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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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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진 한장 제주에 강연 갔다가 손석희 씨를 만났고 사진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좋아요가 일천개, 댓글이 일백개가 되어가고 있다. 뭇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그는 거의 국민적 영웅인 거 같다. 실물 대면 전에 막연히 생각한 것보다 더 괜찮은 기운이 나오는 그에게 호감을 느낀 나는 새로운 책을 홍보할 겸 사심을 갖고 같이 사진을 찍었으나, 마음 한켠 꺼림칙함이 가시지 않아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 신체의 계급성 손석희씨랑 사진 찍기까지 많이 주저했습니다. 일단 영웅적으로 추앙 받는 사람에 대한 근원적인 거부감이 있어서고요. 사람은 누구나 허물과 결핍을 가진 '깨진 꽃병'인데 신비화가 가능하고 필요한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같아요. 한 사람이 수십년 한국 언론인의 상징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면 그건 당사자의 탁..
출판하는 마음... 알면서 '외않사' 신청은 여기로 https://goo.gl/forms/yC5dWQ4vXyJwn8xy1
우리가 한바탕 이별했을 때 마흔이 되자 친구들이 이혼하기 시작했다. 배우자가 무책임해서, 시댁이 무례해서, 같이 있기 싫어서 갈라선다고 했다. 남 일은 아니었다. 나도 한달간 떨어져 지냈다. 사람이 이토록 미워지는 마음이 참 낯설었는데, 내가 지은 밥을 그가 먹는 게 싫어질 지경에 이르렀을 때 결심했다. 소설가 위화는 책을 읽다가 재미없으면 덮는단다. 계속 읽으면서 작가를 미워하긴 싫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장 덮듯 나도 얼굴을 덮고 싶었다.‘한부모 여성 가장’이 된 친구들은 아이에게 이혼 알리기를 가장 어려워했다. 아이가 어릴수록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회사 일로 떨어져 지낸다, 아빠는 외국에 갔다는 철 지난 유행가 같은 이유를 둘러댔다. 결혼 10년간 한 번도 생활비를 준 적 없는 남편과 헤어진 선배는, 짐을 벗어버렸는데 생각..
<출판하는 마음> 드디어 나왔습니다 드디어 나왔습니다. 표지 예쁘죠? 저 뒷모습 ( 읽는) 박보검 설 ㅋㅋ🤔 숨겨진 노동에 관한 이야기면서 현업 종사자들의 책 내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 직업에 관한 소개서입니다. 미래의 출판꿈나무들에게도 권해주시고 많이 읽어주세욤. "나는 글과 책을 분간하지 못하고 있었다. 글이 내 안에서 도는 피라면,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리베카 솔닛) 책은 누군가에게 읽힐 때만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나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모호한 자의식은 제쳐두고, 비용을 지불하고 책을 사는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지, 독자가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는데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지를 독자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글과 책, 저자와 독자, 의미와 상품, 도덕과 시장의 길항으..
딸 없으면 공감 못하나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동성 친구에게 힘든 얘기를 잘 안 한다고 남자 지인이 말했다. 그 자리의 네댓 명이 대체로 동의했다. 내 아버지나 남편, 동료들을 봐도 결정적인 고민은 남들과 공유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힘든 일이 생기면 친구랑 전화통 붙들고 운다. 친구의 긴급 호출도 물론 온다. 이런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왜 그런지 토론했다. 한 중년 남성은 사회생활의 경쟁 시스템에선 하소연이 곧 약점이 되어 불리하니까 숨긴다고 했다. 여자들의 고민 공유, 즉 수다는 약자들의 연대라고 나는 말했다. 말해봐야 잃을 것도 없고, 말이라도 해야 후련하니까. 일종의 궁여지책이다. 품앗이처럼 말하고 들어준다. 그러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타인의 처지도 공감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또 하루를 살아간다. 난 어려서부터..
은유 읽다 - 시시콜콜 시詩알콜 5년 만에 해외여행을 간 건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여행 계획을 밝히며 가고 싶으면 붙으라고 했다. 소싯적 ‘줄넘기할 사람 여기 붙어라’에 엄지손가락 잡듯이 나는 붙었고 다른 친구도 붙었다. 여권 번호와 영문 이름을 불러주고 친구가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했다. 그때가 초여름, 여행은 가을. 실감나지 않았다. 집필·강연·살림이 회전문 돌아가듯 들이닥치는 일상에서 나는 과연 일주일간 훌훌 떠날 수 있을 것인가. 눈을 떠보니 타이 북부 도시 치앙마이. 한국에서 기껏 폭염을 견디고 다시 무더위 복판에 던져졌다. 사놓고 한 번도 못 입은 끈 달린 원피스에 슬리퍼 끌고 손바닥만 한 핸드백 메고 여행자 모드로 변신했다. 휴대전화 로밍은 하지 않았다. 할 일 없이 들여다보는 스마트폰과 읽지도 않을 책을..
서울, 패터슨의 가능성 평일 오후에 이런 적은 처음인데 싶어 연신 창밖으로 몸이 기울었다. 정류장이 코앞. 신호가 몇번 바뀌도록 버스가 꼼짝 못 하자 기사는 뒷문을 열어주었고 승객 서넛이 내렸다. 큰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정류장도 아닌 데 차를 세웠다며 뒷문 쪽에 웬 남자가 서서 목청을 높였다.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 줄 아느냐, 운전기사가 아무것도 모른다, 형편없는 사람이다, 라며 그는 술 취한 아버지처럼 한 말 또 하기 신공을 발휘하더니만 느닷없이 화제를 자신에게 돌렸다.“내가 말이야 모자 쓰고 잠바때기나 입고 있는 늙은이라고 날 무시해!” 짙은 밤색 모자와 남색 외투를 입은 행색은 단정하고 허리는 꼿꼿했다. 행동도 민첩했다. 핸드폰을 꺼내 차 문 위에 붙은 교통불편 신고 전화번호를 누르고 차량 번호, 위치, 신고 내..
김장 버티기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는데, 찬 바람이 불면 내 마음엔 커다란 김장독이 산다. 남도의 땅에서 나고 자란 엄마는 김치를 중시했다. 배추김치는 기본에 깍두기, 총각김치, 갓김치, 파김치, 물김치를 번갈아 담갔고 김장철엔 손이 더 커졌다. 김치 가져가라는 전화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고선 냉장고에 자리도 없는데 또 담갔냐고 기어코 한소리하기도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10년, 엄마 김치를 못 먹게 된 지 10년이다. 김치 가뭄으로 엄마의 부재를 실감한다. 시댁에서 가져온 김치는 빨리 동나고 산 김치는 비싸서 감질나고, 나는 김치를 담글 줄 모른다. 가사노동, 양육노동, 집필노동으로 꽉 채워진 일상. 내 인생에 김치노동까지 추가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