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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 고작 열흘 만이건만 그새 거리에는 봄기운이 파다했다. 햇살이 눈부시고 바람이 간지럽고 피로에 눌린 탓에 원래 크지도 않은 눈이, 마치 열리다 만 셔터처럼 반쯤밖에 안 떠졌다. 그 작은 눈으로 노선 번호를 잘 알아보고 버스를 탔는데 그만 내리는 곳을 두 정거장이나 놓치고 말았다. 허둥지둥 내려 건너편에서 다시 버스를 집어타고 거슬러 올 때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쪽에서 좁혀오는 버스 문틈사이로 겨우 발을 빼냈다. 내 손바닥 같은 활동구역에서 이렇게 해맬 줄이야. 아마도 ‘느리게 산다는 것’의 전지훈련 같았던 스위스여행에 익숙해진 몸의 소행이리라. 길을 취재하러 가는 길. 이번 테마는 경복궁 3번 출구에서 10분 정도 직진하면 나오는 통인시장 부근 한옥길이었다. 시내에서 약속을 잡을 때 ..
길 / 황지우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 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 돌아다녀보면 조선팔도, 모든 명당은 초소다 한려수도, 내항선이 배때기로 긴 자국 지나가고 나니 길이었구나 거품 같은 길이여 세상에, 할 고민 없어 괴로워하는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 가다보면 길이 거품이 되는 여기 내가 내린 닻, 내 덫이었구나 - 황지우 시집 밤길은 두렵다. 겨울밤은 어둡다. 헤매기 십상이다. 역시나 그랬다. 제사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 남편은 늦게라도 송년회에 가야한다고 먼저 따로 나갔다. 혼자서 뒷자리엔 애들을, 트렁크엔 김치를 싣고 출발했다. 시댁에서 집으로 가는 길, 수지에서 목동까지 수년간 수십 번을 지나갔는데 헤맸다. 판교IC 타는 곳을 놓쳤더니 영판 낯설다. 왕복 8차선 도로에 지나가는 차가..