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아멘> 신적인, 시적인, 선적인

[극장옆소극장]

영화가 끝났을 때 가슴이 아렸다. , 신음 같은 감탄사가 터졌다. 심오한 내용을 잘은 이해하지 못해도 아름다운 건 알겠는 기이한 체험. 신이 보이고 삶이 보이고 김기덕이 보인다. 제목이 <아멘>이다. 여주인공이랑 둘이 프랑스에서 만든 로드무비인데 대사가 거의 없다. 글씨 없는 그림책 같은 영화다. 한 시간 반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만큼 스크린이 회화적이다. 크레딧도 달랑 세 줄. ‘감독 김기덕’ ‘배우 김예나’ ‘촬영 김기덕 김예나그리고 END. 이건 거의 묵언수행이다. 김기덕이 열반에 들었구나, 그렇게 결론내렸다. 아무려나, ()적인 것이 신()적이고 시()적이기까지 하다.


사실 김기덕의 영화를 끝까지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수년 전부터 그의 작품을 보려고 시도하다가 끔찍한 장면에서 그냥 꺼버리곤 했다. 미장센은 지독히도 아름다운데 상상초월 날 것의 장면에 눈 맞추기 힘들었다. 영화가 고행이자 고문이므로, 나는 눈 돌렸다. 그런 내가 변한 건가. 제아무리 영화가 끔찍해도 삶의 냉혹함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삶의 엄정함을 극단까지 밀고 나가는 김기덕이 새삼 위대해 보인다. 어느 평론가의 지적대로, 창녀가 여대생이 되는 허구적 설정으로 스토리를 치장하지 않는 점이 훨씬 윤리적인 것 같다.

이것은 시를 읽으면서 느낀 변화이기도 하다. 김수영은 삶의 절망을 또렷이 직시한다. 관념적인 언어로 덧칠하며 쉽게 화해하지 않는다. 삶에 가득한 모순과 역설을 끝까지 끙끙 앓으면서 가져가는 것. 그 노력. 그 사랑. 그 눈물겨움. 그것에 뜨겁게 위안 받는다. 언제부턴가 그런다.

다시 김기덕. <아멘>을 보고 나니 존경스럽다. 인생수업을 마치고 다른 층위로 등업한 자의 내공이 느껴진다. 어떻게 저렇게 깊게 군더더기를 제거해버리고 삶의 정수를 담아낼 수 있을까. (나의 짐작이지만 칸느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을 것만 같다.) 나이 들면서 깊이를 더해가는 예술가를 경험하면서, 무엇이 한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가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배신이 아닐까. '배신을 통한 성장' 아직 못 봤는데 <아리랑>에는 김기덕의 품을 떠나서 자본의 품으로 가버린 장훈감독에 대한 실명비판이 나온단다. 살기등등하다는 후문.

몇 년 전, 김기덕이 유명해졌을 때 본 인터뷰가 기억난다. 초년고생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이다. 그림을 잘 그렸고 파리로 떠났다. 거리의 화가로 돈 벌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우리나라 미술계가 학력카르텔이 공고해서 실력을 인정받을 수 없겠다싶어서 방향전환했단다. 시나리오를 썼다. 어떤 공모에서 입상해서 가능성을 확인하고 쓴 다음 작품이 <악어>다. 그 시나리오는 누구를 도저히 주기가 아까워 본인 스스로 감독까지 하게 됐다는 얘기였다. 비주류로 살아가면서 자기만의 작품을 구축했고 세계 3대영화제 상을 받은 유일한 감독인데, 배신사건 이후 폐인 됐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실제로 현재 김기덕의 모습은 봉두난발 흰머리 흩날리는 야인 혹은 도인의 아우라가 물씬했다.

어디 제자의 배신뿐이겠는가. 영화필모그라피와 함께 상처도 첩첩 쌓였을 것이다. 고통을 통한 앎의 증대가 일어났으리라 짐작해본다. 사람에 대한 환멸을 느끼면 기존의 가치관이 다 무너진다. 그 사건을 중심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려면 다른 가치와 다른 언어를 발명해서 나의 세계관을 재구성해야 한다. 그 전전긍긍과 암중모색은 사유의 지평을 넓히고 인간적 성숙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황지우도 그랬다. 87년 승리 이후 양김 분열로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고 이에 좌절한 그는 무등산으로 숨어버린다.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 이 늙은 낱말들 앞에 기다리기만 하는' 초조한 삶을 견디며 시를 쓴다. 그렇게 나온 <게눈 속의 연꽃>을 지난 주 시세미나에서 읽었는데, 김기덕의 <아멘>에서 황지우의 선적인 것이 겹친다.

시집의 첫 시가 <>이다. ‘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가다보면 길이 거품이 되는 여기/ 내가 내린 닻, 내 덫이었구나로 끝난다. 닻이 덫이 되는 삶의 잔인함이 섬뜩하다. <눈보라>에서 이제는 괴로워하는 것도 저속하여 / 내 몸통을 뚫고 가는 바람 소리가 짐승 같구나이런 구절도 있다. 영화 <아멘>에서도 짐승 같은 바람소리가 줄곧 난다. 무엇보다 황지우의 시적 절정은 <산경>의 마지막 구절이다.

...
그러므로
, 길 가는 이들이여
그대 비록 악惡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약藥과 마음을 얻었으면,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 

황지우가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니까 김기덕이 아멘'이라고 화답하는 것만 같은 시구다. 삶이 배신당하는 장소에서 자기성찰이 싹트고 수작이 태어난다. 황지우가 그렇고 김기덕이 그렇다. '크나큰 사랑으로 사랑하고, 크나큰 경멸로 사랑하라(니체) 했거늘, 예술가의 고통이 대중에게는 기쁨이 되니,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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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푸리 [2011.12.03 0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김기덕의 영화와 황지우의 시를 닮기에 아주 꼭 맞는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저도 글쓰기의 최전선에도 맨몸으로 나서서 버텨 보고 민망함을 무릎 쓰고 시 세미나에도 두꺼운 얼굴을 들이밀었을텐데...... 정말 얼마나 아쉬운지요..ㅠㅠㅠ

    조금씩이나마 은유님의 글을 읽으며 혼자서라도 글 공부를 해보려고 해요.. 은유님이 글을 정말 잘 쓰시긴 하지만 다른 유명한 작가분들도 많으신데 이상하게도 저는 은유님을 통해서 글쓰기를 느껴보고 살아보고 공부해보고 싶었어요. 글쓰기 강의를 시작하시기 전에도 말이죠.. ^^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 은-유 [2011.12.03 2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뭔가 기분이 좋아집니다. ㅎㅎ 지푸리님과 함께하지 못해 저도 아쉽네요. 후기라도 꾸준히 올려서 느낌공유하도록 할게요. 지푸리님도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로 마음을 풀어내보세요.^^

  2. 마구마구 [2011.12.04 1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기덕 감독... 사실 꿈에 나타날까 무서운 사람인데.^^;; 은유님 글을 읽으니 이번에는 보통사람이 끝까지 볼 수는 있는 영상인가보네요. 신적이고, 시적이고, 선적이기까지... 영화 내용은 어려운듯하군요^^;;

  3. 연초록 [2011.12.06 0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도 제겐 김기덕은 열지 않고 있는 문이랍니다.

