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작가'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9.03.11] 사람을 물리치지 않는 사람들 (2)
  2. [2019.03.09] 다가오는 말들 북콘서트
  3. [2018.08.27] 이분법의 유혹 (4)
  4. [2018.06.03] 두 개의 편견

사람을 물리치지 않는 사람들

[은유칼럼]

산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에 갔더니 연탄난로가 서있다. 학창시절 교실에서 보곤 처음이다. 동창이라도 만난 듯 다가갔다. 불꺼진 난로 옆에 연탄 여덟 개가 대기 중이다. 어릴적 엄마랑 외출했을 때 엄마는 연탄불이 꺼질까봐 늘 발을 동동거렸다. 연탄 구멍 사이로 엄마의 초조한 눈빛이 보인다. 너는 누구를 위해 한번이라도 연탄을 갈아봤느냐, 유명한 시구를 내맘대로 고쳐 써본다. 대합실 벽면엔 ‘축 발전’이 새겨진 거울이 걸려 있다. 서울에서 고작 두 시간 이동했는데 다른 시간대에 떨어진 영화 주인공처럼 나는 두리번거린다. 


괴산 솔멩이마을에 글쓰기 강연을 왔다. 섭외 제안이 연애편지 같았다. 진즉에 초대하고 싶었는데 못하다가 사업비가 생겨서 부른다는 사연. 가난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괴산이라서 더 그랬을까. 괴산은 빈민운동가 정일우 신부가 88올림픽을 앞두고 상계동이 철거되자 터를 잡은 곳이다. 이곳에서 땅을 살리는 유기농법 전파에 힘을 쏟았다. 그의 다큐멘터리 <내 친구 정일우>에서 그는 말한다. “더 가난해졌으니까 잘 된 것이다. 가난해야 천국에 가깝다.” 이 말 뜻을 이해하고 싶어서 괴산에 가보고 싶었다. 


강연을 주선한 엄선생님이 터미널에 마중을 나왔다. 차를 얻어타고 가는데 점심을 먹자고 한다. 식사 초대는 매번 딜레마다. 강연 전에 낯선 사람과 식사를 하면 기운을 뺏기고, 강연 후엔 기운이 소진돼 밥이 안 넘어 간다. 정중히 사정을 말하고 사양하곤 한다. 때마침 남은 시간도 빠듯해 핑계도 적당했다. 그런데 웬 걸. “강연에 좀 늦어도 돼요. 밥 먹고 갈테니까 차 마시면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한다. 


메뉴는 김치찜. 윤기가 반들반들 흐르는 묵은지를 보자 침이 고인다. 반찬으로 나온 계란말이도 특별했다.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한 조리법인데, 노란 테두리에 하얀 속살 사이사이 오색 채소가 박힌 도톰한 계란말이는 젓가락 대기도 아깝게 고왔다. 계란말이에 대한 찬사를 건네자 주인이 그런다. “계란말이만 7년을 연구했어요.” 그 말이 내겐 이 원고는 퇴고만 7년 했어요,로 들렸다. 평소 농담처럼 말하지만 글은 밥과 경쟁한다. 밥 한그릇 만큼 필요와 만족을 채워주는 글을 쓰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예정대로 10분 지각했다. 강연에 늦고도 이토록 속 편한 것도, 수도가 얼어 화장실을 쓰지 못하는 강연장도, 마을회관 같은 오붓함도 처음이다. 암막 커튼이 없고 햇살이 눈부셔서 스크린이 희미하게 보였지만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두 시간이 태평하게 흘렀다. 강연료가 적어서 미안하다며 엄선생님이 꾸러미를 건넸다. 직접 농사지은 쌀로 만든 누룽지, 딸기잼, 블루베리잼, 계란, 술이 한보따리다. 


“산이 참 깊네요.” 들어올 때 안 보이던 풍경 나갈 때야 보인다. 울울창창한 산세에 감탄하는 내게 엄선생님 말한다. “저 아랫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은 산에서 내려온 호랑이를 봤다고 해요.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으면 머리는 남기고 몸통만 먹는대요. 멧돼지는 머리까지 다 먹고요.” 전래동화처럼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하지만 본 적 없는 공룡도 믿는데 할머니가 본 호랑이를 못 믿을 건 무언가. 자연에서 반나절, 시간 엄수, 근거 확립, 신속 정확 같은 도시의 감각에서 잠시 놓여나니 마음이 들녘처럼 넉넉해진다.


<내 친구 정일우>의 원래 제목은 ‘사람 물리치지 않는 정 신부’였다고 한다. 사람 물리치지 않는 사람 품은 고장에서, 그가 말하곤 했던 사람 물리치지 않는 주문을 되뇌어본다. “사람은 누구나 깨진 꽃병이다. 이렇게 막고 저렇게 막고 해봤자 깨진 걸 숨길 수 없다.” 연탄 난로와 깨진 꽃병의 마음이 있는 그곳이 천국이겠구나 생각하며 서울을 향한다.


