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유작가

(4)
사람을 물리치지 않는 사람들 괴산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에 갔더니 연탄난로가 서있다. 학창시절 교실에서 보곤 처음이다. 동창이라도 만난 듯 다가갔다. 불꺼진 난로 옆에 연탄 여덟 개가 대기 중이다. 어릴적 엄마랑 외출했을 때 엄마는 연탄불이 꺼질까봐 늘 발을 동동거렸다. 연탄 구멍 사이로 엄마의 초조한 눈빛이 보인다. 너는 누구를 위해 한번이라도 연탄을 갈아봤느냐, 유명한 시구를 내맘대로 고쳐 써본다. 대합실 벽면엔 ‘축 발전’이 새겨진 거울이 걸려 있다. 서울에서 고작 두 시간 이동했는데 다른 시간대에 떨어진 영화 주인공처럼 나는 두리번거린다. 괴산 솔멩이마을에 글쓰기 강연을 왔다. 섭외 제안이 연애편지 같았다. 진즉에 초대하고 싶었는데 못하다가 사업비가 생겨서 부른다는 사연. 가난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괴산이라서 더 그랬을까. 괴산..
다가오는 말들 북콘서트 신청은 요기 알라딘: https://bit.ly/2VKtbZ2예스24: https://bit.ly/2VR9kHW교보문고: https://bit.ly/2u0OQAH
이분법의 유혹 ‘너희들 나이도 어린데 대단하다 같은 말을 삼가 주세요.’ 얼마 전 청소년 대상 강의를 앞두고 몇 가지 당부가 적힌 메일이 왔다. 강사들에게 귀띔할 정도면 이런 일이 잦나 보다. 부끄럽지만 나도 전적이 있다.한 강연에서 그간 청소년을 만나면서 편견이 깨졌노라 고백하다가 그 문제적 발언, ‘청소년들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는 걸 지적받고 알았다. 한 청소년이 말했다. “만약에 은유 작가님께 누가 ‘여자가 이런 글도 쓰고 대단하다’는 말을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무안함에 ‘땀뻘뻘’ 상태가 된 나는 다른 섬세한 표현을 찾아보겠다며 사과했다. 며칠간 그 쓴소리가 웽웽거려 혼자 얼굴 붉어졌다. 맞는 말인데 ‘좀만 살살 말해주지’ 싶은 서운함이 들었지만, 청소년을 동료 시민으로 대하지 못하고 은근히 하대한 ..
두 개의 편견 성판매 여성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친구가 홍보용 소책자를 건넸다. 성판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로잡는 글이 문답식으로 적혀있다. 무심코 넘기다가 한 페이지에 멈췄다. 사람들은 성판매 여성에게 쉽게 충고한다. 그 일을 그만두고 ‘떳떳한 직업’으로 새 출발 하라고. 하지만 하던 일 관두고 새 직업을 찾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두 번 움찔했다. 한번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걸 알아차려서, 한번은 비슷한 일을 겪고 있어서였다. 당시는 금융업에 종사하던 내 배우자가 다른 일을 해보려고 시도했으나 좌절하던 때였다. 업종을 바꾸려는 순간 이전의 경력과 스펙, 몸뚱이가 쓸모없어지는 ‘생산성 제로’ 인간이 되어버린다. 효율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업무 감각을 몸에 익히도록 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