    왜냐고 물어도 뭐라고 딱히 답하기 힘든

    그런데 글읽으러 들어와서 황지우 시에 마음이 움직여서 오랫만에 그의 시를 읽습니다.

    묘한 기운이란 이런 때 쓰는 말인가 보네요.

    오늘 기분좋은 일 한가지, 처음에 바이올린 시작하기 전 덜컥 악기부터 사기 곤란해서

    아는 분에게 빌려서 썼습니다 .그 뒤에 계속 하겠다는 작정을 하고 연습용 악기를 구했지요.

    그런데 마침 피아노치면서 바이올린을 배워야 작곡을 하는 기본을 제대로 배울 것같다는 제자가 있어서

    바이올린을 소개해서 살 수 있게 하려고 그 분에게 연락하니, 자신은 이미 조금 좋은 악기로 바꾸었으니

    그런 뜻으로 악기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선물하겠노라고, 그리고 그 아이가 다시 조금은 좋은 소리로

    바꾸는 경우 또 새롭게 시작하는 아이에게 선물하면 좋겠다고요. 갑자기 기분이 따뜻해지면서


    아, 나도 언젠가 지금보다 좋은 소리의 악기로 바꾸게 되는 날이 오면 그런 선물을 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연습하는 시간이 더 좋아지더라고요.

    • 은-유 [2011.12.06 2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기덕은 자기가 자기자신에게 하나의 과제인 인물 같아요. 영상으로 풀어내는 열정이 있고요. (바이올린 선물은 니체가 말하는 강자의 도덕에 충족하네요. 자기의 넘침이 곧 베품이 되는 ^^)

  4. 삐삐 [2011.12.06 0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기덕 감독의 초기 영화들이 좀 험했지 2000년대 후에 만들어진 영화들은 선적인, 혹은 초현실적주의적인, 혹은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패치워크를 쓰는 여러가지 형태의 영화들이 만들어졌었어요. 한국의 관객들과 비평계가 모두 그를 막아놓고 있던 상황이 전혀 이해가 안되더군요. 무엇이 그렇게 한국의 여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지요?ㅎ 김진숙씨의 책도 두려워죽겠다고 하니까 트윗터에 심지어 김진숙씨가 제 책 보지 마세요 라고 까지 여러번 호소하시는 것을 읽고는 할말을 잊기도 했습니다만 김기덕씨의 영화를 두려워하는 이유와 관련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정규 교육과정을 밟지 않은 사람들이 책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강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그들과 문을 단단히 닫아걸어야 하는데 열려져 있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파시즘 증후군이 중산층의 기저 심리까지 무의식층에 침투되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저는 김기덕씨의 영화들을 한 70퍼센트 정도 보았지만 한국의 박찬욱감독의 폭력적인 영화, 살인의 추억이나 어머니를 만든 감독, 갑자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만 그런 유명한 감독들의 영화보다 더 보기가 쉬운 편이었습니다. 폭력을 다루는 방식, 농촌을 범죄가 엉겨있는 소름끼치는 공간으로 대상화시키는 영화들이 매우 무책임하고 위험하다는 생각때문이었어요. 그들에 비해서 김기덕 감독이 유별나게 두렵게 느껴지고 소외당하는 감독이 된다는 사실이 분명 한국적인 사회현상이 되니까 영화를 통해 사회를 분석해 보는 분들에게 분명히 논문 주제가 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론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두려워하지도 않고ㅋㅋ 그리 좋아하지도 않지만 나쁜남자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나요. 주인공 남자의 입장에서 그려불 수 있는 환타지의, 인터렉트의 극치이죠. 악을 이용해서 악을 수단으로 고통스러움을 너머 초월적이고 해방적인 사랑을 이루어나간다는 철학적인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나쁜 조건의 남성의 입장에서 상상에 오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수 있었던 나쁜 남자가 되는 길이요. 당시 여성주의자들이 기절을 했지만 방어가 되는 것 같았어요. 창녀가 되는 여대생이 창녀가 되어 그 남자와 길의 삶을 살지 않았더라면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그 나쁜 남자가 해방시킨 여성의 해방성도 생각해볼 만한 거였고요. 물론 도발적이고 비도덕적이지만 그 도덕성 이면에 나쁜 조건의 남성에게 최선은 나쁜 남자를 면할 수는 없다는 극치의 현실성을 놓칠 수 없었고요. 위의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선적으로 시적으로 나가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보다는 과거의 영화들이 주는 의미들이 더 와닿는 면이 있어요. 마찬가지로 홍상수감독의 영화도 점점 우디알렌 식이 되어가는 하하하 전후의 영화들보다는 좀 더 거칠지만 풋풋했던 영화들이 더 살아있는 맛이 나고요.ㅎ 아마 옛것을 찾고 있는 나이든 사람의 이야기로 들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먹으면서 성장하는 감독의 영화로는 에릭 로머의 경우를 저도 젊어서 느낀 적이 있어요. 초기 그의 영화들이 물론 인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젠더관계에 문제가 많은데 나이들수록 훌륭하게 극복하고 성숙해 가더군요, 생각과 경험, 성찰이 더해지면 당연해지는 거겠지요. 그외에 좋은 비평가들의 환경도 무시할 수 없겠고요. 위의 영화는 열리면 보겠습니다. 대략 김기덕감독 영화는 다 보는 편이니까요.

    그리고 참고로 다음의 미지나라는 블로그와 네이버의 늙은 소투라는 블로그를 소개해 드릴께요. 방사능문제에
    관한 중요한 기사들과 내용등을 올리고 있는 고마운 분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녹색당 창당 움직임도 있는 것 같더군요. 방사능 문제에 대한 국가에 대한 국민소송을 준비중인 것 같아요. 제가 그쪽 소식을 잘 모르지만
    전 세계적으로 방사능 문제는 큰 위험으로 다가와 있기 때문에 각 지역에서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프랑스에도 그린피스 운동원들이 여러 지역의 원전에 침투해서 몇 분에서 몇 시간까지 잡히지 않고 내부의 원전에 진입하는 성공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정부가 테러에 대한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해온 거짓말을 완전히 벗겨낸 기습행동이었지요.