한겨레 3월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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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ina [2019.03.17 2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따듯해지는 글입니다:) 오는 봄이 작가님 곁에, 우리들 곁에 더 오래 머물길 바래봅니다

  2. 은-유 [2019.04.12 20: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nina님 고맙습니다.

다가오는 말들 북콘서트

[극장옆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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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의 유혹

[은유칼럼]

‘너희들 나이도 어린데 대단하다 같은 말을 삼가 주세요.’ 얼마 전 청소년 대상 강의를 앞두고 몇 가지 당부가 적힌 메일이 왔다. 강사들에게 귀띔할 정도면 이런 일이 잦나 보다. 부끄럽지만 나도 전적이 있다.

한 강연에서 그간 청소년을 만나면서 편견이 깨졌노라 고백하다가 그 문제적 발언, ‘청소년들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는 걸 지적받고 알았다. 한 청소년이 말했다. “만약에 은유 작가님께 누가 ‘여자가 이런 글도 쓰고 대단하다’는 말을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무안함에 ‘땀뻘뻘’ 상태가 된 나는 다른 섬세한 표현을 찾아보겠다며 사과했다. 며칠간 그 쓴소리가 웽웽거려 혼자 얼굴 붉어졌다. 맞는 말인데 ‘좀만 살살 말해주지’ 싶은 서운함이 들었지만, 청소년을 동료 시민으로 대하지 못하고 은근히 하대한 내 무지를 깨우쳐준 은덕을 입어 놓고 다정함까지 바라는 건 염치없다는 자각에 이르렀다.

나 기성세대인가. 자동으로 늘어나는 뱃살처럼 안정과 나태에서 오는 ‘정신의 군살’이 한번씩 만져질 때마다 당혹스럽다. 편견을 깬다면서 편견을 쌓아가고 있었음이 들통났다. 어른은 성숙, 아이는 미숙 같은 이분법의 잣대로 충고하거나 칭찬하는 권력을 스스로 부여하기도 한다. 이게 단지 나이 탓일까.

한 여자 선배는 동일범죄 동일처벌의 기치를 내건 젊은 여성들의 ‘혜화역 시위’를 두고 과격하다며 도리질 쳤다. 자기 같은 여자들도 아우르려면 개방적이고 온건하게 해야 한다는 거다. 순간 선배가 기성세대로 보였다. 그건 남자가 이해하는 만큼만 허락하는 ‘오빠 페미니즘’ 입장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절실함 없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어떤 대단한 혁명세력에게도 어려운 미션이다.

유명한 시구대로 늙은 의사가 젊은이의 병을 모르듯이, 우리 세대만 해도 젊은 여성들의 ‘불법촬영’에 대한 공포와 분노를 체감하지 못할 테니까 노력은 우리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일전에 혜화역 시위 참가자에게 들었다. 4시간 넘는 집회에서 1~2분도 안 되는 시간에 흘러나온 혐오성 구호만 자극적 이슈로 남았다며, 혐오 발언이 옳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말하려는가 들어달라고, “말투에 트집을 잡는 사람은 대화에 집중하지 않는 것”이라는 그의 일침을 선배에게도 전했다.

요즘은 여성주의 이슈가 복잡다단하다. 외국어 배우듯 줄임말과 신조어를 익혀가며 간신히 쟁점을 따라가지만 벅차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지난 토요일엔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관하는 광화문 집회에 나갔다. “피해자다움 강요 말고 가해자나 처벌하라” 구호를 외치며 생생한 현장의 언어를 수혈받고 돌아와 기사를 검색하니 댓글은 딴 세상이다.

‘여성단체는 왜 장자연은 가만히 있고 김지은만 떠드느냐’는 댓글이 최다 추천에 올랐다. 이는 한국 사람이 굶어죽는데 왜 해외 난민을 돕느냐는 말처럼 익숙한 구도다. 이런 말 하는 사람치고 구체적 대상을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성단체 호통칠 시간에 과거 뉴스를 조금만 찾아봐도 안다. 미투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장자연 사건이 9년 만에 재수사에 착수했고 미투는 여성(단체)의 오랜 분투와 역사 속 김지은들의 목소리로 일궈낸 거센 물결임을. 김지은과 장자연은 대립항이 아니라 공의존 관계다.

기성의 관념에 갇히는 건 게으름 탓 같다. 특히 이분법은 사유의 적이다. 생각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누구나 기성세대가 된다. “선입관이 현실을 만나 깨지는 쾌감”(고레에다 히로카즈)은 세상에 자기를 개방할 때만 누리는 복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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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맘썰렁 [2018.08.29 1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자연 사건 수사하라고 당시 여성단체에서 얼마나 목소리를 높였는지, 재수사하라고 또 얼마나 목소리를 높였는지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 하는건지. 무식해서 용감한거지 그냥 딴지 걸고 싶은건지. 댓글이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댓글 볼 때마다 너무 화가 치솟아서 미칠 것 같다는.

