로 점 칠 때도 꼭 나왔던 점괘다. 부모덕이 없는 팔자라고) 그래서 공부를 해가면서 살아야한다, 지금 잘하고 있는 거라고 했다. 인간은 단독자로 살 수 없다는 건 알겠다. 사람의 후원이 없으면 책의 지원으로 살아야한다는 건가. 셀프돌봄 하라는 뜻으로 접수했다. 그런데 말이 쉽지. 물적 토대가 갖춰진 중산층 지식인 여성처럼 책만 파고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싱크대와 노트북과 밥벌이와 두아이를 오가며 틈틈이 공부하는 일은 진척도 느리고 몸뚱이도 축난다. 살기 위한 본능이 아니라면, 이 고난의 길을 왜 굳이 누가 택할까. 그런데 시련중독이 되었는지 어쩌자고 책상 앞에서가 가장 좋다.  

 

최승자는 이십대에 벼락같은 시를 써놓고 홀연 사라졌다. 행하지 않는 자로 살았다. "나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무위를 위하던 바틀비처럼 그랬다. 초월적 세계를 탐문하다가 죽기 직전까지 말라갔다. 재작년에 나온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을 시세미나에서 읽었다. '쉬임 없이 하루하루가 흘러간다/ 시도 담배도 맛이 없다/ 세월이 하 짧아/ 시 한 편, 담배 한 대에 한 인생이 흘러간다'(<잠시 빛났던>) 정신병동에서 쓴 시들도 몇 편 있다. 시시한 삶에 발 딛은 나처럼 '책상 앞에서가 내 인생의/ 가장 큰 천국이었음을 깨닫는다'(<책상 앞에서>)고 고백한다.  한장 두장 넘기다보면 더듬더듬 흘러가는 시간들에 젖어든다. 그곳은 다른 세계다. 청송교도소처럼, 쉽게 볼 수 없고 접근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다른 세계다. 자본의 질서로 돌아가는 복닥거림에 벗어나거나 등지거나. 장애가 있어서든 의욕이 없어서든. 행하지 않으며 사는 사람들의 나라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없는 것은 아니다'  삶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영어 원서를 파는 것보다 덜 사는 것은 아닐 터다. 자연을 찬미하고 사색에 잠기는 가을만이 아니라 개 같고 매독같은 가을이 있듯이. 이 세상에는 지구본처럼 돌려볼 수 없는 '한 세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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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12 0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은-유 [2013.09.13 01: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괜히 마음 무겁게 해드린 거 같아요.^^; 제 무거운 바위같은 속세의 삶을 최승자의 연기 같은 초월적 삶에 비춰 보느라 그리 됐네요. 부끄럽사옵니다ㅋ

  2. 삐삐 [2013.09.12 05: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이에요. 은유선생님의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항상 보기 좋습니다. 새로운 언어에 도전하는 것은 항상
    힘들지만 할만한 도전인 것 같아요. 인내심과의 싸움일테고요. 그런데 왜 영어공부를 푸코의 책으로 시작하셨나요? 좋아하시는 죠지 오웰책같은 것뿐아니라 좋은 영어서적이 숱할텐데요. 푸코의 영어번역이 그다지 좋은 영어일까 조금은 기우가 있어서요. 프랑스 저자들의 영어번역을 보면 많은 경우 만족할만하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사정이 있었겠지만 영어공부를 위한 책으로 푸코 책의 영어 번역판을 펼친 세미나엔 이해가 좀 안가요. 평생 외국어로 고통당하는 사정에 있기 때문에 외국어를 열심히 하려는 동지들을 보면 늘 격려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적당한 외국어 공부는 그리 소용없고요. 일단 시작하면 남은 삶이 다하도록 마음과 시간과 노동을 바쳐야 하는 상대인 것 같아요. 최승자 시인의 시를 올려주셔고 고맙고요.

    • 은-유 [2013.09.13 01: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 삐삐님! 어찌 지내셨어요? 완전 반갑습니다. 영어세미나를 하기로하고 교재를 구한 게 아니라, 푸코 읽게 영어세미나 할까? 이렇게 시작된 거라서요. 이책 끝나면 개인적으로 조지오웰은 꼭 읽어보려해요. 영어공부 어설프게 시작하니 시에 소홀해지고;; 득과 실이 있어요. ㅜㅜ

  3. 마구마구 [2013.09.12 1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죠. 그 기분.ㅜㅜ;; 단답형의 유치한 단어만 떠올라서 내뱉으며 느끼는 무한 열등감에 새삼 울컥하네요.ㅋㅋ. 홧팅입니다. 은유님은 다른 일이 그랬듯이, 곧 적응해서 '탁월한 부분은 없지만 취약한 부분'도 없는 실력이 되실거예요.

  4. 장정아 [2013.09.13 1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지 시간적으로 먼저 영어원서 강독의 세계로 들어온 사람으로 한마디 하자면...
    앞페이지에서 찾았던 단어를 뒷페이지에서 또 찾더라고 상처받지 말고 앞으로 계속하기를...
    모국어가 주는 편안함속에선 사유의 장이 좁아질 수 있지만 외국어가 주는 불편함과 어려움은 사유의 영역을 무지무지 넓혀주는 힘이 되기도 하더이다. 꼭꼭 씹어먹어 소화가 잘 되기도 하지요.

