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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몸 파르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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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상 - 여성의 집단기억 봉인 푸는 페미니스트 한겨레 박승화 새까만 눈동자에 설핏 물기가 오르곤 한다. 소행성B-612호에서 온 전령사처럼 짧은 곱슬머리, 날렵한 재킷에 긴 스카프를 둘렀다. 호쾌한 웃음과 수다에 열띠다가도, 갓 난 송아지처럼 물끄러미 보다가 고인다.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하여 하늘나라가 보인다고 함석헌은 말했던가. 초점을 잃고 사라지는 사물들을 지나 눈물렌즈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어떤 세계를 향한 그리움일까. 언어 대신 상징으로 답을 청했다. 그녀가 가방에서 타로카드를 꺼냈다. 옥빛 융단이 깔리고 동그란 카드가 몽글몽글 흩어진다. 잰 손놀림이다. 78장의 상징화. 구상과 서정추상 사이 평평한 그림들, 압도적 느낌들. 태초의 그날처럼 삶이 가득하다. 거기서 카드 두 장을 찾은 그녀가 신분증 제시하듯 멋쩍게 내민다. 생년월..
국가기관 2차 피해자 해인 -"성서비스노동자의 성폭력 고통, 외려 커요" 한겨레 박승화 더한 고통, 덜한 고통이 있을까. 같은 ‘불면증’을 앓고 있다고 해도 내가 의미하는 고통으로 너는 이해하지 않는다. 고통은 서로의 상태를 비교하도록 허용되는 체험이 아니다. 영혼의 경험이다. 윤동주의 시구대로 “늙은 의사가 젊은이의 병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내재적이고 전달 불가능하며, 그래서 비교 불가능하다.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은 쉬이 비교당한다. 장소, 시간, 수법 등을 따져 육체적 경험으로 여기고 고통의 양을 객관화한다. 안방에 침입한 괴한에 의한 아동의 피해와, 모텔에서 일어난 유흥업소 종사자의 피해는 같은 성폭력이라도 달리 간주된다. 이해받는 고통, 의심받는 고통은 있다. 정숙한 여자와 타락한 여자라는 사회적 척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해인(가명)은 후자의 경우다. 사건 직후 ..
너울 - 읽고 쓰고 말하며 거듭난 주체, 나는 행복해도 된다 이곳은 소수언어박물관이다. 사멸해가는 소수언어의 마지막 화자들이 전시되어 있다. 자신이 살던 공동체에서 분리되어 박물관에 사는 한 노인은, 모어를 마음껏 쓸 수 있는 고향을 그리워한다. 말에 대한 지독한 향수병에 빠진 채 차가운 전시관에서 “삶 비슷한 것”을 살다가 죽음을 맞는다. 그러자 그가 쓰던 소수언어도 사라진다. 말의 통제, 삶의 단절 그리고 작은 말들의 사라짐. 어쩐지 괴이하고 쓸쓸하다. 삶의 질료인 언어가, 관계와 이야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통제와 관리의 도구가 된 이 시대를 김애란은 소설 로 그려낸다. 너울은 침묵의 미래에서 걸어 나온 사람이다. 사라지는 언어 최후의 화자가 그러하듯, 말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였다. 인터뷰를 위해 취재 의뢰 메일을 보냈을 때 그는 카페에서 쓴 시를 한 바닥 ..
소히 - 보사노바뮤지션 '너무 흔한 비밀을 노래하네' [내 몸, 파르헤시아] 보사노바 뮤지션 소히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 방법 방법/ 약간은 낙관적으로 강해질 것/ 남들의 시선을 나에게 대지 말기/ 잘할 수 있는 일들에 열중하기/ 부드럽게 환하게 서로를 지켜보기/ 나보다 세다고 눈감아주지 말자 중 소히 1집 (2006)에 수록된 노래다. 직접 가사를 쓰고 곡을 붙였다. 일용할 양식과도 같은 가사에, 흥겨운 보사노바 리듬을 입혀서 청아한 음성으로 부른다. 그해 처음 반팔 셔츠를 꺼내 입은 날 살갗에 떨어지는 노란 햇살처럼 묵은 감각을 깨우는 기분 좋은 노래다. 아니다. 그해 처음 내리는 겨울비가 콧등에 떨어질 때처럼 시큰하기도 하다. 경쾌하거나 애잔하거나. 소히의 노래는 빙긋이 웃게 한다. 이름의 주술적 힘일까. ‘소히’(sorri)는 포르투갈어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