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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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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이반일리치의 죽음> 과제 리뷰 지난 시간에 톨스토이의 인생과 작품에 대한 얘기가 오갔죠. 삶에서 우러난 글이냐, 삶을 배반한 글이냐. 오랜 논쟁거리이기도 한데, 저는 둘 다 타당하다고 생각해요.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가시나무 론에 근거해서요. 인간의 내면은 바다처럼 넓고 여러 결이 있으니까 어떤 속성은 일상에서 표출되고 어떤 속성은 비활성화 되어 있다가 작품으로 드러나는 게 아닐까요. 문득 니체의 주장이 생각나서 찾아봤어요. 호메로스가 아킬레우스였다면 아킬레우스를 창조해내지 않았을 것이며, 괴테가 파우스트였다면 파우스트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 , 제3논문, 4절 같은 맥락에서, 니체는 아마도 차라투스트라처럼 살지 못해서 차라투스트라를 창조해낸 것이겠지요. 원하는 대로 다 살아버리면, 즉 응축된 에너지를 이미 발산해버..
절두산 부활의 집 - 13월의 풍경 어릴 적, 새해 달력이 나오면 한 장씩 넘기며 휴일부터 헤아렸다. 사과보다 더 맛있게 보이던 빨간 숫자들. 하루걸러 휴일이 깔린 ‘수확의 달’ 10월은 최고였으나 뒷장은 실망 그 자체였다. 검은 숫자로 빼곡한 11월. 칙칙하고 음울했다. 매년 그랬다. 그런데, 그저 노는 날이 적어 투정부리던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면 11월의 다른 얼굴을 만난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린 마지막 잎새 같은 달력의 부피감도 허전하거니와 11이란 숫자의 모습도 애잔하다. 외로운 둘이서 언덕 저편으로 넘어가는 듯한 쓸쓸한 형상이다. 삶의 9부 능선을 넘어가는 11월. 그 길을 지나 12월을 통과하면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성지는 13월의 풍경을 담고 있다. 절두산(切頭山)은 말 그대로 머리가 잘린..
논 / 황지우 '살고싶다 별안간' 큰비 물러간 다음, 논으로 나가 본다 창평 담양 일대의 범람이여 논은 목숨이다 농부님은 이 숨 넘친 水平에서 자신의 노동을 뺀 생산비 이하의 풀포기들을 일으켜, 그래도 어쩌야 쓰것냐 살어라 살어라 하신다 멀리 제비들이 그에게 경례 한다 아픈 내 몸이 안 아프다 왜 그러지 물 위로 간신히 밀고 나온 연둣빛을 보니 살고 싶다 별안간 - 황지우 시선, 민음사 고속버스 타고 가는 길.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유리창에 빗방울들이 사선으로 아슬아슬 달라붙어 있다가 점점 미끄러지더니 가차 없이 몰락한다. 고 여리고 투명한 것들의 맹렬한 몸부림의 경연장에 내 얼굴은 희미한 배경으로 설정돼 있었다. 머리를 자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난줄 몰라봤다. 유리창 안쪽에 간당간당 매달린 나. 빗방울처럼 혼자인 나 또한 언젠가 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