  5. 프루시안 [2013.09.13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한쪽이 아니라 양쪽다리 모두를 죽음에 담구고 난 다음에야 천개의 눈과 천개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바다에서 길어 올려진 그 물이 비가되어 강이 되었기에
    강은 이미 바다속에 있음인데 우리 사유와 존재의 시간은 언제까지나 나누고 미루는 건지..
    개체에게서 강물은 언제나 먼 바다이지만
    전체에게서 강물은 언제나 바다와 하나이라는 것..

    -시를 새삼 다시 접하고서 느낀점-입니다. ^^

    푸코만큼 기특한 구조주의자가 어딧을까요.. 멋진 선택입니다.
    가을비가 촉촉한 날입니다.. 환절기 건강하시길요~~



    • 은-유 [2013.09.15 10: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체에서 강물은 언제나 바다와 하나라는 것, 줌 아웃 시켜주셔서 고마워요. 프루싱안님 ^^ 한 줄 문장만 읽어도 푸코오빠는 매력덩어리 ~ ㅎㅎ

  6. 게꿀 [2013.09.15 0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전히 책상에서 치열하게 사시는 군요. ㅎ
    제 경험에 중국어는 하다가 접다가를 반복하며 조금씩 들어 오더군요.
    일본어는 그다지 큰 기복없이 받아들여졌는데.. 언어의 특성에 따른 반응인지 아니면
    일본어는 젊었을 때 시작해서 괜찮았고 중국어는 나이들어 시작한 탓에 겪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외국어 공부는 콩나물 시루에 물주는 일이라고 들 합니다. 다 새는 것 같아도 콩나물들은 자란다는 거지요.
    힘내시길...

  7. [2013.10.05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은-유 [2013.10.08 22: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확실히 저는 영어보다는 국어예요. ㅎㅎ 아직도 영어 붙들고 있음 속상해요. 무지도 답답하지만 이 시간에 한국말 책을 읽으면..하는 안타까움 때문에요. 번역 운운 취소하고 싶어요. ㅠㅠ

  8. 가온 [2014.10.16 0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멀리 미네소타에서, 매독같은 가을 날에 최승자의 시와 은유님 글 읽으니 좋네요.
    감사합니다
    콩나물 시루 물주기... ㅎㅎ
    힘이 나네요 ^^

雨日 풍경 / 최승자

[올드걸의시집]

 

떨어지는

소리,

위에

떨어지는

눈물.

 

말라가던 빨래들이

다시 젖기 시작하고

 

누군가 베란다 위에서

그 모든 기억의 추억의 토사물을

한꺼번에 게워내기 시작한다.

 

 

- 최승자 시집 <기억의 집>

 

 

 

 

'세상이 따뜻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면 시를 못 쓰게 되지요. 그건 보통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최승자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 세상을 등지고 포항의 정신병원을 출입하던 그녀에게 한 기자가 "시를 쓰던 당신이 왜 폐인이 됐는가" 묻자 답한 말이다. 토요일 시세미나을 위해 최승자의 세번째 시집 <기억의 집>을 꼼꼼히 읽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절망의 와중에서 뭉기적뭉기적 시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사람. 그녀가 성냥개비처럼 삐쩍 마르고 일상적인 생활을 못하는 게 마음 아팠는데, 점점 존경스러운 마음, 부러운 마음이 든다. 그녀는 비록 굶고 병들었지만 자기 본래적인 모습을 지키며 사는구나, 배운대로 살아가구 있구나,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응시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뉴스에서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는 여성의 뒤를 쫓아 들어가 성폭행하고 살인한 사건을 봤다. 범인이 성폭행 전과자라며 전자발찌의 무용성을 논했다. 나는 유치원에 간 사이 엄마가 사라져버린 아이가 마음에 걸렸다.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허름한 연립주택가이던데 그리 경제적 여유가 있어보이지는 않았으니 더 걱정이다.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여학생이 주인의 성폭행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사건도 나왔다. 죽고 죽이고. 피도 눈물도 없이. 뺏고 뺏기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혀를 차고 돌아서면 잊는다. 말로는 세상이 흉흉하다, 미친세상이다, 얘기하지만 다 살아간다. 눈 감고 외면 하고 망각하고. 나도 그런다. 일상에 지장 없을 만큼만 기억하고 분노한다. 온통 약자를 짓밟고 뭉개면서 유지되는 부조리한 이 세상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아파하면 살아갈 수가 없다. 최승자만이 비정상적인 세상에서 나가떨어짐으로써, 온전히 살고 있구나. 모두가 긍정을 말하고 희망에 기대고 불안을 팔아서 자기 밥그릇을 챙기고 있는데, 최승자는 형형한 눈으로 말짱한 정신으로 직시한다. 절망의 나락까지 떨어지는 용기는 어디서 오는가.