    알본의 기사들은 읽게되면 너무 힘들어져요. 오염된 흙과 쓰레기를 한국에서 환경부가 주도해서 수입해서 한국에서 쓴다는 기사, 후쿠시마 쌀로 만든 라이스 버거를 베트남에 수출한다는 기사, 한국에 물론 일본 음식과 제품은 다 들여오고 있는 상황, 기타등등.. 이요. 원전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 후쿠시만 이백만 시민들이 겪는 이야기는 이루 말할 수 없고요. 동경의 오염도는 이미 나올 거 다 나온 정도이고 이미 후쿠시마의 녹은 핵원료는
    자체 보호 시멘트와 강찰막을 뚫고 땅으로 가라앉은 상태인 것 같다는 말도 나왔고요. 차이나 신드롬이라는 거지요. 이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세계 미디아는 많은 것을 없는 듯이 하고 있고요. 프랑스도 절대로 예외가 아니고요. 그래도 대선에서 원전 이슈가 매우 큰 이슈가 되어있기 때문에 매매일 많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가지 희망은 일본의 원전이 매우 빨리 완전히 멈출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에요. 현재 11기만 가동하고 대부분 멈춰있는데 내년 봄에 나머지도 다 멈추리라는 말도 나옵니다. 이게 아주 신통한 이야기에요. 독일에서 멈추기로 결정하는데 30년 논쟁과 결정하고 이십녀 이후 와전 멈추는 시나리오가 나와있고 프랑스는 그나마 줄이는 이야기로 싸움이 시끄러운데 현재보다 25퍼센트 겨우 줄이는데 35년 잡겠다느니 이런 시간관을 갖고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별로 크게 논쟁이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서 일년도 안돼서 재빨리 원전을 거의 닫아걸고 그런대로
    살아나가고 있는 일본이 정말 기적같은 곳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사회가 살아가는 방법은 비밀에 가려진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곳 같기만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식간에 원전을 다 멈춰버릴 수만 있다면ㅎㅎ 세상이 너무 복잡해지고 위험해져요. 여기에 애낳고 사는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 없는 거겠고요.

    • 은-유 [2011.12.06 23: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같은 경우는 초-중기 영화에서 나가 떨어진 경우;;ㅎㅎ 나중에 다시 한번 보고 싶어졌어요. 김기덕 영화와 김진숙 책이 주는 어떤 불편함..잔혹극같이 끔찍한 면이 있죠. 사회학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ㅋ (원전문제 의견 감사해요. 안그래도 저희도 심각성을 공유하고 있고 계속 얘기중이에요. 다음주 위클리에서 다루기로 했어요.)

  5. 나무다 [2019.01.15 2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끝까지 밀어붙이면 ......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
    감독의 방독면이 모두의 방독면.

생활 / 김수영

[올드걸의시집]

시장거리의 먼지 나는 길옆의
좌판 위에 쌓인 호콩 마마콩 멍석의
호콩 마마콩이 어쩌면 저렇게 많은지
나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모든 것을 제압하는 생활 속의
애정처럼
솟아오른 놈

(유년의 기적을 잃어버리고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갔나)

여편네와 아들놈을 데리고
낙오자처럼 걸어가면서
나는 자꾸 허허...... 웃는다

무위와 생활의 극점을 돌아서
나는 또 하나의 생활의 좁은 골목 속으로
들어서면서
이 골목이라고 생각하고 무릎을 친다

생활은 고절(孤絶)이며
비애이었다
그처럼 나는 조용히 미쳐간다
조용히 조용히......



- 김수영 전집, 민음사


보살님 같았다. 온화한 표정. 잡티 하나 없는 무욕의 피부. 넉넉한 말투. 세미나 첫날부터 앉아계시는 그곳에 편안한 파장이 흘렀다. 수선문. 화두를 아이디 삼으셨다고 소개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시인, 불교적 세계관이 투영된 문태준의 언어를 어렵지 않게 풀어주셨다. 삶의 지혜가 바로 이런 것. 우리는 감탄했다. “하루하루 애들 키우고 밥 해먹고 하다가 어느 날 돌아보면 훌쩍 이 나이가 돼있어요. 그런 게 멍한 거죠.” 여자의 삶. 조곤조곤한 말투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은 더 컸다. “토요일에 외출이 얼마만인지 몰라요.” 세상에 처음 나온 어린 새 같은 표정. “공부방을 이십년 운영했어요. 그러다보니 아이들하고만 지내고 어른과 대화하는 법을 까먹더라고요.”

말을 배우겠다는 어른. 말 부족은 물 부족만큼 심각한 생의 사태. 헌데 김수영 시가 어려워서 괜히 발을 들여 놓았구나, 가지말까보다 망설였고 여기서 그만두면 영영 못할 거 같아 나왔다고 터놓았다. 그녀는 유일하게 이해가능한 시 한편이라며 <생활>을 낭독한다. “모든 것을 제압하는 생활” “나는 조용히 미쳐간다.” 어제, 토요일 낮에 전화가 오셨다. 시어머니가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병원을 지키는데 평일에 일을 하니 주말은 당신 차지가 되었다며 시세미나에 당분간 참석이 어렵겠다고. “어머니 퇴원하시면 다시 돌아갈 테니 저 자르지 말아주세요. 호호호...” 자꾸 허허... 웃는 그녀에게, 나는 얼마든지 언제든지 편안히 오시라고, 기다리겠다고 말하고는 끊었다. 무언가 서글펐다. 생활은 고절이고 비애이고. 그렇다고 쳐도.

그러니까 묻고 싶은 거다. 왜 여자는, 사람은 시 한편 읽고 살기가 이리도 힘이 드는가.  

올해 각종 연말모임, 토요일 약속은 다 접으려 작정했다. 별다른 선약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나마도 다 피하고 조용히 지내려했다. 하나의 난관은 예상했다. 대시댁 모임. 일찍 닥쳤다. 시댁 어른 팔순잔치가 토요일 저녁에 잡혔다. 남편한테 양해 및 협조를 구했다. 어차피 뷔페라서 어수선하니까 어른들께 인사만 드리고 조용히 사라지겠다. 그리고는 그리했다. 어머님께 중요한 일이 있다며 말하고 나오는 길,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내가 많이 용감해졌구나 스스로를 대견히 여겼다. 내가 만일 돈 버는 며느리였으면 말하기가 좀 수월했을 텐데 표면적으로 백수상태이다 보니 참 입지가 애매하고 표현이 궁색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으로 환원되지 않는 가치는 설명할 길이 막막하다.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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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초록 [2011.11.14 0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서관에서 처음 어른들과 수업을 하던 15,6년전의 일이 생각나네요. 발제를 맡은 사람들이 그 날 아침

    시어머니가 오셔서, 시댁에 일이 있어서 이런 이유로 수업을 못 나온다는 연락이 오면 그런 일을 잘 모르는

    저는 멍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해서 궁금해했더랬지요. 오늘 제가 하는 공부가 있어서 그 시간은 어렵다는

    말을 왜 못하는가하고요. 그런 저를 외계인 보듯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하, 하고 생각을 했지요.

    저는 사실 결혼상태에서도 경제를 담당하는 사람이라서 어떤 일보다 그 일을 우선하는 것은 원칙으로 했고

    양쪽에서 다 그 점을 인정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갈들이 없었던 것도 한 가지 원인이었을까요?