  2. 아나그노리시스 [2018.08.29 2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혜화역 시위의 구호나 면면을 안다면 그들이 정당한 여성권리 향상을 바라고 목청 높이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디테일은 안 보시고 '여성이라는 집단명사'의 외피만 보는 건 아니신지요. 남성이 여성 입장을 이해 못하는 한계가 있다면, 여성이라서 여성이라는 명칭으로 행하는 운동마다 너그러운 건 아니신지요.

    • 은-유 [2018.08.31 10: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좋은 지적 해주셨어요. 제한된 지면에 다 넣을 수 없어서 좀 거칠게 넘어간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 집회의 위험하고 무서운(!)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워낙 참여자가 수만명 되다보니 별의별 목소리가 다 나오는 거 같기도 해요. 그래도 귀 기울여보고 싶은 의지가 아직은 있는 상태입니다.

두 개의 편견

[은유칼럼]


성판매 여성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친구가 홍보용 소책자를 건넸다. 성판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로잡는 글이 문답식으로 적혀있다. 무심코 넘기다가 한 페이지에 멈췄다. 사람들은 성판매 여성에게 쉽게 충고한다. 그 일을 그만두고 ‘떳떳한 직업’으로 새 출발 하라고. 하지만 하던 일 관두고 새 직업을 찾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두 번 움찔했다. 한번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걸 알아차려서, 한번은 비슷한 일을 겪고 있어서였다. 


당시는 금융업에 종사하던 내 배우자가 다른 일을 해보려고 시도했으나 좌절하던 때였다. 업종을 바꾸려는 순간 이전의 경력과 스펙, 몸뚱이가 쓸모없어지는 ‘생산성 제로’ 인간이 되어버린다. 효율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업무 감각을 몸에 익히도록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직 기회가 적고 적응이 어렵다. 결국 나의 배우자도 본래 업종으로 복귀했다. 직업을 바꾸는 일이 개인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게 아님에도 유독 성판매 여성들에게는 너도나도 훈계했던 거다.


안다는 건 자기 무지를 아는 것이란 말대로, 소책자의 몇 줄 문장은 내 가치 체계를 흔들어놓았다. 떳떳한 일이란 무엇인지, 좋은 직업은 누가 승인하는지, 왜 그들의 행복은 탈-성매매일 것이라고 당연히 규정했는지 혼란스러웠다. 우연히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접속했고, 거기서 또 하나의 화두를 만났다. 


성판매 여성은 쉽게 돈 번다는 비난이다. 당사자는 증언한다. 성노동이 “밀폐되고 통제력을 갖기 힘든 상황에서 안전장치 없이 상대방의 요구에 맞춰줘야 하는 중노동”이라고(실제로 2002년 군산 성매매업소의 화재로 열네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반문한다. “쉽게 돈 벌면 왜 안 돼? 우리는 다들 쉽게 돈 벌고 싶어 하잖아요. 그래서 로또를 사고 건물주가 되길 바라고요.”


집필노동자인 내게 사람들은 덕담을 건넨다. ‘이번 책 대박 나세요.’ 가급적 수월하게 돈 벌라는 뜻이다. 쉽게는커녕 정직하게 돈 벌기도 어려운 세상이니 말이라도 넉넉하게 주고받는 것일진대, 같은 말이 특정한 대상에겐 비난의 말로 쓰인다. 이토록 성판매 여성들이 온갖 설교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숨겨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목소리 없는 이들은 납작한 존재로 일반화, 단순화, 타자화된다. 


내가 (두 번 볼 만큼) 좋아하는 영화에서도 성판매 여성은 상징적 폭력을 겪는다.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는 다니엘이 케이티의 성매매업소에 찾아가서 제발 이런 일만은 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이창동의 <버닝>에서 종수는 해미에게 창녀나 아무 남자 앞에서 옷 벗는 거라고 말한다. 젠더 편견과 선악의 잣대가 주저 없이 개입해 영화적 흐름이 깨지는 아쉬운 대목이다.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는 성판매 여성의 글을 묶어낸 책 제목이다. 이 사회에서 말의 지분을 갖지 못했던 당사자의 생생한 외침과 증언은 아프고 날카롭다. “몸 팔아서 쉽게 버는 게 옳으냐”가 아니라 왜 취약한 계층이 성판매로 유입되는지, 왜 누구는 성구매에 척척 지갑을 열고 누구는 성을 판매해야 겨우 ‘생계비’를 마련하는지, 정말 돈 쉽게 버는 사람이 누군지 저자 이소희는 묻는다. 

나도 질문을 바꿔본다. 왜 꼭 어렵게 고생해서 돈을 벌어야 가치 있다고 난 여겼을까. 나 같은 순치된 인간을 길러낸 세력은 누구이며, 그걸로 덕을 본 자들은 누구일까.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자기 삶의 문제인지도 몰랐던 문제가 드러나는 경험은 언제나 신비롭다.


*한겨레 삶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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