 

'지난해 겨울, 대산문학상 시상식이 있던 날, 뒤풀이를 끝내고 포항으로 다시 내려가는 최승자를 배웅하며, 나는 그 갸날픈 어깨에 얹었던 손을 다시 거둬들였다. 허공에 뜬 가랑잎을 쥐는 것만 같아 힘주어 붙잡을 수 없었다. 이 욕망의 거리에서, 아무 것도 쌓아둔 것이 없고 아무 것도 기대하는 것이 없는 사람만이 마침내 그 슬픈 어깨를 얻는다고 해야할까. 끌어안기조차 어려운 이 어깨, 그러나 어쩌면 우리가 마지막 기대야할 어깨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 황현산 <잘표현된 불행> 중에서

 

 

최승자의 네번째 시집 <내 무덤, 푸르고>를 읽는다.

말라가던 빨래들이 다시 젖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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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24 0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유창옥 [2012.08.25 0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유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오랜만에 은유님 글 읽고,' 내가 너무 세상에젖어 살고있는게아닌가?' 하고
    화들짝 놀라서 다시한 번 나를 추스립니다, 감사합니다.

    • 은-유 [2012.08.26 03: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창옥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반가워요~ㅎㅎ 푹 들어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인 걸요. 저도 젖어 살다가 최승자 시 읽고 자기반성;;하고 그랬답니다. -.-;

  3. 삐삐 [2012.08.29 0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유님 오랜만이에요. 프랑스는 이번 주, 공식적인 새 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가을이 새해의 첫 시작인 셈이죠. 항상 열심히 좋은 글들을 올려주셔서 반갑게 잘 읽고 있어요. 이번 해엔 서울에 가볼 수 있었는데 가게 되면 이곳에서 생각하는 것들과 견주어 그곳의 맥락에서 이곳에서의 생각을 다시 정리헤 볼 수 있기도 합니다. 밖에서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보는 것과 서울에서 방송과 신문을 통해 보는 미디어의 느낌도 차이가 좀 있고요. 마찬가지로 인터넷 댓글을 통해 이렇게 가깝게 느끼는 블로그 주인장도 한국에 있을때는 가깝게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으로 오기도 했습니다. 서울의 인구만큼 사람들의 전기장이 너무나 겹겹이 걸쳐져 있기 때문인가봐요.ㅎ

    제가 시를 잘 몰라서인지 모르지만 위의 최승자 시인의 시는 좋은 시지만 그의 시라는 느낌이 잘 오지 않는
    시같기도 해요. 그러고 보니까 최승자 시인의 시집을 구하는 것을 잊고 왔어요. 언제 즈음 말씀드렬까 하다가
    지금과 같은 때도 괜찮겠다 싶어 하는 말인데 2010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갇인 시인 류샤오보의 시나 그의 아내 류사의 시들을 보셨는지요? 한국에 다 번역되어 나와 있더군요. 저는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 책사는데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 많던 좋은 서점들은 다 사라지고 커다란 몇 알맹이 없는 서점들만
    그 커다란 시에 덜렁 있었던 점이 매우 아쉬웠던 점중의 하나였고요. 다들 책좀 싸다고 인터넷으로
    달려가더니 이런 꼴을 보고야 말았구나 성 싶었습니다. 하물려 인문학의 대표격? 인 로쟈씨가 인터넷 서점 블로그로 큰 분이니까 할 말 다했지요. 그리고 지젝키안이고요. 지젝이 한국에 와서 인터넷으로 티켓 입장을
    뽑고 모든게 인터넷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런 의존의 전 사회적 맥락과 역사성에 대한 인식은 제로인듯 싶더군요. 지금이야 과도기니까 책도 있고 신문도 있고 인터넷도 있고 많은 인터넷 사이트가 공짜지만 점점 전자책으로 종이신문도 서서히 없어지고 종이 책이 없어지면서 도서관도 없어질거고 인터넷 사이트는 돈을 물리고 신원이 확실한 사람들에게만 열려지게 되는 날이 오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있을까요? 오웰의 빅브라더 시대를 완성시켜줄 테크놀로지가 눈앞에 보이는데 거기에 대한 생각보다는 온통 스마트 폰과 인터넷, 트위터등으로 불빛에 빨려가는 나방들처럼 디지탕 세계에 빠져가는 그런 미래 현실이 중첩적으로 떠올려 지기도 했습니다. 아뭏든 책을 서점에서 사기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다른 이야기를 너무 길게 쓰고 말았네요.

    시 자체로 류샤오보와 류사의 시들이 얼마나 훌륭한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우리 이웃의 힘든 문인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런 시들을 많이들 읽을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리고 중국 사회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요. 한국은 이웃하는 나라들에 대해서 너무나 무관하게 지내는 것 같아요. 일본에 대해서는 엄청난 교류가 시작되었지만 중국에 대해선 경제적 교류외엔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관심과 공부가 너무 미약한것 같아요. 수유너머 인터넷
    사이트만 봐다 일본 전문 글들은 많이 올라오는데 중국 전문 글은 거의 없더군요. 일본말이 중국말보다 쉬워서 그런지 이념상의 문제 때문인지 무슨 이유인지 균형잡힌 관심과 이해가 너무 부족해 보여서 좀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좋든 싫든 엄청난 이웃인데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끼친 영향이 지대한 이웃인데 그에 대한 인식식이 잠재적 두려움때문인지 의도적 기피가 너무 심하다는 느낌도 있었어요. 아닌가요?