    그런데 요즘은 많이 넉넉해져서 그런 것에 대해 면역이 생기긴 했지만 우선순위에 대한 것에 아직도

    여러모로 생각을 하게 되네요.

    • 은-유 [2011.11.14 22: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현실은 아직 전업주부가 공부를 우선에 두고 시댁일을 당당히 제끼긴 어렵죠. 점점 나아지고는 있고 본인이 개척해야할 부분이지만, 당사자가 독립운동 하듯이 싸울 수만은 없고요. 시세미나에 참여하는 기혼여성들은 토요일마다 아슬아슬해요..^^;

  2. 마구마구 [2011.11.14 0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 상황이 최악은 아니야' 뭐 이런 위안이 필요할때 김수영의 시를 읽었어요. 왜 그런지 잘모르겠네요. 열심히 해석하며 시를 읽는 열성이 모자라서인가. 여튼, 그랬어요. 삶이 가질 수 있는 최악의 바닥을 보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다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죠.

  3. 마구마구 [2011.11.15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어렵습니다만, 모두 칭찬하는 뜻인거죠? ㅋㅋ. 다른 얘기지만요. 중년이 되고보니 앞으로 무탈하게 살아도 30년정도 살텐데 싶어요. 그리 생각하면, 너무 진지한거 말고, 한살이라도 젊었을때 놀자는 마음이 들때가 많아요.

  4. [2011.11.16 1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은-유 [2011.11.17 08: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하던 곳으로 가는 거니? 잘됐다. 서운함을 꼭 풀어줄 필요는 없는 거 같아. 새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가끔이라도 쉼이 된다니 기쁘구다 ^^

김수영은 김수영을 반성하지 않는다

[글쓰기의 최전선]

강가도 좋고 산속도 좋고. 자연의 품에서 벗들과 둘러 앉아 시를 낭송하는 풍경을 꿈꿔왔다. 지난 6월 한강둔치에서 강가에서를 낭독했다. 강에도 나에게도 할 도리를 다한 기분이었다. 봄이면 봄시. 산에 가면 산시. 사랑하면 사랑시. 슬프면 술시. 정직한 산출이 즐겁다. 7차시 수업에 남산에서 시수업을 계획했다. 이 수업을 끝으로 미국으로 돌아가는 냥냥님이 야외용 미니 도시락 17인분을 낑낑 들고 나타났다. 일동 감탄하고 환호했다. 방산시장에서 도시락 용기를 사다가 엄마랑 준비했다는데 월간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나 보던 도시락 비주얼을 자랑했다. 수업시간마다 간식이 하도 색다르고 풍부하여 식도락 동호회로도 손색없다했거늘, 냥냥표 도식락은 미식가의 자부심의 궁극을 선사했다 

1교시 묘사하기는 교실에서 마치고 2교시 과제발표는 남산이다. 연구실에서 두 정거장 남짓. 발아래 서울 풍경을 두고 직통으로 쏟아지는 태양빛을 맞아가며 돼지소풍처럼 줄지어 걸었다. 나무계단 올라 벤치와 벤치 사이 돗자리를 폈다. 시와 에세이를 읽었다. 그런데 방해꾼이 나타났다. 모기 녀석. 사정없이 웽웽 거리고 인정없이 물어댔다. “산모기는 군화도 뚫는다고 말한 한준씨가 스마트폰 모기퇴출 앱을 가동했다. 모기를 쫓는 기계음과 시를 읽는 사람의 목소리가 정답게 교차했다. 수샘이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읽고 쓴 과제를 발표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과 반대로 진행되는 일을 만날 때 그 길이 틀렸다고 말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냥 누군가 틀렸다고 크게 외칠 때 마음속으로 공감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50원 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는’ ‘20원 받으러 세 번씩이 나온 야경꾼을 증오하는 모습이 자기 멋대로 운전하는 차를 보면서 여지없이 빵빵거리며 손가락질 하는 나를 보는 듯합니다. 모래만큼 먼지만큼 작은 자아. 깰 수 없는 자신의 벽을 가지고 절정에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는 것도, 세상의 모든 벽을 문으로 뚫고 나가는 혁명적 삶과 마찬가지로 고통스럽고 힘겹습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 분개하는가로 시작하는 김수영의 유명한 시에 감응한 글이다.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쳐온 그다. 우리나라 제도교육에서 제 정신으로 아이를 가르치면서 살기위해서는 얼마나 큰 존재혼란을 경험해야할지 짐작이 간다. 혁명의 절정에 서 있지 않고 옆으로 비켜서 있는 삶도 고통스럽다고 말할 때, 그래서 가슴에 잔잔히 이는 것이 있다. 수샘은 다음 주 결석했다. ‘선행학습 사교육 유발하는 학교수학시험 실태조사 기자회견보도사진에 그가 있다. 연구년을 맞아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그 때야 알았다. 모래만큼 작은 그가 벽을 흔든다.

주말에 고향친구들이 올라와 택시를 탔다가 바가지요금을 당한 명순씨. 4000원 초과요금에 분개한다. 매일 뉴스에서 접하는 굵직굵직한 사건에는 무관심하지만 내가 겪은 작은 일에라도 분노하고 고쳐나가는 게 사회구성원으로서 최소의 몫이라고 썼다. 누군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작은 일에 분개하면 거기에 힘을 다 쏟아서 정작 큰일에도 분개하지 못하는 거 아닐까. 논의가 오갔다. 작은 일에 분개하는 사람은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작은 일에 분노해보아야 큰 일에도 분노하는가. 그렇다면 작은 일과 큰일의 경계는 무엇인가. 정답 없다. 오직 살아가면서 매번 정답을 발명해야하는 삶의 과제다. 그 난해함과 헷갈림을 시로 풀어냈던 김수영은 그렇게 정립된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 괴로워서 또 몸부림쳤다.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구름의 파수병>

오후 5. 냥냥님 송별회를 위해 장소를 옮겼다. 치킨에 생맥 한잔. 스페셜 도시락에 걸 맞는 스페셜 치킨을 위해 부암동으로 공간이동. 치킨과 감자, 골뱅이와 소면을 맛나게 먹었다. 선하게 피어나는 얼굴들. 한준씨에게 치킨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인 없다는 디씨 치킨갤의 명언을 배웠다. 일부는 집으로 나머지는 카페로 갔다. 문을 열자 뜨거운 커피바람이 분다. 어둑한 조명 아래 에디오피아시다모를 음미했다. 위장이 고요해진다. 시가 들어갈 마음자리가 보인다. 남산에서 못 다한 수업을 하자니까 다들 진짜 할 거냐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돌아가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김수영 시 낭독하기. 소수정예반 수업이 시작됐다 