    방금 수유너머 위클리에 가서 보니까 황진미씨의 밥 말리 다큐소개가 있더군요. 저도 한달 전 즈음에 여기서 본 거라 기억이 생생한데요. 짧게 쓰는 거니까 그렇다고 이해가 가지만 라스타파리즘에 기반한 밥말리의 여성관과 여성관계에 대한 언급이 다큐엔 꽤 다뤄지는데 전혀 언급하지 않았더군요. 그 이유가 뭔지 조금 궁금합니다. 혹시 안철수 룸살롱 담론이 이런 검열을 무의식중에 일으키지 않았나 성 싶기도 하고요. 안철수 룸살롱 담론은 절대로 재생산 가치가 없는 거지만 밥말리의 라스타파리즘의 여성관은 짚어볼 이유가 있거든요.

    그 다큐를 보면 밥말리가 매우 매력적이기 때문에 그의 여성관마저 눈감게 할만큼 보여지는데 그 영화를 보고 악몽을 꿨어요. 왜 이런 악몽을 꾸었나 깨서 생각해 보니까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그의 여성관이 그렇게 불편했던 건가봐요. 무대의 배경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여성들이 하나둘 총을 맞고 쓰러지는 꿈을 꿨거든요.ㅠ 아무리 짧은 평이라도 균형있는 소개는 필요하겠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좋은 다큐니까 꼭 주천하면서도 아쉬운 맘에 써봅니다. 이 시대는 너무나 천박하면서도 양아치보다 더 약아빠져서 뭔가를 제대로 해보는걸 막는 기제가 너무 많이 작동하니까 자기 검열을 수시로 해주지 않으면 무의식에 걸려들기 참 십상이거든요. 컴퓨터를 돌리면서 머리는 벙띠게 놓아둘게 아니라 머리의 내부를 여러겹으로 돌려줘야 해요.

    째벌 물건 좀 미국에 많이 팔아주겠다고 에프티에이 열심히 하더니만 삼성에 큰 도움을 주더군요! 그 분께서 오늘 르몽드 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G 20국에 곡물가 인상으로 인한 전 세계 식량난을 문제로 곡물을 제한 없이 생산국은 자유롭게 곡물을 수출하도록 하고 곡물 투기는 규제해야 한다고 제의하셨다고 합니다. 그 분의 제안이 받아들여질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식량 자급률이 24에서 26퍼센트 좌우하는 우리나라에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위기감에 휩싸인 것만은 사실인가봐요. 대선도 있고 식량 인플레는 엄청날거고요.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에선 농업 정책에 엄청난 실책이 있다는 것을 왜 어느 신문도 미디어도 끈질기게 늘어지지 않는지 이해가 안돼요. 룸살롱이 아니라 안철수나 대선 후보들에게서 듣고 싶은 것은 농업정책, 식량안보, 원전과 재생 에너지에 대한 입장 이런 것들 아닐까요. 한겨레가 미운 것은 이런 것들을 해줘야 하는 역할을 너무 못하기 때문이에요. 원리 원칙을 갖고 신문을 만들어가면 등을 돌렸던 사람들도 다시 올텐데 배달되는 종이 신문을 아무리 들춰봐도 읽어 볼 게 너무 없었다는 심정, 그 기막힌 심정을 어찌 다 토로 하겠는지요. 조카들은 그 종이 신문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요. 그나마 왜 신문도 보지 않냐고 했지만 그런 잔소리에도 힘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우리사회에서 이렇게 알맹이를 다 빼가게 한 근원이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사람들이 돈을 좀 손에 만질 수 있을 때 부터였을까요? 그리고 인터넷 시대. 버츄얼 리얼리티에 얼빠져 있게 되면서부터? 스마트 폰 사랑하는 필십이 넘은 노모를 보면서 이 거대한 힘을 어떻게 재 환기 시킬 수 있을까. 사람들이 그렇게 허했을까? 저는 최승자씨가 불쌍해 보이지 않고 그 사람을 동정하는 많은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 보이기도 해요.

    왠지 위에 시를 보면 블레이드 러너에서 필립 케이 딕의 한 줄, 주인공이 늘 비가오는 시에서 흐르는 눈물이 비에 가려... 하는 유명한 싯구 비슷한 대사글이 떠오르기도 해서인지 최승자씨의 시같지 않기도 했느지 모르고요. 왠지 만화스럽고 에스 에프 스러운 느낌이 선입에 있었던 거겠죠.ㅎ

    • 은-유 [2012.08.30 01: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삐삐님도 논문댓글ㅋ도 완전 올만이에요. 반가워요. 서울 다녀가셨나봐요? 힝. 연락하시지.^^ 맛난거 대접해드렸을 텐데요.
      저도 최승자시인 좀 부럽고요. 그렇게 사는 사람의 비율이 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위의 시도 제가 아끼는 시는 아니지만 그날 그 상념에는 파고들더군요. 류샤오보의 시는 찾아 읽을게요. 삐삐님이 말씀해준 문인;들은 다 좋더라고요. 저는 요새 소설에 취미 붙여서 열심히 읽고 있답니다.ㅎㅎ 삐삐님 덕분이에요. (밥말리 다큐는 아직 안 보았는데..참고해서 보겠습니다.^^)

  4. 프루시안 [2012.08.31 1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풍 볼라벤과 덴빈이 할퀴고 간 자리가 너덜한 맑은 8월의 마지막날입니다.
    은유님댁은 안녕하신지..염려되어 들렀네요.
    건강하시죠?

    • 은-유 [2012.09.01 0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프루시안님 마음써주셔서 감사해요^^ 볼라벤 피해는 없었습니다.^^ 걱정햇는데 다행히 곤파스때보다 약하더라고요. 8월이 갔네요. 어느새 9월..슬프고 좋고 그러네요. 좋은 날들 보내세요..

최승자, 절망의 골수분자

[올드걸의시집]


나의 삼십대는 두 번 기록될 수 있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풍파도 보람도 넘실넘실. 많이 웃었고 많이 울었다. 고통과 행복이 쌍둥이처럼 나란하던 시절, 비극버전을 쓴다면 최승자의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 제목만으로도 목차와 내용을 메울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여인의 종말> <우우, 널 버리고 싶어> <부질없는 물음>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 <억울함>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등등. 처연하고 당돌한 웅성거림. 그 말들의 꽃다발을 덥석 받아 안을 때 ‘열 손가락에 걸리는 존재의 쓸쓸함’이 있다.

결혼과 출산을 마치자 가족이 마구 늘어났다. 정서노동의 분량은 인간의 기준치를 초과했다. 혹처럼 내 삶에 달라붙어 있는 사람들을 떼버리고 싶었다. 24시간 이인삼각 경기를 치르는 것처럼 절뚝절뚝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먹고 자고 멍하니 있는 생리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가 가장 괴로웠다. 그들이 제거되는 ‘사악한 꿈’을 꾸기도 했다. 본디 인간은 누구의 인생을 대신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도 단 한사람 엄마는 그렇게 살아가도록 트랙이 깔렸고 스위치가 켜졌다. ‘나의 불모가 너희의 영원한 풍요가 되는’ 삶.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면 주문처럼 외던 <나의 시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시>

움직이고 싶어
큰 걸음으로 걷고 싶어
뛰고 싶어
날고 싶어
깨고 싶어
부수고 싶어
울부짖고 싶어
비명을 지르며 까무러치고 싶어
까무러쳤다 십년 후에 깨어나고 싶어

‘외롭지 않기 위하여 밥을 많이 먹’고 ‘괴롭지 않기 위하여 술을 조금 마시’던 서른 중반 어느 날, 선배랑 여자의 고단한 삶을 주제로 수다를 떨면서 “이렇게 살다가 마흔에 내 모습이 어떻게 돼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더니 선배가 말했다. “난 마흔은커녕 눈 떴다 감으면 70살이면 좋겠어.” 그녀는 알아버린 것일까. 십년 후에 깨어나도 별로 달라질 게 없음을. 세월은 ‘길고 긴 함정’에 지나지 않음을 말이다. 왜 태어났는지, 왜 사는지, 왜 결혼은 했는지 ‘부질없는 물음’과 입씨름하면서 그렇게 ‘절망의 골수분자’가 되어가던 즈음 <올 여름의 인생공부>가 시작됐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해석에 따라 세계가 달라진다는 은혜로운 팁을 니체오빠에게 전수받았다. 사유의 근력이 자기배려의 기술이며, 남을 바꾸는 것보다 나를 바꾸는 게 더 신속한 자유와 해방의 길임을 깨달았다. 자기연민으로 주춤거리다가 자기초극의 스텝을 밟아보려 낑낑거렸다. 안 쓰던 근육을 쓰느라 탈골과 찰과상으로 비틀비틀. 덕분에 일상의 번다한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너무도 자유로와 쓸쓸한 세상’ 생일조차도 <슬픈 기쁜 생일>일 수밖에 없던, 늘 슬픔이 앞서가던 ‘후즐근’한 그 시절. 승자언니 시집을 가슴팍에 올려놓고야 잠들던 나는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삼십대를 가까스로 통과했다.

지금까지는 어느 필모의 비극적 감수성 극뽁기이고, 세계와의 화해가 선천적으로 불가능한 사람도 있다. 천생 시인 최승자처럼.

김현은 『말들의 풍경』에서 ‘최승자의 시는 사랑받지 못한 사람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다’라고 썼다. 그리고 사랑하는 대상은 이성이나 절대자, 때로는 단순한 대상이나 바람 같다고 했다. 나는 다르게 읽힌다. 최승자의 시는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의 곡소리다. 사실, 타인을 사랑하는 일은 가장 큰 자기애다. 그녀는 절대자나 한 남자의 사랑을 간구하는 신체 건강한 꽃청춘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있던 사랑은 이미 ‘몇 세기 전의 겨울’의 추억일 뿐. 시집 전체에 도저히 흐르는 자기부정의 언어는 ‘단다한 슬픔의 이빨’로 ‘갈라진 혀끝’으로 ‘컹컹’ 짓는다.