문학평론가를 꿈꾸는 취중진담님은 김수영 평전, 시집, 수필을 섭렵하여 글을 쓴 적이 있는 전문가. 그가 교사가 됐다. <신귀거래3-등나무>는 완전 어려운 시인데 나름의 독해법을 들려주었다. 연을 나누고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에 밑줄 그으면서, 우리는 감탄했다. 어쨌거나 정답은 심리적 안도감을 제공한다. <절망>의 재발견.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로 끝나는 짧은 시. 비교적 이해가 쉽다. 반성하지 않는 것들의 목록. 풍경-곰팡-여름-속도-절망. 공통점이 무얼까. 반성은 돌아봄. 멈칫거림. 주춤거림이다. 그런데 풍경은 스스로 무한정 넓어진다. 곰팡의 번식력도 막을 수 없다. 속도의 가속성과 절망의 나락행 등은 주춤거림을 모른다. 절망과 대결하여 심연에 이르렀을 때 희망을 찾아내야하는 운명을 김수영은 이렇게 노래한 거다. <꽃잎2>도 같은 시다. 금이 간 꽃을 주라고 하고. 떨리는 글자를 믿으라하고, 영원히 떨리면서 빼먹은 모든 꽃잎을 믿으라며, 보기 싫은 노란 꽃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수영은 6.25 때 포로수용소에서 지냈다. 이념에 따라 목숨이 살처분 되는 과정을 생생히 목도했다. 이념을 따르면 죽고 살기 위해선 신념을 배반해야하는 상황은 레비나스 말대로 존재가 오그라드는 체험아닌가. 살아가기 위한 자기 설득, 생에 대한 구토, 비루한 타협에서 한시도 자유롭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김수영의 파토스, 김수영의 존재윤리가 형성된 것 같다. 그래서 김현은 말했나보다. ‘그의 시가 노래한다고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절규한다. 시집을 덮으며 깨달았다. 김수영은 김수영을 반성하지 않았구나. 20대 친구들은 수능국어에서 접한 김수영과 다르다고 신기해했다. 국문학도 출신 냥냥님은 김수영을 전형적인 지식인이자 계몽적인 시인으로 생각되어 불편했는데 그의 시가 따뜻하게 다가온다, 다시 읽고 싶다고 말한다. 한 사람의 가슴에서 한 시인이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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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초록 [2011.09.19 0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몰락의 에티카의 신형철 (사실 저는 몰락의 에티카를 못 읽었는데)이 두 번째 낸 책 느낌의 공동체를

    빌려서 읽다가 은유씨를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었을까? 그녀는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시인에게 감응할까

    아니면 어떤 시에? ) 오늘 밤 집에 와서 남산에서의 시 낭송에 관한 글을 읽게 되네요.

    민우회에서 함께 글쓰기했던 박종의씨 기억하시지요? 그녀가 신촌에 the cup이란 가게를 내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네요. 다섯 번째 금요일 혹은 10월 첫 번째 금요일에 그 근처에서 만나면 어떨까 싶어서

    메모남깁니다. 밤이 아니라 낮시간에

    • 은-유 [2011.09.19 21: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느낌의 공동체는 읽었어요. 신형철의 젖과꿀이 흐르는 글에 열광했는데 두번째 읽으니까 너무 달아요^^; 종의씨가 가게를 냈다고요? 와우. 가봐야겠어요. 이번주 금요일이 더 좋습니다^^ 연락드릴게요.

  2. 게꿀 [2011.09.19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찍은 사진 한장... 혹시 도시락만 배달 받을 순 없나?

희망버스 설움버스

[사람사는세상]

#1.

다시 여름이 되나봐. 희망버스 후유증으로 시들었어. 여러 가지로 우울하다.
흠 강정마을에 있다. 여기도 참 심란하네. 곳곳에서 우울한 풍경만 날아다니고 그래. 

한 우울이 다른 우울에게. 뉴스를 보고 마음이 영 좋질 않다. 고객숙인 남자. 폭염주의보까지. 일손이 잡히지 않았고 넋두리가 필요했다. 사람들이 이래서 트위터를 하는가 보다. 말이라도 하고 나면 숨통이 트이려나. 깨어있을 확률 100% 심야생활자에게 문자를 전송했더니 제주도다. 이상한 나라. 곳곳에 우울특파원 

4차 희망버스는 유람버스. 시내를 맴돌았다. 청계광장에 있다가 광화문역 화장실을 갔다 오니 대오가 흩어졌다. 난간에 기대 서서 물길 따라 이동하는 깃발 행렬을 보았다. 꼬리가 사라지고 무대 스피커가 떼어지고 현수막이 걷혔다. 서서히 뒤따랐다. 어디로 가야하나 수소문. 본대오는 한은본점. 명동 밀레오레 11. 각각 다른 답변이 왔다. 을지로 입구에서 깃발무리를 봤다. 명동에서 모이겠구나. 안심하고 편의점에 들렀다가 지름길로 갔더니 아무도 없었다. 비정규직철폐 분홍손수건을 맨 2명의 남녀가 왔다. 그 뿐. 가짜 택이었다. 목적지는 독립문. 버스로 따라가서 합류했다 

12시 독립문 공원 계단. 발이 쑤시고 눈이 아팠다. 새로 산 렌즈가 불량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이물감이 컸다. 만화주인공처럼 양쪽 검은자위가 활활 불타올랐다. 물 사러 간 친구에게 식염수를 사다달라고 연락했다. 신을 벗고 눈을 감고 기다렸다. 눈을 감으니 귀가 열렸다. 주위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확성기를 댄 것처럼 크게 들렸다. 욕반 말반. 조폭영화에서 나오는 걸죽한 남도사투리. 전국에서 노동자가 모였음을 실감했다. 핏발 서린 눈 위로 렌즈를 뺐다가 다시 꼈다. 이건 뭐 비에 젖은 나무토막 위로 비가 내린다보다 더 처량했다. 토끼 눈을 달고는 깡총깡총 뛰어서 희망의 토크쇼가 열리는 맨 앞자리로 갔다.

#2.

첫 번째 발언자. 김형우 금속노조 부위원장. 육담이 끝내준다. 막 시동이 걸리려는데 키가 짤막한 50대 아저씨가 무대로 다가간다. “다 자다가 깼어요. 건너편까지 들려요. 내일 일하러 가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떠들면 어쩌구 저쩌구....” 목청을 높인다. 거친 항의와 삿대질이 길어진다. 참다못한 반격. “, 비켜라.” “하룻밤 불편한 것도 못 참냐” “저 새끼 뭐야! 끌어내파란색 셔츠 입은 스머프 아저씨들 사이에 욕설이 빗발쳤다. 선량한 시민이 열 받았다. “내가 왜 욕을 먹어야 돼! 나도 실업자야! *” 누군가 맞받아친다. “야이 *새끼야, 난 해고자다. 일하러 갈 데도 없어! 잃을 것도 없다. *” 결국 거구의 해결사 2인이 나서서 선량한 시민을 번쩍 들다시피 달래서 내보냈다. 상황종료

뒷걸음질 치며 사라지는 그 아저씨가 아른거렸다. 그건 발버둥이었다. 다음 날 일하러 간다며 핏대를 세우더니 1분도 못 되어 커밍아웃을 해버렸다. ‘나는 실업자다이에 맞서 나는 해고자다옥신각신 싸우는 사람들. 웃겼다가 슬펐다가. 애잔하다. 같은 하늘. 같은 나이. 같은 처지. 같은 남자. 같은 욕설. 같은 설움. 어쩌면 그도 희망버스에서 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들이닥쳤다. 노래공연도 아니고 말소리인 데다가 시끄럽기도 전이다. 잠을 못 자서 온 게 아니라 사람이 그리워서 온 게 아닐까. 공원 바닥에 앉아 밤새 술잔 기울이며 신세 한탄이라도 하고 나면 그 출구를 찾지 못한 울분이 조금은 사그라질 텐데. 어깨 맞댈 동료가 있는 곳, 자기의 비빌 언덕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다 찾아가기 마련인가 보다. 아저씨. 나중에 어버이연합 가지 마시고 희망버스 타세요.