첫 시 <일찍이 나는>에서부터 스스로를 ‘마른 빵에 핀 곰팡이’이자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이며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 년 전에 죽은 시체’로 소개했다.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고 선포한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의 '영원한 트라이앵글'에 갇힌 채 ‘슬픔의 독이 전신에 발효하기를 기다리’는 이 극단의 허무주의자가 그리는 <자화상>이란 ‘나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며 누구의 친구도 못 되’는 ‘어둠의 자손’일 뿐이다. 밤이면 ‘감긴 철사줄 같은 잠에서 깨어나려 꿈틀거’린다.

아버지의 두 발바닥은 운명처럼 견고했다
나는 내 피의 튀어오르는 용수철로 싸웠다

이것은 고급한 성장통이 아니다. 가혹한 운명이다. ‘자신이왜사는지도모르면서 육체는아침마다배고픈시계얼굴을하고’ 그렇게 매일을 살아가는 일이 선천적으로 자연스럽게 영위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하기에 시인은 시대의 흐름과 어긋나면서도 세상과 보조를 맞추려 노력한다. 부단히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애쓰고 시쓴다.

왜 어느 별은 하얗게 웃으며 피어나고
왜 어느 별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추락하는가
조용히 나는 묻고 싶었다.

그리고 ‘외로움을 장전’한 채 <네게로> 간다. 살기위해 매달린다.

흐르는 물처럼
네게로 가리.
물에 풀리는 알콜처럼
알콜에 엉키는 니코틴처럼
니코틴에 달라붙는 카페인처럼
네게로 가리.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매독 균처럼
삶을 거머잡는 죽음처럼.

‘한 없이 오래 죽고 싶’은 방식으로 영생을 기원하는 그녀. 하지만 시집의 마지막에는 <불안>을 예감한다. ‘죽음이 나를 겨누고 있다’ ‘쨍! 죽음이 나를 향해 발사한다’는 환청을 듣는다. ‘어둠의 아가리’에서 발버둥 치던 한 사람. ‘정신이 아프고 인생이 아프다’며 ‘문간에 나가 앉아’있던 ‘긴 슬픔의 몸뚱어리’는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삼십대를 보내고 ‘한없이 넓어, 가도가도 벽도 내리받이도 보이지 않는’ <마흔>(『내 무덤, 푸르고』,1993)을 맞는다.

그래도 나는 단 한 가지 믿는 것이 있어서
이 마흔에 날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

최승자는 1993년 ‘따뜻한 무덤’을 뚫고 나온 말들로 네 번째 시집을 냈다. 여전히 고독한 자의식에 붙들려 세계의 오염을 견뎌내(이광호)던 불혹의 시인은 결국 정신병원으로 망명한다. 2010년 ㅈ일보 인터뷰에 따르면 최승자는 11년간 심신쇠약과 정신분열증을 앓았다. 입퇴원을 반복하며 기초생활수급자로 연명했다고 한다. 개량한복 입은 향기롭고 원숙한 중년이 아닌 환자복 걸친 ‘불 꺼진 신호등 같은’ 얼굴이 되었다. 죽음의 자리를 사수하면서 삶의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던 그녀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따뜻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면 시를 못 쓰게 되지요. 그건 보통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조화와 안정으로 귀결되지 않는 비타협과 난국의 목소리 쟁쟁하다. 어떤 위안도 거짓낙관도 없다. 몸이 쪼그라들도록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 것이다.

‘꽃, 상처, 스물 넷’에 이미 시인은 선언했다.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겠다고. 현실을 부정하는 난폭한 파괴가 꿈꾸는 건강한 힘이라고. 그리고 쓴대로 살았다. 그 풀리지 않은 모순을 견디며 시로 하여금 말하게 했다. 그렇게 ‘쓸쓸해서 머나먼’ 나이 예순까지 흘러왔다. 이 병든 시대에 진짜로 병자가 되어 살아가는 한 시인이 있어 나는 놀랍고 아프고 반갑고 서럽다. 자기파멸로 자기생장을 이루는 화해불가능성의 생(生) 시(詩). 그것은 고착인가. 무능인가. 비정상인가. 불행인가. 건강함인가. 고귀함인가. ‘행복행복행복한 항복’인가…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법은 내게 ‘귀신처럼’ 다가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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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삐삐 [2012.02.03 0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승자 시인에게서 진정한 시인을 느껴요. 그의 언어와 몸이 같은 언어를 쓰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물론 시인의 정의가 그렇게 한가지 만은 아니겠지만 수많은 시인들이 시인 최승자 앞에서 그들이 얼마나 많은
    언어들을 체화하기 이전에 남용했는지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의 시인들이 모두 그렇게 다 휩쓰려 흘러간 것은 아니었고 끝까지 몸으로 저항했던 단 한명이 있어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는 겁니다. 그의 몸은 개인과 우주가 함께 꿰뚫어져 있는 투명성의 장으로 볼 수 있다고 봐요. 김현의 언급은
    너무 축소된 독서라 보이고요. 제가 넘볼 수 없는 경지에서 시인은 그 시대의 힘든 형벌에 저항하다가 사경을 헤메고 가장 맑은 정신의 경지를 경험하면서 극치의 고통을 그 남은 나머지 시간에 그대로 안고 있어야 하는 극형을 감내하고 지내신 것 같아요. 논리 이전에 극치의 시인임이 분명하거죠.