#3.

설움이 번져 나오는 기원으로서의 삶. 희망버스에서 생생히 목도한다. 스테레오 사운드로 욕을 들으니 그 때 그 욕이 생각난다. 정독도서관 근처 유명한 청국장집. 창창한 하늘이 훤히 드러나는 마당에서 음식점에서 주방아주머니와 서빙아주머니 두 분이 싸움이 났다. 짧은 순간 심한 욕설이 오갔다. 머리끄댕이를 잡고 늘어졌다. 오랜만에 화끈한 싸움을 목도했다. ‘맛집이라며 거기로 데려간 사람이 무안해했다. 미안하단다. 사과를 반사했다. 삶의 짜증과 피로와 울분이 뒤엉킨 자리에서 발생한 접촉사고다. 그 자리에선 누구라도 당한다. 화폐라는 충신이 있다면 저 분들도 고상과 품격을 유지하며 살 수 있다. 되도 않는 고갱님 타령보다 훨씬 좋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다는 건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그저께는 마트 야외매장 신발코너를 기웃거리다가 직원이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 너도나도 발에 끼어보고 간 구두더미를 정리하면서 지나가는 직원에게 하소연이다. 구두가 짝이 없고 사람이 몰리니 힘들다고. 내 또래의 여성이다. 혼잣말로 작게 그런데 강하게 내뱉었다. ‘, 씨발’  

가난한 사람들은 왜 욕을 할까. 예전부터 궁금했다. 인격 문제는 아니다. 먹고 사는 기본적 필요가 보장 돼야 품위도 지키고 무소유도 하고 정신적 향유를 누릴 수 있다. 동네 놀이터를 지나다 보면 초딩 애들도 욕을 추임새처럼 넣는다. 목동은 부자동네. 그런데도 왜 아이들이 욕을 할까. 놀기 본능이 억압당해서 같다. 배울수록 잠식당하는 영혼. 암기할수록 가난해지는 머리. 욕은 사회적 약자의 자기표현이다. 욕 잘하는 팀장이 있다면 본부장한테 닦달당해서다. 아도르노는 욕은 사회의 부조리를 증명한다고 말했다. '부당한 가난'을 재생산하는 사회로부터 당하는 모욕을 단어에게 되돌려준다는 것이다. 말된다. 부당한 가난. 억울한 가난. 신경질나는 가난. 모욕이 욕을 낳는다. 인간다운 자기유지가 보장되지 않은 세상에서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마찰음이 나는 거다. 김수영 시구대로 어린 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운 세상. 희망버스는 설움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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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구마구 [2011.08.29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욕설은 이빨을 드러내거나 발톱을 세우고 으르렁 거리는 동물들의 행위 같은거 아닐까요? 인간은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이 없으니까. 방어를 위해서든, 과시를 위해서든 뭔가 내세울게 없잔아요. 권력자이거나 부자이면 그게 동물의 이빨이나 발톱같은 역할을 하는거겠죠? ^^;; 황산벌이란 영화가 생각나네요.ㅋ.

  2. [2011.08.29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은-유 [2011.08.29 2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디가에 계셨군요. 희망버스. 마음 아파요. 이러다가 겨울 되게 생겼어요. 자고 나면 폭탄뉴스. 사람들은 무관심해지고..길이 있겠죠. 이래서 희망은 발명하는 건가봐요. 끝까지 깔깔깔. 힘내기로해요. (참,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3. 삐삐 [2011.08.30 0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4차 후기를 기다렸는데 고마워요. 신문기사와 달리 참여한 경험내용은 훨씬 다가오네요. 경제위기, 주민투표, 곽노현 스켄달, 부산 저축은행까지 대선은 물론이고 희망버스와 강정마을 가리고 쇼할 카드는 얼마든 있다고 생각을 하겠지요, 지금 세계 육상대회중이라 세계기자들도 많이 들어왔을 거고 희망버스 사건을 좀더 알릴 수 있는 기회라 여겼는데 정부에서 더 빨리 손을 쓸 수도 있겠네요.

    뉴욕타임지 최상훈기자도 이번 정권에 길들여졌는지 정부에 순한 기사만 쓰고 엘에이 타임즈도 쓴 김진숙씨 기사를 내놀 생각도 하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그의 이멜을 아는 분들이 있다면 소금꽃책 요약과 한진사태내용을 보내 기사화 해달라는 요구를 운동으로 해봐도 될것 같네요. 삼국유사에도 보면 납치된 수로부인을 내놓으라고 모두들 요구하니까 결국 수로부인을 내준 이야기도 있지 않던가요. 꾸준히 보다 많은 다중적 사람들이 목소리 요구를 계속 많이 해야하는 오랜 방법이 쓸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해외여론이 아니라 한국의 중산층인것 같아요. 82쿡과 같은 일반 주부 사이트에 갖은 이슈가 올라와도 김진숙님 투쟁과 희망버스 논의가 뜨지 않거든요. 김진숙님의 투쟁을 여성주의쪽에서도 밀지 않고 지식인들도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다 드러내게 하는 이번 일에 나서질 않거든요. 결국 노동자들 자신의 일로 그들이 풀건 말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돌아가려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의 노동자가 한날 한시에 자신들의 이슈로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님과 한진 노동자들을 위한 파업을 단 하루만 함께 한다면 커다란 성과를 얻어내겠지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없겠고요. 결국 일반 시민이 움직여야 김진숙님이 살 것 같아요. 더 알리고 더 중요성을 강조해야겠지요.

    노조 가입률은 낮아도 몇몇 노조가 파업을 선언하면 백만 이상의 노동자들이 다음날 전국에서 파업에 들어가면서 시가행진을 하는 프랑스는 자신들의 이익에 그만큼 노동자가 민감한거겠지요. 한국에서도 이번 일이 어떤 결과에 이르든 이번 일로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의식화를 만드는 준엄한 의식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하나의 씨가 맺혀진 것은 사실이겠지요. 분명히 희망이 심어진 겁니다. 이 이전보다는요!