    • 은-유 [2012.02.04 0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언어와 몸이 같은 언어를 쓴다! 아주 적확한 표현이십니다. 논리 이전의 시인은 아주 극히 드물죠. 총기 충만한 젊은 날은 그렇더라도 갈수록 길들여진 언어를 쓰게 마련이고요. 최승자는 심연을 본 자가 아니라 심연에 든 자죠. 육박해오는 에너지가 그래서 다를 테고요. 김현의 평론에 열광했는데 요새는 어떤 형식성이 보여요..^^;

미망未忘 혹은 비망備忘 14

[올드걸의시집]

나를 빨아들이는 길.
나를 뱉아내는 길.
빠져나올 수 없는 길.
들어갈 수 없는 길.

영원토록 길이 나를 가둔다.
영원토록 길이 나를 해방시킨다.

떠나야 할 시각이 길게 드리워진다.
그가 끝나도 길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길 모퉁이에 이따금씩
추억의 나무 한 그루 서 있을 것이다.

우연의 형식들로 다가오는 모든 필연을 견디면서
이미 추억이 다 된 나무 한 그루
백발의 나무 한 그루 서 있을 것이다.


- 최승자 시집 <내 무덤, 푸르고> 문학과지성사


악행을 저지르기를 대놓고 해본 적은 없는 거 같다.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악행이 된 경우는 많겠지만 말이다. 항상 강박에 가까운 임무의식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일터에서건 가정에서건 조직에서건. 완벽한 임무수행. 깔끔한 뒷마무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우연의 형식들로 다가오는 모든 필연을 견디면서, 그렇게 살아왔고 그래서 문제였다. 빠져 나가는 길을 몰랐다. 크게는 결혼이 그랬고. 위클리 수유너머를 그만두고 싶어도 그러질 못했다. 창간부터 재미와 감동으로 일했는데 어느 순간 동력이 떨어졌다. 아마 글쓰기 강의를 시작하면서 즈음같다. 살림하고 공부하고 강의하고 취재까지 하려니 웹진이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인터뷰도 글쓰기도 자기복제가 되는 느낌이 들어서 불만스럽고 시시해졌다. 용기를 잃어갔다. 근데 그만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인생은 뒷심'이라고 떠벌렸던 입이 부끄러워서, 그리고 나까지 빠지면 가동인력이 너무 없어서다. 그러다가 악행을 저질렀다. 편지한통 보내놓고 편집회의에 무단결석했다. 내심은 니체수업 끝날 때까지로 기한을 정했는데 같이 밥 먹자는 요청까지 뻔뻔스럽게 '아니'라며 외면했다.         

어제 니체수업이 끝났다. 평일이라 겨울이라 마땅한 장소가 없어 엠티를 못가고 연구실에서 낮1시부터 밤12시까지 에세이를 발표했다. 할 때는 재밌었는데 몸에 무리가 간 걸까. 아침에 일어났더니 전신이 욱신욱신 쑤셨다. 침대에 이불 말고 누워 한나절을 보냈다. 입맛이 쓰고 마음이 휑하다. 글쓰기수업 한번 하고 끝날 때마다, 나는 이별한다. 징하게 이별한다. 시한부사랑처럼 각오된 슬픔이겠으나 비극적이고 궁상스러운 마음이 된다. 행복한데 불행하다. 힘을 받고 진을 뺀다. 왜 그런가. 각각의 삶 속에 깊이 들어갔다가 나와서 그럴까. 글쓰기 수업이 굿판인가. 돼지머리도 없구만; 모르겠다. 수업 끝나는 날에 맞춰 문의전화가 왔다. 다음 수업 언제 하느냐고. 뒷풀이할 때 동료들도 물었다. 다음 수업은 언제 하느냐고. 대답 못했다. 또 수업을 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해야하는지, 할 수 있을지 나도 모른다. 계획없이 사는 삶이 이럴 땐 불편하다. 일년 계획, 하다못해 일사분기 일정이라도 세워놓았다면 그대로 진행하겠지만. 하루하루 주사위 던져 사는 인생이니, 이 막막함 쓸쓸함 허전함의 트라이앵글 감내해야지. 지금은 길 모퉁이를 서성이며 인연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있다.  


* Mischa elman plays Zigeunerweisen 미샤앨먼의 연주로 듣는 지고이너바이젠. 너무 날카로워 차마 부드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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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정아 [2012.01.15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그동안 매순간에 충실하자를 삶에 모토로 장기계획없이 살았는데...
    올해는 하나 정했어요. " 선택과 집중"으로
    호기심만을 쫓아가다보니 손에 남는 것도 없고 나자신을 과대포장하고 있더군요.
    2012냔^^ 내자신을 더욱 꼼꼼히 들여다보는 시간들로 채우고 싶어요.

    은유도 그동안 달려온 속도를 좀 줄여야할 시간이 된것이 아닐까여????

    • 은-유 [2012.01.16 08: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호기심 따라 다니며 취했던 것들이 기반이 되어 선택도 하고 집중도 할 수 있는 거겠죠. 삶에서 불필요한 일은 없다했으니..잘 갈무리하시길 바랄게요. 저는 제대로 달려보지도 못하고 뒤뚱거리기만 한 거 같아요..;

  2. 마구마구 [2012.01.18 04: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몸은 좀 회복되셨나요. 계획 세워봤자 그대로 안되던데요 뭐. 그냥 인생 걸으면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은유님은 나보다 생각이 많고 복잡한 사람이라서 다르긴하겠지만요.^^;; 마음가는데로 그냥 내버려두시길.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시카고. 건축에 대해 전혀 모르고가도 그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도시더군요. 구겐하임 설계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작품들 보니, 일본의 영향이 확 느껴지고요. 그리고 운치와 여유가 있어요. 중절모와 검은색 긴 롱코트입은 남자의 도시입니다.^^

    • 은-유 [2012.01.19 00: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셨군요. 괜히 더 반가운 듯 ㅋㅋ 중절모와 검은롱코트의 도시라니 혹하는군요! 도시에 색을 입히는 가장 멋진 사물은 사람 아닌가싶어요..

  3. 온전히남는침묵 [2012.01.18 1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쓰기도 자기 복제! 정말 격하게 동감합니다.

    제가 쓴 글을 mfalcon.tistory.com에 올려놓고 있어요, 소설이나 기타 잡류.
    시간되셔서 와서 봐주신다면 영광일 거 같아요.

    홍보하려고 댓글쓴 건 아닌데, 주신 말씀처럼 다음에 뵈면 꼭 별꼴에서 커피 살게요.(아, 저 원래 '침묵'인데 로그인 대화명이 이거라서 이게 나왔어요.)

    • 은-유 [2012.01.19 00: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요.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어느 날, 꼭 들르겠습니다^^ 글쓰기수업을 몇 번 하다보니 한 사람에 삶에 들어갔다 나오는 일이 꼭 굿판같아서 사실 겁이 나기도 합니다..처음엔 신나서 했는데 ;;요즘은 글쓰는 일도 말하는 일도 조심스러워지네요..

  4. 보동 [2012.01.18 1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유님...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가 봐요. 가끔은 그냥 그대로 내려놓으시고 마음과 몸을 추스리시는 시간 가지세요. 저도 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족속에 속하는 것 같아서 이런 말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혼자서 다 짊어지려는 책임감에 은유님에게 고유한 오로라가 사그라들면 안되잖아요. 2012년 새해 흑룡의 해라고 많은 변화가 있을거라 하는데, 은유님 몸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래요.

    • 은-유 [2012.01.19 0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야 뭐, 멍하니 살림에 집중하거나 술과 벗하며 노는 날도 많은 걸요..ㅋ 아, 규원이 많이 컸겠네요? ^^ 보고싶네요. 보동님도 건강하고 행복한 새해 되시길 빌어요.

20년 후에, 芝에게 / 최승자 '네 스스로 강을 이뤄 흘러라'

[올드걸의시집]



지금 네 눈빛이 닿으면 유리창은 숨을 쉰다.
지금 네가 그린 파란 물고기는 하늘 물 속에서 뛰놀고
풀밭에선 네 작은 종아리가 바람에 날아다니고,

이상하지,
살아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빈 벌판에서 차갑고도 따스한 비를 맞고 있는 것 같지.
눈만 뜨면 신기로운 것들이
네 눈의 수정체 속으로 헤엄쳐 들어오고
때로 너는 두 팔 벌려, 환한 빗물을 받으며 미소짓고......
이윽고 어느 날 너는 새로운 눈을 달고
세상으로 출근하리라.

많은 사람들을 너는 만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네 눈물의 외줄기 길을 타고 떠나가리라.
강물은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너는 네 스스로 강(江)을 이뤄 흘러가야만 한다.  

그러나 나의 몫은 이제 깊이깊이 가라앉는 일. 봐라,
저 많은 세월의 개떼들이 나를 향해 몰려오잖니,
흰 이빨과 흰 꼬리를 치켜들고
푸른 파도를 타고 달려오잖니.

물려 죽지 않기 위해, 하지만 끝내 물려 죽으면서,
나는 깊이깊이 추락해야 해.
발바닥부터 서서히 꺼져들어가며, 참으로
연극적으로 죽어가는 게 실은 나의 사랑인 까닭에. 

그리하여 21세기의 어느 하오,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무덤에 술 내리고
나는 알지

어느 알자 못할 꿈의 어귀에서
잠시 울고 서 있을 네 모습을,
이윽고 네가 찾아 헤맬 모든 길들을,
_____ 가다가 아름답고 슬픈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동냥바가지에 너의 소중한 은화 한 닢도
기쁘게 던져주며
마침내 네가 이르게 될 모든 끝의

시작을!


- 최승자 시집 <즐거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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