    욕설, 약한자의 무기라면 투쟁기능을 하지만 강한자들이 약자에게 쓴다면 폭력이겠죠. 중고등하교 학생들도
    부모들에게 저들간에 욕설이 심하다고 하더군요. 안 그렇다면 이상하죠. 밤늦게까지 학원에 쳐박히는데 맨정신에 살겠어요. 순화에 모두 역주하고 있는데요.

    박민규의 아치란 단편을 읽었는데 많이들 읽혔으면 좋겠어요. 그의 단편중에 비치보이스, 기린등이 좋아서 다른 모든 글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작가중에 제 눈에는 가장 정신 든 작가란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잠재력도 있는 작가인데 그 잠재력이 다 현실화 하지 못한다면 순전히 한국의 제대로 된 비평가의 부재 때문인거지 그의 책임은 아닐거에요.

    한국은 이제부터 폭염이 또 오나요? 제가 사는 곳은 한 한주 전에 연일 40도 씩 한 일주간 폭염을 하고 천국같은 날씨로 돌아섰어요. 한국에서도 곧 아름다운 가을이 오겠지요. 더위가 오래갈 수는 없을 겁니다. 폭염중에 소금꽃 책을 아침에 배달받아서 일보면서 덥다보다 했는데 새벽 한 시경에 다 읽을 수 있었어요. 매료되었다는 거겠지요. 힘든 이야기가 있지만 읽고난 기분은 복음을 들은 것과 같은 기쁨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이 분으로 인해서 인간의 초극이란 것이 가능할 수도 있구나, 한국의 여성 개인이 숭고한 경지에 우뚝 올라서서 그 경지가 얼마나 자긍과 기쁨의 경지인지 보여주고 계신 듯 햇지요. 왜들 이 책 읽기가 힘들다는지 갸우뚱해지데요. 글로발 시대가 오긴 왔느지 일본의 중산층과 혹은 서구의 중산층들과 훨씬 더 정체성을 공유하고 연변 시민들을 이류시민화 하고 북한 시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외면하고 노동자들을 배운게 없어 다른 해먹을 일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간주하는 한국의 중산층 여성들이라면 자신들의 생각을 완전히 배반하는 노동자 출신 저자의 숭고한 인격을 대하게 되는 경험이 좀 어지러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여러가지 결이 있다고 생각돼요. 질투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어떻게 그 질투감을 연대감으로 바꿔내야 하는지 그것이 과제겠지요. 투쟁과 함께 유혹이 필요한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원리로 필요하겠지요.

    • 은-유 [2011.08.30 09: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후기라하기엔 내용이 부실합니다. 단상이에요. 커다란 배낭 이고지고 상경한 노동자들 1박2일 투쟁을 보며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설움기반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하고싶은 얘기가 더 있는데 차차 나누어야죠. 김지도의 자기초극은 존경스럽죠. 식상한 표현이지만 존재를 깨어있게 해주는 등불같은 분이세요ㅎㅎ 투쟁과 '유혹'이 필요하단 말씀 동감합니다.

김수영 / 비 '움직이는 비애'

[올드걸의시집]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 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순간이 순간을 죽이는 것이 현대
현대가 현대를 죽이는 '종교'
현대의 종교는 '출발'에서 죽는 영예
그 누구의 시처럼  

그러나 여보
비오는 날의 마음의 그림자를
사랑하라
너의 벽에 비치는 너의 머리를
사랑하라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여  

결의하는 비애
변혁하는 비애......
현대의 자살
그러나 오늘은 비가 너 대신 움직이고 있다
무수한 너의 '종교'를 보라  

계사 위에 울리는 곡괭이소리
동물의 교향곡
잠을 자면서 머리를 식히는 사색가
--- 모든 곳에 너무나 많은 움직임이 있다  

여보
비는 움직임을 제(制)하는 결의
움직이는 휴식

여보
그래도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느냐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


 -  김수영전집1 , 민음사 


 



시골구석에서 사는 아이가 희귀난치병이다. 몇 번 들었어도 이름을 외기 힘든 척수성근위축증. 태어나자마자 사지에 힘이 빠진다. 심폐기능이 약해 호흡이 어렵다. 지역 내 큰 병원에서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억척스레 아이를 들쳐 업고 상경했다. “그래도 큰 병원 가봤다는 소리는 들어야지 원이 없잖아요.” 이런 얘길 들을 때 눈을 어디다 두어야할지 모르겠다. 그녀의 투박하고 새까만 문신한 눈썹과 실밥 뜯어진 비즈가 처량하게 매달린 네크라인을 멀뚱멀뚱 훑는다. 수년간 그 먼데서 ‘큰 병원’을 다니며 아이의 숨을 이었다. 없는 사람에게 병원체제로 돌아가는 24시간은 혹독하다. 째깍째깍 초침 따라 병원비가 올라간다. 빈 밭처럼 버려진 집구석에 비가 들이친다. 세끼 먹고 사는 일상성의 유지가 힘들다. 번뇌는 물적이다. 궁핍하면 험해진다. 아픈 애가 있는 가난한 부부는 거칠기 짝이 없다. 아파서 가난하고 가난해서 싸우고 싸워서 다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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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초록 [2010.07.03 1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2살 아이의 35살 연령이 되도록 그 아이속에서 얼마나 많은 말들이 생각들이 쌓였을까요?

    그 아이를 지켜내야 하는 엄마도 고달프지만 아이의 마음속에 오고 갔을 비애가 마음을 치는군요.

    돕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말이 많다는 구절에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요즘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보면서 (주변에 결혼이 족쇄인데 나올 엄두를 못 내는 사람들이 있어서 )

    아무리 마음아파해도 역시 해결하는 것은 자신인데 그 자신이 연약한 경우 보는 사람마음이 참 힘이 드는구나

    그녀들은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한가 싶다가도 누구나 다 검투사처럼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자꾸 생각하게 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지요.답답하는 것은 내 생각이고 자신들이 겪는 마음의

    통증은 얼마나 심할까요? 사는 일이 단칼에 무우 자르듯 할 수 없어서 한 발 나간 것 같으면

    어느새 한참 뒤로 돌아가 있고 아니 왜 그렇게 지지부빈한 거야 싶다보면 어느새 쑥 앞으로 나가 있고

    그래서 종잡을 수 없으나 재미있는 인생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자꾸 비가 오니 마음마저 후즐근 해지기 쉬운 날들, 기운내고 살고 있나요?

    • 은-유 [2010.07.05 0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연신 부채질해가며 잘 지내고 있어요. 비오니까 아이의 표정이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움직이는 눈동자 따라 움직이는 비애..

  2. 봉급생활자 [2010.07.05 0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고..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세계.. 인간 역사에서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사회구조가 되어야만 해결 될 것 같다는 절망감이 드네요.

  3. hyde [2010.07.05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엄마가 되고보니 저런 내용이 그전보다 두배는 가슴을 더 칩니다. 미담을 넘어선 생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글이 더욱 중요한 순간이 순간을 죽이는 요즘 세상입니다. 사람사는 세상. 저 애도. 성폭행을 당하고 이틀만에 자전거를 타고 등교해야만 했던 베트남 엄마를 가진 우리동네 애도.. 사람사는 세상에 살아가야하는데요..

  4. 은-유 [2010.07.06 0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봉급생활자님. 솔깃하네요. 인간역사에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사회구조라니! ㅎㅎ 화두로 품겠습니다.^^

    hyde. 애엄마가 되니까 뉴스가 다르게 보이지.. 안그래도 베트남 엄마 일하러 가고 아이 등교했다는 그 기사 보고 너무 가슴 아프더라.. 예전엔 가난해도 인심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가난+삭막해서 없는 사람 살기 더 힘든거 같아...

  5. 자유인- [2011.12.25 1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시와 시 사이를 기웃거리다가, 여기까지왔네요.
    비- 모든 것이 멈춰서 고요해졌으면 좋겠네요 ㅋ

그 방을 생각하며 / 김수영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올드걸의시집]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과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四肢)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잔재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 김수영 시집 <거대한 뿌리> 

 



혁명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왼쪽으로 기울길 바랐고, 소외된 사람들에게도 볕드는 그런 세상을 꿈꾼 건 맞다. 정권교체가 아니라 말 통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 시어머니가 아들사랑을 이유로 며느리를 구박하지 않는 세상. 힘 없는 사람을 보고 같이 연민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아지는 그런 세상. 선생님이 아이들을 때리지 않는 그런 세상. 광장에 나가서 혁명할 주제는 못되고 방구석에서부터 내 주변부터 정리하면서 잘 살아보려했다. 내가 몸 담은 곳, 내 생활반경에서 말이다. 살면서 느끼는 기쁨, 슬픔, 분노 같은 날감정을 글로 써보고 나누고 싶었다. 뭔가라도 영양가 있는 생각을 짜내서 그 한방울씩이라도 나누다보면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지 않겠나 하는 막연한 희망.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고 있다. 이방 저방 떠돌면서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고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피와 살로 삼아 쓴다. 덕이 되진 못해도 남에게 상처주는 글은 쓰고 싶지 않았느데 그럴 순 없을 거 같다. 다 좋을 순 없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방을 바꾸면서 내 친구 니체를 앉혀놓고 약속한다. 누구에게나 이해받는 글을 쓸 수는 없지만 나를 속이는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글 쓸 때 사람들은 이해되기를 원하는 동시에, 이해되지 않는 것도 원한다. 어느 누군가가 책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 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저자는 어느 누군가에 의해 이해되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고귀한 정신과 취향은 자신을 전달하려 할 때 청중도 선택한다. 그는 청중을 선택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는 차단기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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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즈 [2009.06.17 0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사람에게 이해받는 글이라는 건 정말 존재하지 않겠죠.
    그저 글을 쓰기 전에 나의 생각이, 고려해야할 모든 것을 고려한 오픈마인드인가 편협하거나 폴리티컬리 인코렉트 하지는 않는가 하는 것만 염두에 두고 글을 쓰게 되더라구요.

    우직한 은공님. 저는 님이 자신을 속이는 글을 쓰지 않을거라고 믿고 있어요.

  2. [2009.06.17 0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광옥 [2009.06.17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두에게 이해되는 말이나 글이나 행동은 없을 거예요.

    17년간 사랑했던 태지에게 은공님은 더이상 위안도 위로도 못받는구나...그져..그런 느낌이..

    은공님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는 잘 모르지만..잘 이겨내길 바랄 뿐입니다.

    • 은-유 [2009.06.17 2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광옥님. 고맙습니다.. 저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세상에 던져진 이상..고정불변의 실체가 정해져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게 맞겠군요..

  4. 장정아 [2009.06.17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두에게 이해받으려고 글을 쓰면 중심을 잡기 어렵겠지요. 그럴 필요도 없구요. 하지만 남을 아프게 하는 글은 되도록 않쓰려고 노력해야겠지여. 그 글이 칼이 될 수 있으니까여.(얼마전 우리곁을 떠난 분이 생각나네요)
    글쓰는 사람이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자신을 속이는 글은 쓰지 않아야한다는 것이지요.
    은유에게는 이런 믿음이 생기네요

    ^D.H. 로렌스의 제대로된 혁명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는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
    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좇는 혁명은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는가를 보는 짓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
    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괜찮은 귀족이 되는 그런 혁명을 하라
    즐겁게 도망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번 하라

    어쨌든 세계 노동자를 위한 혁명은 하지 마라
    노동은 이제껏 우리가 너무 많이 해온 것이 아닌가?
    우리 노동을 폐지하자, 우리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이처럼 혁명을 한다면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함께할 수 있는 혁명, 나부터의 혁명이 가능하겠지요

    • 은-유 [2009.06.17 2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글 좋네요! 산술적 평균을 깨라는 말이 와 닿고..마지막은 '노동을 거부하라' 시버전이네요...좋아요. 두고두고 읽어볼게요 ^^

  5. [2009.06.18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 [2009.06.18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기를 속이는 글은 쓰지 말아야 한다는 말.. 저도 동의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야기를 내어 낼때에는 서로 소통하겠다는 마음가짐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자신의 솔직한 마음에 내어낸 글에도 많은 사람이 다쳤을 때는 그들의 글도
    열린 마음으로 한번쯤 생각을 해보시는 것도 글을 쓰는 이유중에 하나이겠죠..

    글은 읽는 것만 으로 소양을 얻을수 있는 것이아니라 쓰는 것으로도 충분히
    소양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역시 겸허히 받아 들이려는
    소통에의 노력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만 편안히 그리고 오랫동안 조용히 그 자리에서 우리 이 시대를
    버티어 내요... 그럴려면 우리 즐거워야 하는 거잖아요
    즐겁게 저항하자던 그 누군가의 말을 한번쯤 다시 생각해주세요

    우리 정말 즐겁게 저항해서 반드시 이 시대를 이겨내요..

    그래도 늘 어둡진 않겠죠 은공님도 저도 시대도 그리고
    오히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동시대를 버텨내고 있을 그 누군가도 말입니다..

  7. .. [2009.06.18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리고.. 어쩌면 은공님은 누구보다 여린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지금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중이라 그의 위로가 위로로 들리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은공님을 더 힘들게 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힘들어 하진 마세요 그는 그 자리에서 아마 은공님을 흐뭇한 조금은
    걱정스러운 미소로 은공님을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건 좀 뻘소리이긴 한데요 ;;;;;;;;
    저기 은공님 사진 밑에 있는 은공님의 말이요
    저거 전 왜저렇게 무섭게 느껴지는 거죠 ;;
    너무 주제 넘었다면 죄송해요 ;;;;;;;;;;
    근데 전 진심으로 저말은 너무 무서운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